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눈이 내리는 속도가 아니라, 한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는 심정, 그 심정의 속도로 읽어야하는 책. 그리고 다 읽으면, 또 나중에 다시금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드는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선의 삶 -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젊은 작가들의 문학이 힘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학적 기법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자하는 의욕도 하나의 힘이 될 수 있으나,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상의 상처를 보여주는 것도 그 힘이 될 수 있다.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중학교 여학생들의 가파르고 치열한 삶을 보여준다. 믿기 힘들 정도로 아프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적나라한 현실은 끝없는 충격 속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가출청소년들이 겪는 상처들을 하나하나 따라가다보면 머리가 울리고 가슴이 찡한 충격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에너지. 이 에너지가 젊은 작가가 쓸 수 있는 돌진적인 문학의 힘이 아닐까?

  이미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는 임솔아 작가는 소설 곳곳에 상징과 은유를 배치해두었다.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은 등장인물의 감정으로 독자들을 설득했고,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은 뛰어난 은유로 감추었다.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한 이 작품에 대해 심사위원 박성원 소설가는 "좋은 소설은 특별하지 않은 소재를 특별하게 만든 이야기다. 이 소설이 바로 그렇다. 보통 심사평을 쓰면서 수상작의 줄거리나 작품 소개를 곁들였지만 이번엔 생략한다. 왜냐하면 이 소설을 아무런 정보 없이 꼭 한 번씩 읽어주길 바라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동감한다. 자세한 줄거리 설명은 피하는 게 이 소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읽게 될 독자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가장 좋게 본 점은 작가가 캐릭터를 만들어나가는 부분이다. 서사 중간중간에 쓰인 강렬한 문장들로 등장인물은 고유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그 성격이 차곡차곡 쌓여나가는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소름이 돋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의 꽃 민음사 세계시인선 1
보들레르 지음, 김붕구 옮김 / 민음사 / 197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보들레르를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시 「알바트로스」를 접하면서였다. "창공의 왕자들"이 지상에 붙잡히자 그저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시인도 폭풍 속을 드나들고 사수를 비웃는/ 이 구름 위의 왕자 같아라./ 야유의 소용돌이 속에 지상에 유배되니/ 그 거인의 날개가 걷기조차 방해하네."라고 말한다. 알바트로스라는 새도 잘 모르면서 멋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또 한 번은 모 소설가의 소설에 인용된 그의 이름과 작품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우연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온 그의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을 읽게 되면서 차츰 내 머릿속에 그의 상을 가다듬은 것 같다.

  언젠가 그의 시집을 꼭 읽어보리라 했었는데, 마침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그의 책을 싼 값에 만나게 되었다. 책이 많이 낡았으나 꼭 사모으고 싶었던 민음사 세계시인선이기도 했고, 보들레르이기도 해서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옆에 세계시인선 테니슨의 시집도 있었으니 두 권 다 내 손에 들어왔다. 잡담이 길었는데, 그럼 이제 제대로 리뷰.

 

  민음사 세계시인선은 한 페이지에는 한글로 번역된 시가, 다른 한 페이지에는 원어로 적힌 시가 실려있다. 원본과 비교해볼 수 있다는데, 난 외국어는 젬병이라. 보들레르의 『악의 꽃』 시선집이라고 할 수 있는 민음사 세계시인선 판은 총 20편의 시가 실려있다. 번역이 되어 있으나 많이 어려웠던 이 시집에서 몇 편만 골라 소개해보겠다.

 

 

  허나 승냥이, 표범, 암사냥개,

  원숭이, 독섬섬이, 독수리, 뱀 따위,

  우리들의 악덕의 더러운 동물원에서,

  짖어대고, 노효(努哮)하고, 으르릉대고 기어가는 괴물들,

 

  그중에도 더욱 추악 간사하고 치사한 놈이 있어!

  놈은 큰 몸짓도 고함도 없지만,

  기꺼이 대지를 부숴 조각을 내고

  하품하며 세계를 집어삼킬 것이니,

 

  그놈이 바로 <권태>!――뜻없이 눈물 고인 

  눈으로, 놈은 담뱃대 물고 교수대를 꿈꾸지.

  그대는 알리,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위선의 독자여, ――내 동류여, ――내 형제여!

 

―샤를 보들레르 「독자에게」 中

 

  보들레르는 이 시에서 말한 바와 같이 "권태"에 대해 항상 경계하고 적대심을 가진다. 이후의 시에서도 그러한 태도는 일관성을 가진다. 보들레르는 병적이고 본능적인 것을 파헤쳐 시의 본질에 가 닿는다.

 

 

  보들레르의 여성혐오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그의 시 곳곳에서 여성은 주로 매춘부의 형상을 띠거나 탐욕적이고 어딘가 부족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오늘 저녁 무엇을」 같은 시편에서는 아름다운 천사같이 등장한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가 극찬하는 환상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름다워, 명하노니, 날 위해 오직 <미>만을 사랑하라, 나는 수호천사요, 시신이자, 마돈나이니라!"

 

 

  이 외에도, 극작품으로 개작할 계획에 열중했으나 실현되지는 못했다는 「살인자의 술」도 굉장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한 남자의 독백 같은 이 작품은, 배우를 상상하고 읽는 재미도 있다. 이대로 짧은 무대를 완성할 수 있는 놀라운 시다.

  「성베드로의 부인」은 신에 대항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반항적인 화자의 입을 거쳐 예수에게 당신의 아버지에 대해 잘 생각해보라는 시구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결코 쉬운 시집은 아니나, 맥락을 잘 짚어가며 읽으면 어떤 대단한 느낌이 온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은 말 그대로 '악의 꽃'이지 '악한 꽃'이 아니다. 불교적 상징을 가진, 진흙속에 피어난 연꽃보다 더욱 강렬하고 화려한 꽃이 문학사에 피어오른 것이다. 문학을 악에서 길어올렸다는 점에 주목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대한 개츠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영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등학교 3학년 때 산 책을 이제야 읽었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했는데도 이때까지 못 읽은 이유가 있다면, 그건 이 책이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 내가 산 책이라서이다. 언제든 읽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한 번은 이 책을 읽으며 감자를 삶다가 물이 다 졸아버린 적도 있는데, 그래놓고서도 다 못 읽었다. 그래서 이번 겨울 방학 때는 꼭 읽겠노라 다짐하고서 책을 꺼내들었다.

  이 책은 내가 평소 좋아하던 소설가 김영하의 번역본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어쩐지 김영하의 소설들과 비슷하게 도시적이면서 세련된 느낌을 준다. 또한 피츠제럴드의 낭만적인 문체가 가져다주는 묘한 절제와 흥분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느낌이 있다.

  사람들은 이 작품에 대해 낭만적인 문체로 묘사, 전개해나갔다고 하지만 피츠제럴드가 보여주는 묘사는 자연과 도시가 어우러져 있어 더욱 훌륭하다. 즉 피츠제럴드의 낭만적 문체에는 자연과 도시, 그리고 사람을 아우르는 무언가가 있다.

 

  이 소설은 사랑의 가면을 쓴 욕망의 화살들로 이루어져 있다. 개츠비라는 한 남자가 자신이 가지고 싶은 위치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가, 그것이 한 여자에 대한 사랑으로까지 침범한 것이다. 여주인공 데이지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사치를 즐기지만, 곧 그 사치의 밑바닥에는 돈에 의한 안정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모두를 사랑했지만, 돈을 가장 사랑했던 것이 아닐까. 데이지의 남편 톰은 끝없는 우월감으로 무장되어있지만, 그것은 곧 소유의 욕망이라는 발톱을 드러낸다. 그는 사람을 소유하는 것뿐, 쉽게 사랑하지 않는다. 중간중간 드러나는 닉과 조던의 지루한 로맨스(그러나 결코 지루하게 쓰였다는 뜻은 아니다. 훌륭하고 또 맛깔나게 쓰여있다. 단지 그들의 로맨스의 본질이 지루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도 볼 만하다. 모든 인물들의 공통점은 두려움이다. 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면. 혹은 하나를 잃음으로써 모든 게 쓸모없어진다면.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인물은 닉 캐러웨이다. 이 소설의 화자인 닉은 모든 인물들을 같은 높이에서 바라본다. 그의 시선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은 아름답다가, 멍청하다가, 또 매력적으로 보인다. 이는 피츠제럴드가 어떠한 인간상을 두고 찬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물론 제목은 위대한 개츠비지만. 그가 개츠비를 찬양한 걸까?)

 

  "아, 기억나요?" 그녀가 덧붙였다. "언젠가 운전에 대해서 말한 적 있잖아요."

  "네…… 정확하지는 않지만."

  "나쁜 운전자는 다른 나쁜 운전자를 만나기 전까지만 안전하다고 당신이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나는 나쁜 운전자를 만났던 거예요. 안 그래요? 내 말은, 내가 경솔하게 혼자 내 멋대로 억측을 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난 당신이 좀더 꾸밈없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당신도 남몰래 그렇게 자부하고 있다고 생각했죠."

  "나는 이제 서른이에요." 내가 말했다. "스스로를 속이고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할 나이는 오 년 전에 지났어요."

  그녀는 대꾸하지 않았다. 화가 나서, 그리고 반쯤은 그녀에게 애정을 느끼면서, 그리고 막심한 후회를 하며, 나는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났다.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中

 

  이렇듯 닉은 스스로의 모습도 객관적으로 서술한다. 그는 자신을 성인군자, 혹은 진정한 의리의 사나이로 만들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고, 그래서 더 차갑다. 이렇게 차가운 인물이 끝까지 개츠비 곁에 남은 유일한 인물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인용문에 덧붙여 이야기하자면, 닉이 자신을 서른이라고 자각하는 장면은 솔직히 웃음이 터질 정도로 어이없는 장면이다.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감정이 격해진 장면에서 그는 "아니…… 방금 기억났는데, 오늘이 내 생일이야."라고 어찌 보면 뜬금없이 말한다. 이는 단순한 유머가 아니다. 개츠비와 데이지, 그리고 톰과 조던을 만나면서 벌어진 한여름의 사건을 겪으며 닉은 인생의 한 터닝포인트를 맞이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서른임을 자각하며, 이 소설 이후의 삶의 태도가 달라질 것을 암시한다.

 

  연애소설이면서 미스테리하고,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반쪽짜리 이상의 영광을 낱낱이 드러내는 이 소설은, 한 마디로 절묘하다. 그의 낭만적이면서 세련된 문체는 매혹적이다. 헤밍웨이와는 대척점에 있는 느낌. 그의 탁월함은 단편소설에서도 잘 드러난다고해, 이번에 민음사에서 나온 쏜살문고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를 구입했다. 조만간 읽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달과 6펜스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17년 01월 31일에 저장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17년 01월 31일에 저장

검은 꽃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8월
8,800원 → 7,920원(10%할인) / 마일리지 440원(5% 적립)
2017년 01월 31일에 저장
구판절판


3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