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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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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 부터 가제본을 받고 읽고 쓴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이, 앞으로가 예측이 참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방송이나 각종 자기개발서에서는 더 더 더 많이 준비하라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준비해야 하고 그 준비에 내 삶을 갈아 넣어야 하는지, 50을 더 살고도 모르겠다.

 

그렇게 준비를 해도 안되는 것이 허다하다. 특히, 역사의 흐름 앞에서는, 국가적 흐름 앞에서는 뭐를 준비해도 안된다. 그래서 그 역사가 국가의 큰 방향이 개개인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개인에 따라 그 영향의 크기도 다른 법이다. 즉 받아들이는 것도 개인의 몫인가 보다.

 

얼마전 김연수 작가의 작품 내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읽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한반도에서의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이 개인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개개인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었는지에 대한 긴 호흡의 질문을 했고, 사유를 했다.

 

나는 아니, 우리는 작년 123일 이런 사건을 격었다. 아니 여전히 격고 있다. 단순한 경험이 아니라 몸으로 겪어내고 있는 역사적 사건 한복판에 서 있다.

 

나는, 물론 우리는, 그날로부터 국회 탄핵소추 부결, 가결, 대통령(나는 그의 이름을 떠올리기 싫다. 몸서리 치게 싫다) 체포, 법꾸라지의 농간으로 인한 탈옥, 그리고 길고 길었던 헌재 파면, 그리고 새로운 대통령의 탄생,

 

지난 6개월이 얼마나 길고, 지루하고, 두렵고 몸서리를 쳤는지 모른다. 6개월이 걸렸다. 기적과 같이 6개월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 중 이렇게 길었던 6개월이 있었나 싶다. 아마 앞으로 살아갈 날 중 이런 6개월은 없으리라, 아니 없어야 한다.

 

창비클럽 회원으로 신작 가제본을 받고, 읽었고, 그리고 글을 남긴다. 가제본 책을 손에 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가제본은 잡을 때는 기분이 다른다. 당연하지만 뭔가 완성되지 않은, 단지 옷만 바뀔 뿐인데, 내용은 같을 것인데, 손에 잡히는 느낌이 다르다.

 

책 제목 작은일기”, 작가는 작년 123일의 밤부터 올 51일까지의 간단한 일기, 메모 형식의 글이다. 날이 가는 순서대로 사실(?)에 근거해 하루하루를 적어 내려갔다. 글을 읽으며 순간순간이, 거의 모든 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 올랐다. 몸이 기억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123, 저녁에 와인을 한잔하고 기분 좋게 비스듬히 누워 TV를 보는데, 게엄을 선포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며, 내가 술이 과했나 ?, 정신을 차리고 유튜브를 같이 틀고, 발을 동동거렸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손에 차키를 쥐고 운전할 수 있나 ? 어떡하지,,,,, 그렇게 국회의 게엄 해제 소식을 듣고, 그래도 여전히 차키를 손에 쥐고, 술이 깨어야 하는데, 하며 밤을 지세웠다.

 

아침이 밝았으나, 불안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하긴, 우리나라 국민이면 다 그러지 않았을까 ? 하지만 이건 내 착각이었다. 사는 곳이, 다니는 직장이 보수 우익에 편향된 지역이고 직장이라 오죽하면 대통령이,,,,, !!! 사태가 해결되려면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이러한 기억을 작가는 그의 담담한 글로 풀어내고 있다. 감정이, 지나간 시간에 대한 소회를 풀어내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을터인데, 작가는 흔들리고 불안한 작가의 일상을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하여 작가도 어떤 경우는 일기라 했고, 어떤 경우는 메모라 했다. 그리고 작가는 책을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글을 내려갔다.

 

작가 일상을 회복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무엇보다 세월호, 이태원의 아픔을 몸으로 받아내며 몸으로 겪으면서, 그리고 회복을 체득한 탓이기도 했을 것이다. 글 속에 스며들어 있던 작가의 분노를 밖으로 풀어내지 않고 담아내는 것을 보면서, 또 공감했다.

 

나 역시 그랬다. 억지로 책을 읽었고, 하는 일에 집중하려 일부러 노력했다. 같이 책 읽는 사람들과 좌절했고, 더러는 기뻐도 했다. 축배도 들었다. 특히, 탄핵소추가 부결되는 그 순간 다들 모여 책을 읽고 와인을 마시고자 한 날이었다. 결국 책에 대해 한마디로 못하고, 씁쓸하게 와인만 부었던 날을 작가의 글을 읽으며 떠 올렸다.

 

차디찬 겨울 대구 동성로 아스팔트 바닥의 찬기운을 기억하고, 많은 시민이 여의도, 광화문, 남태령, 한남동 바닥에서 지켜나간 이들을 기억하고, 파면선고가 있던 44일 그 전주의 광화문에 불어 닥친 찬바람을 기억한다.

 

지나간 일이다. 하지만 잊을 수 없는 6개월이었다. 온탕과 냉탕이 아니라 지옥과 천국을 왔다 갔다 한 6개월이었다. 작가는 51일 일기를 아니 메모를 남긴다. 역시의 신 적패세력의 이름을, 따박 따박 적어 내려간 그들의 이름을,,,,, 충분히 공감하는 작가의 분노를 기억한다. 공감한다.

 

감사하다. 서평단 모집에 응모해 뜻하지 않는 선물을 받았다. 어떤 옷을 입고 근사한 모습으로 책이 나올지 궁금하다. 그리고 책속에서 작가가 읽어내려간 책들을 고스란히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 책을 읽어내려가며 작가와 연결되리라,,,, 깊은 숲 나무가 둘러싼 모든 생물과 연결되듯 말이다.

 

이팝나무가 그 햐얀 꽃이 피면 옛날에는 영광 앞바다에 조기가 가득하다 했다. 하지만 이젠 작가가 그러하듯 이팝나무가 피면 416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지난 6개월 국민보다는 시민이란 단어가 가슴에 각인되었을 것이다. 국민은 아무나 될 수 있지만 시민은 아무나 될 수 없다.

 

작가의 작은 일기는 덩치는 작지만 담긴 글은 크고 깊다. 그리고 생생하다. 다시 한번 덤덤히 읽어내려간 나 자신을 돌아보고, 그리고 그 날들의 기억을 떠 올려본다. 그리고 경계하고 지켜낸 소중한 민주주의를 지켜나가야 한다. 다짐한다. 대한민국 만세 만세 만만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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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K사상을 위하여 - 개벽사상과 종교공부 2 개벽사상과 종교공부 2
백낙청 외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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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과 비평사로 부터 서평단 모집에 참여, 제공 받은 책을 읽고 정리한다. 


2010년이 지나면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높아지면서, 한류로 시작한 우리만의 문화가 이제는 K라는 글자가 붙어 K-Pop, K-Food, K-drama 등으로 명하기 시작하였다. 자고 일어나니 선진국이 되었더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런 대한민국이 하루아침에 후진 국가가 되어 버렸다. 사상누각이란 말이 먼저 떠 올랐다. 


이러한 K-문화의 시작은 본질적으로 우리것이 아니었음에 다소 우울하였다. 없어서 였을까 ? 아니면 몰랐던 것일까 ? 그래서 K-사상이라고 시작하는 제목의 이 책을 통해 내가 원하는 답을 얻을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 서평단 모집에 응했고, 받아 읽기 시작하였으나, 무슨 얘기인지를 흐릿하게 나마 알수 있을 것 같으나, 뭐라고 정리할 수 없다. 


이 책은 일단 전편에 해당하는 종교공부라는 책이 있었고, 그리고 그 이전에 백낙청 교수님의 여러 책과 대담자들의 여러 책이 기본이 된 후에 비로서 알게될 수 있는 내용이라, 책을 읽어나가며 늘 한계에 봉착했던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읽어도 이학을 전공하고 이를 토대로 30년 넘게 밥벌이를 한 나에겐 참으로 어려운 책이다. 그래도 한문장 한문구에서 울림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부정할 수 없다. 그것만으로 족하다. 그리고 더 나갈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작금은 대통령의 친위구태타라는 희대의 사건이 진행되는 상태라 이 책이 가지는 의미가 더 높을것이라는 것은, 그리고 이러한 사항에 더욱 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그리고 도대체 뭐가 중한지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 것은 이책은 읽은 가치로 충분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도저히 내용을 나름대로 정리할 수 없어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내용을 일부 정리하는 것으로 서평을 대신한다. 

 

이 책은 한반도 고유의 사상적 자원으로서 개벽사상에 대한 기초지식을 전할 뿐 아니라 세계화의 가능성을 논한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등 세계종교와 개벽사상의 교차점을 조명함으로써 풍요로운 종교 간 대화를 성취했다. 전통 한국사상과 탈근대 담론의 한계를 묘파함으로써 개벽사상이 그것을 어떻게 넘어섰는지 탐색한다. 나아가 세상의 변혁을 기도했던 ‘서양의 개벽사상가들’을 열거하고 직접 사상 대 사상으로 맞붙어보며 K사상의 확장성과 세계성을 실험한다.


K사상의 현재성과 세계성을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동서고금의 사유와 한반도 개벽사상을 견주어보아야 했다. 


1장 「세계종교에 담겨 있는 개벽사상」은 동학과 개벽사상의 의미를 ‘우리 바깥의 눈’으로 논평한다. 구태여 바깥의 시각이 필요한 까닭은 서구 담론을 향한 우리의 집착과 인정 욕구를 무시할 수 없을뿐더러 개벽종교인 천도교나 원불교가 우리와 너무 가까워 오히려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일 테다. 개벽과 세계사상 사이의 공통점을 발굴해 소통하는 것과 개벽만의 특징을 부각해 이를 세계로 전파하는 것.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생각의 차이는 뚜렷한 두 사람의 대화는 K사상의 세계화를 위한 두 가지 방향을 제안하면서도 이를 병행할 방법을 생각해보자는 과제를 남긴다.

2장 「물질개벽의 시대, 유교의 현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는 유학의 현대적 의미를 고찰하며 그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현대사상으로서 개벽을 말한다. 예의 근본 의미를 되살린 것은 번다하게 꾸민 예와 형식을 걷어치우고 ‘향아설위(向我設位)’, 즉 천지의 신령이 깃든 나를 진정으로 돌보라고 주문한 동학이었다. 전통 유학자들이 간과한 것은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물질문명의 도래였음을 지적한다. 서구 사유의 영향을 받은 근대 유학자들 또한 새로운 과학 지식과 사회계약론을 흡수하면서도 서구의 경제체제와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별다른 성찰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소태산 박중빈을 비롯한 개벽 사상가들은 생산력의 무한 증대에서 비롯된 ‘물질개벽’의 폐해를 간파하고 어떻게 하면 그 과실을 골고루 나눠 가질 수 있을지 고민했다는 차이가 있다. 자본주의의 말기 국면에서 위기를 타개할 대안을 찾자면 여기에 희망이 있겠다는 주장이다. 탈근대 담론과 견주어보면 개벽사상의 현대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민족이나 계급, 정체성 등 고정된 ‘주체’나 ‘본질’을 해체하고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해체론적 논의는 ‘유무초월(有無超越)’의 경지와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 어디에나 부처가 있고 가는 자리마다 회상 아닌 곳이 없다)’을 말한 개벽적 사유가 이미 확보해놓은 현대성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3장 「K사상의 세계화를 모색하는 원불교」는 한반도의 후천개벽사상이 수운 최제우의 동학에서 시작해 민중이 중심이 되는 큰 흐름을 이루었으며, 특히 소태산 박중빈이 후천개벽사상을 보편종교인 불교와 융합해 새로운 경지에 올려놓았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원불교가 세계적 주도가 되고 한국이 정신의 지도국이 될 것’이라는 소태산의 예언을 소개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4장 「인간해방의 논리와 개벽사상」에서는 D. H. 로런스가 성찰한 죽음론을 윤회론에 투영해 살펴보았다. 하이데거의 기술시대 인식 및 휴머니즘 비판은 소태산의 물질문명에 대한 인식, 그리고 동아시아의 천지인 사상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존재 자체와 존재자를 비롯한 하이데거의 복잡한 용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문제와 그의 ‘언어의 집’ 개념을 둘러싼 토론은 서구사상을 K사상과 맞붙이고자 할 때 어떤 주체적 자세와 태도가 필요한지 성찰하게 한다. 토론 끝에 도출된 “우리의 문제를 풀어야겠다는 발심이 강해야 서양 사상과의 만남도 저 충실해질 것”(290면)이라는 결론이 뜻깊다.

이렇게 출판사 소개글로 책을 정리하였다. 책의 말미에 읽은 골륜탄조라는 말은 이책에서 얻은 문장 중 가장 울림이 컸다. 책을 읽어가며, 세상을 바라보며, 그리고 세상을 읽어가며 내가 행하여야 하는 태도에 대한 경종이었기 때문이다. 이 한문구를 얻었으니 책을 읽은 보람은 있으나 뭔가 찜찜하다.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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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 유홍준 잡문집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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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잡문집,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를 읽고

 

창작과 비평사 독서클럽인 창비클럽 서평단 모집에 응모해 책을 받았다. 유홍준 교수, 늘 호칭을 쓸 때 머뭇거린다. 교수님, 청장님 등등,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잡설가가 가장 어울린다. 스스로 잡설을 좋아한다 하셨고, 스스로를 글쟁이라 하여, 잡설가가 좋겠다 싶다. 글쟁이란 표현은 스스로가 하면 몰라도 글 읽는 자 입장에서, 좀 그렇다.

 

잡설가를 직접 뵌 건 올 여름이 막 시작될 즈음, 고령 대가야 고분군 답사 및 강의에서였다. 하지만 처음 뵌 건 강의장에서도 아니고 답사에서도 아니다. 박물관 초입에서 지인과 담배 한 대 피우시던 모습이 그 처음이었다. 아는 척 인사하기에도 미안할 정도로 맛나게 피고 계셨다. 키가 크시구나 했다. 그 이유를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단순했다. 부친이 키가 크셨다.

 

책을 읽다보면, 읽어나가는 내내 작은 미소가 떠나지 않음을 느낀다. 그리고 부러움은 부정할 수 없다. 이 책에서도 적절한 자리에 자리 잡은 짧은 시, 한 장의 장면, 그리고 사람,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기억력, 하여 천재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정말 이 모든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좋아하는 것을 하는 이를 누가 이길 수 있겠는가 ?

 

대상을, 사람을, 사건을 엮어내는 기술은 어디서 올까 생각해 봤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잡설가는 천상이야기 꾼이다. 그 옛날이면 변사를 했어도, 더 그 옛날이면 장터 야바위꾼도 어울리는, 더 더 옛날이면 높은 관직을 하사받아도 마다 했을 것 같은 그런 위인이지 싶다. 고령에서 뵈었을 때, 천상이야기 꾼이구나 그래서 세상사 모든 일에 관심이 많으실 수밖에 없구나라고 상상해 봤다.

 

책의 시작을 고별연으로 했다. 얼마나 멋진 표현인지, 아마 처음 뵌 모습이 담배 피시는 모습이라 그 장면을 소환하며 읽었다. 그리고 잡초공적비, 그 비석이 뭐 대단하다고 그 먼길을 그 험한 길을 달려갔을까 ? 하지만 글을 읽어나가며 그냥 관심이구나 궁금했구나 그래서 갔구나. 무엇보다 삼배도 부족해 재배까지 보태셨으니,,,,,,

 

바둑과 FTA, 제목만 보고 이걸 또 어찌 풀어낼까 ? 살짝 긴장감을 가지고 읽어나갔다. 그분 얘기가 먼저 나왔고, 글을 덮으며, 그렇지 이래야지 했다. 이것이 유머고 해학인 것이다. 세상 모든 어려운 말과 짐작도 되지 않는 숫자, 그리고 상상도 안되는 가능성으로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 보다 여류 바둑기사 얘기로 풀어나갔으니, 이를 보고 누가 반대할 수 있을지,,, 적어도 나는 자신 없다.

 

통문관과 어머니, 이겸로 선생과 같은 멋진 어른이 내 주변에는 없다. 아직은 없다. 아니 있다. 찾아보니 있다. 딱 한 분 이 있다. 반을 후려쳐야 같은 나이가 될 만큼 차이가 나지 않지만 같은 띠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여 다행이다. 그리고 어머니, 내 어머니를, 책을 읽어나가며 짚어 보았다. 내 어머니도 자랑스럽다. 그런데 아들은 그렇지 못하다. 부끄럽다.

 

터치미 뮤지엄을 읽으며, 보행문화에 대한 글을 보며, 지식과 공감을 얻었다. 달항아리는 이른 봄 전부 완주군 소재 아원 고택에서 봤다. 넉넉함과 포근함을 얻었던 기억을 소환했다. 꼭 한작품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처음이었다. 정자 얘기에서 촉석루는 올라가 남강을 바라보았고, 영남루는 멀리서 만 봤다. 그리고 나머지 한군데는 처음 들었다.

 

몇 년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개인이 만든 정원을 하루에 하나씩 다녀온 적이 있었다. 영양 서석지, 해남 보길도 부용동, 그리고 담양 소쇄원, 흔히 조선 3대 정원이라 하였다. 느낌이 달랐고, 같이 즐기고 싶은 술도 달랐다. 이 책의 정자는 어떨지? 돌아봐야겠다. 사는 곳이라 머지 않아 다행이다.

 

답사 여적, 여적이라 했다. 여적의 사전적 의미는 글을 다 쓰거나 그림을 다 그리고 아직 남아 있는 먹물 또는 나머지 말의 기록이다. 잡설의 다른 말이라 멋지다. 남긴 글의 나머지 글, 여담이고 잡담이고 그래서 정겹다. 백두산의 얘기를 읽다 보면, 당시 사건에서의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다. 아직도 그러하다. 중국땅을 통해 백두산은 절대 가지 않으리라,,,,,

 

예술가와 함께는 일종의 망가이다. 망자에 대한 그리움이 글 한자 한자에 가득하다. 백남준에서 타이를 자른 얘기, 신학철, 솔직히 몰랐으나, 작품을 찾아보고 알았다. 그림은 익히 기억하고 있었다. 참으로 재미난 얘기로 풀어가는 현대사의 어둠을 떠올렸다. 오윤도 그랬다. 김지하는 살짝 걱정스러웠고 두려웠다.

 

김지하의 기억은 그가 온전히 빛났던 때의 기억보다는 이후 배신의 기억이 더 크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은 그 우려를 정면을 치고 나갔다. 그 역시 이를 인정하며 글을 내려갔기 때문이다. 하여, 그 빛난 시절의 얘기를 통해, 그를 다시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를 류근 시인의 목소리로 들었다. 그랬다. 그는 이런 시를 쓰는 사람이었다.

 

스승과 벗에서는 스승이 벗이었고 벗이 스승이었구나 싶었다. 리영희 교수님과의 일화는, 리영희 교수님 평전과 대화란 책을 오래전에 읽었지만 그 책에는 이런 얘기는 없었던 것 같다. 삶의 해학이 읽혔고, 그 우스개가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힘이었지 않나 짐작해 보았다. 참으로 멋진 분이었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어부인은 더 위대했다. 진리다.

 

백기완 선생은,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한 연설을 거리에서 들었던 기억을, 소년과 같은 그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학림다방의 일화를, 사셨던 대학로의 집을, 그래서 학림다방을 가보았고, 대학로의 집을 지나가 보았다. 더 크게, 더 많은 사람에게 기억되어야 할 분인데, 아쉽다. 그리고 이렇게 큰 어른이 그립다. 현 시대가 그렇다. 그래서 더 그립다

 

신영복 선생, 이애주 선생, 박형선 선생, 홍세화 선생, 그리고 김민기 선생, 다 떠나셨다. 이분들의 글과 영상, 그리고 음반을 통해 살아가는 지혜를 얻었고, 어려운 시기를 넘길 수 있는 힘을 얻었던 분들이라 그분들에 대한 글을 읽어나가며, 가슴 한편에서 울컥하는 그런 기억을 떠올렸다. 특히, 김민기 선생의 글을 읽어 나갈 때 음반을 걸었다.

 

부록편은 두고두고 읽어야 할 부분이다. 요즘 부쩍 글을 쓰고 싶어진다. 아침나절 문득 떠오르는 단어를 두고 출근하는 동안 글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부록은 두고두고 읽고 기억해야겠다. 그렇게 다짐한다. 작가의 글이 좋다. 그 이유를, 비밀을 알게 되어 기쁘다. 동감한다. 무엇보다 글은 읽기 쉬워야 한다.

 

책은 단박에 읽었다. 미소가 떠나가지 않는 그런 책이다. 재밌다. 글 속에서 언급한 정직한 관객을 구입했다. 30여 년 전의 그의 글을, 지금과는 많이 다르다. 느낌이 다르다. 그런데 글이 둘 다 좋다. 잡설가의 관심은 어디까지 일지 모르겠다. 척척박사, 만불박사 같다. 계속 글이 나왔으면 좋겠다. 머리가 굵어지며 잡설가의 책을 읽으며 성장했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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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보면 알게 될 지도 -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나를 찾다
최현덕 지음 / 아이두스튜디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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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카페 까미노 친구들 연합의 글을 통해 먼저 남양주 덕이라는 닉네임으로 먼저 알게된 최현덕님의 새 책 걷다보면 알게 될 지도서평단 모집에 응모하여 책을 받아, 냉큼 읽었다. 그동안 프랑스길을 걸으시면서 올려주신 글을 카페글을 통해 읽어왔던 터라 복습하는 기분으로 읽어 내려갔다.

 

글을 깔끔하고 명료했다. 사진은 그간 순례자들이 올려준 것에 비해 새로운 시각의 사진들이어서 신선(?)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본인 사진은 어떻게 찍었을까? 누가 찍어 줬을까? 그러기엔 구도가 너무나도 일관되어 궁금했다. 그리고 그려나간 스케치는 새로운 울림과 자극이었다. 그동안 만년필로 매일 한시를 필사하면서, 스케치를 배우면 하고 생각하던 터라,,,,

 

산티아고 순례길은 얼추 20년 전에 알게 되었다. 제주 올레길을 만드신 서명숙 이사장의 인터뷰를 통해였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출간된 책을 읽어 나가며 가슴앓이를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더 이상 동경만 하다 안 될 것 같아 제주 올레길을 순례길 걸으신 분들의 리듬으로 걷기 시작해 완주했었다. 동경과 갈증은 다스려질 것을 기대했으나 오히려 더 커졌다.

 

국내 출간된 산티아고 순례길 관련 책자는 거의 다 읽어 본 것 같다. 번역서도 있고, 국내 작가의 글도 있다. 이들의 글을 통해 그들이 걸었던 이유, 걸어야만 했던 이유, 걸으면서 좋았던 기억, 나빴던 기억, 만났던 사람, 보아온 풍경, 그리고 느낌, 사유, 기억 등등,, 모두 다 다르고 달랐다. 읽어나가며 나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 나를 올려 놓고 읽어 나갔다.

 

이번 책은, 생각이 작가의 발걸음 속도 만큼 바빴다. 내 기억에 이렇게 빠른 걸음으로 걸어 나갔던 이가 있었을까 싶었다. 내 걸음도 1시간 6km 정도인데, 평지이고 배낭이 없을 때나 가능한 걸음인데, 12kg 정도 배낭을 짊어진 이의 걸음이라고 하기에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읽는 내내 심적 호흡이 가빠지고 거칠어 갔다.

 

이번 책은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깔끔하고 명료하다. 어쩌면 그냥 기록이고, 사유에 대한 서술은 단순하다. 그런데 처음엔 뭔가 허전하고 빠진 게 많은 것 같다 생각했는데, 책을 덮을 때 꽉 찬 느낌을 받았다. 마치 하루 일정을 한 장의 세련되고 잘 정리된 보고자료 같은 느낌이었다.

 

글을 읽는 시간은 짧았다. 잘 읽었다. 그럼에도 한 달에 가까운 작가의 여정을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제일지 모르지만 내가 걸을 그 길을 만들어 나갈 때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정말 궁금하다. 본인의 사진을 찍은 방법이, 그리고 책보다 카페에 올려진 글이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것은 비밀 아닌 비밀이다.

 

속으로 외쳐 본다. 부엔 까미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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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덕 2024-11-25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제 책을 다 읽고 이렇게 훌륭한 후기까지 써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글과 사진, 스케치 실력이 무척 부족하지만, 제 당시 생각과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홀로 걷다보니 제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찍을 때는 미리 옆에 가는 분들을 찍어 드린 뒤 이런 모습으로 찍어달라고 부탁도 드리곤 했습니다. 스케치 역시 사진이 담을 수 없는 저만의 느낌을 표현하는 데 좋겠단 생각에 유튜브 보면서 몇 번 연습을 했고 순례길에서 만나는 오래된 건축물 중심으로 펜스케치를 해본 겁니다. 순례자들과의 대화거리로도 안성맞춤이어서 대화는 자연스레 맥주나 와인, 저녁까지 이어지곤 했구요. 책으로 엮으면서 까친연에 올린 글을 절반 정도 덜어낸 뒤 사진과 스케치 위주로 편집을 해 가독성도 높였구요. 머지않아 떠나실 선생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길 바랄 뿐입니다. 저 역시 언젠가 또다시 떠날 날을 꿈꾸며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행복한 꿈 많이 꾸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7
무라카미 하루키.오자와 세이지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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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듣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무엇보다 음악과 함께 책 읽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음악이 먼저냐? 책이 먼저냐?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답변이 궁색해진다. 둘은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그리고 둘을 같이하는 시간이 좋다. 참 좋다.

 

음악을 듣다 보면, 음악에 대한 전문가 해설을 듣고 싶을 때가 많다. 특히, 클래식 음악은 연주자나 지휘자에 따라 곡의 해석이 달라지고, 이에 음악이 달라진다. 당연히 듣는 나는 완전히 다르게 느끼고 해석하게 된다. 그 연주자는, 지휘자는 왜 그렇게 연주하고 해석했을까? 이런 질문을 늘 단다.

 

마찬가지다. 책 읽기도 그렇다. 작가나 등장인물은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그 상황에서 왜 그런 표현을 했는지? 그래도 연주자나 지휘자에 비해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다. 이미 많은 질문들이 있었고, 서평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글에 대한 글로서의 답이기 때문일지도,

 

생존하는 작가일 경우 작가에게 직접 물어보면 된다. 물론 답을 못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질문을 글로 정리하다 보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리고 정리할 수 있을수도 있다. 하지만 음악은, 접근이 제한되어 있다. 좋아하는 많은 연주자나 지휘자는 오래전에 고인이 되셨기 때문이다.

 

오자와 세이지(이하 지휘자), 얼마전에 그분의 부고를 접했다. 식도암으로 오랫동안 투병하신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부고를 듣고 또 한 분의 마에스트로가 가셨구나! 했다. 그는 인종이나 국적을 떠나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지휘자였다. 하지만, 이젠 과거형이다.

 

동양인으로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린 지휘자는 한 손에 꼽을 정도인데, 그중 최고 반열에 올랐던 지휘자다. 물론 현역인 우리나라 출신 정명훈씨도 있다. 두 마에스트로를 비교하자면, 물론 비교가 무의미하지만 경력면에서 따져보면 오자와 세이지는 훨씬 높다. 그냥 그는 최고였다.

 

무라카미 하루키(이하 작가),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소설가이기도 하고, 번역가이기도 하고, 그리고 마라토너이기도 하고, 또 그 외 많은 수식어를 가지고 있다. 여튼 작가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할 때 늘 후보로 올라가는 유명한 작가이다. 나에게 작가의 첫 책은 노르웨이의 숲이었다.

 

작가는 많은 분야에 관심이 많다. 책을 통해 접한 그의 관심사만 해도 음악, , 달리기, 여행 그리고 티셔츠 등등, 그래서 삶을 다양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롤모델이기도 하다. 작가는 젊어서부터 음반을 모으고, 음악을 들어왔다. 특히 째즈 음악에 관심이 많고 그 다음이 클래식 음악이다.

 

이 두 작가와 지휘자는 각자 영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또는 위치했던 거장들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두 사람의 서로에 대한 존경과 흠모, 배려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서로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거장의 면모라는 말로 정리할 수 없는 깊이와 넓이를 보여주었고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작가는 그랬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작가가 대가 중의 대가인, 심지어 그 당시 현역 최고 중에 한 분이었던, 작가에게는 어쩌면 아이돌과 같은 존재인 지휘자를 만난 것이다. 책 구석구석에서 느껴지는 존경과 경외감 등등, 작가의 몸가짐과 태도를 너무나도 생생히 읽을 수 있었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만나 1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수차례 만나 유명 작가가 아닌 아마추어 음악 애호가 입장에서 작가가 질문을 하고 대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둘의 대화를 작가는 정리하고, 그리고 지휘자가 다시 읽고 또 정리한 한 것이다. 혹시 잘못 얘기한 것이 없나 하고,

 

책에서는 시대를 초월하는 명곡들과 작곡가 그리고 음악가, 오케스트라에 대한 얘기, 물론 뒷얘기 등으로 가득하다. 두 사람은 같이 음반을 들으면서 나누는 많은 공부를 바탕으로 하는 작가의 생각과 질문, 이에 대한 지휘자의 해석, 설명 등, 글로 정리된 것이 이 정도면 실제 나눈 얘기는 어땠을까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궁금했다.

 

놀라운 것은 질문하는 작가의 준비였다. 작가가 정말 많은 공부와 준비를 했음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음악을 들어본 사람이면 안다. 1시간 전후의 긴 곡을 듣다 보면 전체에 집중하기 어렵다. 하여 지극히 순간에서 감동한다. 하지만 감동 지점은 연주가가 다르면, 지휘자가 다르면 달라진다. 간혹 어제들은 음악이 오늘은 달라지기도 한다.

 

작가는 음악에 대해서, 연주에 대해서 마치 프로 연주자와 같이 분석하고 이를 확인하듯 지휘자와 대화했다. 이는 같은 음반을 듣고 또 듣기를 수없이 반복하고 자료를 찾아야 가능한 일임을 알기에 얼마나 준비했을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마치 자기 책을 준비하는 자세로 임했을 것이라 짐작했다.

 

지휘자의 톤과 메너는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를 앞에 앉혀놓고 옛날에는 그랬지 하는듯하였다. 하지만 작가의 질문에 대해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생각이 다르면 그 다름을 인정하며, 자신의 얘기를 풀어나갔다. 책을 읽는 내내 따스했고 옆에서 같이 얘기를 듣는 듯했다.

 

얘기는 두서없다. 보통 거장과의 대담은 음악 입문부터, 학창시절 얘기, 그리고 경력을 쌓아가는 과정, 업적, 대단한 사람들과의 일화 등으로 그 형식이 일반적으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작가는 남달랐다. 물론 이런 얘기는 대화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얘기는 사방으로 튀고 확장되고 있다. 그런데 깊은 곳에서는 한없이 깊다.

 

자신의 유년시절 얘기, 미국으로 넘어가 고생한 얘기, 음반이 녹음될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그만이 알 수 있는 얘기, 전설의 마에스트로 번스타인과의 얘기,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들의 얘기, 연주자들과의 에피소드, 그가 창단한 오케스트라인 사이토 기넨을 창단하고 같이 연주한 얘기 등등,

 

지휘자는 내가 말이야, 그때는 이랬는데 라는 뻐기는 듯한 얘기가 아니라 그때는 그랬어 라는 식으로 위엄이나 허세 등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톤으로 얘기를 해 나갔다. 특히, 내가 영어를 좀 더 잘했으면 그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을텐데 라는 말은 인상에 남았다.

 

이는, 지휘자로서는 치명적인 단점을 스스로 들춘 것이다. 지휘자와 연주자들과의 소통은 기본이다. 지휘자의 입에서 영어를 더 잘했으면, 그 상황을 더 잘 이해했을 것이라는 말은 어쩌면 숨기고 싶었을 일인데, 오히려 자연스럽게 반복해 얘기하는 모습을 보고 지휘자의 그릇을 짐작할 수 있었다.

 

책을 읽다 보면 좀 의아스럽다는 지점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음악적 지식이나, 음반에 대한 정보로만 한정하면 작가가 더 많이 알고 더 전문가인 것 같아 보인다. 정말 그래 보였다. 하지만 그러한 지식도 정보도 당시 현장에 있었고, 중심에 있었던 지휘자에게는 그냥 그런 정보나 지식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가 스스로 보았고, 그가 스스로 들었고, 그가 스스로 연주했고 지휘했고, 그가 스스로 그들과 호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말투에서 내가 말이야 하는 식의 거들먹 거림은 없었고 몰랐던 지식이나 정보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잘못 알고 있었다고, 얘기를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자백과 고백을 반복하였다.


그랬다. 이 책은 작가를 앞에 두고 하는 지휘자의 담백하고 솔직한 고백이자 증언이었고 그래서 일까? 작가는 어느 한순간도,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담는 수고를 다 했던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독자인 나는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생을 정리하고 마감하는 지휘자의 솔직한 고백,

 

작가는 글 쓰는 법을 음악에서 배웠다고 했다. 그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음악에서 뭐가 제일 중요하냐 하면 리듬이죠. 글의 리듬이란 단어의 조합, 문장의 조합, 문단의 조합, 딱딱함과 부드러움, 무거움과 가벼움의 조합 균형과 불균형의 조합, 문장부호의 조합 톤의 조합에 의해 리듬이 생깁니다.”

 

그래서일까? 작가의 글은 잘 읽힌다. 리듬을 잘 타고 있다. 어려운 말이나 대단한 문구에 대한 인용이 없다. 잰체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의 작품을 사랑하고 읽는 것이다. 나 역시 지나가는 길에 무심코 들리는 서점에서 제일 먼저 검색해 보는 작가가 무라카미 하루키이다.

 

오자와 세이지, 항상 위대한 마에스트로라는 수식어를 가진 지휘자이다. 그런데 이분의 음반을 들어본 경험이 일천하다. 이 분외에 들을 수 있는, 들어야 하는 음반이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덮고 음반을 뒤져 봤다. 이젠 6,000~7,000장 어디쯤 되는 음반 속에서 그의 음반은 몇장 되지 않았다.

 

책 읽기를 마무리하면서, 궁금해졌다. 두 사람이 같이하는 공간이 궁금했고, 두 사람이 나누는 체온이 궁금했고, 공기가 궁금했다. 책 소개에는 두 거장의 클래식 대담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그런데, 읽고 나면 대담(對談)이 아니라 한담(閑談)이었다. 한담, 심심하거나 한가할 때 나누는 이야기,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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