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슬픔 -상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1994년 3월
평점 :
품절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솔직히 완과 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직 내 눈에 인간적으로 보인 사람은 은서 한사람 뿐이었다. 자신이 버린 여자를 나중에 우연히 결혼식장에서 다시 보고 그제서야 깨닫고 매달리고 협박하는 완도,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죽자사자 다른 남자에게 달려가는데도 조용히 바라만보다가, 결국은 그녀를 의심하고 파멸하게 만드는 세도, 둘 다 정상인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나의 시각으로 대단히 인간적인 모습은 오직 은서뿐!

이 책의 상권을 읽으면서 좀처럼 눈에 글자가 들어오지 않았다. 지루하다고나 할까. 그렇다. 솔직히 상권은 지루했다. 그러다 상권의 후반부에서부터 급물쌀을 타기 시작하여 하권은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다. 나의 인내심이 조금만 모자랐더라도 나에게 있어 이 책은 또 하나의 미독의 책으로 남았으리라.

나에게 이 책은 어떤 의미일까. 사랑은 없다? 아님 위에 독자에세이에 나왔듯이 현재의 사랑에 충실하라? 둘 다 아닌거 같다. 후자의 경우, 은서는 현재의 사랑이 세가 아니었다. 그걸 나중에서야 깨달았기에 그건 신이 아닌 다음에야 알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따라서 나의 결론은 사랑은 어려운 것~! 이게 이 책을 관통하는 얘기꺼리가 아닌가 싶다. 사람의 감정은 알 수 없고, 그러기에 더더욱 사랑은 어렵다라고 본다.

하지만 만약 은서가 마지막에 죽지 않았고 이 소설이 상,하권이 아니라 1,2,3으로 나가는 소설이었다면, 또 다른 얘기가 뒤에 나올런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그 경우에는 삼류겠지만 또 은서와 완이 만날 수도 있을런지 모른다. 그랬다면 역시 사랑은 하나다. 그리고 변치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었겠지.

나는 이 소설의 작가가 과거 어떤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얼핏 듣기로는 실연의 아픔도 갖고 있다고 들었다. 그녀의 이런 과거가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은서를 통해 조금이나마 표현되었을까. 그게 궁금하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작가가 경험한 과거의 사랑은 일반적인 것이 아니고, 지독히도 운이 나빴다고 말이다. 그러니 세상을 자신의 과거로 인해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완과 세. 둘 다 지독히도 여자인 은서를 괴롭히는 인물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입장이 반대로 뒤바뀌긴 했어도 불쌍한건 은서이고 남자 둘은 죽일 놈들이다. 그들이 여자를 괴롭히는 방법도 지독히 이기적이거나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를 나쁜 놈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내가 보기엔 은서가 전적으로 의도한 자학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망치고자 하면 한도 끝도 없다. 그것으로 인해 고통받는게 자신 혼자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주위의 사람들도 그로 인해 졸지에 가학자로서 평가받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나는 묻고 싶다. 대체 그렇게 자신을 우습게 알고 좋아해주지 않는 남자를 그토록 오래 따라다니고 스스로 상처받으라고 한 사람이 있는가? 또는 자신이 사랑한 남자가 자신을 떠났기에 그 당시 자신을 그토록 사랑하고 쫓아다닌 남자와 결혼하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나? 이런 얘기를 한다면 무척이나 욕을 먹겠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이 세 주인공중에 제일 인간적인 모습이 은서라고 말했듯이 나는 그녀가 그래서 가장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녀 주위의 남자는 그녀의 그런 인간미를 살리기 위해 다소 지독한 모습으로 등장하였고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의 두 남자가 감히 그녀로 인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통상 여자가 남자보다 현실세계에서 물리적인 측면을 제외하고는 강하다. 이 소설속의 주인공 세명의 성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한 남자가 두 여자에게 당하는 과정이 훨씬 자연스럽지 않은가? 나는 그저 은서같은 여자가 과연 현실세계에 몇이나 있을지 의문스럽다. 은서같은 남자도 보기가 힘든 세상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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