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경의 삶과 교육사상 연세총서 3
손인수 / 연세대학교출판부 / 199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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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경은 <푸른 눈의 한국인>이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일하고 한국 땅에서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한국 땅에 영원히 묻힌 푸른 눈의 한국인이다. 그는 선교사로 한국에 와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설립한 선친 원두우(언더우드 1세, Horace Grant Underwood)의 뒤를 이어 한국 사회와 연세대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일제 식민지하에 한국에서 일생동안 일하면서 한국인의 변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또한 한국에서 일어났던 여러사건을 지켜본 증인이다. 그는 또 일제의 압정으로 좌절과 실의에 빠져 있던 한국 청년들에게 학문과 행동으로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참 교육자요 신앙인이었다. 또 그는 한국의 시골풍경과 온도로, 숭늉을 한국인보다 더 사랑했으며, 한국의 명승고적치고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학문적으로도 그는 남다른 업적을 남겼다. 특히 그의 한국학 분야의 연구가 그러하다. <한국의 수렵안내서>, <한국의 현대교육>, <한국에 미친 서구문학>, <한국관계 서구문헌목록>, <한국의 선박> 등 그의 저서와 논문들은 외국인의 한국 연구에 길잡이가 되었다. 그는 또한 이 나라의 근대화 작업에 자기가 담당한 활동을 이룩하려는 꿈을 지니었다. 그리하여 그는 연희전문학교가 언젠가는 한국인의 손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주요 보직에 한국인들을 대거 등용한 선각자였으며 사상과 신앙을 초월해 인재를 영입한 자유인이었다.

- 머리말에서 -
원한경의 아버지인 원두우, 곧 언더우드 1세에 대해서는 그나마 보편적으로 읽을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연구 성과들이 많이 있다. 한국으로 선교를 하러 들어온 선교사 1세대라는 상징성이 그 연구 성과를 이끌어내는 큰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신앙적인 교훈을 전달하기 위한 의도도 상당부분 들어있다. 그러나 선교사 2세대에 대한 관심은 그리 크지 않다. 최초의 수식어가 사라지기 때문인지 몰라도 선교사 2세대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쉽게 들어보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언더우드 2세, 원한경의 경우는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그가 선친을 이어서, 전문적인 교육학자로서 교육선교에 매진하며 연세대학교의 전신, 연희전문을 이끌었다는 사실은 그가 한 일에 비해서 그저 그렇게 흘러가 버리는 작은 이야기처럼 들리는 듯하다. 어찌되었든 이 책은 원한경에 대한 처음의 전문적인 연구서라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원한경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서는 이 책은 필독해야할 입문서이다. 저자는 원한경의 삶을 개괄한 후에 원한경의 교육사상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접근하여 이야기한다. 원한경의 교육사상은 원한경의 주요저서들, 원한경이 기고한 글들을 주제별로 체계적으로 소개해주는 방법을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원한경이 어떠한 인물이었는지, 어떠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주의깊이 느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의 관심은 저자의 학문 영역인 교육의 영역에 그 중심이 놓여 있다. 그러나 원한경은 교육학자이면서도 동시에 선교사라는 이중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선교사로서의 그의 면모에 대해서, 선교의 방법으로서의 교육이라는 측면에서도 충분히 조명되어야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 몫은 후대의 연구자들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또 다른 의미에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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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피터슨의 묵상하는 목회자 유진 피터슨의 목회 멘토링 3
유진 피터슨 지음, 차성구 옮김 / 좋은씨앗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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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영성은 성숙한 복음의 온전함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삶의 모든 요소들 - 자녀들, 배우자, 직업, 날씨, 소유, 관계 - 을 부여잡고 그것들을 신앙 행위로 경험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의 모든 재료들을 원하십니다. (13) 바로 지금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기울일 책임이 있다는 말입니다. 영성의 전제는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내가 알기 이전에 이미 무언가를 행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자신이 필요하다고 여기는 일을 하나님에게 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행하고 계시는가를 깨달아 거리에 반응하고 참여하며 그 속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14) 제가 가장 먼저 제 안에서 개발하고자 애쓰는 것은 파괴적인 정신입니다. 파괴적인 작업들은 조용하고 은밀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는 문화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에 자신을 헌신하고 작은 일들을 기꺼이 감당하려 합니다. 파괴적인 그리스도인은 결코 큰일만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는 언제나 은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현재의 문화가 최종적이라고 말하는 것을 넘어서 무언가가 있다는 의심을 심어줍니다.(25) 헌신적인 사랑, 정의 그리고 소망이 신앙인들의 정체성의 핵심 - 일상의 직업과 가정 생활에서 그런 일들을 행한다며 - 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을 발전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실제로 파괴적인 힘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26)

이 책은 유진 피터슨의 목회 시리즈(?) 중에 첫 번째로 집어든 책이다. 그는 먼저 목회자를 다시 정의한다. 그가 목회자를 정의하는 형용사는 3가지이다. '분주하지 않은', '종말론적인', '파괴적인'. 분주하지 않은 목회자는 기도할 수 있고, 설교할 수 있고, 다른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파괴적인 목회자의 도구는 기도와 비유이다. 종말론적인 목회자로서의 삶은 기도와 시와 인내로 간결해 진다. (비록 여기서는 재정의에 관련하여 이렇게 몇 개의 중심 단어를 말하긴 했지만 이는 그의 글을 전혀 드러내 주지 못하는 참으로 건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이러한 단어 하나 하나의 속을 깊이 헤짚고 들어간다.) 이제 그가 재정의한 목회자는 '삶의 모든 요소들'을 재료로 삼아 복음을 드러내는 사역을 감당하게 된다. 그래서 유진 피터슨은 이어서 목회자가 주일과 주일 사이에 다루어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룬다. 여기서 묵상하는 목회자의 의미를 다시 새겨볼 수 있다. 묵상은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고, 일상과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묵상은 주일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요소들과의 끊임없는 긴강 속에서, 평일의 삶 속에 감추어진 역설의 신비를 풀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묵상하는 목회자의 본질적인 사역은 영혼의 치유를 위한 대화와 기도를 제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여기서는 누군가를 향한(to), 그리고 누군가와 더불어(with) 사용하는 개인적인 언어의 중요성이 제시된다. 그 언어는 기도의 언어이며 대화의 언어이기도 하다. 친밀함과 관계의 언어로서의 이 언어는 하나님께 향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열어준다. 또한 그 언어는 일상의 언어이기도 하다. 그래서 '눈 뜨고 기도하는' 삶을 보여준다. 일상 속에서 삶의 환희, 세상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절망과 아픔, 세상의 어두움을 직시하게 하고, 침묵가운데서 이미 증거되고 있는 커다란 신비를 발견할 수 있게 하며, 겸손히 하나님을 향할 수 있는 예배를 열어주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는 긴장이 있다. 인간의 의지와 하나님의 의지 사이의 긴장이다. 여기서 그는 부정을 통한 긍정, 중간태에서 비롯한 참여의 의지, 의도된 수동성을 통한 사랑의 표현을 통해 교차점을 찾아낸다. 이를 말하기 위해 자신이 어린 시절 정육점에서 일한 경험과, 학창 시절 헬라어 중간태 문법을 놓고 고민했던 경험, 그리고 결혼 후에 꾸려가는 아내와의 삶의 경험을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참 재미있다. 또한 사람들과의 긴장도 있다. 이 때는 신학적 명칭으로서의 죄가 인간적 형태로서 구체화되는 삶의 모습을 세심하게 바라보며 죄 가운데 이미 넘쳐나고 있는 은혜를 발견하도록 돕는 노력들을 제시한다. 사람들의 요구에 끌려다니거나 맞추는 일이 아니고(이는 직업적인 일로 목회를 제한하는 행위이다), 사람들을 다그치고 강요하며 이끌어 가는 일도 아니다(이는 목회자들 스스로가 하나님의 지위에 올라가는 일이다).파괴적인 목회자, 종말론적인 목회자로서의 자기 인식과 그에 따른 목회적인 행동이 요구 지점이다. 말씀과 성례는 이 때 목회자를 단단히 묶어내는 돛대과 같다. 

유진 피터슨의 글은 때로는 이야기같이 때로는 강의 같이 때로는 시와 같이 그의 글은 여러 갈래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 속에는 그의 목회적인 삶과 신학적인 사유가 담겨 있다. 그리고 잔잔한 여운과 함께 조용하지만 묵직한 파문을 남긴다. 이러한 그의 글을 읽는 것은 참 즐겁다. 나는 참 즐거운 여행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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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을 찾다 IVP 영성의 보화 1
브라이언 맥클라렌 지음, 박지은 옮김 / IVP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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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훈련은 우리로 하여금 살아 있음을 실천하여 인간다워지게 하기에 인생 훈련 또는 인간성 훈련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것은 인격을 성숙시킬 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기민하게 살아 있고 깨어 있게 하며 인간다워지게 한다. (32) 영성훈련은 볼 수 있는 누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이 되어 단순한 생존이 아닌 삶 - 비록 진정한, 풍성한, 성찰된, 의식 있는, 살 만한 가치가 있는, 먼진과 같은 형용사들로 제한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지만 - 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것은 변함없이 생동하는 삶이다. 영성훈련에는 또 다른 차원이 있다. 영성훈련은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가 되기 원하는 사람의 됨됨이를 연습하는 방식이다. 영성훈련은 언제나 깨어 있는 눈으로 '생명'을 발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이란 생명 너머를 가리킨다. 즉 영성훈련은 영에 대한 것이다. (36) 하나님에 대해 깨어나고 항상 깨어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영성훈련의 세 번째 이유다. (37)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영성훈련의 이유는 삶의 방식을 좀더 의도적이고, 주의 깊으며, 통찰력 있게 재구성하는 것이다. (38) 이 길에서 우리는 평화와 기쁨과 절제와 정의를 훈련하는 법을 배운다. 이 세상의 미래는 그 길을 찾고 살아내며 그리로 다른 이들을 초청하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238)

IVP에서 준비하고 있는 영성의 보화 시리즈의 첫 권이다. 이 후로 7권의 책이 더 기획되어 있다. 이 책은 후속 편들의 도입부와 같은 역할을 해 주고 있다. 영성에 대한 의미를 재고하게 하며, 영성을 위한 훈련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실제적인 방법으로서 '고대의 길'을 제시하는 데 그것은 정화와 조명, 일치의 길이다. 그 길은 저자가 아브라함 종교 전통이 공유하는 7가지 훈련인 "정기적인 기도, 금식, 안식, 거룩한 식사, 순례, 거룩한 절기 준수, 헌금"의 훈련을 통해 구체화 될 수 있다. (이 책의 후속편으로서의 7권은 이 훈련들을 각각 다루는 것으로 기획되어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영성 훈련의 구체적인 방법을 포괄적으로 그리고 통전적으로 제시하면서 삶의 방식으로서의 영성을 그려낸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방식으로서의 영성이 열어줄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을 참 인간성의 회복(인격), 참 삶의 만끽(생동하는 삶), 하나님 경험(일치) 그리고 평화의 세상 구현으로 말한다. 하나 주목해서 볼 수 있는 부분은 영성훈련의 방식을 아브라함 종교 전통을 뿌리삼아 이야기함으로써 저자가 유대교와 이슬람교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대화의 가능성을 마지막 부분에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다. 평화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그것이다. 현재 한국교회의 정서상 이러한 논의가 어느정도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나 독단적 신앙을 절대화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미루어 볼 때 이는 분명 심각하게 재고해 보아야 하는 문제임은 분명하다.

앞에서 이 책의 목적을 짚어 보았는데, 그것은 후속 편들의 도입부, 개론서로서의 역할이었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이 책은 깊이 있는 내용을 차근차근 세세하게 풀어내기 보다는 큰 이야기들을 크게 크게 묶어 다루고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틀거리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나 할까. 여하튼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삶의 방식으로서의 영성에 대한 의미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기존의 교회에 대해서, 종교적 신앙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와 유사한 책자들이나 생각들을 접해 보았다면, 이 책을 통해 깊이 있는 통찰을 얻기에는 조금 아쉬운 듯한 인상을 지울 수는 없다. 후속편들이 어떻게 나올지를 한 번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앞서 말한 바 있는 아브라함 전통의 종교들에 관한 열린 자세와 평화의 가치를 이루어가는 새 세상에 대한 희망의 언급은 분명 주목해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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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 포인트 - 기독교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12가지 전환점
마크 A. 놀 지음, 이석우 외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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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장은 터닝 포인트 자체를 비교적 상세히 설명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왜냐하면 역사적 사건을 상세히 연구해 보면 '교회사'란 결코 주류 교리들이나 충돌하는 원칙들이나 불가피한 결과물들의 위대한 영원함(great eon)을 통한 거창한 흐름만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빈번히 일어나는 불분명한 사고와 주저하는 행동과 어느 정도는 우리 자신과 같은 인간들이 경험했던 예상치 못한 일들이 누적된 결과들이다. 터닝 포인트들에 대해 더욱 더 상세한 정황을 제공하기 위해 각 장은 다루어진 터닝포인트와 가까운 시기에 쓰인 찬손으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을 맺는다. 각 장 역시 역시 포인트에 참여하거나 그것에 의해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쓴 글에서 발췌한 여러 개의 긴 인용문을 포함한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의문이 제기될지 모른다. 도대체 왜 교회사에 관심이 있는가? 1. 첫째로 기독교 역사는 기독교 신앙이 가진 변형시킬 수 없는 특성에 대해 계속적이고 구체적인 증거를 제공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교회사에서의 역사적 인물들로부터 받은 영향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 즉 성육신, 십자가 처형, 부활, 승천하신 사건들 안에서 무한한 연관성을 갖는 것이다. 2. 교회사가 두 번재로 기여한 것은 성경해석에 대한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과거의 잘못된 해석을 살펴볼 때 얻을 수 있는 유익은 오늘날 소중한 성경 해석들이 이전 시대의 분명히 비정상적인 해석처럼 우리 시대의 관습에 의존하는 것일 수도 있고, 성경의 실제 메시지와 상관없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3. 또한 교회사 연구는 그리스도인과 주변 문화의 상호작용을 탐구하기 위한 일종의 실험실이라는 점에서 유용하다. 기독교 역사는 명확한 답변을 제공할 수는 없지만 상반되는 이야기들이 혼재해 있는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있다. 4. 역사 연구에 있어 크게 부각되는 점은 교회가 자신의 구원자이며 자신을 거룩하게 부르신 자를 자주 배반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교회를 지탱시키신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인데, 이는 기독교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이점이다. 즉 과거를 연구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적절한 태도를 형성시키는 데 유익을 준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교회사 연구를 하면 우리 자신과우리 신앙에 대해 더욱 겸손해지게 된다.

우리가 기독교 역사를 미화하지 않고 실제적으로 연구를 하게 되면, 이기주의, 반란, 압제, 편협성, 게으름, 소심함, 살인 그리고 다른 모든 욕망과 함께 권력에 대한 갈망이 세상에서만큼이나 광범위하게 아주 수치스러울 정도로 교회에서도 번성했다는 것이 분명해지게 된다. 또한 교회사에는 모든 긍정적인 흐름, 고귀한 사례들과 함께 인간의 사악한 행위가 풍부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한 기록을 보면 인간들의 조바심보다 하나님의 인내가 더 넓으며, 인간들의 범죄보다 하나님의 용서가 더욱 힘이 있으며, 인간의 죄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크 A. 놀,『터닝포인트』시작하면서 중에서 -

상당히 오래되었다고 볼 수 있는 기독교의 역사를 다루는 것에 있어서 효율적인 방법 중의 하나는 단면을 살펴보는 것이다. 분기점이 될 만한 시대, 사건, 인물을 중심으로 다루면서 전체적인 역사를 읽어낼 수 있는 하나의 시각을 얻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책이다. 12개의 단면을 통해 2000여년의 기독교 역사를 읽어낼 수 있는 흐름을 제공해 준다. 저자의 이런 시도는 그의 비교적 균형잡힌 시각을 통해 충분히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무엇보다 무조건적인 섭리를 들이대거나, 자신이 스스로 밝힌 복음주의 신념에 입각한 지나친 편가르기식 혹은 편향적 평가와 판단을 내리지 않는 선에서, 조금은 더 폭넓게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여 삶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역사의 이해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교회사 연구의 의미는 그런 면에서 그의 글쓰기의 탄탄한 기둥과 같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조금은 고백적인 내용, 신앙적인 의미 부여 차원의 내용이 자연스레 드러나고 있지만 그리 밉지는 않았다. 도리어 간간히 드러나는 고백적인 서술은 진지한 되물음 거리를 던져주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편안하게 읽어내려 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내용을 정리하도록 도와주는 질문과 오늘날의 교회에 적용할 점을 생각해보도록 하는 질문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질문거리는 실제로 목회를 하고 있는 한 목회자가 자신의 교회에서 연구 모임을 가져보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런 정도의 독서 모임을 가지고 있는 교회내 공동체가 있다는 것이 참 흥미로웠다. 이 부분은 지금의 한국의 교회에서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기독교인은 역사성과 떨어질 수가 없다. 기독교 신앙 자체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굴곡진 사건 사고들을 통해서, 그 가운데 있었던 보이지 않는 섭리를 통해서 하나 둘 모양새를 갖추고 이제까지 전승되어 온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폭넓고 다양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 보는 것이야 말로 신앙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런 정도의 내용을 함께 읽어가는 것은 조금은 진지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더욱 필요한 과정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또한 기독교의 길고 긴 이야기에서 어느 정도의 정리된 지식을 갖추고자 원한다면 그 때에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여러 모로 실용적인 저서라고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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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 정호승 산문집
정호승 지음 / 비채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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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자기 자신을 용서하라. 곡선으로 직선을 그려라. 십자가를 등에 지고 가지 말고 품에 안고 가라.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사랑하라. 왜 가장 원하지 않는 일에 인생을 낭비하는가. 오늘이 지나면 다시 못 볼 사람처럼 가족을 대하라.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목표를 세우면 목표가 나를 이끈다. 죽음을 두려워하면 매일 죽으나, 두려워하지 않으면 단 한 번밖에 죽지 않는다. 마지막이라고 느꼈을 때 30분만 더 버텨라. ... 한 마디 말이 내 일생을 바꾸어놓을 수 있습니다. 한마디 말이 절망에 빠진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습니다. 한마디 말로 빙벽처럼 굳었던 마음이 풀릴 수 있습니다. 한마디 말로 지옥과 천국을 경험할 수 있고,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갈 수 있습니다. 한마디 말이 비수가 되어 내 가슴을 찌를수 있고, 한마디 말이 갓 퍼담은 한 그릇 쌀밥이 되어 감사의 눈물을 펑펑 쏟게 할 수가 있습니다.    - 책을 펴내며 중에서 -

인간답게 사는 것.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분명 충분히 공감할 수 있고 수긍할 수 있는 길들.
그러나 생각따라 말따라 쉽게 가기 어려운 길들. 인간답게 사는 것. 
너무나 진부하기도 하고, 흔해 빠진 이야기들이기도 한 것.
그러나 그 일상의 일들이 진부하고 흔해 빠진 것이기에 도리어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대화하도록 열어주는 것.
느낌으로 마음으로 말없이 그저 말할 수 있기도 한 것.
그러나 여전히 닿을 수 없는 거리를 맴돌기만 하기도 한 것. 인간답게 사는 것.
그래도 살아가야하는 것. 인간답게 사는 것.

느낄 수 있다면, 느낌을 느낌으로 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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