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다고 외치고 나서야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정순임 지음 / 파람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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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자식이 아무리 많아도 모두 소중하게 여긴다는 의미의 속담, 바로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입니다. 하지만 '열 손가락 중에도 가장 아픈 손가락이 있더라'는 말을 하는 건 왜일까요? 장남이라서, 딸 많은 집의 아들이라서, 가장 기대가 되는 자식이라서.., 등등의 이유로 온갖 예쁨과 사랑을 받는 자식들이 있는 반면, 어릴 때부터 차별받고 자랐으며,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똑같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자식들도 있습니다. 차별적인 대우의 단계를 넘어서 친정엄마로 인해 공황장애까지 겪는 사람도 있습니다. 더 이상 참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 그동안의 일을 털어놓았음에도,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는 친정엄마, 조금 더 일찍 힘들고 아프다는 말을 했더라면 달라졌을까요?

 

괜찮다 괜찮다 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러려니 덮어두면 아무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죽는 날까지 살아질 줄 알았다. (중략) 잠금장치를 망가뜨린 감정은 마치 언젠가를 기약하며 지하 세계에 숨어 몸짓을 불리고 있던 만화 영화 속 괴물처럼 일상을 덮쳐왔다. p.5

 

<괜찮지 않다고 외치고 나서야 괜찮아지기 시작했다>15대를 한 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봉건시대 양반집의 둘째이자 딸로 살아온 저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딸과 그들의 딸들이 살아갈 세상에서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여전히 갈 길이 만만치 않음을 이야기하며, 요즘 많이 이야기하는 '역차별'이란 것도 결국 "차별이 있었기에 존재하게 된 것"이라며, 이 책을 쓴 이유도 그런 것이라 말합니다.

 


 

집에는 한 해하고 5일을 먼저 태어난 오빠가 있었고, 둘째인 것만으로도 당연했던 시절인데 종손인 오빠를 두고 태어난 가시나에게 차별이란 건 놀라운 일도 아니다. 밖에선 귀댁의 영애, 안에선 차별받은 가시나, 이것보다 더 정확하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없다. p.14

 

15대를 걸쳐 400년을 한집에서 살아온 가문, 일 년에 열다섯 번의 제사를 지내는 종갓집, 그야말로 봉건적 전통이 고스란히 내려오는 집, 그런 집의 장남이란 어떤 존재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습니다. 그 시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조금 더 풍족한 삶을 살아왔다고 할 수는 있을지라도, 둘째이자 딸이라는 이유로 당연한 듯 받아들여야 했던 차별은 은연 중 마음 깊은 속에 상처로 남았을 것이라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저자의 이야기와 결은 다를지라도 이상하게 꿈오리도 겪었던 일인 것처럼 느껴지는 에피소드들이 있었는데요. 그 시대의 수많은 딸들보다는 훨씬 더 사랑받고 자랐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82년 생 김지영>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졌음에도, 장남과 딸은 다른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저자의 경우처럼 아버지가 아닌 엄마에게서 차별적인 느낌을 받았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인데요. 그 시대를 살아온 우리들의 어머니들은 여자란 '이러이러 해야 하며, 이러이러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왔기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안다. 당신과 나를 동일시했다는 걸, 남자들 밥상 위에 맛있는 거 놓고 여자들은 대충 먹으면 된다고 배우고 익히며 살아온 당신의 세월을, 모성이란 과도하게 포장된 남자들을 위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것이란 걸, 그런 시절을 산 엄마가 혼자 달리 살기는 어려웠단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알고 있었기에 속으로 삭이고 대항하지 않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p.217

 

저자 스스로도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보다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주 사소한 일들에서 상처를 받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아들만이 아니라 딸을 위해 헌신하고 대학 교육에도 차별을 두지 않으셨던 엄마였음에도, 그 시대를 살아온 엄마의 삶은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의 틀을 벗어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도 딸과 아들을 대하는 모습이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한 엄마에게 부아가 나고 속이 상한 딸은 급기야 오십이 넘은 나이에 가출이라는 것까지 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딸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 시절을 살아온 엄마에겐 당연한 일이기도 했거니와 자기 삶의 억울함을 쏟아낼 수 있는 대상이 남편이나 아들이 아닌, 엄마에겐 만만한 딸이었을 것임을 말이지요. 나이가 들수록 어려운 일이라는 "잘못을 인정하고 바꾸는 일", 그 어려운 일은 하는 엄마, 그런 엄마를 존경하는 딸은 환갑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도 엄마가 있어 아이가 됩니다.

 

꿈오리 한줄평 :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에게 속상하고 서운한 감정이 드는 딸의 갈등과 화해 그리고 치유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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