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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보의 푸른 책 ㅣ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27
마논 스테판 로스 지음, 강나은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2월
평점 :
📌 들어가며
다산책방의 청소년문학 시리즈 27번으로 <네보의 푸른 책>이 출간되었다.
믿고 보는 나민애 교수님의 추천사 + 2023 카네기 메달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을 보고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네보의 푸른 책>은 핵폭발 이후 모두가 사라진 땅 위에 유일하게 남은 모자, 로웨나와 덜란이 써 내려간 이야기이다.
📌 후기
먼저 '희망의 힘'을 소설 전체를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의 배경은 핵폭발 이후 황폐화된, 다른 생존자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마을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전기, 물, 불, 인터넷 등은 상상할 수 없는,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간 상황이다. 그렇지만 엄마 로웨나와 아들 덜란(그리고 아기인 딸 모나)은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투쟁한다. 그들의 희망은 낙심하고 절망하거나, 혹은 행동하지 않고 막연히 기도만 하는 소원이 아니다. 지독하게 좌절스러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품고 오늘을 채워가는 덜란과 로웨나를 보면서 우리의 삶에서도 희망이라는 원동력의 가치를 떠올릴 수 있다.
야외 화장실을 끝낸 다음, 나는 직접 비닐하우스를 지어보기로 했다. (중략) 내가 이전까지 지은 것들에 비하면 간단한 줄 알았는데 막상 지어보니 가장 어려웠다. 커다랗고 어설프고, 바람에 결국 무너졌다.
나는 방수포의 품질을 탓하며 포기할 뻔했다. 하지만 그만두지 않았고, 그다음 해가 끝나갈 때쯤부터 엄마와 나는 식량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동나서 먹지 못하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때로, 아니, 사실은 자주, 정원 끝에 서서 내가 만든 모든 건축물과 채소와 식량을 바라보며 나 자신이 더는 아이가 아닌 어른이라는 기분을 느낀다. 단 하나도 아쉬운 것이 없다. 이것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여기에, 이곳에 꼭 맞는다.
118쪽, 덜란
그리고 이야기,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소설 제목인 <네보의 푸른 책>은 네보에 있는 한 빈집에서 무단으로 침입해 챙겨 온 짙푸른 색 표지의 노트에 로웨나와 덜란이 적어나간 이야기이다.
로웨나와 덜란은 서로가 쓴 부분을 상대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읽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각자 종말 전과 종말 이후의 이야기를 적기 시작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쓰는 과정에서 둘은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고 위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로웨나는 종말 직전 세상에서 겪은 마음 아픈 경험들을 적어나가며 그간 불화했던 세상과 한걸음 가까워졌으리라 생각한다.
덜란은 '학교'와 같은 공교육이 부재한 상태에서 본인이 읽었던 책들에 대한 생각, 하루하루 살아가며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적어 나가며 내면의 성장을 이루었다.
학생들의 문해력 문제 등이 사회적인 이슈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글쓰기가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소설을 통해 자연스럽게 인식할 것이다.
또한 크게, 혹은 멀게만 느껴졌단 '엄마'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사춘기에 접어들며 한창 또래 친구와의 관계를 형성하고, 부모님과의 사이가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학생들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은 엄마인 로웨나가 느꼈던 막막함, 무너짐이 그대로 전해진다. 엄마도 때로는 나쁜 생각을 하기도 하고, 곧 쓰러질 듯 연약하기도 한 그런 하나의 인간임을 수용하게 된다. 한없이 크게만 느껴지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도 결국 '사람'이라는 점이 와닿지 않을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두 얼굴을 가진 토끼, 푸이흘의 이야기였다.
고기 확보를 위해 설치해놓은 덫에 앞머리, 뒷머리 총 머리가 두 개인 토끼가 잡혔다. 아마 핵폭발 이후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피해라고 여겨진다. 덜란은 엄마 몰래 그 토끼를 헛간에 두고 먹이를 주고, 때로는 쓰다듬으며 교감한다. 자신의 동생인 모나에게도 소개해 주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작고 부드러운, 사랑할 대상'이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푸이흘은 나를 믿기 시작했지만, 그 믿음은 아주 천천히 천천히 생겨났다. 그리고 나도 푸이흘을 믿게 되었다. 마음 한구석으로는 아직 푸이흘이 두려웠고, 그 기이한 죽은 얼굴이 푸이흘의 뒤통수에서 언제나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동안 읽은 책들에서 배운 게 있다면 겉모습으로 속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97쪽
그렇게 덜란이 애지중지 보살핀 푸이흘은 잠시 문을 열어둔 사이에 헛간을 벗어나고, 덜란은 푸이흘이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순무를 뽑으러 간 서닝데일의 정원에서 엄마 로웨나가 푸이흘을 보고 만다. 엄마의 선택은 손에 쥐고 있는 밭일용 쇠스랑으로 토끼를 죽이는 것이었다.
그저 작은 동물이어도 내 아이들이 그 끔찍한 생명체를 보지 않았으면 했다. 지금도 같은 마음이다. 커다란 일들로부터는 보호할 수 없어도, 작은 일들은 내가 막아줄 수 있다.
109쪽
아이는 자라서 결국 부모가 준 양분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역경을 헤쳐나간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로웨나가 아무리 자녀 앞에 놓인 많은 시련과 고통을 피하게 해주고 싶더라도 결국 그 시련과 고통을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것은 덜란의 몫이다. 건강한 부모-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마무리하며
가독성이 좋아 빠르게 읽었지만 전해지는 메시지만큼은 가볍지 않았던 <네보의 푸른 책>
- 삶의 이유를 찾고 싶은 독자
- 도통 엄마-아빠를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고 싶은 청소년
- 희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고 싶은 독자
에게 추천하고 싶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