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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운명 2 ㅣ 창비세계문학 99
바실리 그로스만 지음, 최선 옮김 / 창비 / 2024년 6월
평점 :
📌들어가며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유제프 차프스키의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를 읽으며 전쟁의 참상과 전체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던 중 바실리 세묘노비치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이 우리나라에 처음 번역되어 들어왔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앞서 언급한 두 책을 읽으며 했던 고찰을 심화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안고 독서를 시작했다.
📌작가 소개
<삶과 운명>의 작가 바실리 세묘노비치 그로스만은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41년 전쟁이 발발하자 종군기자로 1000일 이상 활동하며 전쟁을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보고 느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인 어머니가 학살로 희생되고, 피난을 간 큰 아들이 폭발로 사망하는 전쟁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바실리 그로스만의 소설은 반스탈린적인 요소를 담고 있었기에 출판까지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삶과 운명> 역시 1959년에 집필을 마쳤으나 1961년 소설 원고가 압수되었고, 1980년에 스위스에서 처음으로 출간되었다. 이후 1989년이 되어서야 러시아에서 출간되었다. 그는 자신의 소설이 반소비에뜨적이라는 이유로 출간이 거부되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책에 자유를 주십시오. 국가보안위 요원이 아니라, 편집인들과 내 원고에 대해 이야기하고 논쟁하길 바랍니다. 내 일생을 바친 책이 투옥된 지금의 상황에서 나의 육체적 자유는 아무런 진실도, 의미도 없습니다."
📌소설의 배경 및 간단한 줄거리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42년 9월 하순경부터 1943년 3~4월까지의 6개월(제2차 세계대전 중 독소전쟁 기간 중 스탈린그라드 전투)이다. 공간적 배경은 크게 스딸린그라드 전투(스탈린그라드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 전쟁터, 등장인물들(물리학자 시뜨룸의 가족)이 머무르는 소련의 도시, 소련과 독일의 수용소로 나뉜다.
제 1부, 제 2부, 제 3부 내용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딱 잘라 요약하기는 어렵다. 이 소설은 물리학자 시뜨룸의 가족을 중심으로 연관된 인물들이 전쟁에서 겪게 되는 아픔과 그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은 인간에 대한 믿음을 보여준다.
📌 핵심 내용 요약(스포주의)
1. 물리학자 시뜨룸의 연구
물리학자인 시뜨룸은 피난을 떠났던 까잔의 연구소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발견하게 된다. 앞으로 자신의 물리학 인생에는 영광만 있으리라 생각하며 원래의 집이 있는 모스크바로 돌아온다.
"그는 자신이 시뜨룸의 연구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했고 그 단점들을 보지 못한 것에 대해 자아비판을 늘어놓았다. 정말이지 놀라 자빠질 일이었다. 시뜨룸의 연구가 자신에게 기도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자신이 이 연구의 실현을 도울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고 몇 번이나 말했던 사람 아닌가. "
삶과 운명 3, p228
시뜨룸은 돌아온 모스크바 연구소에서 상관과 갈등을 겪게 된다. 자신의 연구를 함께 심화시킬 학자 란제스만을 고용해달라는 부탁, 자신과 함께 연구를 진행했던 아직 까잔에 있는 안나 나우모브나(유대인)를 모스크바 연구소로 속히 불러달라는 부탁...
결국 시뜨룸은 당성(당원이 자신이 속한 당의 이익을 위하여 거의 무조건 가지는 충실한 마음과 행동)의 희생양이 되어 모두에게 공격당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생각과 달리 어느 순간 체제에 반하는 불순한 사상을 가진 물리학자가 되어 있었다. 연구소의 모두가 자신을 모른척하고, 무시하고, 멀리한다. 심지어 그의 부인인 류드밀라까지 밖에 나가면 아무도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시뜨룸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자연스러운 동시에 완전히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실제로 시뜨룸의 연구는 정말로 의미 있고 흥미로운데 어떻게 그걸 칭찬하지 않을 수 있을까?(중략)
동시에, 시뜨룸은 스딸린의 전화가 없었다면 연구소에서 아무도 그의 뛰어난 작업들을 칭찬하지 않았을 것이며 란제스만이 제아무리 재능 있는 학자라 해도 일없이 빈둥거렸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삶과 운명 3, p324
그렇게 괴로움에 속에 살던 어느 날 시뜨룸의 집으로 위대한 스딸린이 직접 전화를 건다. 그의 연구에 관심이 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 그 뒤로 그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모두 그의 연구를 칭송하며 그가 연구를 진행하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물적, 인적자원을 지원해 준다. 그가 그렇게 원했던 란제스만과 안나도 며칠 만에 연구소에 오게 된다.
"그(시뜨룸)는 위대한 국가의 친절한 숨결을 느꼈고, 그에게는 스스로를 차디찬 암흑 속으로 던져버릴 힘이 없었다...... 오늘 그의 내면에는 힘이 없었다. 공포와는 전혀 다른, 나른한 복종의 감정이 그를 꼼짝 못하게 했다. "
삶과 운명 3, p350
스딸린의 전화 한 통에 모든 게 바뀐 이 상황에 아이러니를 느끼던 시뜨룸은 어느 날 연구소의 상사의 호출을 받고 그의 방으로 간다. 거기서 그는 당을 위해 또 다른 희생양의 처벌 지지하는 서신에 서명을 강요받는다. 물론 총칼에 협박을 당한 것은 아니었다. '제안' 혹은 '부탁'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여기에 서명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다시 당을 배반한 이단아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엄청난 고뇌를 한다. 그렇지만 결국 그 서신에 서명을 한다. 이 에피소드는 바실리 그로스만이 스딸린의 대규모 유대인 박해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공개서한에 어쩔 수 없이 서명하고 죄책감을 느낀 경험을 반영했다고 보인다.
시뜨룸은 물리학자로 자연과학의 영역에서 정치와는 무관하게 연구돼야 하는 영역이다. 그렇지만 소설 중 시뜨룸은 연구의 진가는 '과학적'이 아닌 '정치적' 시선으로 해석되고 평가된다. 과학에서 그가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와 상관없이 스딸린 체제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그 사상을 공고히 하는데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지가 판단의 기준이 된다. 이를 통해 한 인간의 삶에 권력이 미치는 장악력을 간접적이나마 경험할 수 있다.
2. 어디에나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눈, 국가
" 그가 가는 모든 곳에 그의 자취가 남았고, 저들은 그의 발뒤꿈치에 바짝 따라붙어 삶의 모든 일을 하나하나 기억해두었다.
동지를 조롱하는 언급, 읽은 책에 대한 한마디, 누군가의 생일날 제안했던 장난스러운 건배사, 삼분쯤 이어진 전화 통화, 집행부로 써보냈던 신랄한 메모, 모든 것이 저 몇오라기 끈이 달린 서류철 속에 수납되어 있었다."
삶과 운명 3, p256
위의 인용문은 어느 날 급작스럽게 반동분자로 몰려 수용소로 가게 된 끄리모프와 심문관의 심문 장면 중 일부이다. 끄리모프는 스딸린그라드 전투 중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아 전쟁에 대한 연설을 했다. 그렇지만 그는 체포되었다. 누구의 밀고인지 알 수도 없다. 왜냐하면 앞서 인용한 구절과 마찬가지로 그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이미 국가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그가 진실로 독일과 손잡고 반스탈린적인 생각을 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국가가 그를 반스탈린적인 행동한 사람으로 판단했는지가 중요하다.
끄리모프 뿐만 아니라 소설 속의 많은 등장인물들은 일상적인 대화를 하다가도 혹시 자신이 밀고를 당할 만한 발언을 했는지 검열한다. 그리고 밀고한 자를 추측하고 탓한다. 우리는 책 전반의 인물은 바뀌지만 반복되는 상황을 통해 최종적으로는 이런 사회 분위기를 조성한 국가에 책임이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 누군가의 밀고로 인해 수용소에 가게 된 끄리모프도 얼마 전 독일군에 포위되어 마지막까지 싸우다 전사한 6동 1호의 지휘관 그레꼬프를 밀고 했다는 것이 이 상황의 아이러니함을 더 극대화한다.)
3. 전쟁의 비극에 대한 묘사
이 소설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는 전쟁의 참상에 대해 사실적으로 날카롭게 묘사했다는 점이다. 작가의 전쟁에 대한 묘사는 독자로 하여금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의 생생함과 긴박함을 피부로 느끼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전쟁'이라는 큰 숲에서 작은 나무로, 즉 개인 한 명 한 명에게 초점을 옮길 수 있게 한다. 세계사 책에는 세세하게 적혀 있지 않는 개인의 희생과 아픔을 주목하게 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전쟁이 한 개인의 생에 미치는 파급력과 파괴력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가슴을 찌르는 동정심, 스스로 혼란을 느낄 만큼 날카로운 동정심이 그를 휩쌌다. 저 마르고 커다란 눈을 한 어린애 같은 얼굴들, 저 시골의 가난한 옷차림이 그에게 갑자기 놀랄 만큼 분명한 사실을 일깨웠다. 아이들, 그저 어린애들 아닌가. 부대에서는 저 어린아이의 면면이, 인간의 면면이 군모 아래, 부동자세 속에, 장화의 삐걱임 속에, 훈련된 말과 동작 속에 감추어져 있지...... "
삶과 운명 2, p284
스딸린그라드 전투에서 군단장의 직책인 노비꼬프가 숙소로 향하는 길에 작은 풀밭에서 잠시 쉬고 있는 젊은 군인들을 보며 한 생각이다. 소설 중 노비꼬프는 현명한 판단력과 자애로움을 가진 사람을 묘사된다. 노비꼬프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전쟁에 참전한 사람에 대한 작가의 통찰을 엿볼 수 있다.
"전쟁의 가장 비밀스러운 비극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죽음으로 보낼 권리를 지닌다는 점이다. "
삶과 운명 2, p285
소설에서 전쟁 중 어떤 지도자는 장점이 오직 앞으로 전진하게 만드는 것뿐이라 아까운 목숨을 잃게 한다는 묘사가 있다. 이런 묘사에 더해 전쟁의 가장 비밀스러운 비극을 이야기한 문장은 우리로 하여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전쟁의 현실을 직면하게 한다.
"입과 눈구멍이 움푹 팬 이 시체들이 얼마 전만 해도 살아서 저마다 이름과 거주지를 가졌고, "예쁜 내사랑, 키스해줘. 몸조심하고, 나 잊지 마"라 말하고, 맥주 한조끼를 꿈꾸고, 시가 한대를 피웠다는 것을 상상하기란 불가능 했다. "
삶과 운명 3, p301
독일인 포로가 스딸린그라드 공세 이후 소련인의 시신을 정리하는 장면이다. 지금은 구덩이 속에 형태를 보존하지 못하고 있는 이 시체들이 전부 따뜻한 숨을 내쉬던 사람임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더욱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3. 그럼에도 빛을 따라 삶은 흘러간다.
소설은 인간의 잔인한 면모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렇지만 작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마음속의 마지막으로 갖고 있는 힘. 그 선함에 대한 믿음을 보여준다.
"이날 그의 삶과 운명을 결정한 것은 강력한 국가들의 가차없는 힘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 늙은 여자 흐리스쨔 추냐끄였다. "
삶과 운명 2, p370
포로수용소에 갇혀있다가 기차를 통해 다른 수용소로 이동 중인 세묘노프는 배고픔에 정신을 잃는다. 정신을 잃은 세묘노프를 독일인들은 찻간에서 내리게 하고, 어차피 죽을 것이니 총알 낭비할 것 없다며 그곳에 버려진다. 세묘노프는 가까스로 마을에 가게 되고, 나이 든 노파가 그를 방안으로 들인다. 그리고 따뜻하게 씻기고, 먹이고, 재운다. 자신을 씻겨주는 손길에 세묘노프는 "엄마... 엄마..."라고 말하기도 한다. 정신을 차린 세묘노프가 흐리스쨔 추냐끄에게 자신이 포로라는 것을 밝히지만 개의치 않고 그를 돌본다. 우리는 여기서 여러 어려움과 시험 속에서도 결국 선함을 선택하는 자들의 곧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외에도 소설에서는 유대인 수용소로 이동하는 중에 만난 남자아이(다비드)를 위해 자신은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스실로 향하는 소피야 오시뽀브나, 바지선 화물칸에서 아이를 낳은 베라를 위해 누더기로 그녀의 몸을 덮고 아기의 보온을 위해 힘써 준 사람들... 이런 모습을 통해 작가는 우리가 모든 역경과 좌절에도 인간에 대한 믿음으로 삶을 계속해야 함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문장을 공유하며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인간의 자유를 향한 본성적 갈망은 근절할 수 없다. 그것을 억누를 수는 있어도 말살할 수는 없다. 전체주의는 폭력을 거부하지 못한다. 폭력을 포기하면 전체주의는 파멸한다. 영원한, 중단 없는, 직접적인 것이든 가면을 쓴 얼굴에서 나오는 것이든 초강도 폭력이 전체주의의 근간이다. 인간은 자발적으로 자유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 결론 속에 우리 시대의 빛, 미래의 빛이 있다.
삶과 운명 1, 323p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