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 2010년 전면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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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모든 것은 유전자가 조종한다, 도발적이지만 납득 가능한 주장

 

 “미움 받을 용기도 그렇고 한참 유행할 때는 손도 안 대던 책.
  최근 과학 관련 책은 읽지 않았다. 국립 세종 도서관에 과학 책 빌리러 갔는데, 의외로 소장 도서가 많지 않다. 회사 자료실도 가보았다. 역시 거의 없었다. 그래도 이 책은 있기에, , 하고 집어왔다. 가끔은 유명한 책도 좋을 듯했다.
 
  하루 두 권의 독서가 목표인데. 어제(8.16.)는 만사 다 귀찮았다. 일 밀린 상황인데, 6시 되자마자 꺼지는 시간도 아까워서 전원 내려버리고 가버렸다. 고장 나든지 말든지. 정말 여간하면 일을 미루지 말자가 모토이긴 한데. 날 깎아 먹어가며 지킬 정도는 아니다.
  대체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일 천지였다. 평소에도 해야 하는 이유 잘 모르기는 하지만, 어제는 특히 더. 요구하기 위해 요구하는 자료들이 너무 많아서. 결국 인스타그램에 일본어로 투덜댔다. 한국어 놔두고 왜 일본어인지 묻는다면. 욕은 하고 싶지 않아서. 짜증나게 하는 것도 열 받는데. 그것 때문에 스스로를 깎아먹으면 더더욱 열 받으므로. 일 절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노력만.
 
  모든 것을 결정하는 건, 유전자라는 주장을 하는 책이다. 그것도 보통 유전자가 아니라, 자신의 종족 번영만을 생각하는 매우 이기적 유전자. 우리가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상황은, 이 유전자의 특성으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고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지만. 어쩐지 마구 위안이 되었다. 내가 만사 귀찮아하는 건! 내가 글러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내 유전자는 귀찮은 게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일 거다.
  그래. 내 유전자는, 데굴거리다가, 보살펴 주는 걸 좋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살살 꼬드겨서, 네가 날 먹여주고 재워주면 대신 네 종족 번식시켜줄게. 이런 신호를 어디선가 몰래 퍼뜨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분명 그래서 남편은 내게 유혹당한 걸 거야.
  남편 유전자도 딱히 손해는 아니다. 어떻게든 기생해서 꿀 빨려는 유전자, 대부분은 흥미 없어하지 않을까. 즉 경쟁률이 매우 낮은 거다. 조금 성가시기는 해도, 경쟁 없이 유전자를 퍼뜨릴 수 있는 것 자체로도, 유전자에게는 이익이지 않을까. 즉 이것은 공생. 고로 남편에게 주말 내내 밥 해달라고 졸라야지.
  왜 좋은 책 읽고, 이딴 헛소리나 하고 있는 걸까.
 
  대중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 쉬운 다양한 예시를 든다. 덕분에 다루는 주제는 어렵지만, 책은 쉽게 읽힌다. 책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는 건 역시 힘들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말 정도는 추측할 수 있다.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이 들 수도 있겠지만 책의 모든 내용을 샅샅이 이해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내가 모르는 분야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유전자가 모든 걸 지배한다는 책의 주장도 흥미로웠지만, 생물학자인 저자가 보여주는 다양한 동물의 생활 방식도 흥미로웠다. 가장 재미있었던 건, 노예 개미 이야기. 일개미는 본래 자신의 유전자형을 더 널리 퍼뜨리기 위해, 여왕개미가 수개미를 생산하는 것을 억제한다고 한다. 그 때문에, 보통 수개미는 일개미에 비하면 그 수가 적다고.
  하지만 노예 개미를 부리는 개미들의 경우, 수개미와 일개미의 비율이 비슷하다고 한다. 노예 개미들도 여왕개미가 수개미를 생산하는 걸 억제한다. 다만 본래 노예 개미는 여왕개미와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다 보니, 여왕개미가 다른 방식으로 회피해버리면, 더 이상은 방도가 없다고.
  어쩌면 노예 개미를 두는 것 자체가, 여왕 개미가 자신의 유전자를 더 편하게 퍼뜨리기 위한 전략이 아닐까. 일개미를 두면 편하기는 하지만, 유전자를 퍼뜨리는 건 방해 당하니, 그렇다면 아예 노예 개미를 두어 자신을 돌보게 하는 동시에 유전자는 팍팍 퍼뜨리려고. 그렇게 치면 유전자 측면에서는 개미가 승자일지도.
 
  통념에 반하는 해석도 재미있었다.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건, 단순한 모성애가 아니라 자신의 유전자를 확고하게 퍼뜨리기 위한 전략이라든지. 형제끼리 다툼이 일어나는 것도, 내 유전자를 확고하게 퍼뜨리기 위한 방도라든지. 남녀가 대립하는 것 역시, 누가 힘을 적게 들이면서 자신의 유전자를 잘 퍼뜨릴지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라든지.
  심지어 종족 번식을 안 하는 것도! 어차피 해본들 제대로 살아남지 못한다면 일단 기회를 노리는 게 낫다고. 그러다 끝까지 기회를 못 얻더라도! 무의미한 시도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그렇게 국가가 노력하는데도 출생율이 낮은 건 이 때문인가. 두둥.
  상식과 어긋나는 부분이 많아 낯설기는 했지만 해석할 수도 있겠구나, 그러며 읽었다.

  또 흥미로웠던 건 ’. 인간 중에서는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 전혀 흥미가 없는 사람이 많다. 성직자라든지. 이건 인간은 굳이 유전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퍼뜨릴 방도가 있기 때문에. 예술이라든지. 라는 존재를 퍼뜨리기 위한 이기심으로 종족 본능을 억제하고 한 분야에 몰두하는 것이다.
 
  이기적이라고 해서 이기적으로 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유전자는 이기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타적으로 행동하되 적절히 보복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온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오는 게임이론도, 이기적으로 행동해서는 자신의 유전자 퍼뜨리는데 불리하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되고.
  이미 읽어 본 사람 많을 텐데. 안 읽어본 사람이 만약 있다면. 두껍기는 해도 책 자체는 재미있으니 읽어 보면 어떨지. 새로운 걸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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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거짓말을 한다 - 구글 트렌트로 밝혀낸 충격적인 인간의 욕망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지음, 이영래 옮김 / 더퀘스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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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 알려주는 나도 모르는 인간의 본심

 

남편 회사 전자도서관에서 먼저 발견한 책인데, 제목이 재미없게 생겨서 일단은 보류해뒀었다. 그러다 회사 자료실에서 다시 발견한 뒤, 고민 끝에 가져왔다. 저번 주에 빌려왔는데, 어째 남편이 좋아했다. 옆에서 데굴거리면서 나름대로는 읽는 척하고 돌아갔다.
 
 제목은 매우 도발적이지만, 내용은 그렇게까지 도발적이지 않다. 오히려. 구글 검색을 통해 인간의 본심을 충분할 정도로 알 수 있는 만큼, 이 분석자료를 활용해서 사회 현상을 분석 및 예측하고 덧붙여서 사람의 행동도 어느 정도는 유도할 수 있지 않겠냐는, 지극히 평범한 내용.
 빅 데이터 시대를 맞아, 빅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하고 분석할 건지, 빅데이터는 어디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고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 충격적인 예시와 함께 잘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책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빅 데이터의 활용 및 발전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우리가 안다고 생각한 인간은 사실 허상이라는 충격적인 사실.
 이 책에는 특히 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가장 솔직하지 못한 부분이 성이다 보니, 빅데이터를 통해 다양한 정보들이 저자로서는 마냥 신기했나 보다. 남자가 가장 관심을 보이는 물건의 크기에 여자는 그다지 관심 없다든지. 오히려 크면 아프다고, 어떻게 안 아프게 할 수 없느냐에 관심을 둔다고.
 설문조사를 보면 평균 한 주에 한 번은 성생활을 하는 것 같은데, 정작 사람들의 고민은 왜 이렇게 횟수가 적을까요. 더 늘리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요. 이쪽이라든지. 콘돔을 쓴다는 사람이 많은데, 정작 콘돔 판매 수는 형편없다든지. 새벽 5시 40분에 이런 걸 적고 있으니 민망하다. 이 책 저자, 이런 걸 어떻게 꼼꼼하게 적은 거지. 대단하네.

 트럼프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당선될 것 같지 않은 트럼프가 당선된 건, 인종차별과 관계가 있다고. 각 주마다 흑인에 대한 비하발언을 구글에 검색하는 빈도가 어떻게 되는지 조사해 보았더니, 흑인에 대한 비하발언을 많이 검색한 주일수록, 트럼프 득표율이 높았다고 한다. 즉 인종차별이 없다고 하면서도 인종차별 의식은 여전히 품고 있는 것. 어떻게든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에 감춰두는 본심이, 구글 검색 창에서는 자유롭게 튀어나오기 때문이란다.

 물론 이런 데이터 분석이 만능은 아니다. 우선 적용 분야가 제한적. 주식을 언제 매수하면 좋을지 분석하기 위한 도구로서 활용하는 건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단다. 어떤 식으로 데이터를 분석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어서. 아직 연구가 오래 된 부분은 아니라, 연구 자료 자체가 부족한 모양이다.
 윤리적 문제도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는, 살인을 하기도 전에 살인자를 체포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방 측면에서는 분명 의미가 있지만, 저지르지도 않고 범죄자로 낙인 찍힌 사람은, 그러면 뭐가 되는 걸까. 윤리적인 측면이 고민되지 않는다면, 1984의 빅브라더의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인간에 대해 알고 있던 상식이 뒤바뀌는 신선한 충격에서 빅 데이터의 활용과 한계까지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즐길 수 있는 책. 책 마지막 장, 여기까지 도달하는 독자는 거의 없으니 후기는 대충 날리고 가겠다는 저자에게, 빅 데이터가 전부가 아니라는 반박을 가볍게 날려주는 즐거움도 있다.
 빅 데이터에 흥미가 많은 사람이라면 읽어도 좋지 않을까. 4차 산업 혁명으로 관련 책이 많이 나오기는 하는데, 이런 식으로 통념 자체를 뒤흔든 건 또 처음이라 재미있기 읽었다. 분명 이쪽에 관심 많은 사람이라면 흥미 있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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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N 난 이래, 넌 어때? - 보통의 어른들에게 안부를 묻다 빨강머리N
최현정 지음 / 마음의숲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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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이 들려주는 나의 이야기

 

 

 ‘빨강머리앤이 하는 말’을 4월 중순에 읽었다. 독서 동호회 공통 도서였다. 에세이는 거의 읽지 않았던 터라, 그 간질간질함 정말 낯설어서, 이걸 사람이 읽으라고 낸 건가 생각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건, 매우 저항감이 강하다. 왠지 해서는 안 될 것 같고. 나와는 절대 안 맞는 것 같고. 하지만 해보다 보면 어, 이건 괜찮네. 이럴 때가 있다. 내 독서가 중구난방인 건 그 때문.
 평소에는 절대 안 읽을 책인데. 하지만 재미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럴 때는 안 되면 저자와 출판사를 욕하자, 이 마음가짐으로 책을 집어온다. 건질 때도 있고 못 건질 때도 있고. 그래도 그렇게 하나하나 알아나가는 건 꽤 즐거운 일이다.

 ‘자존감 수업’은 회사 책인 터라, 돌려주면서 회사 자료실을 훑어보는데 이 책이 보였다. 또 빨강머리앤이냐. 앤 좀 그만 괴롭혀. 이런 마음으로 툭 집어 왔다.
 ‘빨강머리앤이 하는 말’과 관련 있는지 알았는데, 거의 없다. 에세이라는 사실만 비슷하다. 굳이 따지면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와 더 유사하려나.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삶의 태도라든지, 아니면 그림 에세이라는 점이라든지.
 30대 중반 여성. 미혼. 남자친구 예정 없음. 삽화와 함께, 생각을 풀어놓고 있다. 둘째 딸, 샌드위치로서 겪었던 서러움. 20대에는 통금이면 짜증을 냈던 친구들이, 30대가 된 뒤로는 통금을 반기는 모습. 2년마다 전세 전쟁을 치르는 모습 등. 그냥 마음에 드는 부분 골라서, 한 꼭지 편안하게 읽어보면 되는 책.
 에세이는 저자의 주관이 가장 깊게 녹아 나오는 글이라, 무어라 덧붙이기 곤란하다.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사는구나. 이 즐거움으로 읽는 책이지 특별히 뭘 하겠다는 생각으로 읽는 게 아니다보니.

 씁쓸한 기분으로 읽었던 건, 저자가 카페 근처에서 겪은 에피소드. 갑자기 이상한 남자가 저자의 팔을 잡더니 끌고 가려고 하더란다. 다행히 근처에 있던 남자들이 도와주었다고. 당차게 먼저 끊어 내야 했는데, 너무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한 자신이 서러웠다고.
 그 말미. 내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저자는 질문한다. 다 늘어진 티. 화장 안 한 모습. 전혀 색기 없는 모습이었는데. 그래도 이런 일 당했는데, 그럼 대체 뭐가 문제였냐고. 정말 잘못해서 잘못했냐고 물은 건 아니겠지. 무슨 일만 터지면 여자의 행실부터 문제 삼으니, 그 부분을 지적한 것이겠지.
 범죄 피해자를 책망하는 것 웃기지 않나. 주의할 필요는 있지. 그렇다고 해서 그러니 범죄나 당하지. 이건 진짜 아니다. 저지르는 인간이 욕먹어야지 왜 피해자가 욕을 먹어야 해.

 하여튼. 단순히 아는 책과 제목이 비슷해서 읽었는데, 이건 또 이것대로 재미있었다. 사고방식이 같은 부분은 공감하면서, 다른 부분은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하면서. 사실 이 책에 나오는 앤 그림, 내 취향 아니었는데, 보다 보니 은근 귀엽더라. 예전에는 무조건 예쁘기만 한 그림이 좋았는데, 요즘은 개성이 잘 묻어나는 그림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헷.

 30대 중반. 저자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라면 특히 재미있게 읽지 않을까. 난 이미 남편도 있고, 연애도 오래 해 보았고. 맏이라서 특별한 남녀차별도 안 겪었고. 성실과도 거리가 멀어서, 다른 부분이 더 많다 보니, 신기해하면서 읽은 부분도 꽤 된다. 재미없었던 건 아니지만.
 에세이는 공감하며 읽어야 제 맛이니,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책을 읽어주면 좋겠다. 아마 분명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에, 위안이 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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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전, 그 법정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다나카 이치로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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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배경을 고려해서 보는, 갈릴레오 갈릴레이 재판

 

 갈릴레오 재판.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을까. 지동설 좀 주장했기로서니, 할아버지를 로마에 불러서는, “감히 지동설을 주장해? 너 이단!” 이렇게 선고한 것도 모자라 “천동설이 진리야, 그러니까 앞으로는 지동설 생각도 하지 마”라고 강요하고. 우리 불쌍한 갈릴레오. 참담한 심정을 부여잡고 재판장을 나와서는, 그래도 땅을 보며 아주 작게 속삭이는 것이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이단재판소는 무조건 악. 갈릴레오는 무조건 선. 저자는 이게 참 싫었나 보다. 그래서 교황청에서 갈릴레오 갈릴레이 재판 기록을 공개하자, 그 공개 자료를 연구한 뒤, 이단재판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절차까지 꼼꼼히 공부해서, 갈릴레오 재판이 일반적으로 아는 것과 다르다고 적은 책이다. 유감스럽게도 자료 소실이 상당해서, 완전히 복원할 수는 없단다. 갈릴레오를 매우 좋아한 나폴레옹 때문에 상당수 자료가 유실되었다고.
 
 지구가 돌든 태양이 돌든, 뭐가 그리 중요한 문제라고. 지금 시대에 생각하면 참 이해할 수 없는 재판이다. 하지만 당시 사람, 특히 교황 입장에서 지동설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사상이었다. 교황이 성경만 읽다 머리가 굳어버렸기 때문. 이건 분명 아닐 거다. 그 시절 교황은 종교인이면서 동시에 정치인이었으니, 오히려 유연했을 터. 본래 교황, 갈릴레오에게 호의적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성경에서 인간은 매우 특별한 존재다. 신이 직접 자신의 형상에 따라 만들었고, 만물을 지배할 권한도 주었다. 인간은 우월한 존재이며, 인간이 사는 이 지구 역시 우월하다. 신이 직접 선택한 곳이니.
 천동설을 채택했던 건, 당시 사람들 눈에는 지구가 아닌 하늘이 도는 것처럼 보였다는 이유 외에도, 성경의 인간 중심 사고방식이 분명 녹아 있었을 터다. 신께서 우리를 택하셨으니, 우리가 분명 이 우주의 중심일 거야.
 지동설은, 신께서 우리를 선택하셔서 우리를 특별하게 해주셨다. 성경의 진리 자체를 송두리째 무너뜨린다. 신께서 우리를 택하셨는데, 이 위대한 우리가 사는 이 지구가, 사실은 다른 별 따위나 돌다니. 그러면 우리 위대하지 않은 거야?
 눈에 뻔히 보이는 걸 어떻게 외면하느냐. 이럴 수도 있겠는데. 당시는 망원경이 막 발명된 시기여서, 아직 신앙을 뛰어넘을 만큼 과학이 신빙성 있지도 않았다. 확고하게 갈릴레이가 옳다, 그렇게 말하기도 애매했다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에서 갈릴레오 재판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책. 그동안은 중세 시대는 이해할 수 없어, 이렇게만 생각했는데. 당시 교황청에서는 꽤 중요한 문제였구나. 이해했다고 해서 갈릴레오 재판이 옳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무작정 비난할 생각은 안 든다.
 다만. 이 책 읽으면서 꽤 불편했다. 책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과거에 생각 없이 했던 말. 행동 하나가 최악의 상황을 불러오는 모습이. 이익이 역사는 시와 때와 운이 맞아야 한다고 쓴 이유를 알 것 같다. 정말 역사는 모른다.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꼬이고 꼬여서 상황이 최악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싫다.

 어찌 되었든, 갈릴레오 재판을 다시 생각할 수 있어 좋았던 책. 당시 시대 배경을 바탕으로 갈릴레오 재판에 대해 다시 보고 싶다면, 읽어도 좋지 않을까. 약간 딱딱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모르던 걸 알아간다는 즐거움이 있으니, 이런 것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재미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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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 우리 모두의 진짜 자존감을 찾는 심리학 공부
김태형 지음 / 갈매나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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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자존감은 건강한 사회로부터

 

 자존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매우 많이 나온다. 내가 올해 읽은 자존감 관련 책도 5권은 우습게 넘지 않을까. 모두 좋은 이야기였지만, 한 방이 부족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도서관 책꽂이를 돌며 골라 보았다.

 이 책은 단순히 자존감을 고취하는 것만으로는, 자존감이 세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미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자존감이 낫고, 돈과 학벌 등 바람작하지 않은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제대로 된 자존감을 갖춘들, 사회 분위기 때문에라도 자존감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고. 결국 건강한 자존감을 갖추기 위해서는 사회개혁이 우선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건강한 자존감과 가짜 자존감을 구별하고 있다. 건강한 자존감을 갖춘 사람은, 타인에게 강요하지도 않고, 타인을 혐오하지도 않는다. 가치관이 제대로 선 기품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개인의 노력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단순한 개인만의 문제라는 아니라는 저자의 주장은, 경청할 필요가 있다.

 이쯤 되면 누군가는 눈치 챌지도 모르겠다. 책을 칭찬하면서 글을 시작할 때는, 책이 마음에 안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소개한 책이 대충 150권이 넘어간다. 문제는 중구난방. 휴가 때 대대적으로 뜯어고쳐서 찾아보기 쉽게 정리할까 싶기는 한데, 그래도 문제가 남는다.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그 책이 어떤지 확인하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고, 책을 읽고 싶은데 뭘 읽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이 블로그(포스트)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메뉴를 하나 더 추가할까 했다. 책 추천 코너. 연애로 상처받을 때 읽기 좋은 책. 일하기 싫은 날 읽기 좋은 책. 이런 식으로. 읽었던 책 중에 몇 권을 골라, 내 경험과 함께 소개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일단 책을 색다르게 읽는 즐거움이 있을 듯하여, 나부터 기대된다.
 사실 이 책을 데려온 건, 그 첫 타자로 ‘자존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 다른 시야에서 자존감을 바라보면 어떨까 했다. 만약 쓰게 된다면, 이 책을 내세워 이야기를 풀 생각이었다.

 한 마디가 많아 관뒀다. 이 책은 건강한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그 무엇도 혐오할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책 내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혐오를 내비치면 안 되지 않을까. 저자 자존감부터 건강하지 않은데, 어떻게 저자를 믿고 책을 읽어 내려가나.
 인간은 그 자체만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도 했다. 그 말은, 어떤 경우에도 혐오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말일 터. 설령 이것만큼은 혐오해야 하지 않느냐고 한다고 한들, 역시 주장에는 어긋난다.
 내가 바라는 건 많지 않다. 어떤 주장을 해서 상대방을 설득하고 싶으면, 저자 본인부터 주장에 어울리는 행동을 해라. 그게 불가능하면 책에서만큼은 티를 내지 마라. 글을 쓰고 읽어 보았을 때, 없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으면 단호하게 빼라.

 읽지 말라고는 안 하겠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이 책에서 제시하는 주장은 고민해 볼 여지가 충분하다. 자존감 높이래서 열심히 연습하는데, 정작 자존감은 오르지 않고. 내가 문제인가.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사람이라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주장과 저자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은 극히 일부라 읽다 넘어갈 가능성도 크다. 내가 너무 예민한 것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도 했다. 다만 그렇다고 한들, 그 때문에 이 책이 내 마음에 들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고로 솔직히 적기로 했다. 내가 그렇다는데 뭐, 어때. 이런 마음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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