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인 듯 눈물인 듯
김춘수 지음, 최용대 그림 / 포르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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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를 꼽으라면 절대 빠지지 않을 시 중 하나가 바로 <>이 아닐까 합니다. 학창 시절 누구나 한번은 보고 들었을 시이자 시험공부를 위해 시 전문을 외우고 그에 담긴 의미까지 열심히 외우고 또 외웠던 시이기도 합니다. <꽃인 듯 눈물인 듯> 속 시들을 낭송하며 새삼 시인의 시를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외에는 말이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꽃인 듯 눈물인 듯' ~

 

<꽃인 듯 눈물인 듯>2005년 처음 선보인 김춘수 시인의 시화집을 재출간한 책으로 김춘수 시인 20주기 추모 시화집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을 포함한 대표작과 다수의 미발표작을 포함한 시 53편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문학평론가 강경희님이 책에 쓰신 그대로 "개념의 문자와 형상 이미지의 조합은 시가 그림이 되고, 그림이 시로 변하는 절묘한 예술적 긴장과 미학을 완성했다.(p.136)"고 할 수 있습니다. 시를 좋아하지만 어쩌면 문외한에 가까운 꿈오리이기에 두 거장이 시에 담은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리 만무하지만, 그럼에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픈 시들이 있습니다. 시인이 생각한 바와 다를지라도, 아내를 기다리는 화가 이중섭의 모습을 담은 <내가 만난 이중섭>5월 어느 날 아침 골목길에서 만난 노부부의 모습을 그린 <노부부><>이 그랬던 것처럼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을 듯합니다.

 


 

내가 만난 이중섭

 

광복동에서 만난 이중섭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가 온다고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길 위에

발자욱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나는 또

남포동 어느 찻집에서

이중섭을 보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동경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꽃인 듯 눈물인 듯' ~

 

일본인 야마모토 마사코와 결혼한 이중섭은 첫 아이를 디프테리아로 잃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하며, 생활고로 힘들어하던 아내가 두 아들과 함께 일본으로 간 이후 단 5(1953)의 만남을 끝으로 더 이상 만날 일은 없었다고 하는데요. 온종일 바다를 보며 아내를 기다리던 이중섭의 모습이 더 애처롭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연유인 듯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수 없음에 온 마음으로 흘린 눈물이 푸른 바다 속으로 스며들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노부부

 

서울 변두리 아파트 단지 후미진 길목에 놓인 장의자의 한쪽 귀퉁이에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 있다. 비스듬이 몸을 뒤로 젖히고 눈을 감고 있다. 여남은 발 앞의 맞은편에도 장의자가 하나 놓이고, 그 한쪽 귀퉁이에는 할머니 한 분이 앉아 있다. 할머니는 앉아서도 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조금씩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아카시아꽃이 만발한 5월 어느 날 아침,

'꽃인 듯 눈물인 듯' ~

 

지금도 골목 어디에선가 마주칠 것만 같은 노부부의 모습, 화창한 5월 어느 날의 아침에 만난 노부부의 모습에선 살아온 세월만큼의 비움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저물어가는 삶의 그 어디쯤에서, 함께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지금껏 평행선을 달려왔을지라도, 함께 한 세월만큼 아름다운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삶이 녹아 있을 것만 같습니다. 화창한 5월의 햇살 사이로..., 꿈오리 한줄평은 책속 문장으로 대신합니다.

그림을 그리듯 시를 쓰는 시인과 시를 쓰듯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만남이 깃든 이 책이 독자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길 바란다.

'꽃인 듯 눈물인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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