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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교실에서 가르쳐 주지 않는 영어
이종세 지음 / 교실미디어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최고의 책중 하나죠.
한국에서 나오는 시시껄렁한 대부분의 영어책과는 전혀 다른.....
진짜 영어를 위해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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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책은 소설가나 시나리오 작가 혹은 기타 여러가지 종류의 창작을 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책일 것이다. 왜냐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모두 우리의 뇌중 우반구에 문제가 생겨 일반인들의 상식으로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행동을 보이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 이런 일을 겪지 않고 이에 대해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면 수많은 시간을 신경정신과 등에서 보내야 하리라. 아울러 이 책은 예상하듯이, 상당히 특이하고 극단적인 사람들의 내용들이다. 바로 여기에 이 책의 효용성이 있다 하겠다.

그렇지 않은 일반적인 나같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물론 예상을 깨고 이 책의 저자인 올리버 색스 교수는 아주 깔끔하고 정갈한 문체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하지만 문체가 담고 있는 내용이 내용인지라 소설이나 기타 다른 문학작품, 혹은 역사서 같은 재미를 줄지는 의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기대했던것보다 재미가 없었다.

책 자체는 이쁜 표지에 중간중간에 들어간 삽화까지 아주 깔끔했다. 그리고 책의 크기도 소장하기에 아주 이상적으로 이쁘게 되어있다. 미래 작가를 꿈꾸거나 기타 예술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이들에게는 상당히 든든한 백그라운드가 되줄 것을 확신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렇게 유용할런지 의심스럽다.

"절단 환자의 경우 환각이 대단히 중요하다. 다리가 의족일 경우, 소위 신체 이미지 즉 환각이 의족 부분과 정확하게 들어맞아 일체감을 느끼지 못하면 절대로 만족스럽게 걸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환각이 사라지면 오히려 불행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환각을 불러일으키거나 되살리는 것이 긴급한 과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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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작년 말, 그러니까 인천국제공항에서 출국을 기다리며 산 책이다. 미국까지의 기나긴 여정, 그리고 시차극복 실패를 예상한 유비무환, 아울러 잠못드는 도시인 시애틀에 들고가 읽기에 딱일거 같아 선택했다. 나의 이런 선택은 탁월했다. 비행기는 연착되고 시차는 30대 중반이 넘어서면서부터 아예 될 생각을 안하니 말이다. 하지만 왜 하필 그 많은 책들 중 '토쿄타워'였으냐고 묻는다면, 그건 인천공항 서점의 베스트셀러란에 위치에 있었기에 그랬다고, 그리고 책 부피도 그다지 크지 않아 적당히 읽을 수 있을거 같아 그랬다고 답할 수 밖에 없겠다. 선택의 탁월성은 책 자체에 있지 특정 소설이나 작가에 있지 않았다.

에쿠니 가오리라는 작가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그녀의 작품을 실제 읽은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게 뭐니 이게?  대충 아무렇게나 막 섞어놓고 저자도 잘 모를 그런 몽환적 분위기를 막 연출하면서 신들린듯한 카메라 워크로 때우면 그게 소설 되는거니?',  이거다.

사실 읽은지 몇달이 지나서 내용도 잘 기억이 안난다. 중년의 바람난 아줌마와 그녀를 빨아먹고 사는 젊은 놈팽이 얘기다. 하기사 지금까지 이 소설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면 이 소설이 훌륭한 소설이겠지......흔히 우리나라 심사위원들이 무슨무슨 작품상을 받은 소설 뒷부분에 심사평에서 하는 말 있지 않은가.   "주제를 포착하고 형상화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역시 훌륭한 소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읽은 이후 독자로 하여금 깊은 사색에 빠지게 만든다." 등등....

이런 심사위원들의 붕어빵 심사평에 근거해 평가를 해본다면 난 대체 가오리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걸 모르겠다. 물론 모든 소설이 뭔가 시대에 족적을 남길만한 그 어떤 위대한 철학이나 사유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철도원' 등을 쓴 아소다 지로와 같은 탁월한 스토리 텔러로서의 모습도 보이지 못하는거 같아 왜 이런 소설을 썼는지 잘 모르겠다. 결국 그녀도 생활인으로서의 붕어빵 장수에 불과한 사람이던가?

하지만 많은 한국의 독자들을 보건데, 그녀에 열광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다는건 대체 무엇을 반영하는 일인가? 우리가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바로 그런 분위기 때문인가? 왠지 모를 쓸쓸함 혹은 고독. 뭐 좀 그럴듯하게 말하자면 현대인의 소외라던가 대충 갖다 붙일 단어는 많다. 하지만 중경삼림은 내용이 있으니 결코 같은 부류로 볼 수 없고 그것도 아니면 대체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로서는 답을 내릴 수 없을거 같다. 다만, 앞으로 에쿠니 가오리라는 작가의 작품은 다시 읽게 되기 힘들것 같다. 바로 몇일 전 읽었던 일본의 추리소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에서 받았던 실망감과 더해 일본 소설에 대단히 실망한 최근 몇달이다.

뭐 대중적으로 일본소설이 인기를 끄는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지만 작가로서의 일본과 한국의 소설가들을 보자면 확실히 한국쪽이 나은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좀 더 시간이 지난다면 일본소설의 열풍도 거품처럼 사라질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단순함을 찾는게 인지상정이겠지만 문학작품까지 바닥에 떨어져서야 곤란한거 아닌가 싶다. 무슨 경영관련 서적에는 쥐새끼가 치즈를 다 먹고서는 어디로 갔냐고 하는 말도 안되는 내용으로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는 책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하기사 요즘엔 무슨 어떤 놈이 멋졌다 라는 따위의 소설 아닌 소설이 득세하는 마당이니 할 말은 없지만 많이 아쉽다는게 요즘 나의 마음이다. 어쩌면 '도쿄타워'가 노렸던게 바로 이런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알맹이 없는 내용으로 많은 독자로 하여금 결국 책을 다 읽은 이후 느끼는 이런 쓸쓸함, 아쉬움을 남기게 하는 고도의 지적 노림수.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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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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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은 정말 오랜만에 읽어봤다. 과거 한국의 김성종 작가의 책을 거의 전작으로 읽었었고, 그외에 아가사 크리스티와 같은 유명한 외국추리작가의 소설을 읽었으나 일본 추리소설은 읽은 기억이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알라딘에서 일본추리작가 소설을 따로 묶어서 보여줬고 그중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라는 작품이 판매량 등에서 1위여서 용기를 내어 구입하여 읽었다. 결과는 대단한 반전이었으나 실망 그 자체였다.

이건 추리소설이라고 볼 수 없다. 추리소설이란 작가가 창조한 탐정과 범인과의 숨막히게 전개되는 머리싸움이다. 이게 통상의 추리소설의 모습이고 그 매력때문에 나같은 사람이 추리소설을 읽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탐정과 범인과의 지능적인 플레를 창조하는데 한계를 느꼈는지 이번에는 독자를 속이려고 작정을 했다. 그리 독하게 맘을 먹었으니 속아주는게 독자된 도리이겠으나 왠지 뒷맛이 찜찜한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숨막히는 긴장감, 하나씩 드러나는 어둠의 세계의 추악함, 명석한 탐정의 두뇌 플레이,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가는 범인의 용의주도함,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가 없다. 그저 처음부터 끝까지 덤덤히 읽을 뿐이다. 가독성은 좋다. 그리고 일반 문학작품과 같은 세밀한 문체나 묘사 따위는 기대하지 않는게 좋다. 사실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그런것까지 기대한다는건 무리이리라. 그러나 추리소설에 거는 근본적인 기대조차 충족시켜주지 못한 이 소설이 일본에서 몇개의 상을 수상했고 팔리기도 꽤 많이 팔렸단다. 대체 한동안 추리소설을 전혀 보지 않은 사이에 이 바닥이 왜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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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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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열정이라는 작품이 오늘로 두번째이다. 2년전쯤 읽고 귀찮아서 리뷰를 안했는데 이번에 다시 읽고는 몇줄이라도 남기고 싶어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린다.

사실 이 작품의 내용은 지극히 통속적일 수 있다. 왜냐면 자신의 친구의 부인과의 불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주말 드라마 <애인>이나 혹은 유행가 <잘못된 만남>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그저그런 내용일 뿐이다.  그런데 왜 이런 작품이 좋을까? 그건 이들 주인공들의 삶, 그중 특히 장군의 삶과 그의 인식이 드라마나 유행가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애초에 장군과 그의 친구 콘라드는 다른 사람이었다. 물론 장군과 그의 어머니, 그리고 그의 부인인 크리스티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현실적이었지만 그의 부인인 크리스티나와 콘라드는 예술적이었다. 그는 사랑없이는 살 수 없는, 최소한 한 사람에게는 감정을 내보이고 싶은 갈망을 그의 어머니쪽으로부터 물려받은 기질이었으나 본디 가난한 집안의 콘라드는 떨쳐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책임감에 힘겨워 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프랑스에서 그의 어머니를 만나 불행했듯이 그가 크리스티나를 만나 고독속에 칩거한건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대물림이었다. 사람이 바뀐다는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여기서 바뀜이란 이른바 '자기 정체성'을 의미하는 일이리라. 아마도 자기 정체성의 상실 내지 변화는 오직 현실세계에서는 완벽한 과거 기억상실로만 이루어 질 수 있으리라.  하리수가 성전환을 하더라도 겉만 변할 수 있듯 장군도 크리스티나도 콘라드도, 그리고 그의 어머니도 시간과 장소, 혹은 입는 옷과 사는 삶의 수준이 바뀌었을 뿐 근본적으로 그들은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마찬가지일 뿐이다.

안타까운건 작가도 소설속 장군의 입을 빌어 말했듯이 이런 비극적인 만남이 지속적으로 재현된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것은 절대적으로 순수영혼들에게만 해당사항이 있다 하겠다. 현실에 대입을 해보면 과연 이런 영혼의 소유자와 용기를 가진 이가 몇이나 될런지.

장군이나 콘라드의 비겁함과 자존심이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둘 중 누구 하나라도 손을 내밀었던들 그녀는 그렇게 혼자 죽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있은 후 41년이 지난 지금까지 죽지도 못하고 그녀를 그리워하면서 그렇게 바보처럼 삶을 지속시키지도 않았으리라. 작가는 묻고 있다. 그녀에 대한 그들의 사랑 그리고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느냐고. 그러나 그들은 철저히 도망쳤다.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쯤 그들은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고 있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들이 41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과거를 껴안고 살아야 했느냐고. 과거나 미래에 사는 자는 결코 현재를 볼 수 없는 법이다. 물론 그에게 과거가 혹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그 인생에서 다시 만날 수 없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고 그 기회를 날려버렸다고 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과거에 연연하는건 누구나 다 알듯이 미련한 짓이다.

니체는 이런 인간들을 <역사적 인간>이라고 불렀다. 현재 그리고 지금 살아가는 삶을 그 자체로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에만 집착하거나 미래에만 매달리는 몽유인들 말이다. 그들은 이 지상에서 불해한 삶을 숙명적으로 짊어질 수 밖에 없다고 니체는 단언한다. 따라서 니체는 망각이야 말로 행복의 첫번째 조건이라고 말한다. 잊어버렸어야 했다. 현실은 진실이 아니라는 말로 계속해온 진실찾기 게임을 당장 그만두었어야만 했다. 결국 그가 원한 진실은 그 진실의 창끝을 상대의 가슴에 쏘아 던져버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장군의 고독을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우리도 그와 다르지 않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정말 장군과 콘라드 그리고 나는 남을 위하여 한번 뜨겁게 타오른적 없는 연탄재만도 못한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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