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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클럽연대기 - 조용한 우리들의 인생 1963~2019
고원정 지음 / 파람북 / 2022년 7월
평점 :

높은 산봉우리에 홀로 서 있는 한 사람, 붉은색이 너무나 강렬하지만 뒷모습만 보이는 그 사람의 모습은 왠지 고독해보입니다. 제목부터 표지그림까지 시선을 끄는 책 <샛별클럽연대기>, 이 책으로 고원정 작가의 작품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는데요. 제주 출신의 고원정 작가는 경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후, 중앙일보 신춘문예 소설로 등단했다고 합니다. 주요 저서로 <거인의 잠>, <비둘기는 집으로 돌아온다>, 장편소설 <최후의 계엄령>, 대하소설 <빙벽> 등이 있으며, 이번에 신작으로 시집 <조용한 나의 인생>과 장편소설 <샛별클럽연대기>를 출간했다고 합니다.
<샛별클럽연대기>는 한 남자의 지고한 순정과 우정 그리고 반공주의 주입 시대를 함께 살아온 샛별클럽 친구들의 이야기입니다. 애국가가 나오면 길을 가다가도 무조건 서서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던 시절,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고 반공 포스터를 그리던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맞아,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그런 사람들이 있었지."하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나의 인생은 대체로 조용했다.
국어교사로 명예퇴직을 하고 이 신도시에 혼자 자리잡은 뒤로는 더 그랬다. p.8
이야기는 2019년 11월의 어느 날에 화자인 문인호가 국민학교 동창인 송미혜를 만나면서 시작합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송미혜와 석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송미혜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던 문인호, 그는 왜 그렇게 지켜보기만 했을까요?
삼십 년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된 샛별클럽 친구 미혜, 그녀는 인호를 요섭이라고 부르며 인호를 찾아 달라고 합니다. 반공소년이자 공안검사였던 윤태는 목사가 되어 있으며, 지금 미혜와 함께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선지 미혜의 모습은 윤태를 향한 신뢰감과 존경심이 가득해 보입니다. 인호의 이야기는 급장 선거를 치르던 문창국민학교 2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때부터 문창국민학교는 한요섭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음을 이야기합니다.
문창국민학교 학예회 때 오페레타를 함께 한 오학년 10명의 아이들과 담임 강창성 선생이 만든 샛별클럽, 6학년 진학을 앞두고 모두 사진관에 모여 함께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십년에 한 번, 2월 27일에 모두 모이기로 약속을 합니다. 하지만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못합니다.
너희들은 지금 간첩 혐의로 수배 중인 전 교사 강창성이 편애하던 아이들이고, 강창성 주도하에 클럽까지 결성을 했다... p.83
샛별클럽 친구였던 미선이 아빠, 창수 아빠 그리고 강창성 선생의 형 강영성 씨는 체포되고 아이들은 간첩사건으로 조사를 받으러 갑니다. 그리고 대공사건 연루 아동이라는 이유로 선도교육을 받습니다.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던 요섭은 강창성 선생이 준 노트 한 권 때문에 원하던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합니다. 인호는 요섭이 그 일로 공부와는 거리가 멀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애국이란, 반공이란 꼭 크고 엄청난 일을 해내는 게 아닙니다. 오늘 장관님 표창을 받은 장윤태 군처럼, 평소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고 신고하는 일이 바로 반공정신이고 애국하는 길입니다. p.101
윤태 개인의 시상식처럼 느껴지는 졸업식, 그러나 샛별클럽 아이들에겐 충격적인 졸업식,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읽으며 울먹이기까지 하는 윤태, 남매처럼 지내라고 했던 강창성 선생의 당부와는 달리 이제 샛별클럽에 윤태는 없습니다. 아이들은 지병으로 짧은 생을 마감한 미선이 무덤 앞에 모여 그들만의 졸업장을 수여합니다. 그때 아이들을 빨갱이라 부르는 경찰이 나타나는데...,
윤태의 밀고 이후 샛별클럽 아이들의 삶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바뀝니다. "고등학교 졸업 이전에 기성 시인으로 데뷔할 수 있는 재목"이라 여겨졌던 요섭이, 수석을 다투어야할 요섭이, 인호에겐 늘 천재로 남기를 바라는 그 요섭이도 말이지요. 하지만 반공소년 윤태는 '빨갱이 잡는 선봉장'으로 성장해갑니다.
나는 혼자였다.
그 모두에게서 떨어져, 그 누구와도 상관없이 조용하게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 미혜를 앞에 두고 서 있었다. 나더러 요섭이라고 부르면서, 나를 찾아 달라는, 나만큼이나 조용하게 살아왔을, 나의 그 사람... p.354
2019년 샛별클럽 친구였던 미혜와 윤태를 만난 후 국민학교 시절로 거슬러간 이야기는 다시 그들을 만난 그 순간으로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350페이지가 넘지만 가독성이 좋아서 한자리에 앉아서 끝까지 읽을 수도 있는 이야기,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맞아,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그런 사람들이 있었지."하고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한 남자의 지고한 순정한 우정 그리고 반공주의 주입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샛별클럽연대기>, 비상계엄령 선포와 10월 유신, 유신반대 데모, 5공화국, 삼청교육대 등등의 역사와 함께 했던 샛별클럽 친구들의 이야기는 직접 책을 통해 만나길 바랍니다. 오늘 꿈오리 한줄평은 박덕규님의 추천사에 있는 글로 대신합니다.
파괴함과 파괴됨의 세월을 돌아보는 소설이자, 그 돌아봄으로 '진정한 나'를 회복하려는 한 인물의 '지고한 순정의 스토리'다. '샛별클럽연대기'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