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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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4년 후. 선거에서 80프로가 넘는 백지 투표가 이루어진다. 공황 상태에 빠진 정부는 갖가지 수단을 강구하다 못해서 수도를 포위한 채 정부를 다른 도시로 옮기고, 경찰도 정부도 없이 남겨진 도시가 다시금 정부에게 돌아오라고 애원하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내무부장관이 내놓은 몇 가지 술책은(하나같이 어느 나라 정부라도 생각해낼 법한 조악하고 열받는 것들이었다) 매번 수포로 돌아간다. 결국 화살은 4년 전 유일하게 눈을 뜨고 있었던 여자에게까지 미친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추악함과 아수라장을 펼치면서도 가슴 벅찬 빛을 보여주었다면, '눈뜬 자들의 도시'는 시민 대부분은 물론이고 나오는 사람 상다수가 명철하고 질서정연하고 고귀하한 모습을 보임에도 어둡다. 낙관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어딘가 어둡다. 눈을 떠도, 이제까지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눈을 뜨고 일어나도 아직 남은 이들이 있는 한 안될 수도 있다는, 체 게바라와 상카라의 전례가 변함없이, 계속 되풀이될지도 모른다는 답답하고 무거운 전망.

물론 결말이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전작 때문에 불안한 심정으로 책장을 넘겼지만 결국 도시는 무너지지 않았고 무능한 권력은 이기지 못했고 특히 야비한 자들은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한 사람 혹은 여러 사람이 결국 희생되었고, 따라서 그들 또한 이기지 못했다. 중반쯤에서 느낀 불길한 전망에 비하면 아직은 열린 결말이지만...  한 사람의 희생 이후 그 도시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읽는 사람에 따라 절망할 수도, 희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역시 비교하자면, '눈먼 자들의 도시'는 단숨에 읽어내렸는데 이번에는 한 챕터마다 멈춰가며 힘겹게 읽어야했다. 전자가 비극이라면 후자는 블랙코미디. 원래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는 희극 속에 있는 법이다.

덧. 노벨문학상 탄 지도 10년에 연세가 이정도 되어서도 계속 이렇게 파워풀한 소설을 쓰다니... 정말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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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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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을 펴기 전에 이미 예상했지만, 읽으면서 여러 번 울컥했고 울고 싶은 대목도 있었으며 쓸쓸해지기도 했다. 그렇다 해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더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세계적인 기아의 원인이 실제 식량이 모자라서가 아니라(현재 지구에서 생산되는 식량은 100억을 먹여살리고도 남는다) 구조적인 데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신자유주의가 한 나라 안의 빈부격차를 벌리는 것 못지않게 전세계의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다. "미국이 모든 악의 중심처럼 그려지기는 해도 사실상 대규모 환경파괴와 독점, 무엇보다도 자국의 상황을 바꿔보려는 모든 개혁적 노력을 분쇄하는 것은 다국적 기업의 힘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뜬구름잡는 수준의 지식일 뿐, 뭐 하나 제대로 아는 건 없었다... 수송기로 식량을 살포하는 것이 원조를 받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도 잘 모르지 않았나-_-;

그런 이유는 잘 알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외면하고 싶기 때문이다. 굳이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무력감에 시달리기도 싫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부에 직접 와닿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희망을 이야기하는데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냉소하거나 절망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 몇 년 전까지 나는 어설픈 관심이 무관심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별 거 없어보이는 일이라도 하는 게 낫다. 하다못해 아프리카에 만연한 기아가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척박한 땅이라서", "그 나라 사람들이 무능해서" 해결되지 않는 게 아니라는 것만 인식해도 희망은 있지 않을까?

뭐...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님 말고. 다 같이 망하지 뭐-_- 라는 냉소적인 생각을 안하는 건 아니지만...

다 읽고 옆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읽을래 물어보니 싫다고 고개를 젓더라. 우울해질 게 뻔해서란다. 그런데 의외로 읽기 전이나 읽는 동안에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은 책을 덮고 시간이 지날수록 긍정적인 감정으로 전환된다.


어느 자리에선가, 지인인 B모씨가 미국식 시장경제에 대안이 나오지 않으면 10년 안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재난이 닥칠 거라 했었다. 나도 수긍했다. (반 농담삼아 2013년을 거론하기도 했...) 그런데 한 가지가 틀렸다. 대안은 이미 나와 있다. 이미 석유 대체 에너지가 충분히 개발되어 있는데도 그리로 이행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안은 나와 있다. 다만 그리로 가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어쩌면 가지 못하는 건 모두가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누군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어쩌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 내가 내 풍요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하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가능성을 더하는 데 도움이 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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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18 21:48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갈라파고스 2007년 11월 도서목록에 있는 책으로 2007년 11월 8일 읽은 책이다. 관심분야의 책들 위주로 읽다가 알라딘 리뷰 선발 대회 때문에 선택하게 된 책인데, 이런 책을 읽을 수록 점점 내 관심분야가 달라져감을 느낀다. 총평 물질적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이 책에서 언급하는 "기아의 진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막연하게 못 사..
 
 
 
고대의 여행 이야기 역사 명저 시리즈 6
라이오넬 카슨 지음, 김향 옮김 / 가람기획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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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꾸준히 진열되고 팔려나가는 여행기들을 보면 여행도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일까 궁금해진다. 사실 다른 사람의 여행기를 읽는다는 것은 자기 몸을 여정에 싣지 않고 간접적으로 여행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이 아닌가. 가보지 않은 먼 땅의 풍경, 생활, 그곳에서 다른 사람이 겪은 경험... 어쩌면 시대의 생활상을 시시콜콜히 재구성하려는 최근 미시사의 흐름도 공간적으로만이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먼 곳을 여행하려는 욕망의 표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여기에 미시사라는 의미에서 간접적인 시간 여행일 뿐 아니라 주제도 여행인 책이 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여행 욕구를 한껏 충족시켜줄 듯한 ‘고대의 여행 이야기’는 그 제목만으로도 흥미를 끈다. 물론 세상에는 제목만 흥미진진할 뿐 펼쳐보면 대단한 내용도 없는 책이 널려 있다(이름만 그럴싸할 뿐 들어보면 끔찍한 강의가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기뻐하라. 이 책의 내용은 제목이 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2천년 전이라고 하면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좁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때도 여행은 있었고, 관광객과 토산품 장사와 가이드북과 악덕 가이드와 사기꾼도 있었다. 이 책은 고고학적인 유물과 그림과 기록과 문학과 낙서(!)를 총동원하여 세밀한 여행상을 흥미진진하게 엮어나간다.


다루는 내용도 재미있지만 아마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저자가 모아들인 기록을 열거하다가 줄거리를 놓치는 일이 없다는 점일 것이다. 위에서 제목만 흥미롭지 내용 없는 책이 널렸다고 이야기했지만 미시사 계통에는 그 반대의 경우, 즉 내용이 알차기는 한데 세부사항을 살린다는 것이 산만할 지경에 이르러 읽고 나서 남는 것이 파편밖에 없는 것도 많기 때문이다. (물론 전공자가 아닌 입장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고대의 여행 이야기’에서는 수천년의 시간이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관심사에 따라 재미가 처질 만한 부분도 고대 기록에서 낄낄거리고 웃을 만한 대목들을 찾아 뿌려놓은 저자의 재치 덕분에 수월하게 넘어간다. 기원전 2000년경 메소포타미아 기록에서 발췌한 선술집에서 어디에 소변을 봐야 큰 인물인가에 대한 글이나 로마 시대 풍자글에 나오는 “제우스여, 나를 올림피아에 있는 당신의 가이드로부터 지켜주십시오. 그리고 아테나여, 아테네에 있는 당신의 가이드로부터도 저를 보호해주십시오.” 같은 기도를 보면 저도 모르게 낄낄거리게 된다.


어쩌면 여행에 대한 욕구란 세계를 넓히고 싶은 욕망과 다르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보지 못한 것, 가지 못한 길, 접하지 못한 풍물, 벽이 존재하지 않는 자유에 대한 끌림... 예나 지금이나 미지의 장소까지 밀고 나가는 사람보다 누구나 찾는 관광지에 몰려가는 사람이 대부분인 것을 보면 여행의 끝은 집으로 돌아갔을 때의 안도감이라는 면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낙서에 대해서 한 마디 덧붙이지 않을 수 없다. 필자도 해외 여행을 나가서 귀중한 유물에 ‘철수 왔다가다’라고 적는 것을 싫어하는 편인데, 이 책을 읽다보니 그런 낙서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이집트 고대유물에 ‘로마 군인 **는 감탄했노라’라고 적어둔 낙서들이 지금에 와서는 나름대로 소중한 유물 겸 기록이 되고 있지 않은가. (아무 데나 집어던진 쓰레기도 그렇다!) 그렇다면 ‘철수 왔다가다’는 보편적인 욕망의 발현인가? 혹 시간이 흘러 지금의 문자 기록이 사라지고 나면 그런 낙서도 지구 반대편에서 그곳까지 간 사람들이 있었고 미래의 인류와 마찬가지로 낙서를 남기고 다녔다는 증거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로다.


한 가지 결정적으로 아쉬운 것은 책의 편집 상태(바로 이 부분 때문에 별을 한 개 뺐다). 오탈자가 상당히 많은 데다가 가끔 한 번씩 의심스러운 문장도 나온다. 내용 파악에 큰 지장은 없는 수준이지만 예민한 독자라면 신경질이 날 수도 있다는 점은 각오하시길. 어쩌겠는가. 자고로 여행에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게 마련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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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재 동문선 현대신서 41
아티크 라히미 지음, 김주경 옮김 / 동문선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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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르신도 아시겠지만, 때때로 고통은 녹아내려서 우리의 눈으로 흘러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말이 되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기도 하지요. 아니면 우리 안에서 폭탄으로 변해 어느 날 갑작스런 폭발로 우리를 파열시키기도 하고 말입니다......

80쪽 정도밖에 안되는 분량의 본문 뒤엔 아무런 해설도, 역자의 말도 없다. 2000년, 2001년에 프랑스와 캐나다의 여러 지면에 실린 리뷰와 인터뷰 번역이 실려있을 뿐. 아무 장식도 없는 편이 어울린다, 이 책에는.

무대는 말라버린 강을 지나는 다리 위. 노인과 손자가 주저앉아 탄광으로 가는 차를 기다리고 있다. 탄광에는 노인의 아들, 손자의 아버지가 있다. 노인은 이곳에서 기억 속, 꿈 속을 오가며 독백을 뱉지만 어딘가 먼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처럼 그 독백의 주어는 언제나 '너'다. 누구에게나 화를 내는 건널목지기를 피해 친절한 가게 주인에게 물을 얻으러 가면서 겨우 노인은 폭격으로 마을이 모두 불탔고, 아내와 며느리와 다른 가족 모두가 죽었음을 털어놓는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아들에게 그 소식을 알려주러 간다고, 그러나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아이는 귀가 멀었고, 아직 자신의 귀멂을 이해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왜 사람들의 목소리가 다 사라진 걸까 의문한다.

- 폭탄 소리가 굉장히 컸어요. 그 소리가 모든 걸 조용하게 만들어 버렸어. 탱크들이 사람들의 목소리를 빼앗아 갔거든. 그것들이 할아버지의 목소리도 가져가 버렸어요. 그래서 할아버진 이제 말을 못해요. 그러니까 이젠 날 야단치지도 못해.......

그리고 노인이 손자를 가게 주인에게 맡기고 탄광에 갈 때까지의 짧은 시간. 이 짧고 간결한 단막극 속엔 이곳이 정확히 어디인지, 왜 전쟁이 났는지, 사람들이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죽은 이들이 오히려 더 행복한 시절이라는 말만 몇 번이나 되풀이될 뿐. 그러나 이 글엔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에 대해, 아니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에 대해, 아니 보통은 잊고 사는 이런 세계만이 아니라 아예 눈에 띄지도 않았을 수많은 마을과 이전과 이후에 있었던 모든 전쟁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본문이 더없이 담담하고 꾸밈없었던 것만큼이나 글 바깥에서도 어떤 수식이나 분석도 쓸모 없어지는, 그런 진정성이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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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 - 전2권 세트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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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을 다 읽기까지 (그러니까 2부 초입까지도) 내 감상은 딱 두 줄이었다.

책이 예쁘다.
내용(글, 그림 통틀어)이 귀엽다.

바로 앞에 읽은 다른 책이 워낙 훌륭해서인지, 아니면 원래 전반부가 후반부보다 못했던 건지, 아무튼 2권으로 들어가니까 훨씬 재미있어지더라.

재미있게 읽고 깔끔하게 책을 덮긴 했는데, 대단한 잔영이 남는 소설은 아니었다. 놀랍도록 정교하고 멋진 상상의 세계였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시종일관 저만치 거리를 두고 화면을 지켜보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책 속에서 언급되는 수많은 가지치기 이야기들도 그 자체로 내 머리속을 떠돌기보다는 이 책 속의 이야기 하나의 완성에만 종사하고 있다는 느낌. (네버엔딩 스토리에서 슬쩍 언급하는 이야기들이 머리속을 어지럽힌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러니까 감상을 한 줄 더 추가하자.

책이 예쁘다.
내용(글, 그림 통틀어)이 귀엽다.
잘 썼다.

기발하고 멋진 상상력에 대한 감탄은 두번째 줄에 포함되어 있다(...)

그래도 읽는 동안 얻은 즐거움을 생각하면 별 세 개는 너무하다 싶지만, 딱 별 셋 반을 주고 싶은데 그렇게 매길 수가 없으니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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