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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폴라 일지
김금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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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작년 가장 흥미롭게 시청한 다큐멘터리는 <빙하의 시그널>이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전 세계에서 사라지고 있는 빙하와 빙하의 역사를 살펴보며 지구의 생명체들이 어떤 타격을 받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다큐멘터리 후반부에 지구 온난화로 인해 크릴새우의 개체 수가 줄어들면서, 먹이의 80% 이상을 크릴에 의존하는 남극 턱끈펭귄의 생존도 위협당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이후 관련 다큐멘터리를 격파해가던 나에게 김금희 작가님의 <나의 폴라 일지> 출간 소식은 기다리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작가님의 남극 이야기를 보고 책으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나에게 작가님은 '금바오' 바오패밀리이기에 더욱 내적 친밀감이 있달까...🐼❤️)


📌 후기​

김금희 작가님이 편집자로 일하던 이십 대 시절 극지연구소에 취재를 나간 후 남극에 대한 관심이 더해졌고, 실제로 가기 위해 몇 년간 시도했지만 길이 쉬이 열리지 않았다. 다음 작품의 배경을 '남극'이라 말할 만큼 남극 방문이 간절했다. 그렇게 한 번 더 취재지원서를 작성한 작가님은 극지연구소로부터 긍정적인 회신을 받고, 24년 새해를 남극 세종 기지에서 맞이하게 된다. 남극에 가보고 싶은 소망을 현실로 만든 작가님의 추진력을 절로 존경하게 되었다.

남극 세종 기지에 김금희 작가님은 '식생 팀'의 일원이 된다. 기지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옆새우를 연구하는 안 연구원, 대기과학자, 대원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셰프, 해군 해난구조대 SSU의 특수부대원 등)이 있다. 그동안의 삶의 규칙과는 다른 규칙(예를 들어 외출은 반드시 2인 1조로 해야 한다. )이 적용되는 남극 기지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생긴 이야기들도 이 산문집의 묘미이다.​

특히 2024년 새해 첫날 셰프가 끓인 맛있는 떡국을 먹은 후, 모두 모여 윷놀이를 한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그냥 윷놀이가 아니라 사람이 말이 되어 움직이는 윷놀이였다. 말을 합치려면 사람이 사람을 업고 이동해야 하는 체력까지 필요한 윷놀이였다.

📚함께 이동하고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으며 머리뿐만 아니라 힘을 써서 임무를 완수하는 것, 나중에 보니 남극의 일상을 꼭 닮은 게임이구나 싶었다.
156쪽, 대기의 강.

기술의 발전으로 좋은 화질, 큰 화면으로 남극을 볼 수 있지만 나에게만큼은 어째 그 웅장함은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그럴까? 그렇지만 <나의 폴라 일지>를 읽으며 그 위대함과 장엄함이 마음 가득 채워졌다. 김금희 작가님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깨끗하고, 투명한 미지의 세계 이야기가 내가 그동안 해왔던 남극에 대한 상상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정작 나는 추워 덜덜 떨고 있었지만 마음은 녹듯이 포근해졌다. 일면 슬퍼지기도 했는데 너무 순정한 것, 아름다운 것, 들끓는 자아 따위와는 무관한 자연 자체의 풍경과 맞닥뜨릴 때 느끼는 기이한 상실감 같은 것이이었다. 남극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나는 실제 내 삶은 이곳과 얼마나 다른가를 동시에 감각했다. 적어도 지금의 내게는 남극이 인간이 인간처럼 살 수 있고 해표가 해표처럼 살 수 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안정적인 공간이었다.
대기의 강, 138쪽

우리 모두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며 지구의 아주 작은 존재인 나를 직면하는 순간이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10년 만에 바다를 보러 갔을 때 수평선 끝에서부터 밀려와 발밑에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나도 자연의 웅장함을 느꼈다. 남극은 어떨까?

📚빛에 반짝이는 유빙들을 보거나 잠시 얼음이 풀린 틈을 타 되살아난 풀과 이끼 그리고 이제 솜털을 거의 벗은 펭귄을 볼 때마다 나라는 피조물의 자리도 오롯이 드러났다. 종교의 유무를 떠나 남극의 자연은 나를 낮추고 자연의 질서 안에 머물며 늘 숭고하게 했다. 압도적인 경외와 종교적 매혹, 두려운 감동이 뒤섞인 누미노제의 경험이 남극에는 있었다.
176쪽, 명명의 세계


남극의 자연 속에서 작가님의 다정한 시선으로 발견한 위로도 책 전반에 잔잔히 깔려있다. 이 책을 통해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위로를 받았다. 사회가 정해놓은 나이대별 인생 과업은 내 기준이 아니라며 스스로를 다잡으면서도 알게 모르게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다. 한 해 한 해 시간은 가는데 뚜렷한 성과도 변화도 없는 내가 아래 소개한 구절을 읽으며 마음이 울컥했다. 의외의 순간 위로를 받아서인지 더 감사하게 느껴졌다.

📚동물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원칙대로 가만히 서서 지켜보는데 한 발 한 발 내게 다가왔다. 곧 있으면 3월이건만 아직 솜털을 달고 있는 아기 펭귄들이었다. 너희 늦둥이구나, 싶으면서 콧날이 시큰해졌다. 인간처럼 펭귄도 개중 좀 늦된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고마울까. 가장 강한 것만 존속하지 않고 저마다 다른 힘과 속도를 지닌 존재들이 공존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질서라는 사실이.

281쪽, 나의 폴라 속으로


📌 마무리하며​

작가님의 남극에서의 한 달. 내가 경험하기 쉽지 않은 세상의 이야기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다음 에피소드가 궁금해서 한 꼭지만 더 읽을까? 하다가 앉은자리에서서 전부 뚝딱 완독했다. 폭설 속에서 '남극의 블리자드는 여기의 눈과 추위는 비교할 수 없겠지.'라는 터무니없는 생각도 했다. 곽병주 작가님이 그리신 본문, 표지 그림도 작가님의 산문집과 잘 어울려서 읽는 재미가 배가 되었다.

- 김금희 작가님의 기존 작품들을 사랑해온 독자들
- 미지의 세계, 남극이 궁금한 독자들
- 여행자가 아닌, 한 달을 남극의 구성원으로 '살아온' 작가님의 이야기가 궁금한 독자들

에게 추천하고 싶다.



<하니포터10기 활동으로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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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 비크의 마지막 하루 - 2023 브라게문학상 수상작
프로데 그뤼텐 지음, 손화수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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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소개​

피오르의 페리 운전사로 일했던 '닐스 비크'는 오늘이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 날임을 직감한다. 아내와 사별한 그는 아주 오래전 성장하여 집을 떠난 딸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겨두고 집을 떠난다. 그리고 수십 년 함께한 그의 배 '마르타'에 시동을 걸고 마지막으로 항해를 시작한다. 그는 항해일지를 펼쳐 그의 배를 탄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리고 다시 만난다. 가정폭력으로 괴로웠던 기타소년 욘, 17살까지 그와 함께한 개 루나, 닐스의 도움으로 가정을 꾸린 옌스, 미국인 친구였던 로버트... 과연 삶과 죽음 그 중간에 있는 닐스는 그가 사랑했던 부인 마르타를 만날 수 있을까?

📌 후기​

담담함, 담백함 속에 묵직한 울림을 주는 책이었다. 빠른 전개, 자극적인 소재, 엄청난 반전과는 거리가 멀다. 닐스 비크가 페리 운전을 하면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그의 경험과 성찰을 읽다 보면 책에 절로 몰입하게 된다.

그의 인생은 어찌 보면 평범하다. 행복, 슬픔, 좌절, 분노, 배신, 사랑 등 우리가 살면서 느껴봤을 법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살아온, 살아가게 될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도 이 책의 큰 특징이다. 닐스 비크가 평생을 살아온 그의 고향에 대한 애정과 자연의 경외심을 느낄 수 있다. 눈앞에 닐스 비크가 배를 타며 본 피오르의 웅장함이 그려지는 기분이다.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 작가 프로데 그뤼텐 역시 노르웨이 남서쪽의 하르당에르 피오르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작은 도시 오다 출신이라고 한다. 작가의 보고 느낀 바다, 산, 나무, 자연에 대한 존중과 따뜻한 시선이 전해졌다.

📕그는 이처럼 산기슭 아래로 우유처럼 흘러내리는, 손길이 닿지 않은 안개와 청아하고 상쾌한 아침을 사랑한다.
19쪽

닐스 비크에게만큼은, 죽음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온기 가득한 마무리였다. 특히 소설의 말미, '닐스 비크. 한순간 조타실은 그의 삶에 관한 메시지로 가득 채워졌다.(262쪽)' 이후 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평가를 읽으며 마음이 울렁거렸다. 나 역시 삶의 마지막 이런 시간이 주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 카리 아가 언젠가 내게 참으로 좋은 말을 해준 적이 있어요. 난 너무나 감동해서 그가 했던 말을 적어놓기까지 했답니다. 닐스는 이 세상은 한 벌의 옷과 같아서 겉은 아름답고 속은 따뜻하다고 했어요.
265쪽

📕 닐스는 이것이 바로 그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제서야 모든 것을 깨달았고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여기까지 왔다.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바람과 바다와 땅, 미움과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살았던 데 감사하고 작별을 고하는 것이다. 삶은 끝없는 초안과 스케치이며, 적응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자 과거와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일단 시작된 이야기를 마음대로 바꿀 수 없으며, 좋든 싫든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따라가야 한다.
268쪽


📌 마무리하며
직관적으로 깨달음을 제시하는 책이 아니다. 그래서 좋았다. 책을 덮은 후에 닐스 비크의 삶의 회고를 곱씹으며 내 인생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소중함을 놓치고 있던 사람
- 차분하게 인생을 돌아보고 싶은 사람
- 빠르고 자극적인 소재에 지친 독자

에게 추천하고 싶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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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
천수이 지음 / 부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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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없이우리가법을말할수있을까 #동네변호사천수이 #한평짜리변호사

📌 들어가며​

24년 종영한 드라마 <굿파트너>를 재미있게 시청했다. '본방사수'를 위해 온 가족이 텔레비전 앞에 모여 다음 화를 기다린 드라마는 오랜만이었다. 변호사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변호사와 관련된 재미있는 콘텐츠를 찾고 있던 중 밀리의 서재에서 천수이 변호사가 쓴 <사랑 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를 보게 되었다. 재미없으면 즉시 하차하려고 했는데, 재미있어서 밀리로드에 올라온 회차를 전부 읽었다


📌책 소개​

작가 천수이 변호사가 된 후 첫 번째 직장은 구청의 무료 법률 상담 변호사였다. 다른 부서와 제대로 구분도 명확하지 않은 한 평짜리, 의자는 달랑 2개뿐인 프라이버스라고 찾아볼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렇지만 변호사님은 그곳에서 682일 동안 2000명의 의뢰인과 함께했다.

<사랑 없이 법을 말할 수 있을까>는 천수이 변호사의 682일간의 여정을 담은 책이다. 각 에피소드마다 작가님 자신의 경험 혹은 의뢰인들의 사연(특히 '이제 고작 100일 주제에 탕수육을' 에피소드에서는 내가 잘못 읽은 건가, 싶어서 같은 페이지를 세 번을 다시 읽었다. )과 작가님의 생각을 담고 있다.


이 책의 키워드로는 '솔직함'을 꼽고 싶다. 달동네에 살았던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 의뢰인을 만나며 느꼈던 감정들이 진실되게 전달되었다. 성격 좋은 언니가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마음에 와닿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변호사에 대한 차갑고 냉정할 것만 같은 선입견을 허물고 모든 상황을 마음 깊이 대하는 작가님의 모습에 마음이 움직인다.

📌마무리하며​
따뜻한 이야기였다. 사실 밀리의 서재 [1화 이름이 바뀌면 인생도 바뀔까]에서 작가님의 외할아버지 댁 어항에 있던 '잉어' 에피소드를 보고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 서평단에 신청했었다. (ㅋㅋㅋ) 큐레이션 북을 읽다 보면 작가님의 경험과 지혜에서 나오는 공감과 성찰에 고개를 나도 모르게 끄덕이게 된다. 큐레이션 북으로 선별된 에피소드 외에도 다른 에피소드들이 궁금해서 본 책을 읽어보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큐레이션 북을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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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보의 푸른 책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27
마논 스테판 로스 지음, 강나은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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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가며​

다산책방의 청소년문학 시리즈 27번으로 <네보의 푸른 책>이 출간되었다.
믿고 보는 나민애 교수님의 추천사 + 2023 카네기 메달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을 보고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네보의 푸른 책>은 핵폭발 이후 모두가 사라진 땅 위에 유일하게 남은 모자, 로웨나와 덜란이 써 내려간 이야기이다. ​


📌 후기​

먼저 '희망의 힘'을 소설 전체를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의 배경은 핵폭발 이후 황폐화된, 다른 생존자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마을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전기, 물, 불, 인터넷 등은 상상할 수 없는,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간 상황이다. 그렇지만 엄마 로웨나와 아들 덜란(그리고 아기인 딸 모나)은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투쟁한다. 그들의 희망은 낙심하고 절망하거나, 혹은 행동하지 않고 막연히 기도만 하는 소원이 아니다. 지독하게 좌절스러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품고 오늘을 채워가는 덜란과 로웨나를 보면서 우리의 삶에서도 희망이라는 원동력의 가치를 떠올릴 수 있다.

야외 화장실을 끝낸 다음, 나는 직접 비닐하우스를 지어보기로 했다. (중략) 내가 이전까지 지은 것들에 비하면 간단한 줄 알았는데 막상 지어보니 가장 어려웠다. 커다랗고 어설프고, 바람에 결국 무너졌다.
나는 방수포의 품질을 탓하며 포기할 뻔했다. 하지만 그만두지 않았고, 그다음 해가 끝나갈 때쯤부터 엄마와 나는 식량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동나서 먹지 못하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때로, 아니, 사실은 자주, 정원 끝에 서서 내가 만든 모든 건축물과 채소와 식량을 바라보며 나 자신이 더는 아이가 아닌 어른이라는 기분을 느낀다. 단 하나도 아쉬운 것이 없다. 이것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여기에, 이곳에 꼭 맞는다.
118쪽, 덜란

그리고 이야기, 글쓰기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소설 제목인 <네보의 푸른 책>은 네보에 있는 한 빈집에서 무단으로 침입해 챙겨 온 짙푸른 색 표지의 노트에 로웨나와 덜란이 적어나간 이야기이다.
로웨나와 덜란은 서로가 쓴 부분을 상대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읽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각자 종말 전과 종말 이후의 이야기를 적기 시작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쓰는 과정에서 둘은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고 위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로웨나는 종말 직전 세상에서 겪은 마음 아픈 경험들을 적어나가며 그간 불화했던 세상과 한걸음 가까워졌으리라 생각한다.
덜란은 '학교'와 같은 공교육이 부재한 상태에서 본인이 읽었던 책들에 대한 생각, 하루하루 살아가며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적어 나가며 내면의 성장을 이루었다.

학생들의 문해력 문제 등이 사회적인 이슈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글쓰기가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소설을 통해 자연스럽게 인식할 것이다.

또한 크게, 혹은 멀게만 느껴졌단 '엄마'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사춘기에 접어들며 한창 또래 친구와의 관계를 형성하고, 부모님과의 사이가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는 학생들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은 엄마인 로웨나가 느꼈던 막막함, 무너짐이 그대로 전해진다. 엄마도 때로는 나쁜 생각을 하기도 하고, 곧 쓰러질 듯 연약하기도 한 그런 하나의 인간임을 수용하게 된다. 한없이 크게만 느껴지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도 결국 '사람'이라는 점이 와닿지 않을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두 얼굴을 가진 토끼, 푸이흘의 이야기였다.

고기 확보를 위해 설치해놓은 덫에 앞머리, 뒷머리 총 머리가 두 개인 토끼가 잡혔다. 아마 핵폭발 이후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피해라고 여겨진다. 덜란은 엄마 몰래 그 토끼를 헛간에 두고 먹이를 주고, 때로는 쓰다듬으며 교감한다. 자신의 동생인 모나에게도 소개해 주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작고 부드러운, 사랑할 대상'이 있어서 좋다고 생각한다.

푸이흘은 나를 믿기 시작했지만, 그 믿음은 아주 천천히 천천히 생겨났다. 그리고 나도 푸이흘을 믿게 되었다. 마음 한구석으로는 아직 푸이흘이 두려웠고, 그 기이한 죽은 얼굴이 푸이흘의 뒤통수에서 언제나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동안 읽은 책들에서 배운 게 있다면 겉모습으로 속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97쪽

그렇게 덜란이 애지중지 보살핀 푸이흘은 잠시 문을 열어둔 사이에 헛간을 벗어나고, 덜란은 푸이흘이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순무를 뽑으러 간 서닝데일의 정원에서 엄마 로웨나가 푸이흘을 보고 만다. 엄마의 선택은 손에 쥐고 있는 밭일용 쇠스랑으로 토끼를 죽이는 것이었다.

그저 작은 동물이어도 내 아이들이 그 끔찍한 생명체를 보지 않았으면 했다. 지금도 같은 마음이다. 커다란 일들로부터는 보호할 수 없어도, 작은 일들은 내가 막아줄 수 있다.
109쪽

아이는 자라서 결국 부모가 준 양분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역경을 헤쳐나간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로웨나가 아무리 자녀 앞에 놓인 많은 시련과 고통을 피하게 해주고 싶더라도 결국 그 시련과 고통을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것은 덜란의 몫이다. 건강한 부모-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마무리하며​
가독성이 좋아 빠르게 읽었지만 전해지는 메시지만큼은 가볍지 않았던 <네보의 푸른 책>


- 삶의 이유를 찾고 싶은 독자
- 도통 엄마-아빠를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하고 싶은 청소년
- 희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고 싶은 독자
에게 추천하고 싶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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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탐탐 - 숨은 차별을 발견하는 일곱가지 시선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4
김보통 외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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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어렸을 때 인권에 대해 배우며 학교에서 독후감 숙제를 내줬던 <십시일반>. 집 정리와 이사를 반복하며 여러 책과 인연을 놓았지만 10년이 더 넘게 지난 지금까지 <십시일반>은 내 책꽂이에 보관하고 있다. 인권이라고 하는 막연한 단어에 대해 알려준 첫 번째 책이었다. 내가 살아온 반경에서는 상상조차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머리가 핑핑 도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청소년에서 성인이 되어 십시일반에 이어 <사이시옷>, <어깨동무> 그리고 창비인권만화 네 번째 시리즈로 출간된 <호시탐탐>을 읽게 되었다.

📌책 소개​

먼저 작가님들의 이름을 보고 반가웠다. DP, 아만자의 김보통 작가님, 얼마 전 TV 방영했던 정년이의 서이레 작가님, 마찬가지로 만화로 읽고 드라마 역시 본방사수했던 <남남>의 정영롱 작가님. 모두 내가 한 번쯤은 즐겨봤던 작품의 작가님들이었다.

우리 사회 속에 있는 차별에 대한 일곱 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노동인권 - 최후의 보호막 - 김보통
✔️퀴어- 서이레 요니요니 - 청첩장 도둑
✔️지역소멸 - 김금숙 - 섬
✔️돌봄- 김정연 - 수수께끼
✔️기후위기- 구희 - 폭염 속을 달리는 방법
✔️이주배경세대 - 정영롱 - 끄나빠
✔️사적복수 - 최경민 - 참교육


이 일곱 가지 작품 중 네 가지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최후의 보호막>에서는 마법의 능력을 가진 용사들이 왕국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보호막 마법 능력을 보유한 해경이다. 한 때 승리의 영광을 누렸으나 현재는 부상을 이유로 현역에서 물러난 해경을 포함한 상이용사들이 에테르 채굴장에서 땀 흘려 일하고 있다. 이 채굴장의 노동환경은 열악하다. 노동자들이 다치면 치료해 줄 힐러도, 부상자를 이송할 텔레포트도, 응급처치 약물도 없다.


"... 솔직히 우리처럼 하자 있는 처지에 이만한 일이라도 구하는 게 쉬운 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내 말은, 그 일을 좀 안전하게 사람답게 할 수는 없냐는 거야!"
27쪽

이미 어려운 여건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어쩔 수 없이 단념하게 만든다. 단념할 것을 알기에 현장은 바뀌지 않는다. 약자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흔든다. 네가 아니어도 이 자리를 대체할 사람은 많다.라는 태도.

"별일 아니라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람 하나 죽은 걸로 호들갑 떨 필요는 없는 거지.
이런 말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거라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상심하지 말고 열심히 합시다.
예? 알았죠? 김씨 하는 거 봐서 지상직 티오 나오면 잘 얘기해줄테니까. "

33쪽

해경의 동료인 현재가 채굴장의 일부가 무너지며 죽었다. 마법사와 용사, 대마왕이 있는 비현실적인 배경이지만 우리 현실이 투영되어 있어 더 몰입해서 읽게 한다. 사람 하나가 일을 하다 죽었는데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현실. 거기다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사측에 대항할 힘을 가지고 있는 해경의 입을 막고 회유하기 위해 던지는 패까지. 강주룡, 전태일, 그리고 우리의 역사 속에 있는 잊힌 수많은 희생과 노력에도 아직 갈 길이 먼 노동 현실에 한숨이 나왔다.

첫 작품부터 임팩트가 강렬했다. 결국 현재의 죽음으로 다른 차원으로 각성한 해경과 사람들이 마주한 결말이 분노와 슬픔으로 다가왔다.

<청첩장 도둑>에서 동생 다인은 우편함에 꽂혀있던 언니 수인의 동성 결혼 청첩장을 숨기면서 시작한다. 수인은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동성 연인과의 결혼식을 결정한다. 사랑하니까, 소중한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서.

퀴어뿐만 아니라 사회 가지고 있는 '정상가족'에 대한 프레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너네 엄마는 이혼했으면서 창피한 줄도 모르지? 너네 가족은 아빠도 없고, 엄마도 이상하고 비정상이라고. 알아?!"
58쪽

"아빠가 빵명이든 백명이든 이상한 가족은 없어. 서로 사랑하면 다 똑같은 가족이야. 그러니까 다인이한테 사과해."
68쪽

아직 논의가 마무리되지 못한 '생활동반자법'이 떠올랐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에 대해 사회가 받아들일 인식 및 법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수수께끼>는 시작부터 강렬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처럼 질문으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나 가장 먼저 필요한 것.
사는 동안에도 필요하며
마지막까지 필요한 것.]

정답은 바로 '돌봄'이다. 돌봄은 이 수수께끼처럼 우리가 태어나서 눈 감을 때까지 필요하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렇지만 '돌봄'에 대한 사회적인 논의가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에게만 맡길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사회적인 제도 마련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 무게를 조금만 더 나누어 뭉툭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을까? 나는 오늘도 우리의 이야기가 넓고 고르게 놓일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해 본다.'
145쪽

특히 '돌봄'을 떠올렸을 때 흔히 떠올리는 요양 시설 등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가족 돌봄 청년, 영케어러(Young Carer) 그리고 여성의 돌봄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돌봄의 여러 측면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었다.

<폭염 속을 달리는 방법>은 육상부 은호의 이야기이다. 배경은 2035년이다. 그런데...

2035년 4월, 올해 첫 열대야가 찾아왔습니다. 20년 전엔 7월에나 왔던 열대야가 말입니다.
149쪽

그렇다. 2035년에는 열대야가 4월에 올 정도로 지구가 뜨거워졌다.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기후 위기와 인권이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을 수 있지만 구희 작가는 이에 대해 차분히 설명하며 독자를 납득시킨다.


기후위기는 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부터 맞닥뜨리는 재난입니다.
부자보다 가난한 자에게 기성세대보다 아동과 노인에게 더 큰 위기로 다가옵니다.

156쪽

이번 여름은 끔찍하게 더웠다. 에어컨을 거의 틀지 않는 우리 집도 이번 8월은 에어컨을 계속 켜두었다. 뉴스에는 폭염으로 인한 소외계층의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한 기사를 볼 수 있었다. 찌는듯한 더위에 기본적인 냉방도 불가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 <폭염 속을 달리는 방법>은 독자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직면하게 함과 동시에 그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게 독려한다.


📌 마무리하며​

무겁고 때로는 벅차게 느껴지는 인권이라는 주제에 대해 만화라는 창구를 통해 한 발짝 다가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귀한 작품이다.
먼 옛날 내가 십시일반을 읽고 인권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아갔던 것처럼, 청소년들도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세상의 가장 작고 소외된 부분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창비인권만화 시리즈가 계속되기를 바라며.
(+ 물론 더 이상 차별이 사라져서 '차별'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어지면 좋겠지만.)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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