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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체면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법을 공부하면서 제일 신기했던 건, 모호한 상황을 적절한 단어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으로 법을 공부하는 학부생 수준에 맞춘 예시들이었기에 언어로 쉽게 정리가 가능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말하는 듯, 세상에는 말로, 글로 표현되지 못하는 것들이 있으며 자신의 억울함이 제대로 해명되지 못한 채 맞지 않는 죄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우리는 사법부에게 생명, 시간, 재산에 대한 판단을 맡긴다. 뉴스에 나오는 몇몇 사건들로 우리는 사법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는 하지만 금새 잊히고, 사법 정의에 배신당한 이들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재판 이후의 삶을 살게 된다. 우리는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법의 체면]은 법, 정의, 재판 등과 관련된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법과 관련된 소설이라 하면 흔히들 사회고발적인 면만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 책은 추리소설로서의 재미도 담았다. 이야기 속에 절묘하게 섞인 단서들과 짜임새있게 쌓아올려진 결말은 결국 독자들이 뒷통수를 매만지며 이야기의 첫 페이지를 읽게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충격과 배신감을 느꼈던 것은 3번째 이야기인 <완전 범죄> 였다. 재판은 과연 객관적인 사실만을 다루며 공정하게 이루어지는가? 담당하는 재판관은 그런 자격이 있는 것인가? 검사는? 변호사는? 굳이 재판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는 명문화된 규정을 따르지 않은 채 얼기설기 기워가듯 완결되어 가는 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재판이 이러한 사례의 예외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어쩌면 우리가 이에 대해 본격적으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모순에서 희생되었던 것은 목소리를 쉽게 낼 수 없었던 소수자들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었던 이야기였다.
결코 가벼운 소재는 아니지만, 글이 정말 정말 쉽게 읽힌다. 법과 관련된 글이라하면 길고, 어려운 단어가 많고,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여 겁먹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실제로도 읽기 어려운 책을 몇 번 봤었다. 이러한 걱정이 무색하게도 [법의 체면]은 쉽게 읽히고, 상황이 크게 복잡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언뜻 보면 인과관계가 명확해보이는, 더는 함정이 보일 것 같지 않은 일들 사이에 숨겨진 날카로운 칼날이 더 깊이 파고든다. 이것이 이 책의 매력이자 무서운 점이다. 이 책이 정말 재미있게 읽힌 탓에 작가님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정의에 대해 몇 번이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법과 관련된 추리 장르의 이야기를 읽어보고 싶다면 정말정말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