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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 - 제15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문학동네 청소년 75
이로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2월
평점 :

평범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믿기지 않는 참사, 누군가에겐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 일이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참혹하고 가슴 아픈 일로 남아 있습니다. 가까운 이들을 잃은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 역시도 그러합니다. 어쩌면 그들의 시간은 참사가 일어났던 그 시간에 멈춰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그들의 마음에 남겨진 슬픔과 아픔을 치유할 수 있을까요. 슬픔과 고통 속에 남겨진 이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넬까 고민하지 말고 그저 그 사람의 말을 가만히 들어주는 것은 어떨까요? 그것이 마음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는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로 참사로 희생된 사람들과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 그리고 남겨진 유족의 아픔을 통해 기억과 애도 그리고 연대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가던 학생들과 일을 하러 가던 어른들,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 축제를 즐기려던 젊은이들에게 일어난 참사, 희생자들과 유족들 그리고 생존자들이 겪었을 고통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모두가 한 마음으로 바라볼 순 없겠지만, 최소한 비난과 혐오의 시선을 보내지는 말아야하지 않을까요. 누군가는 잊힐 권리가 있다지만, 누군가에겐 잊히지 않을 당연한 권리를 지켜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나를 '배려'하면서 자의식을 공고히 하려는 사람들을 마주하면 짜증이 났다. 배려받을 사람과 배려받지 못할 사람을 구분할 자격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사람들. 나를 싫어하는 순간, 그들은 생존자를 싫어하는 고작 그런 사람이 된다. p.13
이 책의 화자인 연서는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입니다. 사람들은 연서가 참사의 기억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그때와 지금의 연서는 같을 수가 없습니다. 진상 조사를 외치는 친구 호정이, 마음먹기에 따라 이겨낼 수 있다는 아빠, 피해자다움을 바라는 사람들,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잊히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잊힐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 모두가 연서를 일 년 전 그날로 데려다 놓습니다. 그렇기에 일 년이 지났어도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세심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아빠는 그날 이후 연서에게 엄청난 신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연서를 알려고 노력하는 대신 모든 문제를 연서 탓으로 돌리던 그 아빠가 말이죠. 하지만 상담을 받고 약을 먹는 연서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보다는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며, 연서가 강한 아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 있는 추모공간을 없애라는 항의 전화도 합니다. 추모 공간을 없앤 사람이 아빠라는 것을 알게 된 연서는 방송부와 학생회, 그리고 유가족과 생존자로 이루어진 교내 추모 준비단 활동을 그만둡니다.
어둠 속에 한 쌍의 눈동자가 있었다. 그건 사람의 눈이었다. 새하얀 흰자와 조명을 받아 쪼그라든 동공이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검은 물 위로 얼굴만 둥둥 띄운 채 입을 뻐끔거렸다. 왝, 왝, 하는 울음소리가 입술 움직임에 맞춰 울려 퍼졌다. p.25
잠이 오지 않는 밤, 하천 산책로를 따라 걷던 연서는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를 찾아갑니다. 하수구 밑에서 들려오는 소리의 정체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연서는 놀라서 도망치고 맙니다. 혹시 괴담으로만 전해지는 '반 인간 반 파충류'와 같은 존재인 걸까요?
다시 찾아간 하수구에서 만난 건 지상 사람이랑 얘기를 하고 싶었다는 소년이었습니다. '왝 왝'소리의 정체는 맹꽁이지만, 굳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 그 친구에게 연서는 왝왝이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소년은 왜 그곳에 있는 것이며, 왜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 걸까요? 나중에 드러나게 될 소년의 정체를 알고 나면, 왜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는지를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그날 이후 연서와 왝왝이는 사소한 이야기로 크고 작은 언쟁을 벌이기도 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기도 하며 여느 친구와 다름없는 날들을 보냅니다. 그러다 하수구 덮개를 사이에 둔 만남이 아닌, 진짜 만남을 위해 왝왝이가 있는 지하 세계로 갑니다. 왝왝이는 자신이 지내는 곳은 아무 고통도 없고, 누구도 자신을 힘들게 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데요. 정말 그곳에 살면 슬픔도 고통도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런데 왜 왝왝이의 눈가는 어두운 것일까요?

그날의 일을 그냥 천재지변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희가 그날 그곳에 있었어도 그렇게 쉽게 말했을 거냐고 따지고 싶었습니다. (중략) 그러니까 저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습니다. (중략) 비로소 알았어요. 잊을 수 없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잊지 말라고 소리를 질러야 잊어 가는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돌아본다는 것을. p.141~142
자신은 잊히고 싶지도, 잊고 싶지도 않음을 깨닫게 된 연서는 다시 준비단에 들어가고 교내 추모제에서 낭독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해나갈 수 있는 일을 하리라, 자신을 잊어버린 존재가 된 그 소년을 지상 세계로 데려오리라 다짐합니다. 이야기는 연서와 친구들 그리고 한때 왝왝이였던 소년이 참사 추모 음악회를 진행하며 끝이 납니다. 지금도 왝왝이가 있던 하수구 철창 밑에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그래서 스스로를 잊어버린 수많은 왝왝이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는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로 참사로 희생된 사람들과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 그리고 남겨진 유족의 아픔을 통해 기억과 애도 그리고 연대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가던 학생들과 일을 하러 가던 어른들,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 축제를 즐기려던 젊은이들에게 일어난 참사, 희생자들과 유족들 그리고 생존자들이 겪었을 고통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모두가 한 마음으로 바라볼 순 없겠지만, 최소한 비난과 혐오의 시선을 보내지는 말아야하지 않을까요. 누군가는 잊힐 권리가 있다지만, 누군가에겐 잊히지 않을 당연한 권리를 지켜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스스로를 잊어버린 채, 하수구 철창 아래서 살아가는 수많은 왝왝이들이 그들이 살았던 세계로 돌아오기를, 비난과 혐오가 아닌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주기를, 그래서 수많은 왝액이들이 존재했다는 것조차 모르게 잊히는 이들이 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꿈오리 한줄평 : 존재했다는 것조차 모르게 잊혀지고 있는 왝왝이들에겐 잊히지 않을 당연한 권리를 지켜줘야 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