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 2023 브라게문학상 수상작
프로데 그뤼텐 지음, 손화수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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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소개​

피오르의 페리 운전사로 일했던 '닐스 비크'는 오늘이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 날임을 직감한다. 아내와 사별한 그는 아주 오래전 성장하여 집을 떠난 딸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겨두고 집을 떠난다. 그리고 수십 년 함께한 그의 배 '마르타'에 시동을 걸고 마지막으로 항해를 시작한다. 그는 항해일지를 펼쳐 그의 배를 탄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고 다시 만난다. 가정폭력으로 괴로웠던 기타소년 욘, 17살까지 그와 함께한 개 루나, 닐스의 도움으로 가정을 꾸린 옌스, 미국인 친구였던 로버트... 과연 삶과 죽음 그 중간에 있는 닐스는 그가 사랑했던 부인 마르타를 만날 수 있을까?

📌 후기​

담담함, 담백함 속에 묵직한 울림을 주는 책이었다. 빠른 전개, 자극적인 소재, 엄청난 반전과는 거리가 멀다. 닐스 비크가 페리 운전을 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그의 경험과 성찰을 읽다 보면 책에 절로 몰입하게 된다.

그의 인생은 어찌 보면 평범하다. 행복, 슬픔, 좌절, 분노, 배신, 사랑 등 우리가 살면서 느껴봤을 법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살아온, 살아가게 될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도 이 책의 큰 특징이다. 닐스 비크가 평생을 살아온 그의 고향에 대한 애정과 자연의 경외심을 느낄 수 있다. 눈앞에 닐스 비크가 배를 타며 본 피오르의 웅장함이 그려지는 기분이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 작가 프로데 그뤼텐 역시 노르웨이 남서쪽의 하르당에르 피오르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작은 도시 오다 출신이라고 한다. 작가의 보고 느낀 바다, 산, 나무, 자연에 대한 존중과 따뜻한 시선이 전해졌다.

📕그는 이처럼 산기슭 아래로 우유처럼 흘러내리는, 손길이 닿지 않은 안개와 청아하고 상쾌한 아침을 사랑한다.
19쪽

닐스 비크에게만큼은, 죽음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온기 가득한 마무리였다. 특히 소설의 말미, '닐스 비크. 한순간 조타실은 그의 삶에 관한 메시지로 가득 채워졌다.(262쪽)' 이후 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평가를 읽으며 마음이 울렁거렸다. 나 역시 삶의 마지막 이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 카리 아가 언젠가 내게 참으로 좋은 말을 해준 적이 있어요. 난 너무나 감동해서 그가 했던 말을 적어놓기까지 했답니다. 닐스는 이 세상은 한 벌의 옷과 같아서 겉은 아름답고 속은 따뜻하다고 했어요.
265쪽

📕 닐스는 이것이 바로 그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제서야 모든 것을 깨달았고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여기까지 왔다.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바람과 바다와 땅, 미움과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살았던 데 감사하고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삶은 끝없는 초안과 스케치이며, 적응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자 과거와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일단 시작된 이야기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으며, 좋든 싫든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따라가야 한다.
268쪽


📌 마무리하며
직관적으로 깨달음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다. 그래서 좋았다. 책을 덮은 후에 닐스 비크의 삶의 회고를 곱씹으며 내 인생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소중함을 놓치고 있던 사람
- 차분하게 인생을 돌아보고 싶은 사람
- 빠르고 자극적인 소재에 지친 독자

에게 추천하고 싶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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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
천수이 지음 / 부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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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없이우리가법을말할수있을까 #동네변호사천수이 #한평짜리변호사

📌 들어가며​

24년 종영한 드라마 <굿파트너>를 재미있게 시청했다. '본방사수'를 위해 온 가족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다음 화를 기다린 드라마는 오랜만이었다. 변호사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변호사와 관련된 재미있는 콘텐츠를 찾고 있던 중 밀리의 서재에서 천수이 변호사가 쓴 <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를 보게 되었다. 재미없으면 즉시 하차하려고 했는데, 재미있어서 밀리로드에 올라온 회차를 전부 읽었다


📌책 소개​

작가 천수이 변호사가 된 후 첫 번째 직장은 구청의 무료 법률 상담 변호사였다. 다른 부서와 제대로 구분도 명확하지 않은 한 평짜리, 의자는 달랑 2개뿐인 프라이버스라고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렇지만 변호사님은 그곳에서 682일 동안 2000명의 의뢰인과 함께했다.

<사랑 없이 법을 말할 수 있을까>는 천수이 변호사의 682일간의 여정을 담은 책이다. 각 에피소드마다 작가님 자신의 경험 혹은 의뢰인들의 사연(특히 '이제 고작 100일 주제에 탕수육을' 에피소드에서는 내가 잘못 읽은 건가, 싶어서 같은 페이지를 세 번을 다시 읽었다. )과 작가님의 생각을 담고 있다.


이 책의 키워드로는 '솔직함'을 꼽고 싶다. 달동네에 살았던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 의뢰인을 만나며 느꼈던 감정들이 진실되게 전달되었다. 성격 좋은 언니가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마음에 와닿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변호사에 대한 차갑고 냉정할 것만 같은 선입견을 허물고 모든 상황을 마음 깊이 대하는 작가님의 모습에 마음이 움직인다.

📌마무리하며​
따뜻한 이야기였다. 사실 밀리의 서재 [1화 이름이 바뀌면 인생도 바뀔까]에서 작가님의 외할아버지 댁 어항에 있던 '잉어' 에피소드를 보고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 서평단에 신청했었다. (ㅋㅋㅋ) 큐레이션 북을 읽다 보면 작가님의 경험과 지혜에서 나오는 공감과 성찰에 고개를 나도 모르게 끄덕이게 된다. 큐레이션 북으로 선별된 에피소드 외에도 다른 에피소드들이 궁금해서 본 책을 읽어보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큐레이션 북을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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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보의 푸른 책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27
마논 스테판 로스 지음, 강나은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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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다산책방의 청소년문학 시리즈 27번으로 <네보의 푸른 책>이 출간되었다.
믿고 보는 나민애 교수님의 추천사 + 2023 카네기 메달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을 보고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네보의 푸른 책>은 핵폭발 이후 모두가 사라진 땅 위에 유일하게 남은 모자, 로웨나와 덜란이 써 내려간 이야기이다. ​


📌 후기​

먼저 '희망의 힘'을 소설 전체를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의 배경은 핵폭발 이후 황폐화된, 다른 생존자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마을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전기, 물, 불, 인터넷 등은 상상할 수 없는,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간 상황이다. 그렇지만 엄마 로웨나와 아들 덜란(그리고 아기인 딸 모나)은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투쟁한다. 그들의 희망은 낙심하고 절망하거나, 혹은 행동하지 않고 막연히 기도만 하는 소원이 아니다. 지독하게 좌절스러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품고 오늘을 채워가는 덜란과 로웨나를 보면서 우리의 삶에서도 희망이라는 원동력의 가치를 떠올릴 수 있다.

야외 화장실을 끝낸 다음, 나는 직접 비닐하우스를 지어보기로 했다. (중략) 내가 이전까지 지은 것들에 비하면 간단한 줄 알았는데 막상 지어보니 가장 어려웠다. 커다랗고 어설프고, 바람에 결국 무너졌다.
나는 방수포의 품질을 탓하며 포기할 뻔했다. 하지만 그만두지 않았고, 그다음 해가 끝나갈 때쯤부터 엄마와 나는 식량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동나서 먹지 못하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때로, 아니, 사실은 자주, 정원 끝에 서서 내가 만든 모든 건축물과 채소와 식량을 바라보며 나 자신이 더는 아이가 아닌 어른이라는 기분을 느낀다. 단 하나도 아쉬운 것이 없다. 이것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여기에, 이곳에 꼭 맞는다.
118쪽, 덜란

그리고 이야기,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소설 제목인 <네보의 푸른 책>은 네보에 있는 한 빈집에서 무단으로 침입해 챙겨 온 짙푸른 색 표지의 노트에 로웨나와 덜란이 적어나간 이야기이다.
로웨나와 덜란은 서로가 쓴 부분을 상대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읽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각자 종말 전과 종말 이후의 이야기를 적기 시작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쓰는 과정에서 둘은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고 위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로웨나는 종말 직전 세상에서 겪은 마음 아픈 경험들을 적어나가며 그간 불화했던 세상과 한걸음 가까워졌으리라 생각한다.
덜란은 '학교'와 같은 공교육이 부재한 상태에서 본인이 읽었던 책들에 대한 생각, 하루하루 살아가며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적어 나가며 내면의 성장을 이루었다.

학생들의 문해력 문제 등이 사회적인 이슈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글쓰기가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소설을 통해 자연스럽게 인식할 것이다.

또한 크게, 혹은 멀게만 느껴졌단 '엄마'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사춘기에 접어들며 한창 또래 친구와의 관계를 형성하고, 부모님과의 사이가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학생들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은 엄마인 로웨나가 느꼈던 막막함, 무너짐이 그대로 전해진다. 엄마도 때로는 나쁜 생각을 하기도 하고, 곧 쓰러질 듯 연약하기도 한 그런 하나의 인간임을 수용하게 된다. 한없이 크게만 느껴지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도 결국 '사람'이라는 점이 와닿지 않을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두 얼굴을 가진 토끼, 푸이흘의 이야기였다.

고기 확보를 위해 설치해놓은 덫에 앞머리, 뒷머리 총 머리가 두 개인 토끼가 잡혔다. 아마 핵폭발 이후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피해라고 여겨진다. 덜란은 엄마 몰래 그 토끼를 헛간에 두고 먹이를 주고, 때로는 쓰다듬으며 교감한다. 자신의 동생인 모나에게도 소개해 주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작고 부드러운, 사랑할 대상'이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푸이흘은 나를 믿기 시작했지만, 그 믿음은 아주 천천히 천천히 생겨났다. 그리고 나도 푸이흘을 믿게 되었다. 마음 한구석으로는 아직 푸이흘이 두려웠고, 그 기이한 죽은 얼굴이 푸이흘의 뒤통수에서 언제나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동안 읽은 책들에서 배운 게 있다면 겉모습으로 속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97쪽

그렇게 덜란이 애지중지 보살핀 푸이흘은 잠시 문을 열어둔 사이에 헛간을 벗어나고, 덜란은 푸이흘이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순무를 뽑으러 간 서닝데일의 정원에서 엄마 로웨나가 푸이흘을 보고 만다. 엄마의 선택은 손에 쥐고 있는 밭일용 쇠스랑으로 토끼를 죽이는 것이었다.

그저 작은 동물이어도 내 아이들이 그 끔찍한 생명체를 보지 않았으면 했다. 지금도 같은 마음이다. 커다란 일들로부터는 보호할 수 없어도, 작은 일들은 내가 막아줄 수 있다.
109쪽

아이는 자라서 결국 부모가 준 양분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역경을 헤쳐나간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로웨나가 아무리 자녀 앞에 놓인 많은 시련과 고통을 피하게 해주고 싶더라도 결국 그 시련과 고통을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것은 덜란의 몫이다. 건강한 부모-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마무리하며​
가독성이 좋아 빠르게 읽었지만 전해지는 메시지만큼은 가볍지 않았던 <네보의 푸른 책>


- 삶의 이유를 찾고 싶은 독자
- 도통 엄마-아빠를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고 싶은 청소년
- 희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고 싶은 독자
에게 추천하고 싶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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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탐탐 - 숨은 차별을 발견하는 일곱가지 시선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4
김보통 외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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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어렸을 때 인권에 대해 배우며 학교에서 독후감 숙제를 내줬던 <십시일반>. 집 정리와 이사를 반복하며 여러 책과 인연을 놓았지만 10년이 더 넘게 지난 지금까지 <십시일반>은 내 책꽂이에 보관하고 있다. 인권이라고 하는 막연한 단어에 대해 알려준 첫 번째 책이었다. 내가 살아온 반경에서는 상상조차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머리가 핑핑 도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청소년에서 성인이 되어 십시일반에 이어 <사이시옷>, <어깨동무> 그리고 창비인권만화 네 번째 시리즈로 출간된 <호시탐탐>을 읽게 되었다.

📌책 소개​

먼저 작가님들의 이름을 보고 반가웠다. DP, 아만자의 김보통 작가님, 얼마 전 TV 방영했던 정년이의 서이레 작가님, 마찬가지로 만화로 읽고 드라마 역시 본방사수했던 <남남>의 정영롱 작가님. 모두 내가 한 번쯤은 즐겨봤던 작품의 작가님들이었다.

우리 사회 속에 있는 차별에 대한 일곱 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노동인권 - 최후의 보호막 - 김보통
✔️퀴어- 서이레 요니요니 - 청첩장 도둑
✔️지역소멸 - 김금숙 - 섬
✔️돌봄- 김정연 - 수수께끼
✔️기후위기- 구희 - 폭염 속을 달리는 방법
✔️이주배경세대 - 정영롱 - 끄나빠
✔️사적복수 - 최경민 - 참교육


이 일곱 가지 작품 중 네 가지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최후의 보호막>에서는 마법의 능력을 가진 용사들이 왕국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보호막 마법 능력을 보유한 해경이다. 한 때 승리의 영광을 누렸으나 현재는 부상을 이유로 현역에서 물러난 해경을 포함한 상이용사들이 에테르 채굴장에서 땀 흘려 일하고 있다. 이 채굴장의 노동환경은 열악하다. 노동자들이 다치면 치료해 줄 힐러도, 부상자를 이송할 텔레포트도, 응급처치 약물도 없다.


"... 솔직히 우리처럼 하자 있는 처지에 이만한 일이라도 구하는 게 쉬운 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내 말은, 그 일을 좀 안전하게 사람답게 할 수는 없냐는 거야!"
27쪽

이미 어려운 여건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어쩔 수 없이 단념하게 만든다. 단념할 것을 알기에 현장은 바뀌지 않는다. 약자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흔든다. 네가 아니어도 이 자리를 대체할 사람은 많다.라는 태도.

"별일 아니라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람 하나 죽은 걸로 호들갑 떨 필요는 없는 거지.
이런 말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거라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상심하지 말고 열심히 합시다.
예? 알았죠? 김씨 하는 거 봐서 지상직 티오 나오면 잘 얘기해줄테니까. "

33쪽

해경의 동료인 현재가 채굴장의 일부가 무너지며 죽었다. 마법사와 용사, 대마왕이 있는 비현실적인 배경이지만 우리 현실이 투영되어 있어 더 몰입해서 읽게 한다. 사람 하나가 일을 하다 죽었는데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현실. 거기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사측에 대항할 힘을 가지고 있는 해경의 입을 막고 회유하기 위해 던지는 패까지. 강주룡, 전태일, 그리고 우리의 역사 속에 있는 잊힌 수많은 희생과 노력에도 아직 갈 길이 먼 노동 현실에 한숨이 나왔다.

첫 작품부터 임팩트가 강렬했다. 결국 현재의 죽음으로 다른 차원으로 각성한 해경과 사람들이 마주한 결말이 분노와 슬픔으로 다가왔다.

<청첩장 도둑>에서 동생 다인은 우편함에 꽂혀있던 언니 수인의 동성 결혼 청첩장을 숨기면서 시작한다. 수인은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동성 연인과의 결혼식을 결정한다. 사랑하니까, 소중한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퀴어뿐만 아니라 사회 가지고 있는 '정상가족'에 대한 프레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너네 엄마는 이혼했으면서 창피한 줄도 모르지? 너네 가족은 아빠도 없고, 엄마도 이상하고 비정상이라고. 알아?!"
58쪽

"아빠가 빵명이든 백명이든 이상한 가족은 없어. 서로 사랑하면 다 똑같은 가족이야. 그러니까 다인이한테 사과해."
68쪽

아직 논의가 마무리되지 못한 '생활동반자법'이 떠올랐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 대해 사회가 받아들일 인식 및 법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수수께끼>는 시작부터 강렬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처럼 질문으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나 가장 먼저 필요한 것.
사는 동안에도 필요하며
마지막까지 필요한 것.]

정답은 바로 '돌봄'이다. 돌봄은 이 수수께끼처럼 우리가 태어나서 눈 감을 때까지 필요하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렇지만 '돌봄'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가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에게만 맡길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제도 마련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 무게를 조금만 더 나누어 뭉툭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을까? 나는 오늘도 우리의 이야기가 넓고 고르게 놓일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해 본다.'
145쪽

특히 '돌봄'을 떠올렸을 때 흔히 떠올리는 요양 시설 등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가족 돌봄 청년, 영케어러(Young Carer) 그리고 여성의 돌봄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돌봄의 여러 측면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었다.

<폭염 속을 달리는 방법>은 육상부 은호의 이야기이다. 배경은 2035년이다. 그런데...

2035년 4월, 올해 첫 열대야가 찾아왔습니다. 20년 전엔 7월에나 왔던 열대야가 말입니다.
149쪽

그렇다. 2035년에는 열대야가 4월에 올 정도로 지구가 뜨거워졌다.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기후 위기와 인권이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을 수 있지만 구희 작가는 이에 대해 차분히 설명하며 독자를 납득시킨다.


기후위기는 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부터 맞닥뜨리는 재난입니다.
부자보다 가난한 자에게 기성세대보다 아동과 노인에게 더 큰 위기로 다가옵니다.

156쪽

이번 여름은 끔찍하게 더웠다. 에어컨을 거의 틀지 않는 우리 집도 이번 8월은 에어컨을 계속 켜두었다. 뉴스에는 폭염으로 인한 소외계층의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한 기사를 볼 수 있었다. 찌는듯한 더위에 기본적인 냉방도 불가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 <폭염 속을 달리는 방법>은 독자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직면하게 함과 동시에 그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게 독려한다.


📌 마무리하며​

무겁고 때로는 벅차게 느껴지는 인권이라는 주제에 대해 만화라는 창구를 통해 한 발짝 다가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귀한 작품이다.
먼 옛날 내가 십시일반을 읽고 인권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아갔던 것처럼, 청소년들도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세상의 가장 작고 소외된 부분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창비인권만화 시리즈가 계속되기를 바라며.
(+ 물론 더 이상 차별이 사라져서 '차별'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어지면 좋겠지만.)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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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100쇄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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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직장 동료로부터 추천을 받았던 책이었다. 식사 중 책 관련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에게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어봤냐며,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고 했다.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둔 신경외과 의사의 이야기인데, 인생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머쓱) 그 당시에는 일 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던 터라 큰 감흥 없이 지나갔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24년 겨울,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을 통해 그때 그 책, <숨결이 바람 될 때>가 100쇄 기념 에디션이 출간된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알고리즘에 침투한 파도님과 박대리님ㅎㅎ) 독서에 다시 흥미를 가지게 된 내 입장에서 '100쇄'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하고 굉장히 놀라웠다. 수많은 책이 나오고 지는 출판 시장에서 100쇄를 찍었다니.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에 가서 울림을 주었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작가인 폴 칼라니티를 아주 간단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폴 칼라니티는 대학에서 영문학, 생물학을 공부한 후 자신의 관심사인 '생물학, 도덕, 문학, 철학의 교차점'이 어디인지를 고민 끝에 의학을 공부하게 된다. 의과 대학원 졸업 후 극한의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하는 신경외과 레지던트 생활을 끝마치고 자신이 생각했던 신경외과 교수로의 완벽한 미래가 코앞으로 다가온 그때. 생각지 못한 폐암 진단을 받는다. 그는 암 진단 후에 치료를 병행하며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외과의 자리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암은 생각보다 가차 없이 세력을 키웠고, 그는 2년의 투병 끝에 눈을 감았다.

이 책의 구성은 [프롤로그, 1부, 2부, 에필로그]이다.

프롤로그에서 폴 칼라니티는 바쁜 신경외과 레지던트 과정을 견디는 중, 자신의 몸에 나타난 이상 징후를 느낀다. 의사로서 자신의 몸 상태가 암일 수도 있다고 판단을 내린 그가 진료를 기다리며 프롤로그가 마무리된다.

1부 '나는 아주 건강하게 시작했다'는 폴 칼라니 티의 유년 시절부터 레지던트 생활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머니의 추천으로 유년 시절 다양한 책을 접하게 된다. 아마 이런 그의 배경이 그가 감성과 이성을 모두 겸비한 의사가 되는데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길은, 책에는 나오지 않는 답을 찾고 전혀 다른 종류의 숭고함을 발견하며, 고통받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육체의 쇠락과 죽음 앞에서도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계속 고민할 수 있는 기회였다. 64,65쪽

그런 그는 고민 끝에 의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고, 가장 매력적이라고 느껴진 신경외과를 선택한다.

당신의 아이가 얼마만큼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말하게 될까? 뇌는 우리가 겪는 세상의 경험을 중재하기 때문에, 신경성 질환에 걸린 환자와 그 가족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96쪽

큰 병은 환자는 물론이고 가족 전체의 삶을 바꾸어 놓는다. 하지만 뇌 질환은 거기에 난해하고 신비한 분위기가 더해진다. 아들의 죽음만으로도 부모의 정돈된 세계는 뒤집혀버린다. 그런데 환자의 뇌는 죽었고 몸은 따듯하고 심장도 여전히 뛰고 있다니. 이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을까? 116쪽

우리 몸에서 소중하지 않은 곳은 없지만 뇌는 우리의 삶을 관장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 뇌의 손상은 우리의 삶에 비가역적으로 느껴지는 직격탄을 꽂는다. 그는 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이 의사로서 환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할 수 있는지 늘 고뇌한다.

나는 환자의 뇌를 수술하기 전에 먼저 그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정체성, 가치관, 무엇이 그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지, 또 얼마나 망가져야 삶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125쪽

그는 외과의로 갖춰야 할 수술 실력과 학문에 대한 탐구뿐만 아니라 마음 깊이 자신의 역할과 삶의 주체로의 환자에 대한 성찰을 멈추지 않았다. 환자의 삶을 진정으로 마주하며 더 나은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2부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 마라'는 그가 폐암을 진단받은 후 의사이면서 동시에 환자인 시선으로 바라본 인생에 대한 고찰이 담겨있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사람을 돌려주는 것이 아닐, 삶이 무너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 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중략) 에마는 나의 옛 정체성을 되돌려주지는 않았다. 대신에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내 능력을 지켜주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정체성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마치 내 깨달았다. 198,199쪽

그는 암 진단 후에 (의사로서) 병원으로 복귀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 삶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성찰하며 자신 앞에 놓인 인생을 '살아간다.'

(생략)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234쪽 딸 케이디에게 남기는 메시지 중 일부.

그가 가장 마지막으로 부여받은 역할은 바로 '아빠'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는 투병 말미에 자신의 상황에 대해 겸허히 수용한다. 그런 그에게도 생명의 연장을 바라게 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딸이다. 책을 읽다 보면 깨달음이 고귀해서 마치 그가 현인같이 느껴졌었다. 그렇지만 '케이디가 내 얼굴을 기억할 정도까지는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문구를 보고 가슴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도 딸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평범한 아빠였다는 사실에 현실감이 밀려오며 슬픔이 차올랐다. 고차원에 머물던 그가 나와 같은 차원의 동등한 인간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그가 적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이라는 사실도.

마지막 챕터는 아내인 루시가 작성한 '에필로그'이다. 그가 성큼 다가온 죽음으로 인해 책을 마무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폴 칼라니티가 적었던 투병 시기를 루시의 시선으로 바라본 회고에 더해 그가 적지 못했던 그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폴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는 바람에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는 미완성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미완성이야말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진실, 폴이 직면한 현실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251쪽

이 문장을 읽으며 아, 그래. 맞아.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질감 없이 책을 마무리하는 차원을 넘어서 배우자의 책 내용을 관통하는 결론을 낼 수 있는지. 이는 루시와 폴이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고, 가치관을 공유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던 챕터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가족사진이 있다. 한참을 바라봤다.

이 책은 최루탄처럼 터지는 포인트를 깔아놓고 눈물이나 감정의 동요를 강제로 유발하는 책은 아니었다. 저자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담담하게 서술한다. 그렇지만 그의 치열한 고민과 성찰의 과정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마음 깊은 속에서부터 뜨거운 울림을 느낄 수 있다. 의사로서도, 그리고 환자로서도 죽음을 직면한 그의 사고과정의 정수(精髓)만이 전해졌다. 제일 좋고 귀한 것을 전달받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얻은 인사이트로 내 인생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잡담
죽음은 미지의 영역이다. 당연하다. 경험하고 돌아온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설사 있다 하더라도 증명할 수가 없는 영역이다.). 책을 다 읽고 후기를 쓰던 중, 초등학교 1학년 학생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자신의 집에서 가지고 온 책이라며 '별'과 관련된 과학 도서를 읽고 있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지, 가장 좋아하는 책은 무엇인지(읽고 있던 그 '별' 책이라고 했다. ) 대화를 하던 중, 학생이 나를 보며 이야기했다.
'선생님, 우리는 죽으면 다 별이 될까요? 저는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되는지 너무 궁금해요. 죽는 게 뭘까요?'
세상에. 책을 읽고 내 나름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때, 훅 들어온 1학년 어린이의 질문. 죽음은 결국 생명이라면 누구가 마주해야 하는 순간임을 아이도 본인 모르게 느끼고 있던 것일까? 내가 황당해서 아무 말도 못 하는 사이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잖아요.'라고 덧붙였다. '맞아. 그건 어른인 선생님도 모르는 일이야. 너의 말처럼 지구 위의 그 누구도 모를 일이지.'라고 대답했다.

모든 사람이 유한성에 굴복한다. 이런 과거 완료 상태에 도달한 건 나뿐만이 아니리라. 233쪽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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