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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2010년 전면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모든 것은 유전자가 조종한다, 도발적이지만 납득 가능한 주장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0818/pimg_7445092551985254.jpg)
“미움 받을 용기”도 그렇고 한참 유행할 때는 손도 안 대던 책.
최근 과학 관련 책은 읽지 않았다. 국립 세종 도서관에 과학 책 빌리러 갔는데, 의외로 소장 도서가 많지 않다. 회사 자료실도 가보았다. 역시 거의 없었다. 그래도 이 책은 있기에, 와, 하고 집어왔다. 가끔은 유명한 책도 좋을 듯했다.
하루 두 권의 독서가 목표인데. 어제(8.16.)는 만사 다 귀찮았다. 일 밀린 상황인데, 6시 되자마자 꺼지는 시간도 아까워서 전원 내려버리고 가버렸다. 고장 나든지 말든지. 정말 여간하면 일을 미루지 말자가 모토이긴 한데. 날 깎아 먹어가며 지킬 정도는 아니다.
대체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일 천지였다. 평소에도 해야 하는 이유 잘 모르기는 하지만, 어제는 특히 더. 요구하기 위해 요구하는 자료들이 너무 많아서. 결국 인스타그램에 일본어로 투덜댔다. 한국어 놔두고 왜 일본어인지 묻는다면. 욕은 하고 싶지 않아서. 짜증나게 하는 것도 열 받는데. 그것 때문에 스스로를 깎아먹으면 더더욱 열 받으므로. 일 절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노력만.
모든 것을 결정하는 건, 유전자라는 주장을 하는 책이다. 그것도 보통 유전자가 아니라, 자신의 종족 번영만을 생각하는 매우 이기적 유전자. 우리가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상황은, 이 유전자의 특성으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고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지만. 어쩐지 마구 위안이 되었다. 내가 만사 귀찮아하는 건! 내가 글러먹었기 때문이 아니라, 내 유전자는 귀찮은 게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일 거다.
그래. 내 유전자는, 데굴거리다가, 보살펴 주는 걸 좋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살살 꼬드겨서, 네가 날 먹여주고 재워주면 대신 네 종족 번식시켜줄게. 이런 신호를 어디선가 몰래 퍼뜨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분명 그래서 남편은 내게 유혹당한 걸 거야.
남편 유전자도 딱히 손해는 아니다. 어떻게든 기생해서 꿀 빨려는 유전자, 대부분은 흥미 없어하지 않을까. 즉 경쟁률이 매우 낮은 거다. 조금 성가시기는 해도, 경쟁 없이 유전자를 퍼뜨릴 수 있는 것 자체로도, 유전자에게는 이익이지 않을까. 즉 이것은 공생. 고로 남편에게 주말 내내 밥 해달라고 졸라야지.
왜 좋은 책 읽고, 이딴 헛소리나 하고 있는 걸까.
대중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 쉬운 다양한 예시를 든다. 덕분에 다루는 주제는 어렵지만, 책은 쉽게 읽힌다. 책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는 건 역시 힘들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말 정도는 추측할 수 있다.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이 들 수도 있겠지만 책의 모든 내용을 샅샅이 이해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내가 모르는 분야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유전자가 모든 걸 지배한다는 책의 주장도 흥미로웠지만, 생물학자인 저자가 보여주는 다양한 동물의 생활 방식도 흥미로웠다. 가장 재미있었던 건, 노예 개미 이야기. 일개미는 본래 자신의 유전자형을 더 널리 퍼뜨리기 위해, 여왕개미가 수개미를 생산하는 것을 억제한다고 한다. 그 때문에, 보통 수개미는 일개미에 비하면 그 수가 적다고.
하지만 노예 개미를 부리는 개미들의 경우, 수개미와 일개미의 비율이 비슷하다고 한다. 노예 개미들도 여왕개미가 수개미를 생산하는 걸 억제한다. 다만 본래 노예 개미는 여왕개미와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다 보니, 여왕개미가 다른 방식으로 회피해버리면, 더 이상은 방도가 없다고.
어쩌면 노예 개미를 두는 것 자체가, 여왕 개미가 자신의 유전자를 더 편하게 퍼뜨리기 위한 전략이 아닐까. 일개미를 두면 편하기는 하지만, 유전자를 퍼뜨리는 건 방해 당하니, 그렇다면 아예 노예 개미를 두어 자신을 돌보게 하는 동시에 유전자는 팍팍 퍼뜨리려고. 그렇게 치면 유전자 측면에서는 개미가 승자일지도.
통념에 반하는 해석도 재미있었다.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건, 단순한 모성애가 아니라 자신의 유전자를 확고하게 퍼뜨리기 위한 전략이라든지. 형제끼리 다툼이 일어나는 것도, 내 유전자를 확고하게 퍼뜨리기 위한 방도라든지. 남녀가 대립하는 것 역시, 누가 힘을 적게 들이면서 자신의 유전자를 잘 퍼뜨릴지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라든지.
심지어 종족 번식을 안 하는 것도! 어차피 해본들 제대로 살아남지 못한다면 일단 기회를 노리는 게 낫다고. 그러다 끝까지 기회를 못 얻더라도! 무의미한 시도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그렇게 국가가 노력하는데도 출생율이 낮은 건 이 때문인가. 두둥.
상식과 어긋나는 부분이 많아 낯설기는 했지만 해석할 수도 있겠구나, 그러며 읽었다.
또 흥미로웠던 건 ‘밈’. 인간 중에서는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 전혀 흥미가 없는 사람이 많다. 성직자라든지. 이건 인간은 굳이 유전자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퍼뜨릴 방도가 있기 때문에. 예술이라든지. 즉 ‘나’라는 존재를 퍼뜨리기 위한 이기심으로 종족 본능을 억제하고 한 분야에 몰두하는 것이다.
이기적이라고 해서 이기적으로 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유전자는 이기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타적으로 행동하되 적절히 보복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이야기도 종종 나온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나오는 게임이론도, 이기적으로 행동해서는 자신의 유전자 퍼뜨리는데 불리하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되고.
이미 읽어 본 사람 많을 텐데. 안 읽어본 사람이 만약 있다면. 두껍기는 해도 책 자체는 재미있으니 읽어 보면 어떨지. 새로운 걸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