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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 흐름출판 / 2017년 8월
평점 :
지난 대선 트럼프 대통령은 분노한 '러스트 벨트' 백인들의 지지에 힘입어 당선됐다. '러스트 벨트'는 미국 중부에서 철강, 자동차 같은 제조업이 쇠락한 지역을 말한다. 미국 제조업 전성기 때는 다른 지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고 많은 중산층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이 개방되고 NAFTA같은 조약들이 체결되며 공장은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이나 동유럽 같은 곳으로 옮겨갔다. 여기에는 수많은 직업이 생겨났고 두터운 중산층이 생겨났다. 물건값은 전세계적으로 내려가 수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봤다. 사람들은 저마다 세계화를 칭송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러스트 벨트'의 노동자들은 직업을 잃게 되었다. 빚을 끌여다써서 집을 샀는데, 집값이 떨어지면서 발이 묶인다. 공장에서 일하던 것말고 별다른 지식, 기술이나 인맥도 없던 사람들은 그냥 남아서 단순 서비스직을 전전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개인의 삶은 망가진다. 기대하거나 누렸던 중산층 생활수준에서 대폭하락한 집안마다 알콜과 마약중독자가 있다. 사람들은 불안감을 보듬기보다는 표출하며 부딪힌다. 가정내 폭언과 폭언은 일상적이다. 10대 후반이 되면 여자들은 임신해서 미혼모가 된다. 학업이나 기술을 배우지 못해 더욱 빈곤해진다. 주변에서 대학에 제대로 진학한 사람도 없고, 아무도 내가 대학같은 곳에 갈꺼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알콜 중독자가 되서 유치장을 전전하며 사는게 기대된다.
가난은 단지 돈이 부족하거나 없다는게 아니라, 인간성의 파멸이며 질곡이다.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고 해도 늪처럼 생활습관, 주변의 기대감, 정보의 부족, 롤모델의 부재 등이 발목을 잡는다. 그나마 옆에서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해주는 어른이 있으면 공부를 하거나 기술을 배워서 여기를 벗어날 기회를 만들어 볼 수 있다.
'러스트 벨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지은이는 조상에서부터 어린시절에 이르기까지 보고 들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그 안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 투쟁하고 노력했던 이야기가 들어있다. 이렇게 얘기를 풀어놓기 까지 얼마나 많은 마음고생과 노력을 했을까 생각하니 안타깝고 먹먹해진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불쌍하고 그래서 단순히 도와줘야 되는 대상으로 보는 시각도 경계한다. 가난에 따른 "학습된 무기력"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아무리 복지로 퍼줘야 '복지여왕'만 양산하고 구조적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는 거다.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이런 일로 정치권에 분노한다.
어떤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나. 저자는 힐빌리 들이 더이상 자신들의 가난을 정치권이나 다른 나라탓을 하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는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문화적으로 가정을 잘 세울 수 있도록 해주고, 가정 밖에서 아이들을 잘 보둠어줄 수 있는 곳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할 수도 있다. 빠른 시간 만에 많은 개선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 책이 미국 사회에도 많이 회자되며 읽히고 있다는 점이 한가닥 희망이다. 소외된 사람들은 소외되었기 때문에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도 못한다. 이런 책으로 그들을 다시 보게 된다면 그래도 상황이 나아지는 방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