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한 날들을 위한 철학 -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만들어줄 의미 찾기의 기술
프랑크 마르텔라 지음, 황성원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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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싶은 책이었다. 어크로스북클럽에 이어 작은 북클럽까지, 많은 분들이 곁에서 읽고 있는 동안 책만 구입해놓고 하루 빨리 이 책을 읽을 여유로운 주말이 오길 기다렸다. (피드가 올라올 때마다 읽고 싶어 애타는 마음이-!) 코로나가 바꾸어놓은 일상을 1년간 살다가 이제 다시 새로운 일상을 이어가면서 살아가는 날들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도와줄 책일 것 같았다. 읽고 싶었던 책을 펼치는 마음이란 얼마나 설레는가!

그런데 막상 책을 읽으면서는 의미를 탐구하고 가치를 찾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들이 충분히 아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다. 교실에서 한 해 살이를 꾸리면서도 아이들과 함께 길게 대화 나누며 우리가 추구할 ‘가치’와 1년이라는 항해가 우리 삶에 주는 ‘의미’를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한 장 한 장 익숙한 듯하지만 다시금 머릿속을 정리해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차분히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겼다. 넘기면 넘길수록 가만히 명상을 하듯 안으로 안으로 차오르는 마음.

시대의 흐름과 과학의 발전에 따라 사람들의 가치관과 생각은 어떻게 달라져왔는지, 그런 변화들을 굽이굽이 넘어오면서 현대인들은 어떤 사고과정을 거쳐 자기 삶을 성찰하고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 사고의 흐름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저자가 전하는 이야기.

“보편적인 ‘인생의 의미’란 없고, 각자가 선택하고 경험하는 ‘인생 안에서의 의미’가 있을 뿐이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고 각자의 기준과 생각이 다른데 모두에게 통용되는 ‘인생의 의미’와 이에 대한 ‘평가 기준’이 있다는 생각이 우리를 쉽게 허무에 빠지게 한다.”는 말. 당연한 말인데도 막상 삶을 살아가다보면 우리는 쉽게 비교의 늪에 빠지거나 자기 존재와 삶에 대해 하찮음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오랜만에 일을 하면서 예전과는 다르게 서툴고 자신감이 떨어진 나를 발견하기도 해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힘을 되찾고 싶었다.

‘관계 맺음, 선의, 자율성, 유능감’이라는 요소들로 무의미한 날들을 ‘의미 있는 삶’으로 채워갈 수 있도록 돕는 철학적 조언들이 이어진다. 나를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관계’의 소중함, 타인에게 ‘기여’함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삶에 기여하는 가치로움, 자극과 반응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 안에서 자기 스스로 반응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좋아하는 일을 깊이 통달해내어 ‘자아효능감’을 높이는 과정...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니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여정을 더욱 힘차게 이어가고 싶은 욕구가 깊이 차오른다. 곁의 소중한 관계들과 내가 기여하기를 선택하고 싶은 존재들, 어떤 자극이 있을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한 자유로운 내 모습에 대한 연상과 곁의 사람들과 함께 할 자아 효능감 프로젝트까지!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으며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기쁜 마음으로 그려본다. 그 구체적인 그림과 이야기는 오로지 내 힘으로 그리고 써나가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3월의 시작에 이 책을 읽기로 ‘선택’한 나를 칭찬하며,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내 삶에 내가 더욱 깊이 기여할 수 있겠다는 유능감을 느낀다. 일상의 크고작은 기여를 이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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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 디지털 지구, 뜨는 것들의 세상 메타버스 1
김상균 지음 / 플랜비디자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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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etaverse is Coming.”

이번 신간 서적은 다양한 분야(로보틱스, 산업공학, 인지과학, 교육공학 등)를 전공하고, 게임 개발, 게이미피케이션 교육, 기업경영, 마케팅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연구하고 적용하고 계시는 김상균 교수님의 두툼한 덕질 스토리 같은 느낌이다. 좋아하는 것들을 신나게 빠져들어 하는 삶을 살아오다보니 그 탐험이 메타버스라는 세계로 발길을 이끌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메타버스(metaverse)란 언택트 세계, 디지털 미디어에 담긴 새로운 세상, 디지털화된 지구를 뜻한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인스타그램이라는 세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메타버스의 세계가 책 안에서 살아 숨쉬듯 입체화된다. 증강현실 세계, 라이프로깅 세계, 거울 세계, 가상 세계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제목들부터 톡톡 살아있는 데다가 이해를 돕는 사진들과 함께 빠져들어 책을 읽다보면 이전에는 전혀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여행 서적이 결코 아니지만 언택트 시대에 책으로 떠나는 메타버스 여행기를 읽는 것처럼.

🔹증강현실 세계= 현실 세계 + 판타지 + 편의
🔹라이프로깅 세계= 현실의 나-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이상적인 나
🔹거울 세계= 현실 세계 + 효율성 + 확장성
🔹가상 세계= 신세계 + 소통 + 놀이

메타버스 세계를 한참 여행하다보면 어느 새 미궁에 빠지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앗, 여기가 어디지? 하며 발 밑을 내려다보는 순간. 발 밑에 단단한 땅이 있는지 아니면 허공을 헤엄치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는 그런 순간. 이건 마치 교실 수업을 게임화하면서 게임 속에 수업이 들어가 있는지, 수업 속에 게임이 들어가 있는지 생각하던 순간과도 이어지는 느낌이다. 책에서 구분해둔 네 개의 세계가 구분되는 경계가 확연한 선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과연 우리는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그 고민과 의문들이 김상균 교수님의 여정과 함께하며 흘러간다.

▪️메타버스 그 이후

기술의 발전과 함께 메타버스는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담고 변화를 거듭해왔다. 현재 이 안에 살고 있고 앞으로 살아갈 이들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현실과 맞닿아있는 메타버스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람다움, 윤리, 성취와 소통... 메타버스가 인류의 삶을 확장하는 영토로서의 충만한 힘을 갖출 수 있도록 개인으로서의 나와 부모 또는 교사로서의 나, 시민으로서의 나의 역할들을 돌아본다. 그리고 소박하지만 뛰는 심장을 안고 오늘도 뚜벅뚜벅 이 세계를 걸어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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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 로켓 고스트 변두리 로켓
이케이도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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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오르는 골목은 경사가 가팔랐다. 변두리, 변방, 가장자리, 잘 보이지 않고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구석... 맨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제목이 역설적이라 느꼈다. ‘로켓’이라는 첨단의 단어와 ‘변두리’라는 하찮고 보잘 것 없음을 나타내는 단어의 조합이라니.

세 권의 책에 접어들면서 사원 이름표를 선물로 받았고 상징적인 의미가 그대로 연결되듯 책을 읽으며 쓰쿠다제작소 사람들의 마음에 함께 합치되어감을 느낀다. 때로는 너무나 도덕적이고 너무나 착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순수한 문장들 - 예를 들면, 어떻게 기업이 경제적으로 힘들다고 해서 직원들을 외면할 수 있지? 와 같은 - 을 볼 때면 현실을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좋아서 한다’는 말이 지닌 순수성, 희열감, 맑은 행복감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함께 수반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이번 책에선 특히 가루베와 시마즈라는 인물에게 관심이 갔다. 가루베는 겉보기엔 쌀쌀하다 싶을 만큼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부하 직원들에 대한 구체적인 친절함은 찾아보기 어려워 오해를 받는 인물.

예전에 내게도 그런 동료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말이 거의 없고 자기 일만 내세우는 사람이라고 쉽게 판단내렸고 나 역시 어느 정도 수긍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지내면서 의외의 순간들을 통해 그의 숨겨진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학기말, 바쁜 순간에 성격이 꼼꼼하고 철저한 그는 학교생활기록부에서 생각지못했던 오류를 찾아내어 살짝 툭 알려주기도 했고, 아이들에 대해 다정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 듯했지만 진짜 어려운 순간 아이의 힘든 상황을 돕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그를 오해하지 않게 되었고, 동료로서 말과 감정만 앞서는 사람보다 어쩌면 더 ‘진짜’인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마즈와 아버지에 얽힌 이야기를 읽으며 성장기에 무언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깊이 빠져드는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그리고 대기업 직원이라는 직함이라든가 개인의 명성보다 진짜 제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연구하는 일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다운 것, 우리다운 것에 대한 고민과 관계를 이루는 과정을 함께하며 어떤 면에선 서툴고 거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는 뭉클한 감정을 되새겨본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품고 있는 진심을 가진 사람, 보이지 않아 오해받기 쉬운 진심을 들여다보는 눈을 가진 사람, 믿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다가도 어느 순간 그 진심을 깨닫는 사람, 그 많은 사람과 사람들.

회사의 위기 앞에서 어쩌면 너무 순수하다 싶을 만큼 회사의 사람들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쓰쿠다제작소가 이번에는 다른 회사의 사람들까지 지켜내려 애쓰는 모습을 본다. 회사경영의 윤리와 도덕을 생각하게 하는 <변두리로켓> 시리즈.

어느 새 3월, 세 번째 책을 덮는 이 시점, 더욱 따뜻해진 계절에 만날 최종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상상하며 기대감을 품어본다. 그리고 그 안엔 결국 사람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변두리에 있는, 눈에 띌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공장 안에도 살아숨쉬며 눈을 반짝이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반질반질 윤기가 나는 사원 이름표를 바라보며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려본다.


“......이 밸브, 우리다운 밸브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아키보다도 다치바나 자신을 향한 질문이었다.
“그때 가루베 씨에게 한 소리 듣고 나서 우리다운 게 뭘까 계속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뭔지 모르겠더라고. 빈 상자처럼 알맹이 없는 존재로 느껴져. 이건 분명 괜찮은 밸브일 거야. 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그런 기분이 들어.” (p.117)


“자동차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딱히 새 차가 아니라도 상관없지. 좋아하는 차에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것 자체가 행복인 거야.”
아버지의 그런 철학은 그대로 시마즈의 철학으로 이어졌고,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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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엔셜 출판사의 변두리로켓단 활동에 참여하여 무료로 제공받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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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경험치를 쌓는 중입니다
김수정 지음 / 아트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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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과 셀카는 어떤 점에서 비슷할까? 예전에 고흐의 자화상들과 함께 셀카로 자아를 표현하는 수업을 한 적이 있다. 이어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연결해 청소년기의 자아정체성과 자존에 관한 토론을 했던 시간. 이 책을 읽으며 그 때 그 수업과 아이들이 생각났다. 이 책에서는 강렬한 이미지의 프리다 칼로를 등장시켜 만약 프리다 칼로가 인스타그램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로 현시대 현시점에서의 미술을 이야기한다.

프리다 칼로는 화려한 색감과 인상적인 화풍을 자신의 계정에 수놓으며 수많은 팔로워들의 사랑을 받았을 것 같고, 고흐라면 뭔가 자기만의 어둑한 빛의 세계를 보여주는 계정을 운영했을 것 같은데 막상 본인이 하지 않고 동생이나 친구가 대신 운영해줬을 것 같고, 새벽 하늘과 한밤의 하늘빛 같은 계정 너머로 인디적인 매력을 발산했을 것 같다는 상상을 수놓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미술가가 현대에 되살아났다고 가정하고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상상해보면 새로운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듯!

책에서 추천하는 미술 루틴, 여기에서 우린 어떤 걸 실제 삶에서 행하고 있는지 또는 실천해보고 싶은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옮겨본다.

✔️SNS에서 예술 관련 채널 구독하기
✔️오늘 나의 기분을 표현한 그림 발견하기
✔️전시회, 예술 도서에 대한 감상을 짧은 글로 기록하기
✔️좋아하는 작품 이미지를 곁에 두기(ex. 엽서, 스마트폰 케이스 등)
✔️관심 있는 전시회 일정 미리 확인하기
✔️한 달에 1회 이상 미술관이나 갤러리 방문하기
✔️전시회를 다녀온 후 마인드맵으로 감상 정리하기

이 루틴들 중 꼭 해보고 싶은 것은 두 번째와 일곱 번째.

오늘의 기분, 오늘의 마음을 표현하는 그림 찾기는 아이들과 교실에서 아침을 열며 해보아도 참 좋을 것 같은 루틴이다. ‘마음 신호등’처럼 한 명씩 오늘의 기분과 마음을 그림으로 이야기 나누면 참 좋을 것 같다. 기분과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눈에 보이는 그림과 색깔로 이를 말하다보면 더욱 선명하게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고 이를 친구들과 교감하고 공감할 수 있을 테니까.

미술관 방문을 좋아하면서도 막상 다녀와서 간단한 소감 정도만 적고 리플렛을 모아두는 정도에 그쳤는데 이를 마인드맵핑해보면 더 오래, 더 소중하게 예술에 대한 마음을 품고 구체화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하나의 전시회에서 뻗어나온 가지가 또 다른 전시회나 작품으로 계속 연결되고 이어질 것 같은 상상. 내가 그린 마인드맵과 친구의 마인드맵은 또 어떻게 가지를 뻗어 서로 손을 맞대듯 마음과 마음이 만나고 이어질지 궁금해진다. 이 또한 아이들과 함께하면 참 좋을 것 같은 활동, 계속 아이들 이야기를 하게 되는 2월.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한 장씩 넘겨나갔는데, 읽어나가면서 점점 즐겁게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책 속 표현 중에 “감각의 노화와 이해의 성숙”이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 말이 와 닿아 다시 적어보며 곱씹어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분명 같은 길을 걸어도 나뭇잎의 저마다 다른 색감과 바람의 촉감, 손끝에 느껴지는 질감... 많은 감각이 무뎌져가는 느낌이 드는데 그런 나를 발견할 때마다 느껴지곤 하는 슬픔의 감정이 ‘이해의 성숙’으로 더욱 깊어지고 뜨거워질 수 있다면 이런 나이듦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자그마한 책 한 권이 이사와 새 학기 복직 준비, 아이들 전학과 아이들의 새 학기 준비 등으로 폭풍 바쁜 2월에 “바쁜 상황에서 책 읽기 루틴(!) 만들기”를 즐겁게 도와주었다. 만약 너무 바빠서 마음의 여유가 없지만 책을 통해 마음에 신선한 바람이 통하도록 환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건네고 싶다. 겸손하고 솔직한 생활 속 미술 이야기가 평범한 일상에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할 테니까.

(아트북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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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음성같이 옛 애인의 음성같이 - 김승희가 들려주는 우리들의 세계문학
김승희 지음 / 난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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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을 보며 최근 많은 책을 읽었지만 살아있는 한국 작가 중에 이 정도 나이와 경력의 여성 작가 책을 읽은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정확히 친정어머니와 같은 해에 태어나신 분 그리고 이 책은 저자가 마흔일 때 쓴 책.

난다출판사 대표인 김민정 시인이 1992년 『세계문학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이 책을 푹 빠져 읽고 여러 다양한 세계 고전의 세계를 탐닉했던 소중한 경험과 기억을 담아 다시 이 책을 아름답게 재탄생시켜 세상에 내어놓았다. 이런 팬심, 이런 덕질은 정말 아름답고 소중하다. 이제껏 몰랐던 책을, 이런 마음과 정성이 아니면 만날 수 없었을 책을 만나게 해주었으니.

며칠 전에는 난다출판사에서 이벤트로 김승희 시인 라이브 방송을 진행해주셨는데, 그 방송을 보고 난 이후 책을 읽으니 마치 음성지원이라도 되는 듯, 글에서 작가님 목소리가 함께 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또한 여러 인상적인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흘러가듯 말씀하신 한 마디가 이상하게 계속 마음에 남았다.

질문은 대략 이런 것이었다. ‘세계문학작품들을 어떻게 하면 깊이 노력하며 읽어낼 수 있을까요?’ 정도의 질문. 그런데 툭, 곧바로 하신 말씀. “음? 문학작품이 그냥 좋아서 탐닉하고 빠져들었던 거지, 뭔가 그렇게 노력까지 하면서 읽어야 할까요?” (정확한 워딩은 아닐 수 있지만 대략 이런 의미의 말씀이었는데) 다른 다양한 이야기들보다 이 말씀 한 마디가 자꾸만 귓가와 마음에 맴돌았다. 노력하며 읽는 게 아닌, 그냥 빠져들어서 읽게 되는 책, 그런 충만한 몰입의 시간을 상상하면서.

시인이 읽은 52권의 책들. 여기에는 읽은 책들도 있고 읽지 않은 책들도 있었다. 같은 책을 읽었음에도 이렇게 깊이 있는 통찰을 담아내다니 싶은 글들도 있었고, 내 마음과 생각을 닮아 있어 즐거운 글도 있었다. 아직 읽지 못한, 그래서 마치 아직 걸어가지 않은 길처럼 신비롭고 궁금한 책들이 담긴 세헤라자데의 이야기 같은 책.

고전은 왜 고전이 되었을까? 몇 백 년 전, 몇 십 년 전의 목소리들을 다시 길어올려 이야기하는 시인의 책 이야기가 뭔가 비밀스런 속삭임처럼 다가왔다. 읽었던 책들도 다시 한 번, 52권의 사유를 따라 다시 한 번 책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는 마음. 과연 문학에 빠져들어 읽은 사람의 이야기답고 그 때 그 시절, 지금의 내 나이 또래였던 시인의 세계에 내 마음을 살포시 얹어보게도 된다. 그러면서 동시에 세계문학이 이토록 아름다우니 우리 문학은 또 우리만의 매력으로 얼마나 아름다운지 더 관심 있게 생각해보게 되기도 하는.

김민정 시인의 팬심이 가득 담긴 우아한 표지 그림에 무코팅의 책 표지 질감까지 매력적인 아름다운 책. 또 한 번 한 계절이 흘러가려 하는 이 때, 우리의 밤이 외롭지 않게 환해지는 건 먼저 이 생을 살다간 무수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여러 책을 통해 건너건너 말을 건네기 때문이 아닐까?

▪️난다서포터즈로 활동하면서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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