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빛을 따라서
권여름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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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마트에 다녀온 듯한 장바구니 아래 공책인 듯 이면지인 듯한 종이가 보입니다. 봄빠라미 그리고 잘못 쓴 글자를 고쳐 쓴 듯한 바람이, 지우개가 달린 연필심이 뭉툭한 걸 보니, 누군가 글자 공부를 꽤 열심히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장바구니와 글자 공부 사이엔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요? 여섯 명의 작가가 그려낸 학교 괴담 소설집 <스터디 위드 X>를 통해 만난 적이 있는 권여름 작가님, 우리 아이들이 겪는 현실적인 이야기라 더 무서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 책은 어떤 이야기를 그려내었을까요?

 

<작은 빛을 따라서>는 내장산으로 가는 도로에 인접한 '필성슈퍼'를 운영하는 가족의 이야기로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소시민의 이야기이자 실패의 과정에서 성장해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굳이 덧붙이자면 IMF 금모으기 운동으로 국난을 극복했다는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책을 읽다보면 장류진 소설가의 추천사처럼 "고개를 젖히고 소리 내어 웃기도 하고, 축축한 손등으로 흐르는 눈물을 연신 훔쳐"낼지도 모릅니다.

 

비밀이 누설되는 순간, 무엇이 있었나? 다른 아닌 '포도 씨앗'이 있었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할머니의 비밀을 아는 데에 더 긴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p.9

 

이야기는 화자인 은동이 열여섯 살 때 우연히 할머니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눈이 안 보여 성경 봉독을 할 수 없다는 할머니가 어떻게 아주 작은 포도 씨앗을 그렇게 쉽게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인지, 그렇게 아주 사소한 행동 하나로 할머니가 글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날 이후 은동은 할머니의 한글학교 선생님이 되는데요. 무엇이든 스펀지처럼 쑥쑥 빨아들일 나이가 아니니, 열정은 넘쳐도 진도가 잘 나갈리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할머니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글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찌릿찌릿해진답니다. 비록 맞춤법은 틀릴지라도, 글 속에 진심이 담겨 있음을 아니까요.

 

부러운 사람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나는 알아들었다. 나 역시 뺑덕어멈이 되고 처음 느낀 감정이 그것이었으니 말이다. 꿈은 부러운 것이 없게 만든다. p.100

 

필성슈퍼의 둘째 딸 은동은 배우가 꿈입니다. 글을 읽을 줄 알게 된 할머니가 "부런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모습을 본 은동은 배우가 꿈인 자신의 꿈도 이루어질 것만 같은 행복한 상상을 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을 깨뜨린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임을 깨닫게 되는 일이 벌어지고야 마는데요. 은동에게 실망감과 더불어 배신감마저 느끼게 만든 배우 아카데미, 은동에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럼에도 은동은 계속 배우의 꿈을 꿀 수 있을까요?

 

나에게도 그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시간이 약인 건 맞는 모양인지, 조금씩 그 충격의 강도가 약해졌다. 하지만 무언가 달라진 것만은 분명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중략) 두렵고 무서운 것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소중한 어떤 것을 놓치는 거였다. p.198

 

여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는 필성슈퍼, 하지만 근처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마트가 생겼다가 사라질 때도 어쨌든 간당간당하게 살아난 필성슈퍼, 하지만 대형마트가 들어서자 더 이상 간당간당하게 견디어내는 것도 어렵게 됩니다. 그리하여 은동 아빠는 트럭을 몰고 섬을 돌며 물건을 파는 일을 하게 되는데, 타고 다니는 여객선이 사고가 났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다행히 배를 탈 수 없게 되면서 무사히 돌아왔지만, 그 사건으로 은동은 정말 두렵고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공부도 아닌 배우 아카데미에서 일어난 일도 아닌,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던 것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지요.

 

엄마와 아빠는 슈퍼가 심란한 일을 겪을 때마다 청소를 하고 뭔가를 궁리했다. 지금도 그렇다. 다시 이기기 위해 전략을 짜고, 때론 종목을 바꾸며 변신했다. 외부의 파도에 쉽게 흔들렸지만 마냥 휩쓸리지는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믿음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p.243

 

공과금은 물론 급식비와 학원비까지 내지 못할 지경에 이르는 최악의 상황이 닥칠지라도, 어떻게든 간당간당 헤쳐 나가는 필성슈퍼 가족들, 또다시 새로운 벽이 가로막을지라도 그 벽은 허물어질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 여정 속에서 한 뼘 더 성장하며 나아갈 은동, 은동의 꿈도 그렇게 이뤄질 날이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꿈오리 한줄평 : 평범한 소시민의 이야기이자 실패의 과정에서 성장해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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