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 않다
최다혜 지음 / 씨네21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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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 않다'고 하는 말이 왠지 반어적인 표현처럼 들립니다. 그저 겉으로만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게 보이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안타깝고 짠한 마음이 듭니다. 초점 없이 그저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표지속 인물은 금세 울음이라도 터뜨릴 것만 같습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어디론가 급하게 나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렇지 않다'는 일러스트레이터, 시간 강사, 무명작가로 살아가는 세 인물의 삶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불행은 늘 초대 없이 무례하게 찾아온다. 그리고 세상은 불행을 겪는 이들에게 그것이 그들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 말하는 더 큰 무례를 범한다. 불행의 원인이 개인의 무능이라 말하거나 심지어 각자가 믿는 종교의 교리를 빌려와 그것이 업보 또는 신의 형벌이라 단정하기도 한다. 불행해 마땅한 존재로 개인을 몰아세우는 것이다. 살고자 불행과 맞서고 있는 이들에게 세상은 이렇게나 잔인하고 예의가 없다. 정말 속상한 것은, 불행에 지칠 대로 지친 이가 이 말도 안 되는 논리에 저항할 힘이 없어 스스로 체화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의 말' 중~

'아무렇지 않다'는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기에 세 명의 인물인 김지현, 강은영, 이지은은 곧 저자의 모습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2년이 넘게 걸려 작업하는 동안 그녀의 삶들은 저자와 분리되고 있었으며, 자신을 닮은 그녀들의 삶이 안쓰러워졌다고 합니다. 그녀들의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선택이 아닌 그저 살아남기만을 바랐다고 하는데요. 책속 세 인물을 바라보던 시각이 바로 저자 스스로가 바라던 삶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을은 위 저작물에 대한 저작재산권 전부와 위 저작물을 구성부분으로 하는 편집저작물을 작성하여 이용할 권리 전부를 갑에게 양도한다.

'아무렇지 않다' p.29

왠지 찜찜한 계약서, 자신의 작품이지만 모든 권리를 양도한다는 조항, '양도'라는 그 말에 자신의 권리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계약서 수정이 가능한지 물어보지만, 어렵지 않겠냐는 말을 듣게 됩니다. 계약해야 할까? 거절해야 할까? 그럼 일이 끊기는 건 아닐까?, 복잡한 마음으로 들른 서점에서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한 작가의 책을 보게 됩니다.

지현도 이 일을 시작할 때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을 출판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외주 작업만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앞에 그녀 이름으로 된 책은 저 멀리 잡기 어려운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책을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표지 그림, 하지만 그 표지엔 작가의 이름만 있을 뿐, 지현의 이름은 없습니다. 문득 밀려드는 허무함...,

그...다름이 아니라 전에 주신 원고, 계약을 생각해봤는데요.

계약하지 않을래요.

'아무렇지 않다' p.69~70

정말 삶이 예술이라면 신고전주의 예술가들이 그러했듯이 우리가 엄숙한 목적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서 우리 스스로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아무렇지 않다' p.123

친구들에겐 너무나 자연스러운 해외여행, 사업, 아파트 값 이야기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일 뿐, 그 흔한 명품백도 은영에게는 사치일 뿐입니다. 등록금 벌어가며 힘들게 받은 석사 학위, 그 때문에 아직도 학자금과 월세로 빠듯한 생활을 하는 은영의 삶, 친구들에겐 너무나 소소한 일일 수도 있는 그런 일들은 언제쯤 일어날까요? 유학 경험도 박사 학위도 없는 은영은 시간 강사의 삶을 벗어날 수 있을까요? 아니 시간 강사의 삶이라도 계속 할 수는 있는 것일까요?

계속 그림을 그리는 게 맞나?

할 수 있는 것들도 점점 없어지는데...

'아무렇지 않다' p206

미술대전에서 입상을 했다고 해서 지은의 삶이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빠듯한 생활은 컵라면 하나도 맛이 아닌 값으로 선택해야할 만큼 어려울 뿐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건 작품전시회를 할 수 있을까요? 그보다 지금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는 있는 것일까요?

흔히 MZ세대로 불리기도 하는 20~30대들의 이야기지만, 일러스트레이터 김지현, 대학 시간 강사 강은영, 무명작가 이지은은 "가격보다는 취향을 중시하는 성향을 가진, '플렉스' 문화와 명품 소비가 여느 세대보다 익숙한(네이버 지식백과)'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 사람이 '미래 보다는 현재'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것은 '현재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현재 그들의 삶이 미래까지 생각할 만큼 여유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픽노블이라 인물들의 표정까지 들여다 볼 수 있어서 더 몰입하여 읽을 수 있었으며, 감정이입하여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너무 현실적인 결말로 끝난 지현과 은영 그리고 지은의 삶은 그래서 더 안쓰럽고 마음이 아픕니다. 만약 '나'였더라도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 선택할 수조차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할 것 같아서, 그럼에도 언젠가 그녀들이 꿈꾸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지현과 은영, 지은이에게 응원을 보내게 됩니다.

꿈오리 한줄평 : '아무렇지 않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것이 아닌 정말 아무렇지 않아서 말할 수 있는 '아무렇지 않다'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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