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인생의 세 가지 조건 - 1000가지 죽음이 가르쳐준
오츠 슈이치 지음, 박선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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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서에 흔히 볼 수 있는 말이 있다. 내일 죽는다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하라, 인간은 죽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살 수 있다 등등. 그런데 죽기 살기로 목표를 향해 뛴다는 것을 이 책에서는 조금 달리 보는것 같다. 소개된 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 사실은 목표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이 불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크리스천으로서 죽음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막상 내 인생의 카운트다운을 알 수 있다면 조급해지고 무서울거 같다. 과연 제대로 살았나 하며.  

 

행복에 대한 다른 시각을 읽을 수 있다. 저자는 호스피스 전문의로 시한부의 인생이 흔히들 생각할 수 있는 비극의 말로라고 보지 않는다. 겪어보지 않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상황에 있는 환자들이 작별할 때까지 그 순간순간을 즐겁게 보내려는 것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어찌나 태연한지, 장례까지 담담하게 준비하는 모습이 체념을 넘어 행복을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임종을 지켜본 저자가 말하는 바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괴롭지 않을 정도로, 부족하지 않을정도로 욕망을 다스리면 행복은 저절로 온다이다. 누구나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매순간을 최선을 다해서 그러나 지나침 없이 살다보면 미소 짓으며 눈 감을 수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후회없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자는 말이다. 흔한 말이지만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는 것,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두려워 회피하고 싶고 진지하게 묻고 싶지 않을 수 있다. 인생은 유한함을 깨달아 생이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살면 그 사람의 인생은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선의 인생은 무엇이고 언제인지 모르지만 죽게 될때 후회가 없을까, 진지하게 물어볼 기회였다. 굉장히 어려운 답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다해 일하는 것이 내 최선의 삶인거 같다.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 가장 기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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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드뷔시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권영주 옮김 / 북에이드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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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 본책이라 띠지 없이 봤다. 강추란 말 듣고 살펴보니 미스터리 소설, 그래서 스포일러를 최대한 읽지 않으려고 줄거리도 안보고 펼쳤다. 책이 어떤 책인지 정확히 모르고 봐 읽으면서 순간 순간 놀랐다. 읽다보니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소녀가 장애를 극복하는 성장 소설에 가깝기 때문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별채에 잠들어있던 그녀와 사촌이자 친한 친구인 또 다른 소녀 그리고 할아버지가 불에 휩쓸리게 되는데 소녀 혼자만 살아남게 된다. 신체 대부분 3도 화상을 입은채로.

피부 이식으로 손가락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그녀는 할아버지의 막대한 유산을 물려 받게 되고 주변의 시기와 이유 모를 위협에서 시달리지만 최고의 피아니스트의 도움을 받아 음악에만 몰두한다.

 

이쯤되니 성장 소설이란 확신이 섰다. 소녀가 사고 후 몇달 만에 놀랄만한 연주 실력을 뽐내는 장면 그리고 학교를 대표하여 콩쿠르 대회에 나가는 장면까지 주인공의 성장기는 감동적이다. 응원하며 열심히 보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전환된다. 어머니가 살해당한 것이다. 작가의 소개글을 보니,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상을 받았단다. 분위기는 분명 뭔가를 말해주는듯 한데, 가족 내부의 심상치 않은 어떤 것을 그녀도 그녀를 가르치는 최고의 피아니스트도 제쳐두기에 독자인 다시 음악으로 돌아갔다.

 

읽다 보면 그럴때가 있다. 일본어를 몇개월만에 공부한 어떤 분의 에세이를 보다가 몇번이나 그만두었던 일본어를 다시 공부하고 싶어져 책을 펴게 될때, 인문학 책을 보면 오프라인,온라인으로 인문학 강의를 찾아 듣고 싶어질때, 어떤 시련을 극복하고 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보면 용기를 얻게 될때가 말이다.

 

안녕,드뷔시도 비슷했다. 글로써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을 묘사하는 부분은 이 책이 놀라운 이유 가운데 하나였는데 특히 소녀가 드뷔시의 달빛에 빠져들어 '왜 이태까지 이런 기분을 느껴보지 못했을까' 하는 장면은 최고 중의 최고였다. 피아노를 배우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늦은 시간인데도 피아노 뚜껑을 당장이라도 열어 건반을 치고싶은 그런 마음을 글로 느낄 수 있다니, 정말 신기했다. 음악 소설은 읽어본적이 없어서 그런가. 

 

감격적인 장면은 이뿐만이 아니다. 화상을 입은 주인공이 딛고 일어나는 부분은 뭉클하다. 바로 얼마전에 『지선아, 사랑해』라는 이지선 님의 에세이책을 봤다. 그래서 그 분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는데 소설로도 인간의 놀라운 의지를 느낄 수 있다니, 놀랐다.

 

주인공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우승자로 명명되는 최고의 장면을 놀라운 반전이 대신한다. 안타깝게도 그간의 모든 감정을 싹 사라지게 만드는 꺼림칙한 반전이었다. 작가가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것들이 반전을 위한 장치로 느껴진게 분통하기까지 했다. 뭐, 이 분야에서 으뜸가는 상을 받으려면 반전과 트릭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반전을 보고 나니 왜 독자의 시선을 다른 곳(성장기)에 두고자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초반 등장했던 사촌인 '또 다른 소녀'를 왜 등장시켰고 그녀의 가족사(인도에서 쓰나미로 부모님이 죽었지만 그녀만 가까스로 살아남아 소녀와 같이 지내게 되었다)를 소개했는지, 이렇게 빨리 퇴장시킬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런 반전은 상상치도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작가가 묘사하는 아름다운 예술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잊혀지고 말기 때문이다. 

 

사람 마음까지 움직이게 만드는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주인공의 꿈과 열정이 이런 예상 가능할뻔 한 반전을 숨기기 위함이였는지, 그런 생각도 든다. 

 

소녀가 드뷔시에게 안녕을 고하는 것처럼 소설을 읽는 동안의 감동, 글로 느낀 음악의 세계는 덮고나니 굿바이가 된 것 같다. 꺼림칙한, 다른 것들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게하는 반전은 오래도록 기억될 거 같다. 처음부터 반전을 기대하고 봤다면 대단한 반전이야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것보다도 명장면이 정말 많았기에한 줌의 먼지』같이 결말이 두개였다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도 든다.

 

 

 

"일도, 사생활도 실의와 절망의 연속. 실제로 한계에 몰렸을 거야. 요양 중이던 아일리겐슈타트에서 유서까지 썼으니까."

"유서…"

"그래. 다만 이 유서라는게 참 유서답지 않은 유서라 말이야. 간단히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야. '나는 기쁜 마음으로 죽음을 향해 걸음을 서두르련다. 목동의 노래를 다른 사람은 듣는데 나에게는 들리지 않았을 때는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내 예술만이 그런 마음을 붙잡아 주었다.' 알겠지? 고뇌를 이야기하기는 해도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하는 게 아니야. 오히려 절망을 딛고 일어나 고난을 극복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하는 내용이지. 실제로 베토벤은 이 이듬해에 <교향곡 제3번 영웅>같은 위풍당당한 대작을 발표했거든. 낭떠러지 끝에 몰린 인간의 엄청난 반역 정신. 그 의지가 낳은 힘찬 음악…" p231

 

 

"다시 베토벤으로 돌아가서, 귀가 들리지 않아도 지휘봉을 입에 물고 피아노와 격투하는 모습. 흙투성이가 돼서, 눈물범벅 땀범벅이 돼서,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의지. 어쩌면 사람은 오래 사는 생명보다 계속 싸워 나가는 의지 쪽이 중요한 게 아닐까.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는 분명히 그런 물음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해."p233

 

 

한사람은 유서를 씀으로써, 또 한 사람은 촉망받던 장래와 결별함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이다.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란 뭘까. p265

 

 

사람이 감동하는 건 언제나 사람의 마음이거든, 그 마음을 형태로 한 게 예술성이야. p273

 

 

도망치는 것을 배우지 마라. 그만 싸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자기 자신에게 지지 마라. p341

 

 

"성공하는 사람은 원래 어디선가 터무니없는 짓을 하는 법이야. 평탄할 길, 온당한 장소에 연연하는 인간은 등산도 못 하고, 하물며 하늘을 날지는 절대 못 하는 법이다, p195

 

 

사람은 누구나 강해지고 싶어 하지만, 예기치 못한 불행이나 타고난 약함 때문에 좌절할 때가 있다. 그런 때, 어둠에서 빛이 있는 곳으로 이끌어 주는 것은 바로 곁에서 뻗어 주는, 피가 흐르는 손이다. 자기와 마찬가지로 나약하지만 의지의 힘으로 극복하려고 발버둥치는 인간의 뜨거운 손이다. 그에게 음악은 그런 손인지도 모른다. p253

 

 

아무리 절망해도, 아무리 좌절해도, 포기하지만 않으면 잿더미 속에서 불사조가 부활하듯 다시 용감하게 일어설 수 있다. 특별한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그 힘이 깃들어 있다, p256

 

 

손가락에 장애가 있어서 피아노를 온전히 칠 수 없다?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을 테니 목소리를 내기 싫다? 역시 나는 형편없이 비겁한 인간이다. 그런 건 싸움을 회피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

 

 

싸우는 사람은 부상을 입어도 싸운다. 싸우는 사람에게는 타인의 시선도, 논리도 상관없다. 그저 자기의 무기와 전쟁터가 있을 뿐이다. 나는 무기를 버리고 전쟁터에서 도망치려 했던 패잔병이었다. 도망치면 확실히 편하다. 하지만 그뿐이다. 편한 길을 택해 얻게 되는 것은 태만, 그리고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의 시간뿐이다. 모든 싸움은 즉,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한번 도망치기 시작하면 점점 더 싸우기가 겁이 난다.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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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싸라비아 - 힘을 복돋아주는 주문
박광수 글.사진 / 예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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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된 책을 인터넷에서 처음 보았을때 소개 문구처럼 마법같은 책이 아닐까?했다. 광수 생각처럼 웃을 수 있고 위로 받을 수 있는 그런 마법 같은 책 말이다. 마법을 믿었던 유치원때의 가물가물한 추억이 떠올랐다. 표지 아래 은빛을 입은 여러 문양들은 당시 자주 보았던 '쿠루쿠루'란 만화를 생각나게 했다. 무시무시한 공격을 막고자 마법사 소녀가  지팡이를 들고 바닥에 마법을 일으키는 그림을 그리는데, 책 표지의 그것들과 너무 비슷해서 정말 추억 돋았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의외로 광수 생각의 만화 캐릭터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을 돌아다닌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과 마음을 울리는 글이 있다. 광수씨를 연상시키는 만화 캐릭터는 없었지만 인생 살이와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여전히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현실의 아름다움과 아픔을 동시에 바라보게 하는 사진과 글은 공감이 많이 갔다.

 

현실적이면서도 그런 것 같지 않은(정말 잘 찍어서) 광수님의 사진을 보고 있으니 이 사람 만화만 잘 그리는게 아니구나, 감탄했다. 기가 막히게 사진이 멋지다.   

 

하지만 나에게 본래 사진을 담은 에세이는 좀 지루한 책이다. 앗싸라비아도 '힘을 북돋아 주는 주문, 앗싸라비아'를 기대하며 책장을 넘겼지만 사진에 집중해야하는지, 글에 집중해야하는지, 도대체 이 사진들이 책의 주제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감이 안 잡혔다. 

  

물론 저자의 감각을 그대로 살린 사진과 글은 멋지다. 다만 서로 어울리지 않은 글이 좀 많았을뿐;;; 눈을 감으면 느꼈던 감격이 어디론가 증발해 버린 듯한 기분이다. 앗싸 하고 외치고 싶은 글을 읽다가도 옆에 실린 사진을 보면 급 우울해지는.

 

다 읽고나니 세상은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하다를 사진으로 읽은것 같다. 비록 앗싸라비아라는 주문은 읽어낼 수 는 없었지만 그래도 마법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 추억을 북돋아 주는 주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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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할 수밖에 없었어요 - 나와 가정과 교회를 새롭게 세우는 중보기도의 힘
김현미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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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고, 책을 보고, 예배를 드리고, 또 다른 기독교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기도의 중요성이다. 기도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하면서도 막상 어떤 일이 닥치면 이것저것 해보고 나서야 무릎을 꿇게 된다. 정말 기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홀로 남게 되었을 때, 주님 한 분만 곁에 계신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그때서야 온전히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정말 아프게, 제대로 깨닫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그래서 어떤 식의 기도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인지 궁금했고 알고 싶어 펼치게 되었다.

 

온누리 교회의 안수 집사인 저자는 교회 내 중보 기도팀을 맡게 되면서 기도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점 확장하여 전국적으로 사역을 하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기도의 용사인 그녀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중보기도를 하기까지는 23년이 걸렸다. 시댁과 남편과의 문제, 사업의 실패, 새로운 자아와의 갈등 등의 고민을 내려놓기까지의 시간이었다.

 

그 광야학교에서의 경험을 말해주며 기도에 대한 잘못된 시선과 태도와 거룩한 기도의 방법을 알려준다. 

 

기도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모든 일, 즉 성경 속에서 나타난 그리스도에게 속한 모든 일에 대하여 믿음으로 반응하고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셨던 것처럼 순종하는 것입니다.(P50)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뢰하는 관계 속에서 기도를 해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하다한다.

 

작은 그릇이 확장되려면 부서져야 하고 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깨지면 아프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아픈 것이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P64)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성령을 소멸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말씀을 듣고, 묵상하는 것입니다.(P59)

 

성경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시키고 하나님께 묻고 맡겨서 회개하고 행해야 한다. 저자가 직접 소개하는 묵상의 방법은 좋은 모범을 보여준다. 영적으로 성숙한다는 것은 우리 의지대로 순식간에 되는 것이 아니고 훈련의 과정은 말씀 묵상, 예배, 기도를 통해서 발전되는 것이라 한다. 육체가 원하는 바와 반대가 되는 것, 끊임없이 자기와 싸우는 것, 깊은 기도의 과정이 된다.

 

묵상하는 사람의 생각을 끊임없이 말씀에 비추어봅니다. 말씀과 기도, 생각이 따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읽고 생각이 떠오르면 기도가 되어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께서 답하시는 것(성경 속의 다른 말씀, 감동, 내적 확신, 음성 등)을 가지고 말씀에서 멀어지지 않게 집중하고 결단하는 일까지의 작업이 이루어집니다.(P91)

 

사탄의 발판이 되는 죄는 우리 스스로가 제공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온전히 신뢰하고 의탁하는 사람이 그 이름의 권세로 대적할 수 있다.

 

사탄이 발판으로 삼는 것은 바로 우리 마음속에 있는 '죄'입니다. 그래서 영적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마음속에 있는 죄를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영적전쟁을 하기 위해 점검해야 할 또 다른 영역은 개인과 하나님, 가족, 동역자, 교회 목회자들과 의 '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P147)

 

정말 주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하고 싶다. 중보기도가 내 개인적 기도보다 쉽게 느껴졌던 이유도 점검할 계기가 되었다. 내가 얼마나 진심으로 중보 기도를 하는지, 해야하니까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책에 제시된 방법을 보면서 해결하고 싶다.

 

기도하는 그 시간은 어떤 시간보다도 성령님의 임재를 강하게 느낀다. 감사보다도 부담이 더 드는 까닭은 내 세상적인 요구나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들을 여전히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내려놓음을 배우는 과정이 너무 눈물나고 아프고 따갑지만 하나하나 깨닫게 해주시는 단계가 책에서처럼 정결케 가는 과정이라 믿는다. 과거도 오늘도 내일도 감사함을 고백하는 거짓 없는 하늘의 기도,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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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
류명찬 글, 임인스 원작 / 보리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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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신과 싸워 사람들을 구한다는 으시시한 소재를 코믹하게 그려넣어 웃음과 감동을 준 임인스 작가의 재치와 재능은 정말 뛰어나다. 이렇게 '싸우라, 귀신아'라는 웹툰으로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었는데, 그의 데뷔작은 전혀 다른 분위기의 '걸레'라는 작품이다. 얼마전 소설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만화 이전에 글 먼저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읽게 되었다.

 

너희가 엎질러 버려 다시는 주워 담기 힘들게 먼지와 뒤섞여 더럽혀진 것들을 왜 우리가 걸레가 되어서 닦아야 되지?

왜 처음부터 끝까지 더렵혀지고 왜 더러워진 것을 정화시키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해?(P8)

 

진짜 걸레는 그깟 호칭으로 사람의 가치를 차가운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너희들의 썩은 입이다.(P64)

 

제목처럼 내용도 자극적이다. 걸레하면 무슨 생각이 떠오를까? 걸레는 주로 흰천의 것을 사용하는데, 먼지나 오물이 닦은 후, 그것이 깨끗하게 지워졌는지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깨끗하게 빨아도 그것이 도로 수건으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 깨끗해보여도 오점이 있는 더러운 존재, 그런 좋지 않은 이미지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 주변에 '걸레'라는 말이 통용어가 된것은 아닌지, 씁쓸하기도 하다.  

 

 

고등학생이었던 소년이 10년만에 의식을 되찾게 된다. 그에게는 같은 반, 좋아하는 소녀가 있었고 두 사람 다 학교를 즐겁게 다니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어느날, 소녀에게 학교 이사장의 아들과 그 무리들이 접근하게 되고, 그들은 거부하고 고발했던 소녀를 반복적으로 겁탈하고 동영상까지 유포하게 하게 된다. 힘있는 자들에 의해 사건은 무마되지만 소년은 그 일의 충격과 죄책감을 안고 옥상에서 뛰어 내린다.

 

밝고 당찼던 소녀는 가족에게도 거부당했고 매춘을 하는 '걸레'로 성폭행의 주도자였던 남자는 사랑스런 딸을 낳아 가정을 이루고 사회적으로도 높은 지위의 '위선자'로 살고 있다.

 

10년전의 사건을 다시 맡게된 한 형사가 일을 파헤치게 되면서 덮어두었던 비밀이 드러나게 된다.

 

이런 일을 심심찮게 뉴스나 인터넷으로 보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남의 일같이 느껴지는 것은 정말 어쩔 수가 없다. 주도자였던 남자가 자기 딸에게도 그런 비극이 일어날까봐 두려워하는 장면은 정말 이 작품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런 일이 가까운 누군가에게 일어난다면? 소설이 더이상 소설이 아니라면? 이런 질문을 계속 해서 던져주는데 그 과정에서 소개되는 예상하지 못했던 가족 간의 성범죄도 충격이다. 

 

소설의 내용이 새롭다, 참신하다고 못느끼는 까닭은 기사 속 현실에서, 많이 듣던 익순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걸레는 빨아도 새로워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걸레를 걸레로 만드는 사람들은 누군가,라는 말에 또 한번 충격이 있었다.

 

아쉬운 점은 만화를 소설로 바꾸는 과정이어서 그런지 어색한 부분이 꽤나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권력자들의 이중성, 성범죄 등 말하고자 하는바가 제대로 마무리 되지 않은 부분, 주인공들의 심리 묘사가 극히 적어서 캐릭터 몰입이 힘들었다는 점 등등. 또 소설의 '걸레'로 여겨지는 희생자가 죽는 장면은, 마음을 정화하고 상처를 치유할 기회조차 누리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주기에 너무 안타깝다.

 

작가가 언급한 '깨끗하게 만드는 방법'이 사실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차라리 희생자를 살려 사랑의 힘으로 극복하게끔 설정했다면,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녀의 죽음이 마지막 장면을 빛나게 하기도 했다. 좀 서둘러 끝내버린것 같지만;;;) 

 

이런 사회를 변하시키고자 울부짖는 이들이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희망의 마지막 장면은 여운을 남긴다.   

 

 

아무리 더러운 때가 스며들었다 해도 반드시 깨끗하게 만드는 방법이 존재해.

그런데 너희들은 단지 더럽다는 이유로 단지 불결하다는 이유로 닦아 줄 의지도 없으면서 그것을 차가운 바닥에 내던진 채 이렇게 불러 걸레라고!(P180)



 

 

다음은 사랑하는 소녀를 잃게된 소년의 절규.

이 소설은 현실이다, 라는 사실을 일깨워 먹먹하다. 

 

"이렇게 찢어지는 아픔인 줄 몰랐습니다. 다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화가 나기는 했지만 인터넷에서 욕 몇 마디 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일이 벌어지고 나니 제 가슴이 이렇게 아플 줄 몰랐습니다. 이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이 년 동안 들어온 신음 소리 그리고 사회에 드러나지 않고 부정의 그림자 속에 감춰진 사건들. 그 수백 수천 건의 성폭행 사건 속의 제삼자들. 부모, 애인, 친구, 그리고 그들을 사랑했던 수백 수천 명의 아픔이 느껴집니다. 가슴이 찢어집니다. 이런 저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자기 손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그들을, 나를 이런 제삼자들을 알고 계십니까?(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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