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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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배우던 시절에도 그랬지만, 역사를 배웠다는 흔적이 대학졸업장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지금도 역사의 답답함은 여전하다. 역사에 머리 아파하거나, 쏠리는 듯한 역겨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종종 시원스럽지 못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그리고 역사학자들이 서술한 대부분 책들이 시멘트 바닥처럼 건조하고 딱딱한 서술과 문체가 지루하고 답답함을 유발했고,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당위에서 자유롭지 못한 역사학의 특성은 객관에 그리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내게 편안한 무엇이 아니었다.

돌아보면 나는 역사를 좋아했지만, 역사책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내게 한홍구의 『대한민국史』는 조금씩 사그러드는 역사에 대한 애정의 불꽃을 다시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다.

역사학자도 사람이라 나름의 감정이 있기 마련이고, 신이 아닌 이상 그 감정이 언제나 완벽한 객관일 수는 없다. 이런 객관의 불완전성은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대한민국史』는 사실서술에 있어서 객관적이고, 관점에서 있어서는 절대 어중간한 객관을 지향한다거나, 하나마나한 뻔한 가치관을 거들먹거리지 않는다. 한홍구는 역사에 감정과 소망을 담았다. 거대담론에 휩쓸려버려 묻혀버리기 쉬운 개개인 삶의 역사를 복원하면서도,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도 놓치지 않은 것이 '한홍구의 역사이야기'다. 또한, 역사는 어두운 창고에 저장된 무엇이 아닌 나와 함께 현재에 존재하며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한홍구는 어물가의 아낙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증명하고 있다.

신선한 역사책이었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신선함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알고 싶은 것을 알게 해줘서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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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하성란 지음 / 창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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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한겨레신문에 하성란의 짧은 글이 일주일마다 실렸다. 동아리방에서 죽치고 앉아있는 것말고 특별히 할 일이 없던 내게 하성란의 글은 작은 재미를 주었다. 그러나 당시 글보다 더 매력적이었던 것은 하성란 얼굴 사진이었다. 똘망똘망 초롱초롱 맑게 생긴 하성란의 얼굴을 난 좋아했다.

얼마전 한 선배는 내게 철학적이지 못하고, 너무 문학적이라 비판했다. 선배는 비판으로 했던 말지만, 사실 내게 그 말은 나쁘지 않게 들렸다. 그동안 써온 독서일기를 보면 대부분이 소설이다. 소설을 읽어오면서 내가 얼마나 '문학적'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사실 '문학적'이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모른다. 다만, 문학적이라 함은,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과장됨을 지양하고 진솔하고 자잘한 것들에 애정을 갖는 것이라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소설 나부랭이'라는 말은 소설의 쓸모 없음은 물론이고, 심심풀이에 불과하다는 비하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동안 소설 나부랭이 따위나 끄적끄적 읽어오면서 많이 편안했다. 소설이 사회과학 보다 쉽고 편안한 것은 당연하니까. 소설은 내게 사회과학 이론과 논리를 증명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삶은 사회과학의 이론처럼 어렵지도 않고, 반대로 쉽지도 않은, 정말이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소설을 읽으며 느끼고 있다.

페미니즘은 물론이고 여성에 대해서 무지하고, 그에 대한 사회과학책은 많이 접해보지도 않았다. 조금은 딱딱한 사회과학 책보다, 나는 여성작가들의 소설을 통해서, 소설 속 여자 주인공을 들여다보며 여성을 더 많이 생각하고, 내 스스로 여자가 되어 보기도 한다. 여성작가들의 책을 읽으면 가장 흥미로운 것은 비록 상상일지라도 내가 여자가 된다는 것이다. 여성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수만번 듣는 것보다 여자가 되어 살아보는 것이 그 차별을 깊이 인식하는데 도움이 된다. 하성란의 글은 내가 기꺼이 여자가 되는데 전혀 망설이지 않게 한다. 그렇다고 하성란이 모든 독자를 여자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성란은 반성을 불러일으키는데 있어서 거창한 무언가를 끌어들이며 독자를 압도하려하지 않는다. 가벼운 듯한 주제를 가지고, 결코 가볍지 않은 일상을 끌어안으며 천천히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책 속의 단편 「오, 아버지」에는 아버지의 불륜 현장을 엄마와 함께 찾아가 허리춤에 손을 얹고 당돌하게 아버지를 불러내는 소녀가 나온다. 작가 하성란은 아마도 그런 소녀 같은 사람일 것 같다. 난 그런 소녀는 물론이고, 그런 하성란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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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편지
정도상 지음, 남준기 사진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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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 가장 궁한 건 역시나 돈이다. 돈의 궁함으로 말미암아 도서관에서 책 세 권을 빌렸다. 관심 없는 책을 어쩔 수 없이 들춰봐야만 하는 상황, 이를테면 레포트나 발표문 작성을 위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적은 몇 번 있지만 순전히 읽고 싶은 책을 대출한 적은 이번이 처음인 듯 싶다. (내일모래면 서른인 놈의 지갑이 너무 형편없다. 읽고 싶은 책도 마음대로 사지 못하는 형편이라니... ㅠㅠ) 숨막힐 듯이 책이 많은 도서관에서 정도상의 『지리산 편지』를 선택한 것은 오직 지리산을 향한 유별난 관심과 애정 때문이다. 제목을 보고 책을 뽑아 들고는 대충정확하게 훑어보고 별 고민 없이 대출목록에 포함시켰다.

지리산에서 태어나고 유년기를 보낸 작가에게 지리산은 마음의 고향이자, 힘들고 지칠 때 하염없이 안기고 싶은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다. 그런 지리산으로 떠난 작가는 폭력과 야만으로 얼룩진 지난 20세기를 반성하고 성찰한다. 그리고 여전히 텅 빈 마음에 탐욕만을 채우며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인간답게' 살기를 간곡히 바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신영복의 『나무야, 나무야』가 자꾸만 떠올랐다. 그리고 지은이 정도상은 신영복을 컨닝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너무 발칙한 것일까?

박노해가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통해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표절하며 제 2의 신영복이 되려고 아등거렸던 것과 같이, 정도상 역시 이 책을 통해 신영복이 되고자했던 것 같지만, 언저리에 주저앉은 느낌이다. 그래도 박노해처럼 아등거리지 않고 나름대로 처절히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기에 그의 모방을 탓하지 않겠다. 『지리산 편지』를 읽으면서 불편하고 조금 답답했던 것은 그의 모방 때문이 아니다. 이미 보편화된 이야기, 그래서 새로움이 없는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것이 신선한 감동을 불러일으킬리 없다. 정언논법으로 가득 찬 이야기에 난 '구라'의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일상의 소소한 삶 대신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자주 언급하는 것은 구조에 꽉 막혀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난 정도상의 『지리산 편지』에서 신선함 보다 답답함을 더 크게 느꼈다. 그의 가치관에는 동의하나 그의 글쓰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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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문 날의 삽화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8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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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이 말을 혼자 조용히 되뇌어 보거나, 크게 외쳐보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뭔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 들고는 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줌마는 아주 독특한 인간군상으로 취급한다. 전철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육중한 몸을 기꺼이 내던지고, 공공장소에서 우렁찬 목소리를 뽐내며, 종종 아무것도 아닌 일에 쉽게 토라지거나 흥분하는 우리네 아줌마. 오죽하면 세상에는 남자, 여자, 그리고 아줌마가 있다는 말도 있겠는가. 물론, 우스게 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아줌마에 대한 비하가 담겨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줌마'라는 말에는 살갑기는 하지만 애잔한 느낌이 내포되어 있다. 그 단어는 가난과 온갖 역경을 꿋꿋이 이겨낸 대한민국 여성, 그리고 언제나 낮은 곳에서 아니 낮은 곳을 찾아다니며 다른 가족을 위해 희생만을 했던 우리네 엄마를 떠올리게 한다.

상처받은 모든 사람을 보듬어 주는 사람. 배고프다고 하면 대접에 고봉처럼 쌓은 흰쌀밥을 내오고, 피곤하면 뜨신 아랫목을 양보하며 자신의 담요를 깔아주는 사람. 잠을 험하게라도 자면 이불 여미어 주고 베개 고쳐주는 사람. 떠나는 사람 뜨신 밥 한끼 꼭 배불리 먹여 보내고, 돌아오면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사람. 알뜰살뜰한 가정 경제를 위해 단 돈 100원 때문에 상인과 싸우고, 숱한 고생으로 인한 관절염 때문에 다리가 아파 오래 서 있을 수가 없어 전철에서 점프하는 사람. 그러나 정작 집에 돌아오면 앉을 새도 없고, 앉을 만한 자리도 없는 사람. 제일 일찍 일어나고, 제일 늦게 잠드는 사람. 이렇게 살고도 언제나 무시당하는 사람.

그 사람 아줌마. 우리 아줌마 무시하지 말자! 아줌마도 여자다! 아줌마한테 자리 양보하자! ps) 『저문 날의 삽화』는 인생을 하루로 따진다면 저무는 때에 해당하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다. 수년 전 사회적 논쟁에서 이문열을 옹호했던 박완서에게 크게 실망했다. 당시 이청준도 이문열을 옹호했다. 두 老작가의 심중을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아직 '저문 날'로 접어들지 않은 '햇살 찬란한' 나는 이해하고 싶지 않다. 머리로는 이해하겠지만 마음은 여전히 거북스럽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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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 - 하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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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하게 되면 김광석처럼, 연애를 하게 되면 고복수처럼, 농사를 짓는다면 황만근처럼, 춤을 춘다면 공옥진처럼 되고 싶다. 그리고 글을 쓰게 된다면 황석영처럼 쓰고 싶다.
김광석, 고복수, 황만근, 공옥진. 이 중 고복수와 황만근은 가상인물로, 각각 드라마와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김광석은 옛날에 저세상 사람이 되었고, 공옥진은 힘겨운 투병중이란다. 이들 4인은 세상 시류(時流)에 어눌했고, 세상 욕심에 무심했다. 대신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야할 길은 잘 알았고, 그 길을 걷는 방법도 잘 알았으며, 그 길을 묵묵히 가며 한눈파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이들의 삶은 '말'과 '소문'으로 완성되지 않고, 오직 '삶'으로 대성했다. 하기에 난 이들의 삶 앞에 '위대'라는 말을 붙여주는데 망설이지 않는다.

문학은 쓰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라 말한 사람이 있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약자의 삶에 머물고, 분노는 역사의 모순과 함께 한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바라보면서도, 그가 그려내는 것은 개개인들의 자잘한 일상의 삶이다. 그의 글은 역사의 무게로 독자를 짓누르는 대신, 소시민의 삶의 물결에 독자를 올려놓는다. 그래서 주인공이 아프면 같이 눈물짓게 하고, 기쁘면 독자들을 신명나는 굿판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버린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사랑이 강자를 향할 땐 더없이 추악해지고, 약자를 향할 땐 한없이 아름답다는 것을 그는 몸소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황석영 이름 앞에 '위대한'을 붙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살아온 만큼, 겪어온 만큼, 느낀만큼만 자신의 문학에 표현한다. 그와 문학은 그대로 하나인 것이다. 오랜 감옥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그가 세상에 내놓은 『오래된 정원』은 '여전한 황석영'을 증명한다. '여전한 사람 황석영'이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은 여전히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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