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사랑의 말들
김달님 지음 / 미디어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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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빛이 가득한 길을 걷는 듯한 느낌, 가을이 오고 있는 이때에 따스한 봄길을 산책하는 느낌이 드는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를 만났습니다. 마치 가을을 기다리며 유난히 따스한 봄을, 지독히도 무더운 여름을 지나온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는 부제 그대로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사랑의 말들'을 담아놓은 책이자 "이야기들은 모이고 모여서 결국 나의 이야기를 탄생시킨다. 그 이야기들이 매일 조금씩 나를 자라게 한다."는 추천사처럼 우리들의 이야기이자 우리들을 성장시키는 이야기들을 담은 책입니다.

 

모두가 아는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 살면서 어렵지 않게 만나는 주변 사람들의 말. 내게는 한 명 한 명 다르게 특별하지만 그 사람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이들이 더 많은, 결국엔 내가 아는 평범하고 특별한 사람들의 말. p.8

 

"시장에서 조금 더 저렴하게 파는 생선을 발견하는 작은 행운에도 기뻐하는 사람. 봄이 오면 나무에 나뭇잎이 어떻게 자라는지 유심히 보는 사람. 긴급재난지원금으로 브랜드 쌀을 사는 사치를 처음 부려본 사람...," 김달님 작가는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누군가는 그저 지나칠 수 있었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세심하고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내었습니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여든 너머의 삶. 그 삶에도 여전히 기대하고 실망하는 일이 생긴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도 여전히 나만 아는 기쁨을 간직하게 된다는 것. 그것을 잊지 말라는 것처럼. p.25

 

아는 영화감독이 병사 엑스트라가 필요하다고 하자, 기꺼이 수많은 병사 중의 한 사람이 되고, 첫 상영회 날 친한 친구들을 데리고 그 영화를 보러갔으나 끝내 촬영분이 편집되어 아주 짧은 순간 스치듯 등장하고, 엔딩크레디트에 본인의 배역과 이름이 올라갈 때에도 끝내 본인 외에는 아무도 알아보지는 못했다는 이야기, 저자가 방송국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알게 된 분의 이야기는 현재 ''의 삶을 돌아보고, 미래 어느 날의 ''의 모습을 그려보게 만듭니다. 여든 셋의 ''"하루하루가 심심할 틈"이 없이 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가고 싶게 만듭니다.

 

그가 정성을 다하는 대상이 매일 반복되는 노동뿐 아니라 이곳에서 보내는 하루하루, 그렇게 쌓여가는 자신의 삶이라는 점이 나의 한구석을 반듯하게 펴주는 기분이 들었다. p.37

 

27년 전에 한국으로 온 치에코 씨는 저자가 다니는 회사 건물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치에코 씨와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화장실을 늘 청결하게 유지하는 부지런함, 그리고 인사를 나눌 때마다 느껴지는 명랑한 기운이 좋아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그녀가 미화일기를 쓰고 있다는 것, 그녀 또한 저자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자신을 지키는 영역을 무리하게 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치에코 씨, 마음이 담긴 '정성'을 좋아한다는 치에코 씨, "매일 아침 사람들이 감동할 것을 기대하며 그날의 노동을 다짐"하는 치에코 씨..., 치에코 씨의 '정성'에 자신의 삶이 쌓여가듯, 우리의 삶도 그렇게 하루하루 정성이 쌓여 스스로에게 그리고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아이들이 커서 잘 살아가려면 나중이 아니라 지금 많은 행복을 느끼고 여러 경험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중략) 언젠가 떠나야 하는 아이들에게 사랑받은 기억을 남겨주는 일. 어쩌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작별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p.47~49

 

가정에서 돌볼 수 없게 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보호시설 이화영아원, 영아원에서 비보이 팀을 이끌고 있는 사무국장의 "나중이 아니라 지금 많은 행복을 느끼고 여러 경험을 해야 한다."는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태어나서 스무 살이 될 때까지의 삶이 마치 대학 입시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한 삶인 것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현실에서, 우리는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날들을 허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한 순간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좋은 원두로 내린 뜨거운 아메리카노는 깔끔한 코트 같지만, 1분도 채 걸리지 않고 휘휘 저어 먹는 믹스커피는 가볍게 두르는 따뜻한 목도리 같았다. 물론 여름에는 여름대로 얼음을 넣어 차갑게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데 뜨거울 때보다 뾰족해진 단맛을 느낄 수 있다. p.255

 

믹스커피 때문에 살이 더 찌는 것일 수도 있다, 믹스커피 때문에 위가 안 좋아질 수도 있다..., 등등의 말을 하며 믹스커피 대신에 아메리카노를 마시기를 권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믹스커피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꿈오리, 체중을 줄여보겠다며 저녁을 굶고 열심히 운동을 하면서도 믹스커피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주 오랫동안 습관처럼 마셔온 탓에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겠지만, 이젠 저자의 말처럼 "믹스커피는 가볍게 두르는 따뜻한 목도리" 같다는 말로 대신하고 싶습니다. "이만큼만 넣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물의 양이 적다는 데에서, 왠지 동질감을 느끼면서 말이죠.

 

우리 주변 어딘가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누군가는 그저 지나칠 수 있었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세심하고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낸 이야기, 따스한 봄에 태어나 지독히도 무더운 여름을 보내며 한 뼘 더 성장하여 아름다운 가을을 맞이하는 듯한 이야기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꿈오리 한줄평은 미처 말하지 못한 책속 문장으로 대신합니다.

 

언젠가는 이런 것도 해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꿈꿔보는 것. 가능성이라는 건 원래 내게 있던 무언가를 발견하는 게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했기 때문에 생겨나기도 한다는 것.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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