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동화 행복한 세상 10 - 시간이 지나도 결코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습니다 TV동화 행복한 세상 10
박인식 기획.구성, 신재원 그림 / 샘터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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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에서 가끔씩 TV동화 행복한 세상을 보고 나면 마음이 훈훈해 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로선 처음 접하는 것이지만 이 TV동화가 책으로 벌써 열번재를 맞이한 모양이다. 역시 방송에서 볼때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마음을 훈훈하게 덮혀주는 마음의 난로 같은 책이었다.

 

  사람냄새 나는 훈훈한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세상이 각박해지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희망을 본다. 어려운 형편에 우유배달을 하면서도 작은 나눔을 실천하는 아주머니. 의과대학을 10년만에 졸업한 뇌성마비 3급 장애인이면서 의사인 김세현 소장.

예수님께서는 동전 누 닢을 성전함에 넣은 가난한 과부를 보시고 '이 가난한 과부가 넣은 돈은 헌금함에 들어 있는 모든 사람의 것보다 많은 돈이다' 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넉넉치 않은 형편임에도 남을 돕는 사람들이야 말로 재벌들이 마지못해 내놓는 몇억의 재산보다 많은 가치를 가진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넉넉치 않다는 이유로 남을 돕는 일을 주저한 것이 부끄럽다.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이 점점 삭막해지고만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자극 적인 사건 사고에 길들여져 TV에서 잠깐씩 나오는 나눔의 훈훈한 이야기에 주목하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 또한 우리다. 이 책을 통해 세상은, 사람들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유명한 인물들이 어려움을 이겨낸 이야기들이 함께 담겨 있지만, 무엇보다 소박하고 평범한,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작은 행복에 감동을 받는다. 가족들의 작은 행복과 용서, 눈물이 날만큼 슬프고 감동적인 이야기들도 담겨 있다. 행복이라는 것이 돈이나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로 전달될 때 있는 것이 아닐까? 역시 사람은 사랑을 나눌때 진정한 인간의 가치를 발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나처럼 훈훈한 기분을 느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짧은 이야기와 그림들이 함께 담겨져 있어 읽기도 쉽고 재미와 감동도 있다. TV보다 책을 즐겨 읽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방송으로 볼때보다 더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아름답고 훈훈한 이야기들이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그렇기 되기 위하서는 나부터도 작은 실천 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겠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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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철학적인 하루 - 열여섯 살 소년, 철학 모험을 떠나다 청소년, 세상을 날다 1
피에르 이브 부르딜 지음, 이주희 옮김 / 담푸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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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혼란함과 두려움이 함께 찾아오게 되지 않을까.

경우에 따라 변화를 알면서도 외면하기도 한다. 내게 익숙한 것들이, 가까운 것들이 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두려움에. 애써 부정하며 자신을 납득시키려 한다.

 

  필리베르는 어느날 갑자기 존재하는 주변의 모든 것에 강한 의문을 갖는다. 여느때와 전혀 다름없는 평범한 일상에서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필리베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은 필리베르를 힘들게 한다. 역사 시간에 자신을데카르트라고 말하는 필리베르. 학급에 작은 혼선을 빚은 벌로 철학 선생님과 함께 철학적인 하루를 보내게 된다. 벌이라기 보다는 역사선생님의 배려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민감한 아이의 변화를 눈치채고 그에게 도움을 주도록 주선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학생이 만약 수업시간에 이런 소리를 했다면? 장난쯤으로 치부되어 매를 맞을 것이고 아이들의 비웃음을 사 두고 두고 놀림감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칼벨 선생님과 바닷가로 철학여행을 떠나게 되는 필리베르. 필리베르는 칼벨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생각이 깨어나게 된다. 칼벨 선생님으로부터 현상에 대한 답을 듣는 강의가 아닌, 대화를 통해 도움을 얻어 스스로 깨닫게 되는 과정인 것이다.

 

  통념과는 다른 독특한 발상을 하면 창조적인 사람이 되거나 4차원의 정신세계를 지닌 사람으로 취급된다. 우리나라엔 후자의 경우가 다수를 차지하지 않을까. 획일적인 교육만 받고 그것이 진리라 믿으며 자라온 사람들에게 독특한 생각은 경계 대상이 되어버린다. 한국 학교에서 필리베르 같은 학생이 나왔다면 왕따를 당하면서 놀림을 받았을 것이다. 정상이 아닌 것쯤으로 취급되었을 것이다. 학교 선생님들도 마찬가지 였을것이다. 카벨 선생님 같은 교사가 있을것 같은 프랑스의 교육환경이 무척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획일적인 교육의 폐혜는 의식하지 못하게 생활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꿈이 없고, 자기 주장도 없는 사람들, 자기 철학이 없어 쉽게 좌절하게 된다. 자살률 세계 1위라는 현실이 어느정도 그것을 증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나라도 유년 시절부터 철학교육을 받아, 아이들이 어른들의 삶에서 보고 배우는 물질 만능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닌, 철학적 사고로 자신의 가치관을 올바로 정립할 수 있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지금과 같은 심각한 학교폭력 왕따 문제나 자살률은 크게 감소되지 않을까.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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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고 사소한 것들의 철학 - 언제 어디서든 거부할 수 없고, 상관해야만 하는 질문
마르틴 부르크하르트 지음, 김희상 옮김 / 알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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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적 담론이라고 하면 뭔가 거창하고 대단한 것들을 연상하게 된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문학이란 무엇인가 등의 거대 담론은 중요한 철학적 담론으로 수많은 철학자와 작가들의 질문이 되어왔다. 하지만 사소한 것들의 철학이라니. 철학하면 무언가 나와는 상관없고 일상과는 크게 연관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도 철학하면 무엇인가 거창한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우리 주위에 흔히 볼 수 있으며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 버리는 것들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위의 거대 담론에 대해서 부정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소한 것들로부터도 얻어낼 수 있는 '생각'이다. 주변의 사소한 것들도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작고 사소한 것들에도 역사가 있고, 그 역사를 거쳐온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기존의 가치에서 전해내려온 낡고 고정된 관념들을 그저'알고있다'며 시간과 문화에 따라 변화된 새로운 의미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한 의미가 있다고 누군가 해석하는 것을 읽은 기억이 난다. 기원전 수백년전의 철학자가 이런 의미를 전달하려 했다는 것이 실로 놀라운데, 아직도 고정되고 답습된 의미를 그대로 믿고 바꾸려 하지 않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그러나 이책에서 이야기 하듯이 사소한 것에도 의미가 있고 역사가 있다. 그것은 시대를 거듭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며 발전해 온것이다. 알파벳부터 동전, 십자가, 순결, 아르바이트, 역사등 사소하고 작은것부터 중요한 것들까지 철학적으로 해석하는데, 어렵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재미를 느끼게 한다. 사물이 본래 지니고 있던 의미를 찾고, 핵심을 읽어내는 과정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중요한 것은 사소한 것의 사소한 역사가 아니라 작고 사소한 것들에도 이런 현상이 있음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 기득권층들이 자신들의 이득을 계속 지속하기 위해서 조작하고 단순화 시키는 의미들을, 표면에 내비치는 대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곤 하는 것은 세상을 어둡게 만든다. 자신들 집단의 이득과 목적을 위해 조작되는 언론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어떤 현상이 있을때 그것은 그 현상 그대로 보도되기 보다는 자신들의 입장에 유리하게 교묘하게 조작된다.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조작된 현상을 별 생각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 말고도 신경쓸 거리들이 현대에는 넘쳐나기 때문에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피곤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대로 가게 된다면 교묘하게 대중을 설득하며 눈속임에 속아넘어가게 되고 진실을 보는 눈이 사라진다.

저자의 의도는 독자로 하여금 작은 사물 하나도 많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생각의 폭을 넓히고,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게 하게끔 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내가 예상한 작자의 의도야 틀릴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행간에서 어떤것을 읽어내고 독자 나름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느냐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소한 것을 소홀히 하지 않을 때, 크고 중요한 것들도 바로 바라 볼 수 있는 변별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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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남기철 옮김 / 이숲에올빼미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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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 비해 풍족해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지만, 그때보다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커져만 가는 빈부격차로 인해 생기는 상대적 박탈감은 좌절의 원인중 하나일것이다. 특히 우리사회는 남과 비교하는 일이 많은것 같다.

어릴때부터 경쟁에 내몰리며 살아야 하는 요즘 아이들. 경쟁이란 구도에선 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타인의 시선에 필요이상으로 신경쓰는 것이 일상화 되어 엄친아 엄친딸이란 말까지 만들어 낸다. 오래전엔 신분이 그런 잣대의 대상이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이라 어린아이들 사이에 어떤 브랜드 옷의 가격차이에 따라 계급이 정해진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크리스티네는 오스트리아의 시골 마을 클라인 라이플름 우체국 직원이다. 요즘같아서야 우체국에서 일한다고 하면 공무원급으로 안정적인 직장이라며 부러움을 받겠지만, 이 때는 별볼일 없는 직업이었나보다. 전쟁통에 아빠와 오빠를 잃고, 엄마와 둘이 살고 있지만 엄마마저 몸이 아파서 우체국을 오가며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는 젊은 크리스티네. 어느날 남편과 스위스로 여행을 온 이모에게 초대장이 날라온다. 한때 모델로 활동했던 아름다운 이모는 부유하게 살고 있다. 아픈 엄마대신 이모의 초대에 응하게 된 크리스티네는 아름다운 휴양지 엥가딘의 화려한 모습에 넋을 잃고 만다. 상대적으로 초라한 자신의 행색에 기가 죽은 크리스티네를 가엾게 여긴 이모는 자신의 옷을 빌려주며 단장을 시키게 된다. 본래 아름다운 미모를 지니고 있었던 그녀에게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게 되고, 자신감을 갖게된 크리스티네는 화려한 사교계의 생활에 도취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활은 오래가지 못한다. 크리스티네도 그럴줄 알고 있었겠지만 화려함에 너무 도취한 나머지 잊어버리고 있었던 현실. 본래의 생활로 돌아오지만 크리스티네의 마음은 그렇지 못하다. 꿈같은 시간의 맛을 한번 본 그녀는 이미 예전의 그녀일 수 없었던 것이다. 병을 앓던 엄마마저 세상을 떠나고, 더욱 혼란하고 복잡한 마음을 갖게된 크리스티네. 그리고 그녀에게 찾아온 새로운 사랑. 하지만 가난한 사랑. 어두운 현실을 벗어나려는 둘의 노력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치닫게 되는데......

 

  크리스티네가 이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 맛본 달콤함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오래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만 지금의 시대를 읽어내게 된다. TV드라마의 재벌집 자제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부러워 하고, 부유층의 어마어머한 자산을 동경하게 되지만 현실은 만원짜리 몇장에 벌벌떨게 되는 삶이다. 

 

  한 TV프로에는 두개의 의견중 어느 의견을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가 하는 퀴즈비슷한 프로까지 생겨났다. 공감은 물론 중요하고 꼭 필요한 활력소가 되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것이 정답처럼 다뤄지는 것에 대해 씁쓸하다는 생각이 든다. 항상 남과, 평균의 삶과 비교하면서 살아가고 그것에 미치지 못하면 스스로 박탈감을 느끼고 좌절하게 되는 사회. 평균에 못미치면 틀린것, 잘못된것처럼 인식되는 사회의 단편을 보는것 같았기 때문이다.

비약일지 모르겠지만 모든것에 등수를 정해놓고 평균 이하의 삶은 소외되거나 천대받는 이런 관례들이, 저소득층의 주택건설을 집단으로 반대하거나 메이커 옷을 입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하고 무시를 당하는 현실을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닌가. 평균 이하에 놓인 사람들은 크리스티네처럼 박탈감을 느끼고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지 모른다. 기득권 세력들이 정해놓은 룰에 의식하지도 의도하지도 못한채로 끌려 다니다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다. 어려운 형편에서 벗어나기를 꿈꾸며 돈벌이를 위해 술집 종업원으로 전락하게 되는 젊은 여성들처럼, 꿈과 희망을 자본에 팔아넘기고. 

그러나 아직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모두가 다 따르고 있고 그렇다고 말한다고 해도 아니라고 하고 싶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입고 있는 옷에 따라 인간의 가치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노스페이스를 계급의 상징이라고 믿고 따르는 아이들에게. 아이들은 죄가 없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잘못된 행실을 보고 배우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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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눈 프리키는 알고 있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54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부희령 옮김 / 비룡소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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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이스 캐럴 오츠는 우리나라에도 상당히 잘 알려진 유명작가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론 이 책에서 처음만나게 되었다.

사춘기 소녀 프랭키는 잘나가는 미식축구 선수였던 아버지와 평범하고 순종적인 엄마, 여동생과 이복오빠와 함께 살고 있다. 스포츠 스타로 명성을 날렸던 아버지는 은퇴 후 스포츠 중계로 또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유명인이다. 하지만 집안에서는 가부장적이고 독선적인 가장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수 있었던 가장처럼 집안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말만 거역하지 않으면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쌓여가는 문제들은 언젠가는 드러나는 법.

   아버지를 견디다 못해 가출한 어머니를 오히려 원망하는 프랭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잘못의 원인을 잘 알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공포로 억누를 수밖에  없었던 프랭키의 마음은 프리키를 만나면서 깨어나게 된다.

 

 책의 제목 초록눈 프리키는 바로 프랭키의 또다른 자아이다.  프리키는 프랭키가 외면하고 억눌러왔던 마음은 파티에 갔다가 성폭행을 당할뻔한 충격으로 깨어나게 된다. 이 부분에서 정말 안타까웠다. 감수성이 한창 예민할 사춘기 시기에 모든것을 참고 견디며 두려움으로 외면해야 했던 마음이 충격적인 경험으로 깨어나게 된것이다. 알면서 외면했다기 보다 두려움과 충격으로 자신도 모르게 감춰졌던 마음이 다시 깨어난 것일까.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 할 나이에 불화로 고통을 겪는 아이들의 마음은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짐이 될것이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깨어난 프리키는 진실에 점점 다가가고 더욱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동생과 오빠는 프랭키와는 달리 아버지편을 들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도 어느정도는 이해가 된다. 아직 어린 둘에게 아버지란 존재, 그것도 억압하는 무서운 아버지의 모습은 너무나 크고 두려운 존재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에 대한 어리고 약한 아이들은 아버지를 믿고 엄마를 원망하는 것이 자신의 무너진 자존을 조금이나마 회복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힘에 굴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정당화 하기 위한 마음의 작용이 자신들도 모르게 아버지의 편을 들게되고 아버지가 옳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다. 용기를 보여준 프랭키의 모습은 말할것도 없이 정당하며 박수를 쳐줄만한 모습이지만, 두 아이들의 모습도 아직 어린 아이들이 감당하기엔 어려운 행동이었으며(어른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것이다)비난할 행동이 아니다. 아직 어른이 아닌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두 아이들도 피해자일 뿐인 것이다.

 

  오랫만에 흥미로우면서 작품성이 뛰어난 외국 소설을 읽은것 같다. 스릴이 있는 전개와 교훈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좋은 작품이었다.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가정폭력의 피해를 입고 있으며, 그 충격은 거듭되는 고통으로 남는다.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각성이 필요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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