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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폴라 일지
김금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월
평점 :
📌 들어가며
작년 가장 흥미롭게 시청한 다큐멘터리는 <빙하의 시그널>이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전 세계에서 사라지고 있는 빙하와 빙하의 역사를 살펴보며 지구의 생명체들이 어떤 타격을 받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다큐멘터리 후반부에 지구 온난화로 인해 크릴새우의 개체 수가 줄어들면서, 먹이의 80% 이상을 크릴에 의존하는 남극 턱끈펭귄의 생존도 위협당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이후 관련 다큐멘터리를 격파해가던 나에게 김금희 작가님의 <나의 폴라 일지> 출간 소식은 기다리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작가님의 남극 이야기를 보고 책으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나에게 작가님은 '금바오' 바오패밀리이기에 더욱 내적 친밀감이 있달까...🐼❤️)
📌 후기
김금희 작가님이 편집자로 일하던 이십 대 시절 극지연구소에 취재를 나간 후 남극에 대한 관심이 더해졌고, 실제로 가기 위해 몇 년간 시도했지만 길이 쉬이 열리지 않았다. 다음 작품의 배경을 '남극'이라 말할 만큼 남극 방문이 간절했다. 그렇게 한 번 더 취재지원서를 작성한 작가님은 극지연구소로부터 긍정적인 회신을 받고, 24년 새해를 남극 세종 기지에서 맞이하게 된다. 남극에 가보고 싶은 소망을 현실로 만든 작가님의 추진력을 절로 존경하게 되었다.
남극 세종 기지에 김금희 작가님은 '식생 팀'의 일원이 된다. 기지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옆새우를 연구하는 안 연구원, 대기과학자, 대원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셰프, 해군 해난구조대 SSU의 특수부대원 등)이 있다. 그동안의 삶의 규칙과는 다른 규칙(예를 들어 외출은 반드시 2인 1조로 해야 한다. )이 적용되는 남극 기지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며 생긴 이야기들도 이 산문집의 묘미이다.
특히 2024년 새해 첫날 셰프가 끓인 맛있는 떡국을 먹은 후, 모두 모여 윷놀이를 한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그냥 윷놀이가 아니라 사람이 말이 되어 움직이는 윷놀이였다. 말을 합치려면 사람이 사람을 업고 이동해야 하는 체력까지 필요한 윷놀이였다.
📚함께 이동하고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으며 머리뿐만 아니라 힘을 써서 임무를 완수하는 것, 나중에 보니 남극의 일상을 꼭 닮은 게임이구나 싶었다.
156쪽, 대기의 강.
기술의 발전으로 좋은 화질, 큰 화면으로 남극을 볼 수 있지만 나에게만큼은 어째 그 웅장함은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그럴까? 그렇지만 <나의 폴라 일지>를 읽으며 그 위대함과 장엄함이 마음 가득 채워졌다. 김금희 작가님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깨끗하고, 투명한 미지의 세계 이야기가 내가 그동안 해왔던 남극에 대한 상상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정작 나는 추워 덜덜 떨고 있었지만 마음은 녹듯이 포근해졌다. 일면 슬퍼지기도 했는데 너무 순정한 것, 아름다운 것, 들끓는 자아 따위와는 무관한 자연 자체의 풍경과 맞닥뜨릴 때 느끼는 기이한 상실감 같은 것이이었다. 남극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나는 실제 내 삶은 이곳과 얼마나 다른가를 동시에 감각했다. 적어도 지금의 내게는 남극이 인간이 인간처럼 살 수 있고 해표가 해표처럼 살 수 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안정적인 공간이었다.
대기의 강, 138쪽
우리 모두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며 지구의 아주 작은 존재인 나를 직면하는 순간이 한 번쯤은 있었을 것이다. 10년 만에 바다를 보러 갔을 때 수평선 끝에서부터 밀려와 발밑에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나도 자연의 웅장함을 느꼈다. 남극은 어떨까?
📚빛에 반짝이는 유빙들을 보거나 잠시 얼음이 풀린 틈을 타 되살아난 풀과 이끼 그리고 이제 솜털을 거의 벗은 펭귄을 볼 때마다 나라는 피조물의 자리도 오롯이 드러났다. 종교의 유무를 떠나 남극의 자연은 나를 낮추고 자연의 질서 안에 머물며 늘 숭고하게 했다. 압도적인 경외와 종교적 매혹, 두려운 감동이 뒤섞인 누미노제의 경험이 남극에는 있었다.
176쪽, 명명의 세계
남극의 자연 속에서 작가님의 다정한 시선으로 발견한 위로도 책 전반에 잔잔히 깔려있다. 이 책을 통해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위로를 받았다. 사회가 정해놓은 나이대별 인생 과업은 내 기준이 아니라며 스스로를 다잡으면서도 알게 모르게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다. 한 해 한 해 시간은 가는데 뚜렷한 성과도 변화도 없는 내가 아래 소개한 구절을 읽으며 마음이 울컥했다. 의외의 순간 위로를 받아서인지 더 감사하게 느껴졌다.
📚동물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원칙대로 가만히 서서 지켜보는데 한 발 한 발 내게 다가왔다. 곧 있으면 3월이건만 아직 솜털을 달고 있는 아기 펭귄들이었다. 너희 늦둥이구나, 싶으면서 콧날이 시큰해졌다. 인간처럼 펭귄도 개중 좀 늦된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고마울까. 가장 강한 것만 존속하지 않고 저마다 다른 힘과 속도를 지닌 존재들이 공존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질서라는 사실이.
281쪽, 나의 폴라 속으로
📌 마무리하며
작가님의 남극에서의 한 달. 내가 경험하기 쉽지 않은 세상의 이야기가 너무 매력적이었다. 다음 에피소드가 궁금해서 한 꼭지만 더 읽을까? 하다가 앉은자리에서서 전부 뚝딱 완독했다. 폭설 속에서 '남극의 블리자드는 여기의 눈과 추위는 비교할 수 없겠지.'라는 터무니없는 생각도 했다. 곽병주 작가님이 그리신 본문, 표지 그림도 작가님의 산문집과 잘 어울려서 읽는 재미가 배가 되었다.
- 김금희 작가님의 기존 작품들을 사랑해온 독자들
- 미지의 세계, 남극이 궁금한 독자들
- 여행자가 아닌, 한 달을 남극의 구성원으로 '살아온' 작가님의 이야기가 궁금한 독자들
에게 추천하고 싶다.
<하니포터10기 활동으로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