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위한 부모의 작은 철학
볼프강 펠처 지음, 도현정 옮김 / 미르북컴퍼니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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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보니 육아, 교육에 관한 책은 그냥 넘어가기가 힘들곤 하다. 생각해보면 아이를 키우는데 이것이 옳다는 확실한 정답이 없는건데 '내가 혹시라도 잘못키우고 있는건 아닌지..' 엄마가 올바른 길잡이가 되어주지 못해서 혹시라도 '우리아이가 잘못되는건 아닌지..' 하는 걱정이 생기곤 한다. 그래서 이렇게 가끔씩 아이 교육이나 육아에 관한 책을 읽게 되는 것 같다.



<내 아이를 위한 부모의 작은 철학>을 읽으면서 아이를 키우는데 있어서 거대한 철학까지는 필요없어도 이런 작은 철학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작가역시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작가이며 교육자이다. 교육에 관한 여러 철학에 대해 널리 알리고 있으며 책을 쓰기도 한다. 그 역시 집에서는 그저 평범한 아이의 아빠이다. 그렇게 때문에 누구보다 부모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시중에 교육에 관한 많은 책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교육문제에 관한 충고를 다루지 않는다고 이야기해준다. 작가는 책속에서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자신이 겪게된 일들을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그 일들은 부모라면 누구나 처음 겪는 일일 것이다. 그 일로 인해서 많은 철학적인 교육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철학가가 남긴 말들. 그 말들이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을때는 그냥 지나갈 말처럼 들렸을지 모르지만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금은 좀 더 나에게 의미있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죽음과 탄생. 우리는 누구나 죽음과 탄생을 경험한다. 나와 관련없는 사람들이 죽기도 하지만 나와 관련 있는 사람들이 죽기도 한다.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아이가 탄생하고 내 아이가 탄생하기도 한다. 죽음은 너무 슬프고 누구에게나 겪기 힘든 일이지만 탄생의 순간은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잘 모르겠지만 그 기쁨과 신비로움은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워도 정말 대단한 경험이라고 말하고 싶다. 


무튼 우리는 그렇게 상반된 경험의 죽음과 탄생의 순간을 경험한다. 그 중 탄생의 순간. 우리는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게 되었을때 배속의 아이를 기다린다. 그리고 '어떻게 키울것이며 어떻게 할 것이다.' 라는 경험해보지 못했기때문에 뭔가 그럴싸한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아이를 낳고 처음 만나는 그 경이로움 기쁨뒤엔 자신이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들이 벌어진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경험하게 된다. 몇달이 될수도 있지만 몇년이 될 수도 있다. 아이가 왜 우는지? 아이가 왜 안 먹는지? 모든욕구가 다 채워져도 아이가 운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부모에게 갓 태어난 아이는 낯선 존재이겠지만 아이역시 세상이 낯선 존재이다. 믿고 의지할 곳이라곤 부모밖에 없는 것이다. 많은 육아 서적을 접하고 많은 이야기를 접해도 진짜 부모가 되는 첫걸음은 모든 가치 평가 기준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뜻대로 되지 않고 다른집 아이처럼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저 아무 조건 없이, 아무 근거없이 지켜주고 아껴주고 사랑해줘야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다보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하는 순간이 온다. 습관을 버려야 하는 것, 그렇다고 아이를 원망하지 않는 것. 그 모든 관문을 통과해야 아이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고 아이를 안정과 고요의 파괴자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문제 있는 아이는 없다. 단지 문제 있는 부모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에리히 프롬이 말했다. 이 말이 마음에 와닿다. 부모의 화가, 부모의 짜증이, 때로는 부모의 싸움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고 그 영향으로 아이에게 문제가 생길 수가 있다. 부모 스스로가 아이를 바라볼때 내 마음의 파괴자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문제있는 아이로 자랄 일은 극히 줄어들 것이다.



두번째 탯줄을 자르는 순간. 첫번째 탯줄은 당연히 엄마와 연결된 탯줄을 말하며 두번째 탯줄은 아이가 이제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야 하게끔 해주는 상황을 말한다. 아이 스스로 '부모는 신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아야한다. 무조건 안된다고 해서도 안되지만 무조건 들어주는 것도 안되는 훈육. 사실 어떤 상황에서 이런 선택을 해야하는지 어렵긴하다. 두번째 탯줄은 부모와 아이가 독립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아이를 키울 수도 없지만 아이역시 스스로 독립된 존재라는 거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호의적인 부모가 되는것. 말이 쉽지 사실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아이를 미숙한 존재, 불완전한 존재, 모든 것을 믿고 맡길 수 없는 존재, 항상 불안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호의적인 부모가 되는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아이를 스스로 삶을 펼치기 위해 이 세상에 온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피와 살이 있는 한 인간, 유리 인형이 아닌 살아있는 한 인간, 기쁨과 고통을 느낄 줄 알고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어른들이 보기에 내 아이가 미성숙한 존재일지 모르지만 호의를 가지고 바라봐 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 위험의 적정선을 넘지 않는 한 아이에게 호의를 배풀어주는 것이다. 



그밖에도 많은 철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깊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정말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물론 쉽지 않다. 지금도 눈에 뻔히 보이는 위험의 요소들로부터 내 아이를 지키기위해 짜증도 내고 화도 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위험하기보다 내가 조금 번거로울뿐이다. 조금 더 너그러운 자세로 아이를 바라보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다려줘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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