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높다란 그리움
이상훈 지음 / 파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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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테헤란로를 걷는 신라공주>를 통해 처음 만나게 된 이상훈 작가, 역사 소설을 쓰는 작가로만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첫 시집 <고향생각>20만 부 이상 팔리면서 데뷔와 동시에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른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시인이란 직함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 시집이 세 번째 시집이라고 하니 시인이라 불러도 되겠지요?

 

빛바랜 노트를 펼치며 어리숙하지만 순수했고, 고달팠지만 열정으로 가득했던 이삼십대의 순정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청춘의 비망록 같은 시를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옮기자니 마음에 전율이 일었다. 그 시절의 아픔과 초조함이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중략)

누구에게나 그렇듯 젊은 날은 몸부림의 연속이다. 내 세대의 공통분모였던 가난과 불확실한 미래, 알 수 없는 상실감과 여지없이 실패하는 사랑 등으로 온통 얼룩져 있다.

'시집을 묶으며' ~

 

<아주 높다란 그리움>1'세상의 시작이고 끝인', 2'아직 피지 않은 꽃', 3'부질없어 아름다운'까지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65편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저자가 대학 시절부터 쓴 시들을 가감없이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며, 근래에 쓴 시 몇 편을 더 보탠 것이라고 하는데요. 그 시절 이삼십대 청춘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가족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담긴 시들은 저자의 말처럼 "부족하고 얼룩투성이었던 그 시절의 ''로부터 위로를 받는 느낌"과 더불어 오늘을 살아가는 ''의 삶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나도 사과나무를 심겠소

 

세상 끝 날이 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날은 언제 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내일 올 수도 있습니다

 

내일 종말이 오면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이

어릴 때는 장난으로 들렸습니다

나이 들수록 그 말이 사무치는 건 무슨 까닭일까요

 

세상 끝나기 전날에

사과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리겠습니다

 

먼저 사랑하는 사람부터

그리고 고마웠던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나의 무심한 말에 상처받은 사람에게

편지를 쓰겠습니다

 

(중략)

 

오늘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행복하게 살면

고마운 것 말고는 뭐가 남겠습니까

 

(중략)

 

사랑에 최선을 다하고

행복에도 최선을 다하고

주변 모두 사랑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일 세상의 종말이 닥친다면

나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습니다.

 

종말이 오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종말이 오지 않으면 사과나무를 잘 가꾸어

 

오래된 친구와 사과를 나누고 싶습니다

'아주 높다란 그리움' ~

 

며칠 전에 둘째와 함께 농담처럼 "내일 지구가 멸망하면 뭘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꿈오리는 당연히 가족들과 함께 보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둘째에게 스피노자는 왜 "내일 지구가 멸망하는데 사과나무를 심는다고 했을까?" 라고 물었더니, 지구의 멸망이란 지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 인류의 멸망일 것이며, 분명 살아남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것, 그러니 다음 세대를 위해 사과나무를 심는다고 했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저자의 말처럼 지구의 종말은 언제 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오늘이 마지막날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매순간이 소중하게 생각되면서 "모두 사랑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며 살아갈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향한 원망과 미움의 마음 또한 조금은 수그러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

 

지구가 스스로 한 바퀴 돌면

하루가 되고

 

달이 지구 주위를 한 바퀴 돌면

한 달이 되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돌면

일 년이 된다

 

지구는 매일 스스로 한 바퀴 돌아 제자라에 오고

달은 지구 주위를 한 바퀴 돌아 제자리에 오고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돌아 제자리에 온다

 

시간은 제 자리로 돌아오는데

삶은 제자리로 되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되돌아갈 수 없음을 알 때

비로소 인생이 보인다

 

'아주 높다란 그리움' ~

 

가끔씩 과거의 '' 모습을 돌아보며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는 후회를 한 적은 없나요? 무언가 아쉬움이 남고 후회를 한다는 것은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의미일까요? 꿈오리는 가끔씩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랬더라면 ''는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럼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면 지금의 ''가 원하는 삶을 선택할까 싶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의 삶 또한 언젠가 돌아볼 그때엔 후회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삶은 제자리도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과거의 시간에 붙들리는 대신 그저 현재를 살아갈 뿐, 때로 아쉬움 가득한 후회를 할지라도...,

 

 

사소한 행복

 

추울 때 따뜻한 차 한 모금 마시면

따스한 온기가 온몸을 타고 흐른다

행복이 스며든다

 

배고플 때 김치에 밥 한 공기를 먹으면

은근한 밥의 향기가 배 속으로 흐른다

행복이 따라 흐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안으면

사랑의 느낌이 가슴으로 전해 온다

행복이 함께 전해 온다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손길을 내밀면

손끝에서 감동의 울림이 전해진다

행복이 전해진다

 

피로에 지쳐 집에 들어가면

집 안의 따스함이 내 몸에 스며든다

행복이 온몸에 스며든다

 

돌아갈 집이 있고

안아줄 사람이 있고

배고픔을 채워줄 밥 한 그릇 있으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아주 높다란 그리움' ~

 

"행복이 뭐 별건가?" 하다가도 "행복은 별것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일상생활의 모든 것이 정지된 것처럼 느껴지며 힘든 시기를 보내던 그때처럼 말이지요. 그저 가족이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가끔은 행복이 별것처럼 느껴질지라도, 별일없는 하루를 보내고 식구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따뜻한 저녁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꿈오리는 그래서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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