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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대 - 신세계에서의 모험
앨런 그린스펀 지음, 현대경제연구원 옮김 / 북앳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미국 연준은 투자를 하지 않는 보통 한국 사람들에게도 중요하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전세계에서 진정한 돈은 달러 하나 밖에 없는데, 그들은 달러 값을 정한다. 다른 통화의 가치는 달러 값에 따라 상대적으로 정해진다. 달러가 강해지면 원화가 약해진다. 한국은행은 금리를 올릴 수 밖에 없다. 당장 변동금리 대출을 가진 사람들은 이자를 더 지불해야 한다. 삶이 팍팍해지고 삶의 질이 낮아진다.
그래서 연준에서 달러 금리를 정하는 FOMC 회의는 온세계가 지켜본다. 성명서 문구 하나하나의 의미를 따져묻고, 연준 의장의 말 한마디로 그들의 의도를 읽고자 달려든다. 이런 정보는 실시간으로 시장에 반영되어 금리, 주식, 원유 가격이 요동치기도 한다.
앨런 그린스펀은 버냉키 전임 연준의장으로 18년이 넘게 그 직무를 수행한 인물이다 (1987~2006). 금융의 세계화가 이루어지며 자본이 쉽게 국경을 넘나들던 시대를 같이 열어나갔다. 본격적인 첫번째 슈퍼스타 연준의장으로써 그는 현대 연준의 체계와 문법, 문화 등을 설계했다. 아직도 연준의 성명서에서 사용하는 용어나 앨런 의장의 말에는 그린스펀 시대의 유산이 잔뜩 들어가있다. 큰 족적을 남긴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반면에 엄청 욕을 먹기로도 유명하다. 공교롭게도 2006년 그가 퇴임하고 2년후 초대형 금융위기가 미국에서 터지면서 나라가 홀랑 망할 뻔 했다. 그의 장기화된 초저금리가 버블을 키웠다고 비판했다. 인플레 전망에 따라 금리를 결정했던 그로써는 좀 억울했을 법도 한데, 사실 더 큰 문제는 그가 시장을 맹신한데 있었다. 그는 전형적인 시장 자유주의적 신념을 가지고 있다. 시장이 가장 효율적으로 자원배분을 결정하며, 정부의 개입은 최소화해야한다는 주장이다. 금융 업계에서 자율적으로 서로를 모니터링 할 것이고 시장은 효율적으로 부도를 걸러낼 것이므로 시장 감독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전부 그의 탓은 아니었고, 그 시대의 분위기가 그런 사상의 영향을 짙게 받아내며 제도 등이 만들어졌다. 08년 금융위기는 분명 사상의 오류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이 책이 2007년에 나왔다. 06년도에 연준 의장을 퇴임하고 곧 나온 회고록인 셈이다. 그에 대해서 우호적인 시점에 씌여진 책이고, 그는 자신감있고 솔직하게 연준의장으로써의 어려움과 그의 경제관을 써놓았다. 10년 후에도 이 책을 읽는게 여전히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반으로 나누어 앞 부분은 자신의 임기 중에 있었던 회고록 성격이고 나머지 절반이 거시경제학 강의다. 두 부분이 모두 도움이 된다.
첫번째는 역사는 돌고돌기 마련이라 과거의 일을 아는게 좋다. 닉슨 시절부터 레어건, 부시, 클린턴 정부 시절에 있었던 일의 큰 정책방향이나 분위기 등에 대해서 알 수 있다. 요즘도 세제 개혁 때문에 난리인데, 과거에 있었던 재정 문제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두번째는 그의 경제관을 잘 알 수 있다. 그는 자유로운 시장이 경쟁을 촉진해서 삶의 질 개선을 이룬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개인의 재산권 보장과 법치주의 같은 환경이 중요하다. 어떻게해야 경제가 발전하는지에 대한 그의 설명은 간명하면서도 매우 좋다. 찬성하든 반대하든 읽어볼만하다. 세계화의 혜택에 대한 그의 논리와 확신도 설득력있다. 물론 그도 세계화가 심화되면서 나타나는 양극화 문제에 대해서도 걱정을 하고 있고, 그로 인한 포퓰리즘의 부상도 우려하고 있다. 그리고 10년 후 예상대로(?) 트럼프가 나왔다.
마지막 챕터는 강의를 정리하며 미래를 전망한다. 전세계적인 저금리 현상이 어느정도 끝나리라고 예측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그 때도 인플레이션이 왜 이렇게 안 올라오는지가 의문이었나 보다. 그는 중국 같은 신흥국에서 값싼 노동력이 대폭 공급되면서 선진국에서도 임금 상승에 대한 교섭력이 약해졌기 떄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중국 농촌에서 도시로 유입되는 인구 속도가 감소하면 그에 따라 미국 노동자들의 임금상승률이 올라오면서 고질적인 저인플레이션 문제가 해소되리라고 본다. 10년전에 쓰여진 책인데, 아직도 저인플레이션으로 전세계가 우려하는 걸 보면 단순히 노동력의 문제만도 아닌 것 같다.
씌여진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시사점과 배울점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많이 배웠고, 미처 다 흡수하지 못한거 같아서 다시 한번 들쳐보며 그가 펼친 경제학 강의를 들어보고 싶다. 그가 2008년 금융위기의 주범인양 몰리면서 저평가되어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