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100쇄 기념 리미티드 에디션)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직장 동료로부터 추천을 받았던 책이었다. 식사 중 책 관련 이야기가 나왔는데 나에게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어봤냐며,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고 했다.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둔 신경외과 의사의 이야기인데, 인생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머쓱) 그 당시에는 일 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던 터라 큰 감흥 없이 지나갔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24년 겨울,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을 통해 그때 그 책, <숨결이 바람 될 때>가 100쇄 기념 에디션이 출간된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알고리즘에 침투한 파도님과 박대리님ㅎㅎ) 독서에 다시 흥미를 가지게 된 내 입장에서 '100쇄'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하고 굉장히 놀라웠다. 수많은 책이 나오고 지는 출판 시장에서 100쇄를 찍었다니.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에 가서 울림을 주었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의 작가인 폴 칼라니티를 아주 간단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폴 칼라니티는 대학에서 영문학, 생물학을 공부한 후 자신의 관심사인 '생물학, 도덕, 문학, 철학의 교차점'이 어디인지를 고민 끝에 의학을 공부하게 된다. 의과 대학원 졸업 후 극한의 체력과 정신력을 요구하는 신경외과 레지던트 생활을 끝마치고 자신이 생각했던 신경외과 교수로의 완벽한 미래가 코앞으로 다가온 그때. 생각지 못한 폐암 진단을 받는다. 그는 암 진단 후에 치료를 병행하며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외과의 자리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암은 생각보다 가차 없이 세력을 키웠고, 그는 2년의 투병 끝에 눈을 감았다.

이 책의 구성은 [프롤로그, 1부, 2부, 에필로그]이다.

프롤로그에서 폴 칼라니티는 바쁜 신경외과 레지던트 과정을 견디는 중, 자신의 몸에 나타난 이상 징후를 느낀다. 의사로서 자신의 몸 상태가 암일 수도 있다고 판단을 내린 그가 진료를 기다리며 프롤로그가 마무리된다.

1부 '나는 아주 건강하게 시작했다'는 폴 칼라니 티의 유년 시절부터 레지던트 생활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머니의 추천으로 유년 시절 다양한 책을 접하게 된다. 아마 이런 그의 배경이 그가 감성과 이성을 모두 겸비한 의사가 되는데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길은, 책에는 나오지 않는 답을 찾고 전혀 다른 종류의 숭고함을 발견하며, 고통받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육체의 쇠락과 죽음 앞에서도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계속 고민할 수 있는 기회였다. 64,65쪽

그런 그는 고민 끝에 의학을 전공하기로 마음먹고, 가장 매력적이라고 느껴진 신경외과를 선택한다.

당신의 아이가 얼마만큼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말하게 될까? 뇌는 우리가 겪는 세상의 경험을 중재하기 때문에, 신경성 질환에 걸린 환자와 그 가족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96쪽

큰 병은 환자는 물론이고 가족 전체의 삶을 바꾸어 놓는다. 하지만 뇌 질환은 거기에 난해하고 신비한 분위기가 더해진다. 아들의 죽음만으로도 부모의 정돈된 세계는 뒤집혀버린다. 그런데 환자의 뇌는 죽었고 몸은 따듯하고 심장도 여전히 뛰고 있다니. 이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을까? 116쪽

우리 몸에서 소중하지 않은 곳은 없지만 뇌는 우리의 삶을 관장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 뇌의 손상은 우리의 삶에 비가역적으로 느껴지는 직격탄을 꽂는다. 그는 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이 의사로서 환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할 수 있는지 늘 고뇌한다.

나는 환자의 뇌를 수술하기 전에 먼저 그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정체성, 가치관, 무엇이 그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지, 또 얼마나 망가져야 삶을 마감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125쪽

그는 외과의로 갖춰야 할 수술 실력과 학문에 대한 탐구뿐만 아니라 마음 깊이 자신의 역할과 삶의 주체로의 환자에 대한 성찰을 멈추지 않았다. 환자의 삶을 진정으로 마주하며 더 나은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2부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 마라'는 그가 폐암을 진단받은 후 의사이면서 동시에 환자인 시선으로 바라본 인생에 대한 고찰이 담겨있다.

의사의 의무는 죽음을 늦추거나 환자에게 예전의 사람을 돌려주는 것이 아닐, 삶이 무너져버린 환자와 그 가족을 가슴에 품고 그들이 다시 일어나 자신들이 처한 실존적 상황을 마주 보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 것이다.
(중략) 에마는 나의 옛 정체성을 되돌려주지는 않았다. 대신에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내 능력을 지켜주었다. 그리고 나는 새로운 정체성이 필요하리라는 것을 마치 내 깨달았다. 198,199쪽

그는 암 진단 후에 (의사로서) 병원으로 복귀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 삶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성찰하며 자신 앞에 놓인 인생을 '살아간다.'

(생략)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234쪽 딸 케이디에게 남기는 메시지 중 일부.

그가 가장 마지막으로 부여받은 역할은 바로 '아빠'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는 투병 말미에 자신의 상황에 대해 겸허히 수용한다. 그런 그에게도 생명의 연장을 바라게 하는 존재가 있다. 바로 딸이다. 책을 읽다 보면 깨달음이 고귀해서 마치 그가 현인같이 느껴졌었다. 그렇지만 '케이디가 내 얼굴을 기억할 정도까지는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문구를 보고 가슴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도 딸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평범한 아빠였다는 사실에 현실감이 밀려오며 슬픔이 차올랐다. 고차원에 머물던 그가 나와 같은 차원의 동등한 인간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딸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그가 적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이라는 사실도.

마지막 챕터는 아내인 루시가 작성한 '에필로그'이다. 그가 성큼 다가온 죽음으로 인해 책을 마무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폴 칼라니티가 적었던 투병 시기를 루시의 시선으로 바라본 회고에 더해 그가 적지 못했던 그의 마지막 순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폴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는 바람에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는 미완성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미완성이야말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진실, 폴이 직면한 현실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251쪽

이 문장을 읽으며 아, 그래. 맞아.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질감 없이 책을 마무리하는 차원을 넘어서 배우자의 책 내용을 관통하는 결론을 낼 수 있는지. 이는 루시와 폴이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고, 가치관을 공유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던 챕터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가족사진이 있다. 한참을 바라봤다.

이 책은 최루탄처럼 터지는 포인트를 깔아놓고 눈물이나 감정의 동요를 강제로 유발하는 책은 아니었다. 저자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담담하게 서술한다. 그렇지만 그의 치열한 고민과 성찰의 과정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마음 깊은 속에서부터 뜨거운 울림을 느낄 수 있다. 의사로서도, 그리고 환자로서도 죽음을 직면한 그의 사고과정의 정수(精髓)만이 전해졌다. 제일 좋고 귀한 것을 전달받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얻은 인사이트로 내 인생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잡담
죽음은 미지의 영역이다. 당연하다. 경험하고 돌아온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설사 있다 하더라도 증명할 수가 없는 영역이다.). 책을 다 읽고 후기를 쓰던 중, 초등학교 1학년 학생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자신의 집에서 가지고 온 책이라며 '별'과 관련된 과학 도서를 읽고 있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지, 가장 좋아하는 책은 무엇인지(읽고 있던 그 '별' 책이라고 했다. ) 대화를 하던 중, 학생이 나를 보며 이야기했다.
'선생님, 우리는 죽으면 다 별이 될까요? 저는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되는지 너무 궁금해요. 죽는 게 뭘까요?'
세상에. 책을 읽고 내 나름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때, 훅 들어온 1학년 어린이의 질문. 죽음은 결국 생명이라면 누구가 마주해야 하는 순간임을 아이도 본인 모르게 느끼고 있던 것일까? 내가 황당해서 아무 말도 못 하는 사이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잖아요.'라고 덧붙였다. '맞아. 그건 어른인 선생님도 모르는 일이야. 너의 말처럼 지구 위의 그 누구도 모를 일이지.'라고 대답했다.

모든 사람이 유한성에 굴복한다. 이런 과거 완료 상태에 도달한 건 나뿐만이 아니리라. 233쪽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