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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조지 오웰,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동물농장>과 <1984>의 충격과 감탄이 <숨 쉬러 나가다>로 이어졌다. 이 책은 사실은 앞의 두 권보다 앞서 나온 책이며 내용 면에서도 두 시대를 앞선 시간의 이야기이다. 즉, 전쟁이 벌어지고 파시스트가 세상을 지배하기 전의 불안과 흉흉함이 주를 이루던 시대의 이야기이다. 그가 그려내는 디스토피아의 세계, 그 시작에 <숨 쉬러 나가다>가 있었던 것이다.1984를 1948년에 썼고 1938년에 1893년 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숨 쉬러 나가다를 썼다니 숫자를 뒤바꿔 설정한 번득이는 기지에 칭찬부터 나온다. 그럼 1984년이 오기 전의 세상으로 숨 쉬러 나가보겠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틀니를 하게 된 45세의 남성으로 퉁퉁한 몸집의 조지 볼링이다. 가정은 악몽처럼 괴롭히는 마누라와 거머리처럼 피를 빠는 아이들이 있는 곳이오, 직장은 못되게 구는 상사가 있는 곳이라 느끼는 평범한 가장이다. 반면, 1984의 주인공은 자유, 평등, 진실, 사랑 등을 박탈해버린 전체주의 사회에서 무기력에 빠져 있지만 마음을 나누는 사랑을 하고싶은 삼십대 후반의 윈스턴이다. 윈스턴에 대한 자세한 외모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공간적배경으로 추측컨대 매우 마르고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둘은 현실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불만을 느끼고 안주하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숨 쉬러 나가다>의 볼링이 사는 세상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산업화로 바뀌는 과정에서 느끼는 하류층의 불안과 또 다시 전쟁이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섞인 어두운 시기이다. 반면 1984의 배경은 이미 그 전쟁은 시작되었고 파시스트가 모든 것을 철저히 지배하는 암흑의 시대이다. 양쪽 모두 암담한 현실이다. 조지 오웰은 왜 이렇게 현재와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을 품었을까? 시대와 문명의 위기를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가 아니었을까.
자신의 뚱뚱한 외모를 함부로 대하는 사회와 전투기가 날아다니고 잘린 여인의 다리가 발견 되는 흉흉한 현실에서 낚시를 좋아했고 독서를 좋아했던 어린시절의 고향으로 떠나고픈 마음, 바로 숨 쉬러 나가고픈 마음이 볼링에게 강하게 일어난 것은 틀리를 하던 날이었다. 뭘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단지 평화와 정적을 원하는 마음으로 유년 시절 느낌에 젖어들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찾은 곳은 이미 기억 속의 고향이 아니었다. 다 삼켜져버렸다는 뜻이 맞을 듯 큰 공업타운이 들어선 고향은 낯선 곳이 되어 있었다. 고향의 예전 모습을 기억하는 자신이지만 정작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곳이다. 1984에서의 윈스턴도 금지되어있는 자유를 찾아 지하조직에 가담한다. 이렇게 두 작품 속 주인공이 타인의 눈을 피해가며 이탈을 저지른다는 면에서 꽤 닮아있다. 그런데다가 윈스턴 또한 현실의 벽에 부딪쳐 결국엔 이탈이 좌절로 끝난다는 것도 꽤나 비슷하다.
볼링이 꿈꾸던 장소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커다란 물고기가 있던 자신만의 비밀 연못은 깡통이 가득한 큰 구덩이가 되어있었다. 숨 쉬러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곳엔 더 이상 숨 쉴 공기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면서 볼링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게 닥칠 것은 무엇인가? 게임은 정말 시작되었나? 우리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세계는 영영 사라져버린 것일까?' 질문 보다 더 잔인한 그의 대답이 미래에 대한 어두움과 두려움을 확대시킨다.
'옛 시절은 끝나버렸고, 그걸 다시 찾으러 다닌다는 건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어떤 일이든 다 벌어지고 말리라. 우리가 마음 한구석에 두고 있는 일들, 끔찍이 두려워하는 일들......하지만 벗어날 길은 없다.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1984년에 그 일들이 일어 났다.
소름끼치게 앞 뒤가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조지 오웰이 보여주는 반유토피아의 세계는 소설이 줄 수 있는 간접경험의 최대치를 맛보게 해주는 것 같았다. 빈틈 없이 짜여진 구조, 날카로운 통찰력이 보여주는 인간의 본성, 마음에 깊이 남는 주제의식 등, 그의 작품은 매 번 울림이 크다.
그가 지금도 살아있다면 우리에게 어떤 현실과 미래를 보여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