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부시마니쿠스 - 문명 바깥의 슬기로운 사람들
정해종 지음 / 파람북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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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막에서 콜라병을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우리에게는 흔하고 익숙한 콜라병이지만, 부시먼에게는 낯선 문명의 물건이었을 것입니다. 이 장면은 문명이 가져온 편리함과 풍요가 과연 모든 사람에게 같은 의미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우리는 문명의 발전과 함께 더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빠르고 편리하게 이동하며, 더 효율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좋은 삶의 기준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풍요로워진 만큼 우리의 삶도 더 행복해졌을까요? 오히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호모 부시마니쿠스>'문명 바깥의 슬기로운 사람들'이라는 부제 그대로 칼라하리의 부시먼을 단순히 '문명 이전의 원시적인 사람들'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들이 오랜 세월 자연과 함께 살아오며 쌓아온 지혜와 생활방식을 통해, 문명사회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자연과 관계 맺는 감각, 충분함을 아는 지혜, 함께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돌아보며 인간다운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부시먼의 수렵과 채집, 자연을 이해하는 지식, 공동체의 질서와 평화를 지키는 방식 등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많이 소유하는 것이 반드시 풍요로운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서로 나누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경쟁과 소유를 중시하는 현대인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또한 신화와 죽음에 대한 태도, 암각화와 예술 등을 통해 부시먼의 세상과 삶을 바라보고 표현해 온 방식도 보여줍니다. 낯설게 느껴지는 부시먼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온 문명과 삶의 방식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가 번듯한 집 한 채를 소유하기 위해 수십 년짜리 대출의 사슬을 목에 걸고, 그 무게를 감당하려 원치 않는 노동에 매이며, 그 자리를 지키려 생의 눈부신 시간들을 분 단위로 쪼개어 팔 때, 그들에게 집을 잃을까 밤잠을 설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의 '없음'을 우리식으로 번역하면, '채무 없는 삶'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p.44

 

부시먼의 삶에는 냉장고, TV, 선풍기, 아니 전기 자체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것처럼 느껴지는 물건들이지만, 자연의 리듬을 따라 살아가는 그들의 삶에서는 오히려 낯선 것들일 뿐입니다. 많은 물건을 소유하지 않는 삶은 불편해 보이지만, '없음'은 그들에게 가벼움과 자유를 줍니다. 소유해야 할 것이 적기에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자연의 작은 변화에도 귀 기울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풍요는 많이 가지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소유에 얽매이지 않으며, 적게 가지고도 삶의 즐거움과 만족을 누릴 줄 아는 것이 진정한 풍요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풍요로운 삶이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가진 것에 만족하며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느냐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풍요를 더 많이 갖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더 큰 집, 더 좋은 자동차, 더 많은 물건을 가지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고 소비합니다.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부족하다고 느끼고, 더 편리하고 더 나은 것을 찾아 계속 무언가를 채워갑니다. 어쩌면 우리는 많은 것을 가진 대신, 가진 것에 만족하는 법과 충분함을 느끼는 마음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부시먼의 삶은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보다 '지금 가진 것으로 얼마나 충분히 살아가는가'를 돌아보게 합니다.

 

 


부시먼과 동물의 관계는 우리에게 한 가지 오래된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동물을 무엇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이용해야 할 자원인가, 보호해야 할 대상인가, 아니면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또 하나의 생명인가. 부시먼에게 동물은 삶을 이어가게 해주는 사냥감인 동시에, 자연의 질서를 가르쳐주는 스승이었고 자신의 위치를 비추는 거울이었다. p.102

 

부시먼에게 동물은 단순히 먹기 위해 잡는 사냥감이 아니었습니다. 살아가기 위해 의지해야 하는 존재인 동시에 자연의 질서와 삶의 이치를 가르쳐주는 스승이었고,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거울이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동물을 사냥하면서도 자신이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그 안에 속한 존재임을 잊지 않았던 것입니다. 부시먼의 삶은 자연과 동물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도 돌아보게 만듭니다. 우리는 동물을 식량이나 상품으로 소비하기도 하고, 반대로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만큼 인간의 필요와 기준으로 자연과 동물을 판단하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편리함과 풍요를 누리는 과정에서 자연을 얼마나 이용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두었을 뿐,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부시먼의 삶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자연을 정복하고 더 많이 얻는 것이 발전이라고 믿어온 우리에게,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소유가 아니라 자연의 목소리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아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이제 생각을 조금 비틀어 보면 어떨까. '원시(原始)'라는 단어를 글자의 위치를 바꾸어 '시원(始原)'으로 읽는 것. 그렇게 글자의 순서가 바뀌는 순간, 그 의미는 뒤처진 야만의 상태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영성이 시작된 '기원'으로 장엄하게 복원된다. 그것이 본래의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게 읽을 때, 부시먼의 삶은 더 이상 문명 이전의 미성숙한 단계에 머물지 않는다. p.210

 

혹시 '원시'라는 말을 들으면, 문명에 뒤처진 상태나 아직 발전하지 못한 삶을 떠올리는 건 아닌가요? 하지만 부시먼의 삶은 그 익숙한 생각에 질문을 던집니다. '원시'를 단순히 문명에 뒤처진 상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시작된 곳이라는 의미에서 바라보면 부시먼의 삶은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우리는 문명이 발전하면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편리함과 풍요를 얻는 과정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감각, 서로 나누고 의지하는 마음처럼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부시먼의 삶을 바라보는 일은 과거의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문명의 편리함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는 부시먼의 삶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그들의 삶을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자연을 대하는 태도와 필요한 만큼만 가지려는 마음, 서로 나누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방식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빠르고 편리하게 살아가는 것만이 좋은 삶의 기준은 아닐 것입니다. 문명이 주는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무엇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생각하고, 가진 것을 채우는 데만 집중하기보다 지금 가진 것의 가치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생각하고,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애쓰기보다 주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많이 가지는 것보다 충분함을 알고, 혼자 앞서가는 것보다 함께 살아가며, 자연과 사람을 존중하는 삶, 그것이 문명사회에서 우리가 부시먼의 삶을 통해 다시 배워야 할 인간다운 삶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호모 부시마니쿠스>'문명 바깥의 슬기로운 사람들'이라는 부제 그대로 칼라하리의 부시먼을 단순히 '문명 이전의 원시적인 사람들'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들이 오랜 세월 자연과 함께 살아오며 쌓아온 지혜와 생활방식을 통해, 문명사회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자연과 관계 맺는 감각, 충분함을 아는 지혜, 함께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돌아보며 인간다운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부시먼의 수렵과 채집, 자연을 이해하는 지식, 공동체의 질서와 평화를 지키는 방식 등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많이 소유하는 것이 반드시 풍요로운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서로 나누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경쟁과 소유를 중시하는 현대인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또한 신화와 죽음에 대한 태도, 암각화와 예술 등을 통해 부시먼의 세상과 삶을 바라보고 표현해 온 방식도 보여줍니다. 낯설게 느껴지는 부시먼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온 문명과 삶의 방식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꿈오리 한줄평 : 부시먼의 삶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다운 삶의 가치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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