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애에 이름을 붙인다면
시요일 엮음 / 미디어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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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계절 봄이 코앞에 와 있습니다. 꽃이 한창일 때도 좋지만 이제 막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새싹이 돋아날 때의 기쁨과 설렘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 시작도 그러하지 않을까 합니다. 막 피어오르는 꽃송이처럼 설레다가 금세 여름 햇살처럼 뜨겁게 타오르기도 하지만 한순간에 차갑게 식어버릴 수도 있는 사랑, 지금 여러분의 사랑은 어떠한가요?

 

시 큐레이션 앱 '시요일'에서 기획한 다섯 번째 시선집 <이 연애에 이름을 붙인다면>은 기쁨과 행복 속에 빠져들게도 하고 고통과 슬픔 속에 허우적거리게 만들기도 하는 사랑에 대한 시가 담겨 있습니다. 사랑에 이름을 붙인다면, 여러분은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이 책은 1'사랑을 시작하는 얼굴', 2'당신이라는 기묘한 감정', 3'우리가 한 몸이었던 때를 기억해'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처음 그 마음을 잃어버려 아파하고 슬퍼하는 이들에게, 그 순간만큼은 온 세상이 너였고 둘이 하나가 될 수 있었던 이들에게, 달콤쌉싸름했던 그 시절을 추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67편의 시가 담겨 있습니다.

 

 

꽃말

 

이문재

 

나를 잊지 마세요

꽃말을 만든 첫 마음을 생각한다

꽃 속에 말을 넣어 건네는 마음

꽃말은 못 보고 꽃만 보는 마음도 생각한다

나를 잊지 마세요

아예 꽃을 못 보는 마음

마음 안에 꽃이 살지 않아

꽃을 못 보는 그 마음도 생각한다

나를 잊지 마세요

꽃말을 처음 만든 마음을 생각한다

꽃은 전했으되 꽃말은 전해지지 않은

꽃조차 전하지 못한 수많은 마음

마음들 사이에서 시든 꽃도 생각한다

'이 연애에 이름을 붙인다면' ~

 

'나를 잊지 마세요'를 보자마자 떠오른 물망초에 얽힌 전설, 애인에게 꽃을 꺾어주기 위해 강을 헤엄쳐 간 남자, 하지만 꽃을 꺾어 오다 급류에 휘말린 남자는 애인에게 꽃을 던지며 '나를 잊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하는데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절망감보다 사랑하는 이의 곁에 영원히 남고 싶다는 절절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겠지요? 사랑하는 이를 두고 떠날 수밖에 없다면, 누구라도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꿈에서라도 한 번은 만나기를 고대하는 마음,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김소월

 

해가 산마루에 저물어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저뭅니다.

 

해가 산마루에 올라와도

내게 두고는 당신 때문에 밝은 아침이라고 할 것입니다.

 

땅이 꺼져도 하늘이 무너져도

내게 두고는 끝까지 모두 다 당신 때문에 있습니다.

 

다시는 나의 이러한 맘뿐은, 때가 되면,

그림자같이 당신한테로 가오리다.

 

오오, 나의 애인이었던 당신이여.

'이 연애에 이름을 붙인다면' ~

 

해가 지고 뜨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 내가 존재하는 이유 또한 그러하겠지요? 그 대상은 사람마다 다를지라도 말이지요.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모든 것들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헤어져 당장 달려가서 볼 수 없을 만큼 먼 곳에 있을지라도 "그림자같이 당신한테로 가오리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쩌지 못하겠지요? 그 마음만큼 어쩌면 그 마음보다 더 많이 사랑했을 테니까요...,

 

 

좋은 일

 

곽재구

 

익은 꽃이

바람에 날리며

이리저리 세상 주유하는 모습

바라보는 것은 좋은 일

 

(중략)

 

유모차 안에 잠든 아기

담요 위에 그려진 하얀 구름과 딸기들 곁으로

소월과 지용과 동주와 백석이 찾아와

서로 다른 자장가를 부르려 다투다

아기의 잠을 깨우는 것은 좋은 일

 

눈 뜬 아기가

흩날리는 꽃잎을 잡으려

손가락 열 개를 펼치는 것은 좋은 일

아기의 손가락 사이에

하늘의 마을이 있어

꽃잎들이 집들의 푸른 창과

지붕에 수북수북 쌓이고

오래전 당신이 쫓다 놓친 신비한 무지개를

꿈인 듯 다시 쫓는 것은 더 좋은 일

'이 연애에 이름을 붙인다면' ~

 

이제 막 봄이 시작되려는데, 작고 여린 열 손가락을 펼쳐 떨어지는 꽃잎을 잡으려는 아기의 모습을 떠올리며, "익은 꽃이 바람에 날리며 이리저리 세상 주유하는 모습"을 기다리는 건 너무 성급한 마음일까요? 눈부신 햇살 아래 산들거리는 바람을 맞으며 봄날의 산책을 떠나고픈 마음이 드는 날입니다. 꿈오리 한줄평은 <이 연애에 이름을 붙인다면> 속 내 마음을 울린 구절로 대신합니다. 이 구절에서 마음이 울컥했던 것은 왜일까 싶었는데, 아마도 며칠 전에 본 영화 한 편 때문인 듯합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면서도,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던 장면, 현실에선 그 간절한 마음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었을까 싶어서 더 마음이 아팠던 그 장면 때문인 듯합니다.

 


 

그때 알았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때 처음 아팠네

그러려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것

'이 연애에 이름을 붙인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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