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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죄송합니다 - 왜 태어났는지 죽을 만큼 알고 싶었다
전안나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평점 :
절판

표지 그림만큼 강렬한 제목 '테어나서 죄송합니다', 태어나는 것은 선택이 아닌 그저 자연의 순리입니다. 태어나는 것은 죄송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태어나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왜 태어났는지 죽을 만큼 알고 싶었다"는 것은 그만큼 삶이 힘들었다는 것을, 죽을 만큼 힘들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김주영이었던, 전안나입니다.
김주영은 고아였고,
태어나서 5년간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무적자였고,
입양 아동이었고,
아동 학대 피해자였습니다.
지금 전안나는 아동 인권 강사이고,
가정 폭력 전문 상담사이고,
사회 복지사이며,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중략)
네 잘못이 아니야.
절대로 네 잘못이 아니야.
태어나서 죄송한 사람은 없어.
'프롤로그' 중~
이 책은 고아이자 무적자, 입양아이자 아동 학대 피해자였던 전안나 작가가 자신의 삶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은 고백서입니다. 저자는 그 이야기를 자신을 구원해 준 존재인 책을 통해 이야기합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삶의 도피처가 되어 주었던 책, 책은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구원의 존재였다고 합니다.
책은 1부 'Remember', 2부 'Feeling', 3부 'Thinking', 4부 'Action' 까지 모두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치바나 다카시의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부터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까지 모두 30권의 책을 통해 죽을 만큼 힘들었을 삶을,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그녀는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는지 모릅니다. 5년간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아이 김주영은 입양이 되면서 전안나가 되었습니다. 입양은 되었지만, 출생 신고는 1년 반이 지나서야 된 것을 보면 그녀의 양부모가 그녀를 자신들의 아이로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여섯 살까지 무적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나는 재투성이 신데렐라였다. 양어머니로부터 학대받는 신데렐라가 되어 입양된 다섯 살 여름부터 양어머니 집을 탈출한 스물일곱 살까지 나는 매일 울었다.
(중략)
정서적 폭력, 언어적 폭력, 신체적 폭력에 노출되고도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채, 그 상처를 숨기고 살았다.
(중략)
내가 어려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죽어라'였다. "나가 죽어라. 차에 받혀 꼭 죽어라. 옥상에서 뛰어내려라. 남들은 잘도 죽던데 너는 왜 못 죽느냐"라는 말이 일상다반사였다. 양어머니가 나를 왜 때렸는지는 모르지만, 항상 사과는 내 몫이었다. 피해자가 잘못했다고 가해자에게 용서를 빌어야 했다.
p.24~27
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 사랑으로 품어도 모자랄 아이에게 어떻게 이런 말을,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인지..., 그때 양아버지는 왜 어린 그녀를 보호해주지 못했던 것인지...,그럼에도 그녀는 집 밖에선 사랑받는 딸인 척, 밝은 척, 철없는 외동딸인 척 연기를 했다고 합니다. 학대 피해자로 살면서 학습된 무기력이 그녀의 삶을 그렇게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남편은 나에게 함께 맞는 비가 되어 주었다. 양어머니 앞에 서기가 두려웠던 나와 함께해 주었다. 우산을 씌워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아 주는 것이 상대와 내가 진정으로 하나 되는 것이라는 말은 바로 남편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렇게 남편은 나와 함께 비를 맞아 주었고, 우산이 되어 주었다. p.52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딸의 결혼까지 방해했던 양어머니, 학비는커녕 용돈조차 준 적이 없었던 양어머니는 매달 당당하게 생활비를 요구했으며, 그 요구는 결혼을 한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 연결고리를 끊어낼 수 있었을까요?
"불완전함은 우리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존재의 자연스러운 부분이다"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내가 첫 번째로 사랑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p.125
처음으로 자신의 편이 되어 준 남편과 아이들을 보면서 그녀는 조금씩 사랑을 알아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무조건적으로 엄마를 사랑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스스로를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녀는 '삶이 주는 희망'을 느꼈다고 합니다.
부모가 없다는 것, 입양되었다는 것, 학대를 받는다는 것... 어린 시절에는 그것들이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런 나를 살려 준 것이 바로 '책'이었다. 책을 읽는 순간에는 고아에다 양어머니에게 아동 학대를 받는 전안나가 아니라, 부모님을 다시 만나는 소공녀가 되었다가 입양된 집에서 사랑받는 빨간 머리 앤이 되었다. (중략) 책이 있어서 나는 십 대를 살아 낼 수 있었다. 책은 나에게 동아줄이었다. p.174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녀의 양어머니가 신실한 신자였다는 것입니다. 새벽 기도, 금요 철야 예배, 매일 성경 읽기, 성가대와 전도를 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살렸다고 하는 양어머니, 그러는 한편으로 딸과 남편에게 폭력과 폭언을 휘둘렀던 양어머니, 매일 딸에게 폭력을 행사하면서도 목회자 사모로 만들어 '신앙심 좋은 어머니'로 존경 받고 싶었던 양어머니, 그녀는 이런 양어머니를 이해하려 다양한 종교 서적을 섭렵하기도 했는데요. 그래서 책은 그녀에게 종교이기도 했습니다.
난 괴물이 아니라 인간이니까, 사회적 도리를 다하기 위해 양어머니가 병원에 가실 때 보호자로 동행하고, 매달 용돈도 보내지만, 우리 아이들을 만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정서적 교류를 하지 않을 것이다. 양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상복을 입고 상주를 하겠지만, 애도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내 마음이 그렇게 열리지 않는다.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하지 말길. p.195
이 부분이 특히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아마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복수는 용서'라는 말을 하고는 합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런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살아보니, 겪어보니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에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양어머니를 이해하고 추모하고 애도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저자의 말처럼, 저도 언젠가는 마음속에 응어리를 만들어준 그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읽다보니 몇 년 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마더'가 생각났습니다. 비록 배 아파하며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두 사람이 엄마와 딸이 되어 가는 모습이 원래 그랬어야할 운명처럼 보였었는데요. 저자도 그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어떤 고난도 이겨내는 엄마의 크고 넘치는 사랑, 엄마의 사랑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럼에도 참 다행인 것은 함께 비를 맞아 줄 남편과 엄마라는 이유로 무조건적으로 엄마를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꿈오리 한줄평 : 만약 아이가 부모를 선택하여 태어날 수 있다면, 아이들은 어떤 부모를 선택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