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꽃 소년 - 내 어린 날의 이야기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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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떠나는 듯한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는 한 여인 그리고 그 곁에 선 어린 아이, 표지 그림 속 가족의 모습이 왠지 아련해 보이는 건 왜일까요?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아님에도 말이지요. 어쩌면 젊은 새댁이었던 우리 할머니와 어린 아들이었던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 이러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소년 소녀가 살아있다. 어느덧 70성상을 바라보는 내 안에도 소년이 살아있다. 내 안의 소년은 '눈물꽃 소년'이다. 해맑고 명랑한 얼굴로 달려와 젖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곤 한다. p.239

 

<눈물꽃 소년>'내 어린 날의 이야기'라는 부제 그대로 평이로 불리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낸 에세이입니다. 가족, 이웃, 공소 신부님, 선생님과 친구들 그리고 그 시절 첫사랑이었던 소녀까지, 33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소년 평이와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들의 따스한 이야기에 웃음 짓다가 가슴 시린 이야기에 눈물을 흘릴 수도 있습니다.

 

박노해 시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노동자이자 저항시인입니다. 하지만 그의 글을 자주 접하지는 않았기에 '박노해'가 시인의 필명이라는 것도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요. 이 책을 읽고 나면 막연하게 떠올려지는 이미지에 더해 누군가에게 따스한 품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임을,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런 사람임을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말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듣는 사람이 빛나고, 안다 하는 사람보다 잘 묻는 사람이 귀인이니께. 잘 물어물어 가면은 다아 잘 되니께. p.12

 

몰라도 아는 척, 없어도 있는 척, 듣지도 않으면서 듣는 척..., 온갖 ''을 하며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사는 사람들, 처음으로 어려운 심부름을 다녀온 손자 평이에게 들려준 할머니의 이 말을 ''하느라 바쁜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몰라도 괜찮다고", 그러니 모를 땐 물어보라고, 그리고 누군가의 말을 잘 들어주라고...,

 

알사탕같이 최고로 달고 맛난 것만 입에 달고 살면은 세상의 소소하고 귀한 것들이 다 멀어져 불고, 네 몸이 상하고 무디어 분단다. (중략) 이 할무니한텐 세상에서 우리 평이가 젤 이쁘고 귀한 꽃이다만 다른 아그들도 다 나름으로 어여쁜 꽃으로 보인단다. 아가, 최고로 단 것에 홀리고 눈멀고 그 하나에만 쏠려가지 말그라. p.33

 

알사탕의 강렬한 맛에 사로잡힌 어린 평이는 붉은 홍시, 대추알, 화롯불에 구워 조청에 찍어먹던 인절미, 동백꽃의 달큰함...,알사탕을 먹기 전에 느꼈던 "유순하고 담박하고 부드러운" 나름의 단맛을 가지고 있는 그 모든 맛을 잊어버리기라도 한듯 혓바닥을 빨갛게 물들이던 그 단맛에 빠져들게 됩니다. 모든 것이 풍족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떤 단맛에 빠져 있을까요? 그 단맛에 빠져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늘 함께 하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사람의 이름은 말이다. 저마다 깨끗한 비원이 담긴 것이고 이름을 부르면서 그 뜻을 알려주는 것이제. 네 이름대로 네 길을 걸어가면 이미 유명한 사람 아니냐. 다른 사람 이름 가리지 말고, 제 이름 더럽히지 말고, 자기 이름대로 살면 그게 유명한 사람 아니냐. p.220

 

부자, 장군, 마도로스, 의사..., 무언가 되고 싶은 것이 있는 친구들과 달리 우물쭈물하는 어린 평이, 없이 사는 사람들을 위한 힘 있는 사람이 되어볼까, 좋은 일 많이 하는 부자가 되어볼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런 모습을 본 고모부는 "남 보고 살지 말고, 꿈을 갖겠다고 재촉하지 말고, 먼저 큰 뜻을 세우고 성실하고 꾸준하게 하라"는 말을 합니다. 유명한 사람이 되어서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어볼까 하는 평이에게 훈장님은 "세상 사람 모두 다 이름이 있으니 유명有名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면서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면 이미 유명한 사람"이라는 말을 합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이미 유명한 사람, 그러니 그 누구도 아닌 자신만의 길을 자기의 속도에 맞춰 걸어가면 좋겠습니다.

 

가족, 이웃, 공소 신부님, 선생님과 친구들 그리고 그 시절 첫사랑이었던 소녀까지, 박노해 시인이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하는 33편의 이야기, 따스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웃음 짓다 가슴 시린 이야기에 눈물을 흘릴 수도 있는 <눈물꽃 소년>,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도 ''만의 길을 걸어가며 ''의 역사를 만들어가기를 바래봅니다! 소소하고도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가 모이고 모여 우리들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꿈오리 한줄평은 책속 문장으로 대신합니다.

 

인류의 가장 중요한 유산은 이야기다. 자기 시대를 온몸으로 관통해온 이야기, 자신만이 살아온 진실한 이야기, 그것이 최고의 유산이다.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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