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처럼 - 도청의 마지막 날, 그 새벽의 이야기
정도상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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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건을 단순히 뉴스나 텍스트로만 접하게 된다면 많은 이들이 그 사건에 감정적 동화를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을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낸다면, 그러니까 그 사건의 당사자나 그 주변인의 이야기를 구성해 하나의 이야기로 그 사건을 접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 사건에 집중하고 감정적 동요를 느끼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이 이야기의 힘이고 이야기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5월 18일이 지났습니다. 저는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났던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부끄럽지만 큰 관심이나 생각이 딱히 없이 살아오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그리고 영화 [택시 운전사] 같은 작품들을 만나게 되면서 관심을 가지고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일, 그 비극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보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슬픈 내용의 소설일 것이란 생각이 가득 들었고 요즘은 슬픈 이야기는 그다지 읽고 싶지 않은 날들이었지만 이 책이 5월 18일의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읽어보았습니다. 5월에 일게 되어 그 느낌이 조금은 남다르기도 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명수라는 인물입니다. 이런저런 공장을 다니다 공장에 신입으로 들어온 희순이라는 여자에게 한눈에 반해버리고 그것으로 인해 명수의 삶은 달라집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건대 아마도 명수가 희순을 만나지 않았다면 명수는 그날 그곳에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희숙은 일이 아주 서툴렀는데 그녀는 알고 보니 대학을 다니다 학생운동으로 수배가 내려져 몸을 숨기고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운동권 선배들이 하고 있는 '들불'이라는 야학을 조직하여 노동자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며 민주화 운동 또한 하게 됩니다. 희숙에게 마음이 가 있던 명수도 당연히 이 야학에 들어가고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멋진 인물들을 만나게 되면서 명수는 자신의 삶이 조금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렇게 명수는 야학에서 만나게 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책은 5월 26일 저녁 7시부터 5월 27일 새벽 5시 15분까지의 시간에 광주에서 있었던 일을 소설로 엮어 내었습니다. 계엄군이 온다는 소문과 함께 시민 군들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신념과 그 한편으로는 두려움과 걱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그 긴장감과 가라앉은 분위기는 책을 통해 잘 전달되었습니다. 이야기의 중간중간 각 인물들의 과거와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 에피소드 형식처럼 이어졌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유와 민주적 사회를 갈망하는 한 명의 소시민일 뿐이라는 사실이 이 책을 통해 잘 전달되었습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계엄군이 도청에 밀려들어옵니다. 시민 군들은 그런 계엄군에게 총을 들이댈 뿐 쉽사리 쏘지도 못하고 덜덜 떨거나 고민을 하다 총알에 맞아 죽게 되는 일들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의 그 글들은 좀 읽기가 힘들었네요. 그 일이 멀지 않았던 과거라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알 수는 없지만 그런 분들의 희생으로 한국은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유와 희망에 대한 갈망과 희생으로 지금 우리는 그 혜택을 누리고 있고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역사는 그저 먼 일이 아니라 지금껏 이어져 오는 소중한 우리의 이야기이자 교훈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희순의 마지막 이야기는 반전이 있었고 그래서 마음이 애잔했습니다.

 

 

나는 도청에 있으면서 목숨이 아깝다거나 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기에 있으니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는 민주화도 투쟁도 잘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곁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뿐이다. 그것이 사랑에 대한 예의다. 내게 그것을 가르친 사람은 희순이다.

(p. 67)

 

 

 

* 출판사를 통해 책을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 감상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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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를 걷는 여자
거칠부 지음 / 더숲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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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걷는 모든 길이 히말라야였으면"

 

거칠부라는 뜻이 신라 장군의 이름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네요. 이 책을 쓰신 거칠부라는 분의 필명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리던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쓰신 거칠부 님의 블로그를 통해 종종 히말라야 이야기를 조금씩 보고는 했습니다. 볼 때마다 참 대단하구나 놀라움을 느끼고 감탄을 하고는 했는데 그 이야기가 이렇게 책으로까지 나오게 되었다고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펼쳐 읽어보았습니다.

 

책의 처음 부분에는 거칠부 님이 걸었던 네팔 히말라야 지도가 나옵니다. 네팔 북부 히말라야산맥을 따라 횡단한 듯 길게 빨간 줄이 이어져 있었고 이 길들은 얼마나 길고 아득할까 아찔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 길들을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울까 선망하기도 했네요. 이 책은 히말라야산맥의 여러 길들의 트레킹의 이야기를 산문 형식으로 적어놓은 일종의 기행문 같은 구성입니다. 그 길들이 일반적으로 많이 가는 ABC 트레킹이나 EBC 트레킹이 아닌 더 생소하고 오지의 트레킹이라는 점이 특색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특별한 매력을 지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는 작가님의 전작인 <나는 계속 걷기로 했다>라는 책도 읽어보았는데 이 책에서는 확실히 히말라야 트레킹의 경험과 노하우가 많이 쌓이신 것 같아 가이드나 포터, 그리고 일행들과의 관계에서 확실할 때에는 확실히, 좋게 풀어갈 때에는 좋게 해결하는 모습 등을 보면서 이 긴 여정이 계속 이어지고 지속되었던 비밀 같은 것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일반 트레킹에서도 가이드나 포터의 역할은 참 중요한데 이런 오지 트레킹에서는 그 역할이 얼마나 크고 막중할지 생각하기 어려운데 그런 가이드를 옳은 방향으로 잘 이끌어나가는 것 또한 히말라야의 높은 봉우리를 오르는 것만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책의 초반에 나오던 겔젠 가이드 같은 분을 만나게 된 것도 참으로 좋은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책임감 강하고 자신의 일을 빈틈없이 하는 모습이 참으로 듬직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작가님의 산행기를 읽는 재미도 재미겠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멋진 풍광들이 담긴 사진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그 웅장한 사진을 보게 되면 그곳을 가고 싶다는 욕망이 저절로 생길 노릇입니다(물론 산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영향도 큽니다만). 저는 네팔 트레킹을 2번 가보았는데 이 책의 사진들을 보며 그때 그 여행의 추억과 기억들이 다시 소환되었고 다시 또 네팔을 찾게 되겠구나 조용히 생각해보았습니다. 이 책의 끝부분에는 '직장인도 갈 수 있는 네팔 히말라야 오지 트레킹 코스'가 있는데 그 코스를 참고해서 가보는 것도 참 좋겠구나라는 생각이 크게 들었습니다. 남들이 다 가는 곳이 아닌 비교적 새로운 곳을 가게 된다면 힘든 만큼 즐거운 일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지리산을 다녀왔는데 그 행복이 참으로 컸습니다. 히말라야 그 길을 걷게 된다면 다시 히말라야에서만 만날 수 있을 그런 행복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느낌이 크게 드네요. 그 행복을 느끼는 순간을 기다리고 기대하며 잠시나마 이 책으로 그 그리움을 달래봅니다. 멋진 사진과 트레킹의 고통과 환희를 읽으며 저자에게 다시금 찬사를 보냅니다. 책에 나온 그 길들을 한 번이라도 걸을 수 있기를 희망해봅니다.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 감상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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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리어 왕 - 1608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더스토리 초판본 시리즈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한우리 옮김 / 더스토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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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습니다. 그 책들이 어떤 책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읽어보지는 못했네요. 최근 <햄릿>을 읽어보고 4대 비극이라는 작품들에 관심이 생겨 두 번째로 <리어 왕>을 읽어봅니다. <리어 왕>을 읽고 나니 <오셀로>와 <맥베스>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사뭇 궁금해졌습니다.

 

 

리어 왕에게는 3명의 딸이 있습니다. 그 딸들의 이름은 거너릴, 리건, 코딜리어입니다. 왕은 나이가 들어 이 땅의 왕권들을 딸들에게 나누어주려 합니다. 딸들에게 왕권을 나누어주고 자신은 편안히 돌봄을 받으며 여생을 보내려는 생각이었습니다. 딸들에게 리어 왕은 묻습니다. "너희들 중 누가 가장 짐을 사랑한다 말하겠느냐?" 거너릴과 리건은 갖은 미사여구를 붙여 왕을 사랑한다 말하지만 코딜리어는 그런 말들보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상투적인 표현은 하지 않고 그저 "할 말이 없습니다. 폐하."라고 말하게 되고 왕은 노려움에 코딜리어에게 일체의 땅이나 재산, 권력들을 나누어주지 않고 프랑스 왕에게 시집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왕에 대한 사랑을 그렇게 아름답게 이야기하던 딸, 거너릴과 리건은 왕에게 받을 것을 다 받은지라 왕을 홀대하고 무시하기 시작하고 왕은 분노에 휩싸이며 자신의 실수와 어리석음을 후회하고 자책하며 정신을 놓게 되며 이야기는 흘러갑니다.

큰 줄기의 하나의 이야기가 이 이야기이고 <리어 왕>에는 다른 작은 이야기들도 함께 어우러져 이 이야기를 완성합니다. 하나는 글로스터의 아들 에드거와 서자 에드먼드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뽑아보자면 충신 켄트에 대한 이야기도 따로 떼어낼 수 있을 것 같네요. 이 이야기들이 하나의 큰 스토리에 묶여 어우러지고 섞여 이 비극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보며 아름다운 말의 매혹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생각을 해봅니다. 리어 왕의 경우 그 땅의 배분을 그런 질문 하나로 했다는 것이 어찌보면 순진하고 한편으로는 참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네요. 왕이라는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왔던 그라도 딸들에 대한 믿음에 어떤 의심이 풀어진 것인가도 싶습니다. 충신의 켄트를 내치고 아첨과 간신들에 속아 큰 어려움과 고난을 겪은 리어 왕에게는 그때 그 선택의 순간을 다시 되돌리고 싶을 것 같기도 합니다.

큰 어려움에 처한 왕에게 코딜리어가 손을 내밉니다. 온간 미사여구를 붙여 아버지인 왕을 사랑한다던 딸들은 왕을 버렸고, 할 말이 없다던 코딜리어는 왕을 찾아와 도움의 손길을 내밉니다. 진실된 눈물과 함께 말이지요. 그 마음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해봅니다. 그럼 이 고초를 왕이 겪지 않았을지 모를 일이지요. 저는 코딜리어가 왕을 구해 그 언니들에게 복수를 하며 이야기가 끝이 나는 것이 아닐까 예상을 했는데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마무리되었네요. 이 이야기가 왜 비극이라고 하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1608년 처음 출판된 이야기라고 하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어색함 없이 재밌게 읽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영화 <광해>와 같이 최근 본 책이나 영화들도 떠오르는 것도 신기한 체험이었네요. 인간의 욕심과 어리석음, 그리고 아름다운 말보다는 그 마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교훈 아닌 교훈을 얻어 가는 책이었습니다. 책의 표지는 이 책의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이라고 하던데 그래서 이 책 자체로도 꽤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책의 띠지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는데 딱 그 말이 맞는 이야기였습니다.

'삶의 비극과 인간의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 감상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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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아
사노 요코 지음, 이지수 옮김 / 북로드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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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사는 게 뭐라고>란 작품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사노 요코'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나이가 많으신 작가분이실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 책을 읽게 되면서 작가 소개란을 보니 제 예상보다 더욱 나이가 많으셨네요. 2010년에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하니 어쩌면 제가 그 책을 읽고 있었을 때에도 '사노 요코' 작가님은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 <사는 게 뭐라고>란 작품을 읽으며 편안하게 읽히며 작은 위로를 받은 듯한 느낌이 기억이 나 이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아주 재밌지도 아주 내용이 무겁지도 않은데도 이상하게 내용이 따스하고 기억이 남았던 기억이 있어 이 책에서도 그런 느낌을 기대하며 책을 펼쳤습니다. 이 책은 에세이의 형식으로 여러 가지의 이야기들을 짧게 적어놓은 글들을 묶어 놓은 구성이네요. 따로 장을 구분해놓지는 않았는데 어쩌면 각각의 이야기가 한 주제를 놓고 이야기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주제로 적어놓은 글들이라 그런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예측해봅니다.

예전 <사는 게 뭐라고>란 책을 읽었던 느끼만이 어렴풋 남아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느낌이 다시금 생각나고 살아났습니다. 편안하게 술술 읽히며 중간중간 작가의 위트와 재치가 엿보였던 글은 이런 봄날, 부담 없이 펼칠 수 있는 책이라 좋았습니다.

이 책의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기억나는 이야기가 몇 개 있네요. 첫 번째는 이 책의 시작을 알리는 <립스틱>이라는 글. 어렸을 때는 그렇게 이쁘게만 보였던 엄마가 자신이 커가면서 그렇게 미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글입니다. 엄마는 꼭 화장을 하시는데 그 모습과 상황을 나타내는 글이 편안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로는 이 책의 책명인 <그래도 괜찮아>. 딸의 친구인 나오미라는 아이는 붙임성이 좋고 웃음이 참 예쁜 아이입니다. 그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서 불량학생 비슷한 학생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아들로부터 듣습니다. 자신을 보면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던 그 나오미가 그런 학생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깐 생각에 잠기는 작가. 그러면서 이야기는 '그래도 괜찮아'라는 내용으로 마무리되고 그런 사랑과 관심이 있기에 나오미는 금방 웃음이 이쁜 학생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이야기해보자면 친구와 함께 보러 간 땅에서 부동산 업자에게 속아 사기를 당한 이야기는 재밌었지만 은은한 감동이 있었네요. 말 그대로 부동산 업자에게 사기를 당한 이야기인데 부동산 업자와 밥을 먹으며 부동산 업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땅을 계약하기로 마음을 먹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부동산 업자는 한 연예인을 학생 때 보고 반해 그 연예인을 위해 성공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열심히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작가와 그 친구에게 하고 작가는 그 눈빛과 말투를 보고 그 말이 거짓은 아니었으리라 믿게 되고 계약을 했다는 이야기이지요. 그 이야기를 보며 피천득 선생님의 <은전 한 닢>이라는 이야기가 이상하게 떠올랐습니다.

 

이 책은 일본에서 1986년에 출간되었다는 책이었다고 하네요. 34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한국에서 이 책이 나왔는데 작가가 이 소식을 하늘에서 들으면 어떨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오래전에 출간된 에세이였지만 큰 이질감 없이 재밌게 보았습니다. 조그만 위로와 재미를 느꼈기에 이 책을 읽던 시간은 분명 좋았던 시간이었습니다. 나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이런 말을 많이 하며 살아가야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아."

 

 

*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 200%>의 서평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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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 환상적 모험을 통한 신랄한 풍자소설, 책 읽어드립니다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김문성 옮김 / 스타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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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라는 책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완전히 잘 알지 못합니다. 의외로 그런 책들이 주변에 많이 있는데 이런 개인적으로는 <돈키호테>나 <톰 소여의 모험> 같은 책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걸리버 여행기>도 마찬가지로 그런 책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저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주인공 걸리버가 소인국에 도착해서 겪었던 일들과 반대로 거인국에 도착해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는 어렴풋 알고 있었지만 그 뒤에도 이야기가 이어지는 줄은 이 책을 읽고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어쩌면 이 책은 그 뒤의 이야기들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마다 걸리버의 여행기가 나타납니다.

1장에서는 걸리버 여행기에서 가장 유명한 소인국으로 여행입니다. 폭풍으로 조난을 당하고 깨어보니 온몸이 밧줄로 묶여있고 그 주변에 약 12~15cm 크기의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인국으로 오게 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이죠. 다행히 걸리버는 소인국의 세계에 잘 적응을 해 왕의 신임을 얻었고 소인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적국의 전함을 뺏어오는 공을 세워 최고 명예 직위까지 받게 됩니다. 하지만 궁전에 불이 나고 걸리버는 재치를 발휘해 불을 끄게 되지만 그것이 걸리버의 발목을 잡게 됩니다. 결국 적국으로 몸을 피신했다 조난 당할 때 탔던 보트를 발견해 수리를 하고 그 신비한 세계를 빠져나오게 되면서 1장은 마무리됩니다.

2장은 거인국의 세계입니다. 항해를 떠났다 물을 찾으러 육지로 향했다가 만난 거인국 마을. 거인들을 피해 몸을 숨겼지만 결국 농부 거인에게 잡히고 맙니다. 작은 애완동물처럼 돌봄을 받고 귀여움을 받다 걸리버가 돈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주인은 걸리버를 데리고 다니며 돈을 받고 재주를 부리게 만듭니다. 이 와중에 극심한 수치심과 피로로 인해 걸리버는 몸이 쇠약해지고 이때 나라의 왕비가 걸리버를 보고 걸리버를 구입하게 되면서 걸리버의 왕국 생활이 시작됩니다. 걸리버는 상자의 집에서 생활을 하다 어느 날 큰 독수리가 상자를 들고 가다 바다에 빠뜨리면서 이 세계에서 탈출을 하게 되지요.

3장은 하늘을 나는 섬 라퓨타 여행입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 <천공의 성 라퓨타>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는데 그 이름이 걸리버 여행기 때문에 나온 것 같기도 해 신기했습니다. 라퓨타에서의 이야기는 저도 전혀 몰랐던 이야기들이라 생소했고 그래서 더 재밌었습니다. 이 장에서부터 세상에 대한 풍자가 가득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수학과 음악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높은 신분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사색만 합니다. 그리고 연구원에서는 큰 쓸모가 없어 보이는 연구를 계속해서 진행 중이고 그런 연구가 성공한 적도 없다는 것이 쓸쓸한 웃음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장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신비로운 세계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걸리버 여행기는 4장이 가장 재미있고 중요한 것 같습니다. 휴이넘이라는 말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걸리버가 도착합니다. 야후라는 인간이나 원숭이를 닮은 동물들은 야생에서 더럽고 이기적이고 흉포한 동물들로 나타나고 몇몇의 야후들은 휴이넘들에게 잡혀 지배를 받아 가는 세상입니다. 이 휴이넘의 세계에서 걸리버는 휴이넘의 말을 배우고 대화가 가능하게 되면서 주인 휴이넘과 많은 대화를 합니다. 걸리버는 자신이 살던 세상을 비교적 좋게 이야기하지만 휴이넘이 듣기에 그 세상은 너무나 이상하고 탐욕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적당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전쟁을 하고 위선과 거짓이 판치는 세상을 휴이넘과의 대화를 통해 나타냅니다. 걸리버는 거짓이 없고 이성과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이 섬을 영원히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어떤 문제로 인해 쫓겨나게 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 긴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걸리버 여행기>를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니 막연히 알고 있고 상상했던 이야기와는 많이 달라 놀라운 느낌을 받았네요. 막연히 판타지가 가미된 신비로운 소설이라는 생각이 많았는데 이 소설은 환상적인 세계 속에서 우리의 세상과 세계를 보여주려는 풍자 소설에 더욱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세상에서 몇 발 떨어져 다른 존재로 우리들의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면 정말로 그렇게 느낄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작가의 대단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신비로운 이야기였습니다. 그 속에는 단순한 오락만이 가득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점들도 가득 담아 두었던 이야기, 그것이 <걸리버 여행기>였습니다.

 

 

나는 휴이넘을 정복하는 것보다는 유럽 계몽에 필요한 사람들을 보내 명예, 정의, 진실, 절제, 도덕, 충성, 순결, 우정, 사랑, 절개의 근본원리를 배워 유럽 문화를 발전시켰으면 한다. 우리의 언어에는 이처럼 아직 덕성을 가리키는 단어가 남아 있다. 나는 독서량이 얼마 되지 않지만 근대를 비롯해 고대 저서에서도 이러한 단어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발견한 새로운 땅을 국왕의 영토에 복속시키는 일을 내켜하지 않았던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과연 국왕들이 주장하는 공평한 분배가 이루어질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이를테면 폭풍에 휘말린 해적들이 정처 없이 떠돌다 돛대에서 망을 보던 소년이 드디어 육지를 발견하면 약탈을 위해 상륙한다.

아무 죄도 없는 주민들은 그들을 극진히 대접하지만 해적들은 그 땅에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썩은 판자나 돌을 기념비 삼아 세워두고 국왕의 영토로 선언한다. 그것이 끝나면 20~30명의 원주민을 학살하고 한 무리의 남녀를 포로로 잡아 본국으로 귀국하는데, 그러면 모든 죄가 용서된다. 이로써 신께서 하사하신 권리에 따라 새로운 영토 원정이 시작된다. 곧바로 군대를 파견하여 원주민들을 내쫓거나 학살하고, 족장을 고문하여 그가 가지고 있던 보물을 빼앗는다.

이런 식으로 모든 비인간적이고 탐욕스러운 짓이 아무렇지 않게 저질러지고 대지는 원주민들의 피로 붉게 물들게 된다. 경건한 원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 저주받을 학살이 바로 우상숭배를 하는 야만인을 개종 또는 계몽시킨다는 식민지의 실상이다.

(p. 396)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 감상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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