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이의 고독
양선미 지음 / 파람북 / 2025년 7월
평점 :

인간은 외로운 존재라고 한다지요. 인간만큼 고독한 존재도 없다지요. 그런 존재들 사이에서도 유독 더 외로워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수도 적고, 조용해서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 스스로 존재감이 없다고 느껴지는 사람들, 어디에도 없는 듯하지만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존재함으로 우리 사회가 존재함을, 우리는 때로 잊고 사는 건 아닐까요?
<영이의 고독>은 말수도 적고 조용해서 눈에 띄지 않는 아이 영이의 성장기로, 눈에 띄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를 든든하게 떠받치는 사람들에게 '평범해도 충분히 아름답다!'며 위로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영이의 모습을 보며, 영이의 주변 환경을 보며, 누군가는 자신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영이는 온순했다. 영이에게는 누군가의 부탁이나 명령을 거슬러본 기억이 없다. 순한 기질로 태어난 것인지, 세상의 사물을 분간하고, 배고픔을 알게 되고, 자신의 출생에 개입한 것이 사랑이나 믿음이 아닌 어리석음과 경솔함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p.13
조용하면서 온순한 아이, 누군가의 부탁이나 명령을 거슬러본 적 없는 아이, 그래서 타인의 의지로 사격부에 들어간 아이, 바로 영이입니다. 화약총 때문에 달리기 출발 시기를 놓치는 영이가 사격을 한다니요? 그럼에도 영이는 자신은 사격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한때 어딘가에 소속된다는 것, 무엇보다 학교를 대표한다는 것에 대해 낙관적인 생각을 했을지라도, 애초에 사격은 영이와는 맞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이도저도 아니었던, 차라리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사격부원의 삶은 씁쓸하게 막을 내립니다.
그런 영이의 눈에 띈 인물이 있었으니, 영이와 달리 주변 상황에 휘둘리지 않으며, 사람들의 질시나 찬사, 호기심이나 기대의 대상이 되는 현경입니다. 영이는 자신도 언젠가 동화책 속 주인공처럼 난관을 극복하고 사랑받는 존재, 행복한 존재가 될 것이라는 상상을 하고는 했습니다. 그것이 "자신에게 닥친 난관을 대하는" 영이만의 방식이었습니다.
새로운 생활이 영이는 마음에 들었다. 끝없는 고난과 역경의 드라마 같던 사격부와 달리 급사의 시간은 부드럽고 달콤한 카스테라를 먹는 듯했다. 두 개의 일을 소화해야 하고 그래서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집에 들어갔지만 상관없었다. p.88
사격부를 그만둔 영이는 학교를 야간으로 옮긴 다음 대학교 급사 일을 시작합니다. 급사 일을 하며, 생전 처음으로 선물을 받고 특별 보너스도 받았습니다. 사격부와 달리 급사 일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평소 다정해 보였던 조교에게 그 일을 당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하필 그때, 가장 친한 친구였던 선옥이 영이 곁을 떠납니다. 그 시절 영이와 가장 가까웠던 깨순이가 떠난 것처럼...,
성인이 되자 영이는 조금 변했다. 소심하고 주눅 들고 주변의 눈치를 보는 성정에 새로운 것들이 보태졌다.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으나 염증, 불안, 절망, 상실 혹은 긴장과 비슷한 감정들이었다. 그것들은 원래 있던 것들과 뒤섞여 시시때때로 영이를 괴롭혔다. p.231
성인이 된 영이는 급사 일을 하던 대학교 학과장의 소개로 은행에 취업을 합니다. 계약직이기는 하지만 언젠가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채로요. 하지만 8년의 시간이 지나도록 정규직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이야기는 영이가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간 엄마를 다시 만나며 끝이 납니다. 함께 있으나 멀리 있는 것과 다름없는 두 사람 사이의 간격, 어쩌면 그것은 영이의 모든 삶을 관통해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좋은 남자의 아내가 될 수 있었지만, 그 역시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 또한 마찬가지, 어쩌면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폭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해서일지도 모릅니다. 조용하면서 온순한 아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소심하고 주눅 든 아이, 성인이 되었지만 오히려 불안과 상실의 감정을 더하며, 온전히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지 못했던 영이, 그럼에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오고 있었던 영이, 어쩌면 지금도 수많은 영이는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영이의 고독>은 말수도 적고 조용해서 눈에 띄지 않는 아이 영이의 성장기입니다. 영이의 이야기는 눈에 띄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를 든든하게 떠받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기대를 받지 않아도, 그저 수많은 모래알 중 하나일 뿐일지라도 충분히 아름답다며 위로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꿈오리 한줄평 : 모래알처럼 작아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 특별하지 않지만 자신의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