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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정원 -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평점 :
<나의 아름다운 정원>
초판 1쇄 발행 2002년 7월 19일
개정 1판 1쇄 발행 2013년 11월 18일
개정 2판 1쇄 발생 2024년 8월 26일
지은이 심윤경
펴낸이 이상훈
문학팀 최해경 박선우 김다인
마케팅 김한성 조재성 박신영 김효진 김애린 오민정
펴낸곳 (주)한겨레엔 www.hanibook.co.kr
*스포없음*
📌 들어가며
직업 특성상 하루 중 초등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길다. 우리 어린이들의 기상천외한 행동을 보고 '아이고 저러면 안 되는데 어쩌나.' 싶어서 붙잡아 (짐짓 엄한 표정으로) 이유를 물어보면 생각지 못한 답변이 튀어나온다. 어른의 시선에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지만 어린이의 입장에서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때로는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쿵 하고 마음이 내려앉으며 한참을 그 순간에 머물게 하는 이유다. 우리는 분명 언젠가 아이였다. 그런데 그 사실을 잊고 사는 것 같다. 부쩍 이러한 생각이 들던 여름의 끝자락, <나의 아름다운 정원>의 동구를 만나게 되었다.
📌 줄거리 소개
<나의 아름다운 정원>의 시대적 배경은 1977년에서 1981년까지 총 5년이다. 공간적 배경은 동구가 사는 동네인 인왕산 허리 부근, 달동네이다.
등장인물은 동구, 동구의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아버지의 어머니), 동구의 여동생 영주, 동구의 3학년 담임선생님인 박영은 선생님, 동구의 동네 이웃들이다. 소설은 동구의 시점에서 펼쳐진다.
소설의 배경이 된 5년 동안 동구 개인에게 인생의 변곡점이 되는 여러 사건들이 일어난다.
먼저 1977년 동구에게 사랑하는 여동생 영주가 태어난다. 영주는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이다. 영주 때문에 혼이 나도 동구는 영주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요즘 말로 '동생바보'의 모습을 보인다. 동구는 동생의 귀여운 면모만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영주의 마음까지 살피고 보듬어주는 오빠이다.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을 치워버리더라도 나는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영주가 어른들의 싸움 때문에 상처받고,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기를 바랐다. 누구에게나 웃으며 팔을 벌리고 누구의 볼에나 쪽 하고 뽀뽀를 해주는 내 동생의 천진한 어린 시절에 흠결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305p
1979년 3학년 2학기가 되었을 때 동구는 박영은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동구는 난독증 때문에 읽고 쓰는 것을 어려워한다. 박영은 선생님은 이런 동구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동구가 읽고 쓸 수 있도록 방과 후 개별지도를 해주신다. 그 시간은 단순히 공부만 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사실 동구는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할머니-엄마, 엄마-아버지, 할머니-아버지)으로 인해 지치고 괴로운 마음을 안고 살아갔다. 심지어 이 문제는 동구 개인의 노력은 해결될 수 없는 더 막막한 문제들이었다. 박영은 선생님은 동구 마음 안에 있는 이런 상처까지 보듬어주시고 동구에게 현명하고 지혜로운 어른이 무엇인지 보여주신다. 그런 선생님을 동구는 의지하고 믿는다. 처음으로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른이 생긴 것이다.
지혜란 이토록 아름답고 향기로운 것이던가. 나는 선생님이 알려주신 말들을 입속에서 되뇌어보았다. (중략) 나는 오랜 세월 벽을 보며 정진했어도 도를 얻지 못하다가, 어느 여름날 대낮에 벼락과 소나기가 세상을 휩쓸고 지나간 후 대추나무 잎끝에 서 돌절구로 떨어지는 물방을 보면서 갑자기 도를 깨달은 스님처럼, 가슴 가득 차오르는 기쁨과 환희에 벅찬 숨을 들이마셨다.
138,139p
그 뒤는 1980년 전후 동구뿐만 아니라 국가 자체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소설을 읽지 않더라도 그 혼란과 어려움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앞부분도 흡입력 있지만 뒷부분은 손을 뗄 수 없을 만큼 속도감 있게 그렇지만 묵직하게 진행된다. 스포방지를 위해 줄거리는 여기까지 적는 것으로!
📌후기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생생하고 섬세한 묘사이다. 어린아이인 동구의 시선에 넘치지 않게 상황을 묘사한다. 이러한 생명력 넘치는 표현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의 매력을 배로 느끼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아마 성인일) 독자들이 동구의 시선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몰입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동구의 순수한 시선과 현실 세계의 잔인함이 대비되면서 독자들에게 오랜 여운을 남긴다.
" 나는 그게 안 쏘는 탱크인 줄 알았어요!"
맞는 답인지 틀린 답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주리 삼촌의 악어 이빨 같은 손가락은 내 귀를 풀어주었다. 귀에 감각이 없었다. 주리 삼촌의 두툼한 입술 사이로 폭풍 같은 한숨이 뿜어 나왔다.
"안 쏘는 탱크라니......."
176,177p
이 소설에서 집중해야 할 부분은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 어떤 의미인가이다.
동구가 사는 달동네에는 이런 동네와 어울리지 않는 삼층집이 있고 그 집의 정원이 바로 동구가 아름다운 정원이라고 여기는 곳이다. 다른 친구들은 이 정원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동구만은 이 집의 대문이 열려있는지를 살피며 정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행운 같은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살아 있는 나뭇잎들과 한때 살았던 나뭇잎들이 서로 힘을 합쳐 매우 향긋한 공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이곳을 감도는 바람은 단술처럼 맛있다. (중략) 사람의 입김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삼층집의 정원은 오로지 건강만으로 그 뒤에 어린 세심한 돌봄의 손길을 짐작게 할 뿐이다.
18p
소설 차례에서 알 수 있듯이 동구는 모종의 이유로 아름다운 정원을 떠나며 마지막 작별을 한다. (1981년, 정원을 떠나며)
희부연 겨울 햇살이 안개처럼 정원을 두르고 있었다. 조심스레 정원으로 들어서자 나와 정원을 구별하지 않고 하나처럼 감싸 돌았다. 이곳에 가져다 놓으면 뭐든지 다 아름다워지는 걸까? 잘 살펴보면 삼층집 정원이라고 해서 값비싼 고급 나무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 모퉁이에는 흔해 빠진 수수꽃다리도 있고, 전혀 쓸모없이 억세기만 해서 산에서 마구 뽑아버린다는 아까시나무도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흔한 것이건 귀한 것이건 이곳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데에는 다 같이 한몫을 하고 있었다. 삼층집 정원의 아름다움은 추운 날씨나 하늘을 찢는 번개도 끄떡없이 이겨낼 수 있는 강건한 것이지만 시멘트 한 줌, 어느 난폭한 손목의 돌팔매질 한 번이면 곧바로 상처 입을 수 있는 여리디여린 것이기도 했다.
365p
마지막으로 정원에 방문한 동구가 정원에 대해 표현한 구절이다. 소설 초반에 동구에게 흠 없이 완벽하고 신성하게 느껴졌던 정원에도 볼품없고 흔한 존재가 있음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동구가 5년 사이 성장한 것이 체감되었다. 인생은 결국 지금처럼 언제나 흑과 백이 함께한다는 사실. 이를 꾸려나가는 것은 자신의 몫임을 동구가 깨달았다는 것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나의 곤줄박이야. 그 어느 못된 손목이 던진 돌팔매에 맞아 날개를 다치고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이렇게 살아서 아름다운 정원에 남아 있었구나.
368p
동구가 정원을 찾아오는 많은 새 중 가장 아꼈던 새는 바로 황금빛 깃털을 가진 곤줄박이였다. 동구가 마지막으로 정원을 찾았던 그날, 누군가의 돌팔매질로 죽은 줄만 알았던 곤줄박이가 다시 한번 동구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 부분이 아무리 동구가 삶을 살아가며 우여곡절을 겪을지라도 따뜻하고 단단한 심지를 가진 동구는 늘 그 곤줄박이처럼 희망과 선을 잃지 않고 살아가리라는 암시라고 느껴졌다.
📌 마무리하며
무심코 동구에게 '어른스럽다'라는 표현을 하려다가 아차 싶었다. 소설 속 어른들(특히 아버지, 할머니)은 통상 어른에게 기대하는 지혜로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동구가 더 깊고 넓고 현명하다. 우리가 만나는 어린이들에게도 각자의 모양으로 생긴 마음이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를 포함한) 어른이라고 무조건 정답만으로 고르는 것은 아니니까.
울다 웃다 따뜻했다가 따가웠던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을 꼽자면
- 언젠가 어린이였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고 싶은 사람
- 촘촘하고 밀도 있는 표현으로 흡입력 있는 소설에 관심이 있는 사람
- 성장소설의 정수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이다.
+)
이 책을 읽으며 느꼈던 여러 가지 감정을 글로 표현해 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마치 마음속의 여러 생각과 감정이 들었지만 실제로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웠던 동구처럼.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개정 2판이 나온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꼭 많은 사람들이 동구의 이야기를 직접 읽어봤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늘의 서평을 마무리한다.
중년이 된 동구가 어디선가 강건한 트럭 운전사가 되어 전국을 누비고 있기를.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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