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




toatopia 2004-02-07  

Re: 爲에 대해서..2
제가 생각하는 해석은 이렇습니다. '위'는 단순히 판단을 나타내는 술어로 영어의 'be' 동사와 '유사'하다고 봅니다.
'천하의 모든 이가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것은 추한 것일 뿐이다.'
이런 해석은 동어반복처럼 보여서 불만족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에 동어반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아름다운 것과 두번째 아름다운 것은 의미상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처음의 '美'는 천하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하지만 '爲美'는 천하사람들의 미적 판단이 얼마나 강하게 고착되었는가를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이때의 美는 모든 사람들의 가치판단을 겪은 후에 도달하는 '절대적 美', 모든 이의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는 어떤 '절대적 아름다움'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구절의 의미는 '천하 사람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아름답다고 부르는 것이 항상 고정적이고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것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이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어떤 관점에서 보자면 추한 것일 수도 있다.' 제 풀이에서는 '일 수도 있다'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노자는 '已'라는 강한 단정의 어기사를 사용함으로써, 즉 '아름다움이 곧 추함'이라고 강하게 설파함으로써, 우리의 상식의 파괴를 노리는 파워있는 레토릭을 구사하고 싶었다고 생각됩니다.

이경숙 저자와 님의 해석에 의하면 '아름답게 하면'이라고 말씀하셨으르모, 아름답게 할 수 있는 '무엇'이 존재한다는 뉘앙스를 풍기게 됩니다. 즉 '천하사람들이 도달하려고 노력하려는 절대적 아름다움이 있지만, 천하사람들이 고작 도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은 이 절대적 아름다움이 아니며, 따라서 오히려 천하사람들이 꾸며낸 아름다움은 추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라는 뉘앙스를 풍기게 됩니다. (어쩌면 제가 오해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경숙 저자의 해석은 저 같은 독자를 발생할 수도 있는 해석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반대개념(유무, 고저,...)이 '相生' 한다는 아래의 구절들과도 다소 어긋나는 점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논어의 어법으로 노자를 해석할 수 있냐고 물으셨는데요, 노자 역시 한 시대를 산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시대의 보편적 어법을 벗어나서, 기괴한 어법을 창시하며 오로지 수수께끼 같은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답할 수 밖에 없네요.

이상이 저의 관견이었습니다.
이경숙 저자의 책은 반품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경숙 저자의 글을 참조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점 양해해 주십시요.

궁금하신 점이나 질타하실 것 있으시면 메일 주십시요.
메일 주소는 toatopia@kornet.net입니다.

그리고 블로그가 무었인지 궁금하네요...
님의 해석도 궁금하구요...

그럼 안녕히 계십시요.
 
 
 


toatopia 2004-02-07  

Re: 爲에 대해서..1
안녕하세요, 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성함을 몰라 님이라 칭하겠습니다. 무례라면 용서해 주십시요.)
부족한 저의 리뷰에 평을 해 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저도 님의 평에 대해 저의 좁은 소견을 감히 아뢰려 할 것 같습니다.

우선 님의 해석에 대해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님의 해석은
天下皆知美之爲美, 斯惡已를 '세상이(天下) 모두(皆) 아름답게 하면(爲美, 꾸미면, 만들면) 아름다워 진다(美之) 아는데(知), 이는(斯) 추함(惡) 따름(已)이다(덕택이다)'로 풀으셨습니다.
1. 우선 말씀드릴 것은 님의 해석대로 하자면 知의 목적어는 爲美, 美之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문도 언어인지라 인간 보편의 사유구조를 따르기 때문에 '아름다워진다'의 조건인 '아름답게 하면'은 '아름다워진다' 앞에 위치해야 옳을 듯 합니다. 현재 도덕경의 쓰여진 대로라면 이경숙 저자와 같은 해석은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2. '美之'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美之'를 '님의 해석대로' 동사구로 해석해도 그 의미는 '(어떤 것을) 아름답게 여기다' 혹은 '(어떤 것을) 아름답게 만들다'로 될 수 있을 뿐이지 '아름다워진다'의 자동사적 해석은 가능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것은 고대 한문의 어법이 그런 것입니다. '之'가 들어갔다는 것 자체가 '美'를 타동사로 해석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3. 이경숙 저자와 님의 해석에 가깝게 해석하려면 '美之爲美'를 '美之' 즉 '(무엇을) 아름답게 만들면' '爲美' 즉 '(그것은) 아름답게 된다'로 해석하는 길 뿐입니다. 즉 '美之則爲美'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런 해석은 가능한 것이긴 하지만, 이런 의미로 글을 썼다면 노자가 글을 명확하게 구사했다는 느낌이 글에서 오지 않습니다.
4. 제가 생각하는 '之'에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知'의 목적구인 '美之爲美'의 '之'는 절이 구로 될때 사용되는 조사입니다. 원래 절은 '美爲美'(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인데 이것이 知의 목적어로 쓰이기 위해 구가 되면서 之가 삽입되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노자가 길을 간다'=> '老子行道'가 구가 되어 '노자가 길을 감'이 되면 '老子之行道'가 되는데, 그 때의 '之'가 바로 위의 '之'와 같은 용법으로 쓰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