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편지
정도상 지음, 남준기 사진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1년 8월
평점 :
절판


요즘 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 가장 궁한 건 역시나 돈이다. 돈의 궁함으로 말미암아 도서관에서 책 세 권을 빌렸다. 관심 없는 책을 어쩔 수 없이 들춰봐야만 하는 상황, 이를테면 레포트나 발표문 작성을 위해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적은 몇 번 있지만 순전히 읽고 싶은 책을 대출한 적은 이번이 처음인 듯 싶다. (내일모래면 서른인 놈의 지갑이 너무 형편없다. 읽고 싶은 책도 마음대로 사지 못하는 형편이라니... ㅠㅠ) 숨막힐 듯이 책이 많은 도서관에서 정도상의 『지리산 편지』를 선택한 것은 오직 지리산을 향한 유별난 관심과 애정 때문이다. 제목을 보고 책을 뽑아 들고는 대충정확하게 훑어보고 별 고민 없이 대출목록에 포함시켰다.

지리산에서 태어나고 유년기를 보낸 작가에게 지리산은 마음의 고향이자, 힘들고 지칠 때 하염없이 안기고 싶은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다. 그런 지리산으로 떠난 작가는 폭력과 야만으로 얼룩진 지난 20세기를 반성하고 성찰한다. 그리고 여전히 텅 빈 마음에 탐욕만을 채우며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인간답게' 살기를 간곡히 바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신영복의 『나무야, 나무야』가 자꾸만 떠올랐다. 그리고 지은이 정도상은 신영복을 컨닝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너무 발칙한 것일까?

박노해가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통해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표절하며 제 2의 신영복이 되려고 아등거렸던 것과 같이, 정도상 역시 이 책을 통해 신영복이 되고자했던 것 같지만, 언저리에 주저앉은 느낌이다. 그래도 박노해처럼 아등거리지 않고 나름대로 처절히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기에 그의 모방을 탓하지 않겠다. 『지리산 편지』를 읽으면서 불편하고 조금 답답했던 것은 그의 모방 때문이 아니다. 이미 보편화된 이야기, 그래서 새로움이 없는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것이 신선한 감동을 불러일으킬리 없다. 정언논법으로 가득 찬 이야기에 난 '구라'의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일상의 소소한 삶 대신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자주 언급하는 것은 구조에 꽉 막혀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난 정도상의 『지리산 편지』에서 신선함 보다 답답함을 더 크게 느꼈다. 그의 가치관에는 동의하나 그의 글쓰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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