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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아저씨의 오두막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3
해리엣 비처 스토 지음, 이종인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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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톰 아저씨의 오두막>1851년에 신문 연재를 시작하여 1852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된 소설이다. 19세기 후반에 미국과 유럽에서 300만부 이상 판매되는 대기록을 세워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반열에 올랐다. 사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라고 명명된 책들이 너무 많아서 이 말이 그냥 수사학적 의미가 아닌가 의심이 가기는 하지만, 일단 19세기 후반 시점에서는 그 정도로 인기 있던 책이라고 이해하자. 지난 160년간 32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로 퍼진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한국어로도 번역되었고,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 펜으로 슥슥 그린 듯한 분위기의 삽화가 실린 동화책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읽었다. 굉장히 오래 전에 읽었는데도 아이를 안고 도망치던 흑인 여성 노예가 반쯤 얼은 강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얼음을 징검다리 삼아 디디며 강 건너로 도망치는 장면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40년도 넘는 세월이 흘러 <다락방의 미친 여자>(샌드라 길버트, 수전 구바, 북하우스)를 읽다가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브라우닝은 편지에 이런 말을 썼다고 한다.

 

스토 부인의 책을 읽지 않는다고요! 당신은 읽어야 합니다. 스토 부인의 책은 이 시대의 기호이고 내적 힘도 상당하지요. 나는 한 여자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그녀의 성공이 기쁩니다. , 당신은 여자가 노예제도 같은 문제와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나요? 그렇다면 이제 펜을 들지 않는 것이 나을 겁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노예제도에 굴종해서 첩이 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 828. 재인용)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미국 노예 해방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이건 그냥 동화책일 뿐이잖아? 이 정도 평가를 받기에는 너무 소품아닌가? 이런 의아함을 안고 계속 책을 읽어나가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고 검색을 한 결과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번역본으로 8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고 경악했다. 나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읽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서둘러 책을 주문하고(그렇다. 또 샀다. 이번 벽돌책 프로젝트는 내내 이렇게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받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분량이 상당하니 꽤나 오래 걸릴 것이라는 것은 나의 착각. 베스트셀러는 괜히 베스트셀러가 아니다. 3일반에 훌쩍 다 읽고 말았다.

 

2/ 누구든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라는 제목을 보고 이 소설을 따라가는 여정일 것이라고 짐작할 것이지만, 톰 아저씨의 분량은 그리 많지 않다. 톰 아저씨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구김 없이 반듯한 사람이라 이런 사람을 원탑 주인공 삼아 소설을 쓰면 정의는 승리한다, 무조건!’ 같은 평면적인 이야기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 소설은 19세기 중반 노예제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썩 괜찮은 노예주, 그런대로 괜찮은 노예주, 악독한 노예주, 더 악독한 노예주, 노예상인, 노예상, 똑똑한 도망 노예, 도망 노예를 돕는 사람들, 백인 남편의 횡포에 고통 받는 백인 여성, 노예제를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북부 여성 등등.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이 많은 사람들이 가로 세로로 얽히면서 만들어내는 이야기로 그당시 사회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해낸다.

이 소설에는 괜찮은 노예주, 양심적인 백인들이 상당수 등장한다. 현실을 지나치게 미화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스토가 이 소설을 노예제도 폐지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집필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소설을 통해 사회 문제를 고발하면서 공감과 지지를 얻어내려면 당신들 모두 나빠요!’라고 하는 것보다는 세상에는 당신처럼좋은 사람들이 많아요, 잘못된 사회 제도가 당신처럼 좋은 사람들이 좋은 뜻으로 행동하는 것을 막고 있어요, 하는 것이 유리하지 않을까? 싸움의 기본은 내 편을 많이 만드는 것이니까. 그런 점에서 스토는 영리한 선택을 했다.

스토가 공략한 지점은 셸비 부부나 세인트클레어 같은 노예 주인이 아무리 선량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친다는 것이었다. 톰 아저씨의 첫 번째 주인인 셸비 씨는 노예들에게 매우 관대한 사람이고, 톰 아저씨를 비롯한 그 집의 노예들은 매우 행복한’(... 상대적으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셸비 씨는 재정난이 닥치자 톰 아저씨를 노예 상인에게 판다. 톰 아저씨가 가족들과 생이별을 해야 한다는 것도, 평생을 살아온 익숙한 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도 큰 고려 요소가 되지 못한다. 셸비 씨 역시 이 상황이 괴롭지만, 그렇다고 재정난을 감수할 정도는 아니다.

톰 아저씨의 두 번째 주인인 세인트클레어 역시 좋은 주인이다. 그는 딸을 구해준 톰 아저씨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을뿐더러 원래 천성이 자유주의적인지라 톰 아저씨에게 너그러운 주인이다. 하지만 그는 갑작스럽게 죽는다. 남편이 평소에 노예들에게 관대했던 것이 계속 불만이었던 그의 아내는 남편이 죽자마자 톰 아저씨를 팔아 치운다. 톰 아저씨는 악독하기로 소문난 리그리에게 팔린다.

스토는 좋은 마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당신은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선량한 노예주가 맞아요, 이렇게 독자의 자존감을 높여준 다음, 그래도 우리게에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 있고, 그럴 때 당신의 노예들은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될 수도 있답니다, 라고 설득한다. 독자들은 스토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결국은 제도가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3/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는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한다.

우선 셸비 부인. 그의 남편은 우유부단하고 선을 행하는데 소극적이지만 셸비 부인은 그보다 훨씬 결단력 있다. 셸비 부인은 남편이 사업 부진을 이유로 톰을 노예 상인에게 팔 때에도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하며 남편에게 올바른 행동을 촉구한다. 결정권이 남편에게 있어 톰을 팔게 되지만, 결국 남편이 죽은 후 문제를 바로 잡는 것도 셸비 부인이다.

다음으로는 악덕 노예주 리그리의 노예이자 첩인 캐시. 캐시는 자신을 성적으로 또한 법적으로 소유하고 자신의 어린 두 아이를 백인 노예주에게 팔아버린 남편 때문에 미친여자이다. 캐시는 셋째 아이를 스스로 살해함으로써 리그리로부터 아이를 구한다.’ 캐시의 탈출장면은 이 소설 전체에서 가장 박진감 있고 결정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캐시는 어디로 도망갔을까? 대대적인 탈출쇼를 연출하고 다들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캐시가 몸을 숨기는 곳은 바로 자기 집의 다락방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원리를 영리하게 활용한 것이다.

그는 충동에 이끌려 섣부르게 탈출을 감행하지 않는다. 신중하게 계획하고 숨어 있는 동안 먹을 양식과 양초, 시간을 보낼 책까지 차근차근 준비한다. 누군들 목숨 걸고 도망친 여자가 자기 잡에 숨어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겠는가. 게다가 다락방에 유령(리그리가 학대하다 죽음에 이르게 한 여자)이 있다고 굳게 믿는 리그리는 다락방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다락방은 수색 장소에서 처음부터 제외된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캐시의 탈주 장면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스토는 여자들이 자살하거나 남을 살해하지 않고도 조상의 저택에 갇히지 않을 방법을 탐색하기 때문이다. (...) 버사 메이슨 로체스터나 버사 그랜트, 도러시아 캐저반이나 로저먼드 리드게이트보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의 마지막 장을 지배한 미친 노예는 더 성공적으로 여성적 보복을 자행한다. 엘리엇이 <미들마치>에서 분노를 넘어서고, 초기 작품에서 드러나는 남성 역할의 전유를 넘어서 작업하고 있듯, 스토 역시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서 해방의 고유한 여성적 형태를 그린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 p.911)

 

캐시는 홀로 도망가지 않고 리그리의 다음 첩이 될 것이 분명한 노예 소녀 에멀린과 함께 탈출하는데, 탈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리그리의 돈을 훔치는 캐시를 보고 기겁을 하는 에멀린에게 이렇게 말한다.

 

몸과 마음을 훔치는 자들이 우리한테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어. 이 돈 한 푼 한 푼이 다 훔친 거야. 불쌍하고, 굶주리고, 땀 흘리다가 끝내는 죽어버린 사람들로부터 훔친 거라고. 자기 배를 불리려고! 그자가 누구한테다 감히 훔치는 것을 말해!” 343

 

4/ 이 소설은 당시 사회에 대한 놀라운 통찰을 담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것은 노예제도만 아님을 지적한다. 노동자는 자유로운존재이지만 실상 물질적 토대를 갖지 못한 노동자의 자유란 실은 굶어죽을 자유에 다른 아니라는 것을, 살아남기 위해 죽음과 같이 고통스러운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자본주의적 질서 또한 커다란 모순을 가지고 있다고 설파한다.

 

영국 노동자들은 팔리거나 교환되거나 가족과 떨어져야 한다거나 매질을 당하지 않는데.”

마치 고용주에게 팔린 것처럼 고용주의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노예의 주인은 말 안 듣는 노예를 죽도록 매질할 수 있습니다. 자본가들은 고분고분하지 않은 노동자들을 해고하여 굶어 죽게 할 수 있죠. 가족의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어떤 게 더 나쁜 건지 모르겠네요. 아이가 다른 데로 팔려가는 것과 아이가 집에 있으면서 굶어 죽는 것이.” 32

 

최근 연쇄적으로 보도되는 교사 노동자들의 자살 소식을 접하며 나는 생각한다. 나는 정말 자유로운가? 매일의 밥벌이 노동을 하지 않으면 생존의 기반이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노동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의 노동과 그에 수반되는 모멸을 견딘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생각하는 순간, 나의 비천한 처지를 자각하게 되니까.

 

자유가 국가에게 그토록 영광스럽고 귀중한 것이라면, 한 인간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국가의 자유란 것은 결국 그 국가 안에 살고 있는 개인의 자유가 아닌가? 저기 앉아 있는, 넓은 가슴 위에 팔짱을 낀, 뺨에 옅게 아프리카의 피가 흐르는, 눈에 검은 불꽃이 타오르는 젊은 남자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조지 해리스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여러분의 선조들에게 자유란 국가가 국가로 존재하기 위한 권리였다. 조지 해리스에게 자유란 사람이 짐승이 아닌 사람으로 살기 위한 권리였다. 또한 가슴에 안긴 아내를 아내라고 부를 수 있는 권리였고, 무법적인 폭력으로부터 아내를 지킬 수 있는 권리였으며, 타인의 의지에 구속되지 않을 권리였다. (2304)

 

자꾸 외면하려 하지만 실은 나의 본질적인 존재 방식은 임금 노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수시로 나를 괴롭힌다. 나는 과연 타인의 의지에 구속되지 않을 권리를 온전하게 가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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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녀들의 숲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미디어창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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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열세 명의 소녀들이 사라졌다. 사라진 소녀의 행방을 추적하던 아버지도 사라졌다. 아무도 진상을 규명해주지 않으니, 직접 진실을 밝히겠다고 나선 소녀 환이가 <사라진 소녀들의 숲>의 주인공이다. 목숨을 건 추적 끝에 마주한 진실은 소녀가 짐작한 것보다 더 어둡고 섬뜩하다. 몇명의 소녀를 구해내는데 성공했으니 구하지 못한 이들이 더 많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 한 이것으로 끝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하지만 괜찮다. 어쨌든 환이는 성큼 한 걸음을 나아갔으니까. 환이는 더 이상 규방에 갇혀서 '착한 규수'가 되고 시집을 가는 삶에 속박되지 않을 것이니까. 서먹했던 자매들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손을 맞잡았으니까. 공포와 절망에 지지 않았고,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의심을 지워냈으니까. 

<사라진 소녀들의 숲>은 역사소설이라기보다는 판타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유배지 제주를 배경으로,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까지 이어져 온 '공녀 제도'를 모티브로 한 판타지 소설. 작가는 판타지 속에서 현실의 15세기 소녀들은 꿈도 꾸지 못한 모험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나는 이 자매들이 장화홍련처럼 규방에 갇혀 살해당하지 않고 씩씩하게 길을 떠나고 살아남았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한국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자란 작가가 영어로 쓴 소설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작품을 읽는 일에는 색다른 즐거움이 포함되어 있다. 말하자면 낯설게 보기. 한국에서 평생을 살아온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해서 그냥 지나가버릴 일들이,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는 설명이 필요한 일이 되는 것을 경험하는 읽기가 새롭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청록색 물이 짙은 푸른색으로 변했고, 해녀들이 깊은 바다에서 올라오면서 휘파람 같은 소리를 냈다. 수 세대에 걸쳐 여인들에게서 여인들에게로 전해진 호흡 기법이다 빈곤과 굶주림의 섬, 왕이 가장 내치고 싶은 신하를 유배 보는 이 섬에서 해녀들은 거친 물살에 굴하지 않고 맨몸으로 잠수하며 생존법을 터득했다." (196쪽)


제주 해녀들의 숨비소리를 이렇게 표현한다. 낯설게 보기를 경험할 수 있는 대목들이 도처에 있으니 그걸 찾아보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한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활용해 보고 싶다.


1. <사라진 소녀들의 숲>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든다면 환이와 매월의 역할을 어느 배우에게 맡기고 싶나요? 꼭 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에피소드나 대사가 있나요? 왜 그렇게 생각했나요?

2. 관계가 소원해진 가족이 있나요? 왜 그렇게 되었나요? 관계의 회복을 원한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3. 내 가족만 괜찮으면 된다는 생각 때문에 생겨난 문제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4. 한국계 작가가 한국적인 모티브를 가지고 다른 나라의 언어로 쓴 작품들이 속속 출간되고 있습니다. 이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도서를 지원받아 자유롭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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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민트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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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의 작가 백온유가 <페퍼민트>로 다시 독자들을 찾아왔다. 시간이 꽤나 흘렀어도 전작의 여운은 아직도 내게 남아 있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펼친다. 그리고 단숨에 다 읽었다!

시안과 시안의 아버지는 붕괴 직전이다. 시안의 엄마는 몇년째 식물인간인 채로 병상에 누워있고, 가족 중에 그런 환자가 있다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시안의 엄마를 쓰러뜨린 것은 몇년 전 세계를 휩쓴 전염병이라는 것, 그 병을 옮겨준 것은 시안의 가장 친한 친구의 엄마라는 것이 드러난다. 소설 속에서는 '다 끝난 일'인지 몰라도 우리는 아직 전염병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니 가슴이 철렁해진다.

작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 모두에게 힘겨운 시절이라고. 그러니 흔들리고, 무너지고, 서러워하고, 원망하는 당신, 그건 당신 탓이 아니니 부디 자책은 하지 말라고.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한다면.

1. 당신은 누군가를 간병해 본적이 있나요? 혹은 간병을 받아본 적이 있나요? 그 경험을 이야기해 주세요.
2. 코로나로 인해 당신의 삶이 바뀌었나요? 어떤 부분이 바뀌었나요?
3. 나의 불행이 내가 좋아하는 어떤 사람에게서 비롯되었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 같나요?
4. 시안과 해원은 힘겹게 서로에 대한 용서에 도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만나지는 않기로 합니다. 이 결정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나는 두려웠다. 같이 있다 보면 좋은 날들도 많겠지만 나쁜 날들도 있을 것이다. 불행해지면 원망할 사람을 찾게 될 것이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영혼을 해칠 것이다. 지금은 아니라고 해도,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았다. 우리는 서로의 미래를 궁금해하는 유일한 사람들일지도 모르지만, 그 미래에 우리는 함께하지 않는 게 나았다." 264
5. 이 책의 제목은 <페퍼민트>입니다. 제목의 의미를 이야기해 볼까요?


#백온유 #페퍼민트 #창비 #성장소설 #소설페퍼민트
#전염병 #간병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독서모임 #책모임 #북클럽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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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일 년만 청소하겠습니다 - 오십이 되면 다르게 살고 싶어서
최성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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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에서 피아노를,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연극을 전공한 '고학력' 50대 여성이 청소일을 한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었다. 학력만 놀라운 것이 아니라 그밖의 이력도 놀랍기만 하다.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희곡 작가이면서 연극 배우이고, 쿠바에서 관광가이드를 한 경험도 있다. 학교 연극 수업 강사, 요가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런 사람이 왜? 돈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다재다능한 여자 최성연에게는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했다. 학교 연극 수업이나 요가 수업을 통해 벌어들이는 돈은 우리가 미루어 짐작하는 것보다 더 적은 액수인가보다. 아트센터 청소일을 하면 보장되는 수입(퇴직금 포함 월220만원)에 '세상에나! 이런 직업이 있다니!' 하면서 뛰어들었다고 한다. 청소일을 해서 그걸 글로 써서 책을 내야겠다던지, 그 경험을 토대로 연극을 만들어보겠다던지, 그런 것이 절대 아니다. 정말로 돈 때문에 청소일을 시작했다.


연극판에서 산다는 것은 가난을 짊어지고 사는 일인지라 원래도 안해본 알바가 없었다는 저자는, 월220만원이라는 안정적 소득에 낚여 겁도 없이 청소일에 뛰어드는데, 놀랍게도 별 무리 없이 잘 해낸 것 같다. 사명감을 가지고 꼼꼼히, 열심히 청소하고, 자기 일도 아닌 분리수거까지 열심히 한다. 최성연은 생각한다.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은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장차 어떻게 될지에 대한 우주적 상상력을 펼칠 줄 모르는 사람, 그런 사람은 당장 눈에 보이는 세계만 인식하기 때문에 세계가 좁아진다는 것.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능력인 상상력(창의력)을 키우려면 두뇌 개발에 좋다는 학습지나 체험 학습에 매달리지 말고 분리수거를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나는 최성연이 주저 없이 '새로운 세계'에 풍덩 뛰어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부러웠다. 물론 그는 스스로 주장하기를, 어떤 의미를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밥 벌이를 위해서였다고, 절박한 생존의 문제였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다들 알지 않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 보험 영업에 뛰어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나.


나에겐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다.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 내가 '어떻게 적응할까?'를 걱정하기보다는, 새로운 세계가 나를 '어떻게 이끌어 줄 것인가?'를 기대한다. 어떤 자극과 충격으로 내 안의 잠재된 영역을 깨우고, 내 사고의 지평을 넓혀줄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로 설렌다. 청소일은 그동안 내가 해 온 일의 성격과 정반대의 일이어서 더욱 기대가 컸다.

실제로 일 년 동안 쓸고 닦는 새로운 일에 매진하고 낯선 사람들과 엮이는 경험을 하면서 내면의 힘이 강해졌다. '이것 때문에 이런 교훈을 얻어 이렇게 변화되었다'라고 공식화할 수는 없지만 자신감이 커졌고, 마음의 폭이 넓어졌으며, 세상을 균형 있게 바라보고 걷는 법을 배웠다. 170-171


청소일을 하면서 만난 새로운 세상, 새롭게 맺게 된 인간 관계, 새로운 깨달음을 글로 써서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다. 그런데 이게 대박이 났다. 오마이뉴스에서 잭팟이라고 부를 정도로 원고료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책이 되어 나오고 이 소식이 못내 반가워서, 50대에 정직한 노동을 선택한 고학력자 최성연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책을 주문했다.


결정적 순간마다 떠올리려고 한다.

[두려움보다 설레임으로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기]

무엇이건 너무 오래 망설이는 것은 모양 빠지는 일이다.


재미있는 발견.  "딱 일 년만"이라는 검색어를 넣었더니 제법 여러권의 책이 뜬다.  

딱 일 년만 _____________________ 하기.

__________________ 에 무엇을 넣어볼까?

딱 일 년만이라고 하면 뛰어들기 수월할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나는 지금 딱 일 년만 백수로 살기를 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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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준비의 기술
박재영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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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담 좋은 작가의 책 한 권을 기분 좋게 읽었다. 여행의 기술이 아니라 여행'준비'의 기술이다. 여행을 가는 것은 돈과 시간, 체력과 바이러스가 모두 따라 주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여행 준비는 아무 것도 갖춰져 있지 않아도 가능하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의 기술>을 쓰고, 김영하가 <여행의 이유>를 썼지만, 다행히 아무도 여행 준비의 기술을 쓰지 않은 덕분에 자신이 이 책을 쓸 수 있었다는 너스레와 함께 작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외국어 공부, 관련된 책 찾아 읽기, 평소에 끌리는 곳을 찾아 구글맵에 표시하기 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여행준비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평범한 것들이 작가의 글솜씨 덕분에 어마어마하게 흥미진진하게 보인다. 결국 읽을 만한 책을 쓴다는 것은 대단하고 특별한 글감을 보유하고 있는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관점을 가지고 좋은 얼개 속에 이야기를 펼치는 기술에 달려 있는 것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이 중에 가장 와 닿았던 것은 여행 일정을 어떻게 구성하는가와 관련된 것이었다. 모두가 좋다고 하는 여행지가 내게도 좋은 여행지라는 법은 없으니 본인이 좋아하고,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일정을 구성하라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이지만 여행을 떠나면 그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다. 내가 여기 다시 올 일이 없을지도 모르고,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 여기까지 왔는데 후회나 미련을 남기면 안된다는 본전 의식이 강력하게 발동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것을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쏠리는 관심에 비유한다.


이건 근본적으로 '타인의 관심사'이고 몰라도 대세에 전혀 지장이 없는 것들인데, 우리는 습관적으로 이걸 클릭하고 적지 않은 시간을 빼앗긴다. 145


유명한 관광지라고 해서 꼭 가야 한다는 법 있나. 게다가 갈까 말까 망설여지는 그 유명 관광지는 알고 보면 어마어마하게 유명한 곳도 아니다. 평소에는 존재도 몰랐다가 가이드북에서 처음 발견한 장소에 집착할 이유가 있을까. 어차피 가이드북에 별표 다섯개 붙어 있는 곳이라고 다 가는 것도 아니지 않나. 어디 가서 자랑할 수도 없고 사진 말고는 남는 것도 없는, 남들이 좋다고 하는 유명 관광지보다는 내 마음이 왠지 끌리는 곳, 그곳을 선택했을 때 기억에 훨씬 더 오래 남는다. 좋은 곳이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곳이 좋은 곳이다. 203


어디 여행뿐이겠는가. 우리의 일상에도 적용되는 말일 것이다. 베스트셀러를 읽고, 핫스팟을 방문하고, 유행하는 옷을 입는 것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것이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라고 바꿔말해도 하나도 틀리지 않는 말이다. 백화점에 걸려 있는 옷들은 편집샵에 걸려 있는 옷들에 비해 별 매력이 없다. 이유는 백화점에는 '최대공약수의 옷'들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대충은 좋아할 만한 것들이라는 의미에서 최대공약수의 옷이다.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서 추천하는 것들도 대체로 비슷하다. 실패하지 않겠지만, 실패를 줄이는 만큼 '내게 더 좋은 것'과 만날 가능성도 함께 줄어든다. 실패는 없겠지만, 매력도 함께 없어진다.


남들이 다들 좋다는 것을 외면하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포기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겠다는,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엄청 좋은 것이었다하더라도 다른 것을 선택할 당시의 나를 인정하고 그 순간의 마음을 포용하는 용기.


더 필요한 것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기 위해 이것저것 탐색해보고 시도해 보는 노력. 우리의 하루하루는 엄청나게 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선택들이 내게 좋은 것들로 수렴되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한다. 그런데 항상 남의 선택, 다수의 선택을 따르다보면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을 찾는 감각 자체가 쇠퇴해버린다. 그러니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선택을 믿고 따라가는 것을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


중국집에는 짬짜면이 있지만 인생에는, 그리고 여행에는 짬짜면이 없다. 유명 관광지가 타인의 선택이라면, 왠지 내가 하고 싶고 보고 싶은 프로그램은 나의 선택이다. 내 맘대로 되는 게 별로 없는 인생에서 여행 스케줄 정도는 내 맘대로 짜도 된다. 203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서 망설여질 때 짬짜면을 선택하는 방법도 있지만, 너는 짜장면, 나는 짬뽕, 이렇게 시켜서 나눠 먹는 방법도 있지만, 이제부터는 좀더 분명하게 선택을 해보면 어떨까? 이왕이면 제3의 다른 메뉴를 선택하는 방법도 있고. 그러다 실패하면 어떤가. 고작 한끼일 뿐인 것을.


망설임도 습관이고, 다른 사람에게 결정을 위임하는 것도 습관이라면, 자기에게 제일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도 습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게 의식적인 연습을 통해 가능하다고 믿는다. 다만 주의할 것은, 그게 취향을 위한 취향은 아닌지 되물어보아야 한다는 것. 정말 그게 좋은 것인지, 남들이 좋다고 하니 나도 좋다고 생각하게 된 것인지, 혹시 허세나 보상심리는 아닌지, 촘촘하게 따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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