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윤성희 외 지음, 강미연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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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설렘과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안함과 두려움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설렘과 두려움 그 사이에서 한 걸음을 내딛기까지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창비교육 테마소설 열두 번째 소설집 <시작하는 소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시작'을 주제로 7명의 작가들이 삶에서 마주할 수 있는 시작의 장면을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이야기로 담아낸 소설집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순간순간 인생의 시작점에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시작은 새로운 학교, 직장으로의 첫걸음일 수도 있고, 낯선 곳으로의 여행, 누군가와의 첫 만남일 수도 있으며, 혹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순간일 수도 있습니다. p.6

 

<시작하는 소설>은 생일날 가출을 결심한 성규가 서로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약속한 민호와 함께 가출을 감행하면서 한 뼘 더 성장해가는 이야기 '마법사들', 첫 출근 버스를 기다리며 2,0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실까 말까 고민하던 ''4,500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택시를 타고 출근하며, 이탈리아 여행을 꿈꾸는 이야기 '백한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 스승에게 10여 년 동안 닭 요리를 배우던 문기가 처음으로 혼자 요리 강좌를 시작하는 이야기 '봄의 피안', 자신이 해 본 것은 결과가 좋지 않을지라도 자신에게는 플러스라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해본 것들은 흉터가 아닌 근육이 되어 자신을 성장시킨다고 생각하는 재인 이야기 '근육의 모양', 기억나지 않는 과거, 차마 기억할 수도 돌이킬 수도 없던 과거의 상처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려는 상현의 이야기 '어제의 일들', 아들이 달라이 라마의 환생일지도 모른다는 말에 평생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꿈결 같은 시간을 보낸 한 가족의 이야기 '실뜨기놀이', 낯선 타국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힘들었던 70대 할머니에게 찾아온 각설탕 같은 달콤 사랑 이야기 '흑설탕 캔디'까지 시작을 주제로 한 7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요. 그중 장류진 작가의 '백한 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읽었던 이야기이기도 하고 익숙한 지명이 등장해서 더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아주 짧은 이야기임에도 '시작'이라는 주제와 찰떡처럼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실까, 말까. 갈등한 지 십 분째. 버스가 바로 왔다면 마시지 않고 그냥 탈 생각이었는데, 대체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나는 정류장 뒤쪽의 카페 유리문을 힐끗 쳐다봤다. p.39

 

아침부터 푹푹 찌는 더위에 버스를 기다리다 지친 ''는 카페 유리문에 적힌 'TAKE OUT 시 아메리카노 2,000'에 절로 시선이 갔습니다. 사상 초유의 폭염이라는데, 이러한 때 얼음이 가득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상상만으로도 체감 온도가 낮아진 것만 같았으니까요. 새 회사로의 첫 출근길이도 하지만 처음으로 정규직으로 출근하는 첫 번째 직장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긴장되는 출근길이기도 했기에,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은 더 간절했을지도 모릅니다.

 

세후 월급에서 이런 저런 것들을 다 공제하고 나서 남을 돈까지 철저하게 계산을 해둔 '', 하지만 첫 출근을 땀으로 샤워한 모습으로 할 순 없겠지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들어선 카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는 예상치 못한 금액에 당황하게 됩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2,000원이 아니라 4,500이라니 말이죠. 누가 이 더위에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해서 마신단 말인가? 그런데 직원은 이태리에선 한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만 먹는다나..., 2,000원이 아니었다면 아예 들어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

 

어쩔 수 없이 두 배 이상의 돈을 지불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나선 '', 버스 도착 시간 정보를 계산하면 회사에 지각할 일은 없지만, 첫 출근이니만큼 일찍 출근하고 싶었던 ''는 버스를 기다리는 대신 택시를 탑니다. 그렇게 택시비 8,000원을 지불하고 회사가 있는 건물 앞에 선 ''는 자동 회전문 앞에서 들어갈 타이밍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추합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또 이런저런 이유로 무시를 당할 수도 있으며, 입사 취소가 될 수도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똑바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숄더백을 한 번 추켜올리고, 한 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든 채로, 새로 산 구두굽 소리가 경쾌했다. P.45

 

그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커다란 손, 조각 미남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선 ''는 내년엔 처음으로 여름휴가를 쓸 수 있지 않을까를 상상합니다. 비록 오늘은 망했을지라도, 내일부터 아끼고 아껴서 십만 원짜리 적금을 하나 더 부어, 이탈리아 여행을 갈 것이라는 행복한 상상에 빠져듭니다.

 

<시작하는 소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시작'을 주제로 7명의 작가들이 삶에서 마주할 수 있는 시작의 장면을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이야기로 담아낸 소설집입니다.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설렘과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안함과 두려움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설렘과 두려움 그 사이에서 한 걸음을 내딛기까지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엮은이들의 말처럼 7편의 이야기들이 "삶의 불안함, 두려움, 망설임을 느끼고 있을 이들에게 소소한 공감과 희망"으로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꿈오리 한줄평은 엮은이들의 말로 대신합니다.

 

오늘 하루도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청소년들과 청년들, 인생의 중반을 묵묵히 걷고 있을 중년의, 삶의 끝자락을 간신히 딛고 있을 노년의 어른들께도 따스한 위로와 응원을 건네는 선물이 되었으면 합니다.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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