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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이 사라졌다 - 제25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ㅣ 보름달문고 95
김은영 지음, 메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2월
평점 :

어느 날 갑자기 바깥으로 통하는 모든 문이 사라졌다면? 현관문과 창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엔 오로지 벽만 있을 뿐이라면? 외부 세계와 완전히 차단된 집안에서 지내야만 한다면? 그때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어느 날 문이 사라졌다>는 제목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문이 사라진 집안에 남은 남매 해리와 해수의 이야기입니다. 현관과 창문이 사라진 것은 물론 인터넷, 전화, 텔레비전 등등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진 집안에 남겨진 남매는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집안에서 맞닥뜨린 재난 상황, 해리와 해수는 위기를 극복하고 집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게 그대로였다. 현관문도 창문도 모조리 벽으로 바뀌어 버렸다는 것만 빼고. 마치 집이 통째로 택배 상자 안에 밀봉된 것 같았다. p.10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현관문과 창문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엔 단단한 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전화도 인터넷도 인터폰도 안 되기에 어느 누구에게든 구조를 요청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엄마가 아침밥을 지어놓고 출근하는 그 짧은 시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혹시 엄마가 문을 다 막아 버린 것은 아닐까? 해리는 문득 엄마에게 화를 내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애지중지하던 애착인형을 말도 안 하고 버린 엄마에게 화가 났던 것이었지요. 하지만 밥도 해 놓고 간 엄마가 그럴 리는 없습니다.
안했슈 TV의 안해수입니다. (중략) 지금 누나와 둘이 집 안에 갇혀 있어요. 전화도 안 터져서 구조 요청을 할 수도 없어요. 이 영상을 보신 분들은 우리 엄마나 119에 연락해 주세요. 문 없앤 거 내가 안 했슈! 안했슈 TV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p.16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걸까요? 온 집안을 구석구석 샅샅이 뒤진 끝에 현관 옆 끝방 천장 근처에서 와이파이 신호가 잡힌다는 것을 알게 된 해수는 아이튜브 계정에 현재 상황을 보여주는 영상을 올립니다. 실종 신고를 받고 온 경찰도 갇힌 상황에서 아이튜브 놀이를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습니다. 아이튜브 계정을 구독한 사람들은 응원의 댓글도 달았지만, 주작이라며 악플을 달기도 했습니다.

해리는 먹는 둥 마는 중 젓가락만 휘저었다. 드디어 혼자 라면을 끓여 보았지만 기뻐할 수가 없었다. 조금 전 상황이 얼마나 위험했는지를 떠올리면 아찔했다. 지금 집에는 문이 없다. 불이 나도 탈출할 수 없다는 뜻이다. p.37
해리는 난생 처음으로 라면을 끓였습니다. 가스레인지를 켜고 라면을 끓이려다 휴지에 불이 붙어 큰일 날 뻔 했지만요. 세탁기로 빨래도 하고, 화장실 청소도 합니다. 해수도 난생 처음 설거지를 합니다. 밥그릇을 떨어뜨리기도 했지만요. 누나 해리는 엄마 대신 동생을 재우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해리와 해수도 위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튼튼한 동아줄을...., 아니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을 받을 수 있을까요?
내가 깨면 병아리, 남이 깨면 프라이라는 말 몰라? 스스로 나올 수 있게 놔둬야 해. 사람이 깨 주면 금방 죽는대. p.108
집안에 갇혀 지내는 상황을 아이튜브로 보여주는 해리와 해수, 나름 적응하며 살아가고는 있지만 언제 탈출할지 모르는 상황이니 미래를 위한 대책도 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유정란으로 병아리를 부화시킬 계획을 세우는데요.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정성을 다해 돌봅니다. 드디어 알을 깨고 나오려는 병아리, 몇 시간의 사투 끝에 혼자 힘으로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병아리의 모습은 해리와 해수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해줍니다.

해병이도 꽉 막힌 알에서 껍데기를 깨고 나왔잖아. 문이 없으면 우리가 문이 되는 거야. p.128
병아리 해병이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는 모습을 본 해리와 해수는 문이 없는 집에 문을 만들어 내기로 결심하고, 두려운 마음에 차마 용기내지 못했던 어둠속으로 한 발짝 나아갑니다. 어둠의 끝에는 분명 빛이 있을 테니까요.
가장 안전해야 할 집에서 불시에 일어난 재난은 가족과 함께 하는 평범한 날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줍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서 몰랐던 평범한 일상, 저녁이면 모두가 돌아와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곳, 피곤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편히 쉴 수 있는 곳,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집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스스로가 만들어 낸 내 안의 벽은 무엇인지, 왜 그런 벽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합니다.
<어느 날 문이 사라졌다>는 제목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문이 사라진 집안에 남은 남매 해리와 해수의 이야기입니다. 현관과 창문이 사라진 것은 물론 인터넷, 전화, 텔레비전 등등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진 집안에 남겨진 남매는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집안에서 맞닥뜨린 재난,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해리와 해수는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며,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고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 합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아이들이라서 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른들이었다면 재난 상황에서도 문제를 해결하려 함께 노력하는 대신, 책임을 전가하며 서로를 비난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꿈오리 한줄평 : 문을 열고 나갈 용기만 있다면 문은 어디에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