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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하성란 지음 / 창비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999년 한겨레신문에 하성란의 짧은 글이 일주일마다 실렸다. 동아리방에서 죽치고 앉아있는 것말고 특별히 할 일이 없던 내게 하성란의 글은 작은 재미를 주었다. 그러나 당시 글보다 더 매력적이었던 것은 하성란 얼굴 사진이었다. 똘망똘망 초롱초롱 맑게 생긴 하성란의 얼굴을 난 좋아했다.
얼마전 한 선배는 내게 철학적이지 못하고, 너무 문학적이라 비판했다. 선배는 비판으로 했던 말지만, 사실 내게 그 말은 나쁘지 않게 들렸다. 그동안 써온 독서일기를 보면 대부분이 소설이다. 소설을 읽어오면서 내가 얼마나 '문학적'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사실 '문학적'이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모른다. 다만, 문학적이라 함은,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과장됨을 지양하고 진솔하고 자잘한 것들에 애정을 갖는 것이라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소설 나부랭이'라는 말은 소설의 쓸모 없음은 물론이고, 심심풀이에 불과하다는 비하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동안 소설 나부랭이 따위나 끄적끄적 읽어오면서 많이 편안했다. 소설이 사회과학 보다 쉽고 편안한 것은 당연하니까. 소설은 내게 사회과학 이론과 논리를 증명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삶은 사회과학의 이론처럼 어렵지도 않고, 반대로 쉽지도 않은, 정말이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소설을 읽으며 느끼고 있다.
페미니즘은 물론이고 여성에 대해서 무지하고, 그에 대한 사회과학책은 많이 접해보지도 않았다. 조금은 딱딱한 사회과학 책보다, 나는 여성작가들의 소설을 통해서, 소설 속 여자 주인공을 들여다보며 여성을 더 많이 생각하고, 내 스스로 여자가 되어 보기도 한다. 여성작가들의 책을 읽으면 가장 흥미로운 것은 비록 상상일지라도 내가 여자가 된다는 것이다. 여성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수만번 듣는 것보다 여자가 되어 살아보는 것이 그 차별을 깊이 인식하는데 도움이 된다. 하성란의 글은 내가 기꺼이 여자가 되는데 전혀 망설이지 않게 한다. 그렇다고 하성란이 모든 독자를 여자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성란은 반성을 불러일으키는데 있어서 거창한 무언가를 끌어들이며 독자를 압도하려하지 않는다. 가벼운 듯한 주제를 가지고, 결코 가볍지 않은 일상을 끌어안으며 천천히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책 속의 단편 「오, 아버지」에는 아버지의 불륜 현장을 엄마와 함께 찾아가 허리춤에 손을 얹고 당돌하게 아버지를 불러내는 소녀가 나온다. 작가 하성란은 아마도 그런 소녀 같은 사람일 것 같다. 난 그런 소녀는 물론이고, 그런 하성란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