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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처 - 이상한 나라의 낯선 존재들 ㅣ I LOVE 아티스트
숀 탠 지음,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24년 8월
평점 :

"이 낯설고 이상한 존재들에 매혹당하지 않을 수 없다!"는 문구에 매혹당해 텀블벅 펀딩에 참여한 꿈오리, 두 달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실물로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받는 순간 책 판형 크기와 무게에 놀라기도 했지만(무척 크고 무겁답니다), 이상한 나라의 낯선 존재들이 들려줄 이야기가 궁금해서 표지를 넘기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사실 어딘가를 뚫어질 듯 쳐다보는 표지 속 크리처에게 압도당하여 한동안 표지에 머물러야만 했지만요.

커다란 날개를 가진 부엉이? 커다란 눈이 하나인 정체불명의 조류? '크리처'로 불리는 특정한 존재가 소녀와 함께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습니다. 마치 <크리처>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독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크리처'란 무엇일까요? '크리처'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나요? 어쩌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괴물' 또는 '정체불명의 괴생명체'가 가장 먼저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크리처'의 사전적 의미(네이버 어학 사전)는 "생명이 있는 존재, 생물"입니다. 그러니 굳이 괴물이나 정체불명의 괴생명체로 특정 지어지는 건 건 아니지 않나?, 이런 생각도 듭니다.
<크리처>는 단편 애니메이션 <잃어버린 것>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기념상과 케이트 그린어웨이 메달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작가 숀 탠의 아트북으로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그리고 영화 제작자로서 25년간 활동해 온 성과물을 총망라한 작품입니다.

이 책은 숀 탠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던 시기인 1995년에서 2021년 사이에 그린 그림들로, 전시 출품작들부터 공상과학물 일러스트, 그림책, 만화, 영상 디자인, 연극 무대 디자인, 그 외 정의 내리기 힘든 여러 장르의 그림들을 '크리처'라는 주제로 담아내었는데요. '잃어버린 것', '동반자', '신화와 은유', '새'까지 4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에세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름 없는 생명체가 지닌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것이 어디를 가든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독자가 자신이 원하는 만큼 마음껏 은밀한 상상력을 발휘해 자기만의 의미와 해석을 도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데에 있다. 결국, 크리처란 특정한 무언가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존재이다. p.9
'크리처'하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괴물' 또는 '정체불명의 괴생명체'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는 않나요? 어쩌면 그건 경험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다양한 창작물들에 의해 덧씌워진 이미지일지도 모릅니다. 작가의 말처럼 크리처는 "특정한 무언가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주위와 어울려 지내려 애쓰고, 개성을 지키려 애쓰고, 최선을 다해 세상을 이해하려 애쓰고, 존재하려고 애쓰는 그런 존재"들, 현재를 살아가는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들이 아닐까 합니다.

서양 문화권에서 '크리처'와 '괴물'은 동의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수천 년에 걸쳐 내려오는 이야기들만 떠올려 봐도 이 어둡고 위험한 낯선 존재에 대한 인식이 인간의 마음속에 얼마나 깊숙이 자리 잡혀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딱히 공포심이나 도덕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존재들조차도 어딘가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중략) 그래도 언제나 내 마음을 더욱 끌어당겼던 것은 상투적인 이미지의 괴물이 아닌 낯섦에 감정을 가미한, 뭐랄까 동반자적 느낌을 주는 이야기였다. p.47
'크리처'하면 '괴물', '정체불명의 괴생명체' 등등 특정한 무언가를 떠올리게 됩니다. 하지만 숀 탠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현재를 살아가는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들 또한 크리처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숀 탠은 말합니다. "우리 인간도 어떤 이상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또 하나의 이상한 존재라는 것, 함께 이야기 나눌 누군가, 들어 줄 누군가, 침묵 속에 나란히 앉아 애초에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함께 고민하며 동반자가 되어 줄 누군가를 갈구하는 한 생명체일 뿐(p.49)"이라고 말이지요. 숀 탠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크리처'에 대한 선입견이 조금씩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토끼 머리를 한 인물이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고 있는 모습을 그린 <천국으로 가는 길>, 여러 개의 팔다리를 가진 엄마의 손을 잡고 가는 아이의 모습이 인상적인 <어머니와의 동행>, 자연사 박물관이 아닌 현실 어딘가에서 마주칠 것만 같은 트리케라톱스를 그린 <어미와 자식>, 밀레의 그림이 떠오르는 <씨 뿌리는 사람>, 17년간 고단한 사무직 생활로 지친 한 말단 회사원이 해방감을 경험하고 변모하는 이야기를 그린 그림책의 주인공 <매미> 등등의 많은 작품들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바로 화사한 깃털의 새를 그린 <제국>입니다. 이 그림은 작가와 가족의 추억 그리고 매일같이 마주치던 동네 볏새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이라고 하는데요. 사람들이 잠든 도시(불빛은 꺼지지 않았을지라도)를 지켜주는 신성한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크리처>는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그리고 영화 제작자로서 25년간 활동하면서 창작해 온 성과물을 총망라한 작품으로 230여 페이지에 실린 글과 그림은 마치 숀 탠의 작품 전시회를 보는 느낌마저 듭니다.
꿈오리 한줄평 : 낯선 존재들과 낯설지 않은 시간을 보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