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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의 용이 울 때 ㅣ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2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3년 5월
평점 :

<한국인 시리즈>로 만났던 이어령 박사, 그가 들려주는 한국인 이야기는 한국인의 정체성,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찾아보게 만듭니다. 천하루 밤을 지세우면 아라비아의 밤과 그 많던 이야기는 끝나지만, '한국인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땅속의 용이 울 때>는 이어령 박사의 유작인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의 두 번째 책으로 언젠가 모두가 돌아가야 할 흙을 주제로 생명의 가치를 조명하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인 이야기'는 우리 안에 잠든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다시 깨우기 위한 이야기입니다. 수난의 민족사를 견뎌냈던 흰옷 입은 사람이 부르던 흙과 땅의 노래, 마파람과 된바람, 샛바람, 하늬바람의 메아리에 다시 귀를 기울입니다. p.47

이 책은 1부 '흙 속에 숨은 작은 영웅', 2부 '다시 쓰는 흙과 바람의 이야기', 3부 '가장 약하기에 가장 강한 것', 4부 '땅에서 얻은 말로 세상을 다듬다'까지 모두 4부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땅속의 용이라 불리며 생명이 살아가는 흙을 만드는 지렁이 이야기로 시작하여 '밟히더라도' 무기물을 유기물로 만드는 생명의 통로인 지렁이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우리 역사는 '밟은 자'의 역사가 아닌 '밟힌 자'의 역사지만, 그럼에도 앞으로의 우리나라를 걱정하지 않는 것은 바로 "흙을 기억하고 역사를 기억하면서 미래는 만드는 세대"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참 한국 사람들은 대단하지요. 지렁이는 한자어 지룡(地龍)에서 파생된 말이에요. 그 하찮아 보이는 지렁이를, 햇빛 나면 그냥 말라비틀어질 뿐인 그 약한 지렁이를 '저것은 지룡이다, 땅속의 용이다'하고 생각했어요. (중략) 그러니까 결국 지렁이를 알아준 사람은 한국인, 그중에서도 지렁이의 울음소리를 들은 사람들이에요. 다윈보다도 먼저 말이죠. 땅속의 용인 지렁이가 환상 속의 용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울지 못하는 지렁이의 울음을 들어준 우리 선조들이에요. p.45~46
원폭이 떨어져도 산다고 하는 지렁이, 생각할 줄 알아서 문화를 만들었지만, 자연과 다른 생명체를 괴롭게 만드는 인간들과 달리 자신뿐만 아니라 지구의 다른 생명의 삶까지 책임지는 존재인 지렁이에 대한 이야기는 놀라움을 안겨줍니다.

자연계 순환의 고리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흙입니다. 흙에서 자란 식물을 먹고 생활하던 동물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서 다시 다른 생명을 위한 거름이 됩니다. 흙이 없으면 그 재생의 고리도 끊어져요. 그 중요한 흙을 오늘날 우리는 아스팔트로 시멘트로 덮어버립니다. 아스팔트와 시멘트 아래의 흙은 생산을 하지 못하니 죽은 흙과 마찬가지입니다. 고속도로가 생기면 그 고속도로의 길이와 너비만큼 흙이 생산할 수 있는 풀, 나무, 잡초, 곡식..., 이런 생명이 줄어드는 겁니다. p.154~155
"흙은 국토의 개념이고 내 생명의 개념이고 민족의 개념"인데 "근대화와 산업화를 거치며 사라져가고 도시화로 인해 그만큼 농촌의 흙이 메말라간다"면서 "도시 집중화, 농촌의 인구소멸이야말로 쇠퇴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이어령 박사의 말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보존보다는 무조건적인 개발을 앞세우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듯합니다. 션 캐럴의 경고처럼 "인간은 확실히 생태계를 독점하는 핵심종임에 틀림없지만, 생태계의 법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생태계에 해를 가한다면 최종적으로는 패배자"로 남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직접 책을 통해 만나길 바라며, 꿈오리 한줄평은 책속 문장으로 대신합니다.
흙이 죽으면 민족이 죽어요.
흙이 죽어서 더 이상 생명을 길러내지 못할 때 망하고 맙니다. p.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