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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보그가 되다
김초엽.김원영 지음 / 사계절 / 2021년 1월
평점 :
(*도서협찬) #사이보그가되다
#김초엽 #김원영 #사계절
선을 느낀 적 있는가.
이 책을 읽으며 선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듯하지만 때로는 너무나 진하게 그어진 선. ‘수직과 수평이 아니면 상상하지 못하는’, 공간에 대한 생각의 한계처럼 우리는 딱딱하고 단단하게 굳은 장벽 앞에 우두커니 멈춰서서 하늘을 볼 때가 있다. 특히 선 안이 아닌, 선 밖에 있는 입장에서 선뜻 다시 그 선을 넘어 들어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선이란 양면적이기도 해서 선 밖이라 여겼는데 뒤집어보면 선 안이 되기도 하고, 선 안이라 생각했는데 돌아보면 밖에 있기도 하다.
이 책은 선 안과 밖을 뒤집는 책이며, 결국에는 선을 무화시키는 시도를 하는 책이다. 선이란 존재 그 자체로 경계와 구분을 짓고, 정상이나 표준이라는 단어로 사람을 규정짓기 때문에. 그 규정을 거부하는, 아니, 그 규정 자체가 전혀 불필요함을 느끼게 하는 단호한 힘이 책에 담겨 있어 많은 생각들을 하며 읽었다.
김원영 변호사와 김초엽 작가의 당사자성이 살아 있는 책 안에서는 두 사람의 살아있는 경험을 토대로 몸과 장애와 질병 그리고 인간과 기계의 결합의 실제 현실을 이야기한다. 여기에서 쓰인 ‘사이보그’라는 단어와 개념이 인상적이면서도 의미 있게 다가온 것은 상당히 구체적인 현실 세계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 기계가 인간의 몸과 결합할 때 얼마나 많은 부작용과 고통이 수반되는가. 크게 나아가지 않아도 시력 교정용 안경, 치아 교정과 임플란트, 스마트폰 등 인간의 삶에 기계가 결합되는 경우는 정말 많고 흔하다. 그런데 인간과 기계의 결합에 있어 유독 ‘보이지 않는 것’이 미덕처럼 강조되는 보청기나 비장애 중심적 시각으로 제작된 보조장치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특히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사이보그 신체와 평균으로 대표될 수 없는 신체의 고유성과 함께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상상력을 요구하는 이야기들이 현실감 있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얼마나 많은 아픔과 장애들이 우리 눈 앞에서 지워지고 가리워지는가. 아니, 지우고 가려왔는가.
두 사람의 글이 한 편씩 반복되며 교차하는 구조가 인상적이며서도 흥미로웠다. 글을 주고받으면서 연재해왔다고 하는데, 책이 뒤로 가면 갈수록 더욱 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페이지에선 두 사람이 직접 주고받은 대담이 실려 있어 전체 책의 내용을 다시금 조망하면서 더욱 실감나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마음에 남는 말.
🔖 ‘나는 장애인이야. 하지만 장애인으로서 말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아.’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애에 부과된 사회적 낙인이 우리를 ‘충분히 장애인이 되는 것’에서 한 발 물러나게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게 된 이후로, 이 책을 쓰는 것은 나에게 마치 ‘장애인이 되다’를 쓰는 일 같았다. 그 과정은 나의 취약함과 의존성, 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낯설고도 즐거운 일이었다. (p.357)
앞으로 이런 목소리들이 더 많이, 더 자주 들려오길 바란다. 장애의 경험은 모두들에게 제각각 다른 고유한 경험이다. 이 경험을 말과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의 이야기로 대표되지 않고 대표될 수 없는 개개인의 고유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더 많이 들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독자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수혜자와 전문가’의 구분, ‘시혜와 온정의 시선’에 담긴 구분, ‘장애를 개인의 결핍이나 결함’으로 한정 짓는 구분들을 넘어서기를. 한 걸음 한 걸음 우리는 애초에 불필요했던 경계를 무화해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중심으로, 경계(境界)를 경계(警戒)하며.
📘 작년에 발행된 <난치의 상상력(안희제, 동녘, 2020)>을 발췌 재독하면서 병행해서 읽었다. 이 책을 함께 읽는다면 사회적 상상력의 범위를 더욱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367p / 2021 / 정가 17,800원
▪️사계절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