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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다, 난설헌 ㅣ 초록서재 청소년 문고
백혜영 지음 / 초록서재 / 2022년 1월
평점 :

표지가 너무나 아름다운 책 '시간을 달리다, 난설헌', 제목만으로도 주인공이 누구인지 바로 알 것 같죠? 이 책은 조선시대 천재 시인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허난설헌의 일대기에 타임슬립으로 일어나는 상상의 이야기가 가미된 팩션입니다. 책을 읽고 나면 그녀가 왜 '여성으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김성립에게 시집 간 것'이 세 가지의 한이라고 말했는지 충분히 공감이 가고도 남습니다. 고려시대부터 허난설헌이 시집가기 전에는 남자가 장가를 간다고 해서 결혼하면 처가에 들어가 살았다고 하는데, 허난설헌은 시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을 뿐 아니라 고된 시집살이와 자식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기만 합니다.
양반집 규수가 노비 옷을 입고, 남장을 하고서 신랑감을 직접 보러 갔다.
'작가의 말' 중~
그 일이 실제 있었는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저자는 "우연히 본 문장 하나로 허난설헌이라는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한 인간으로 다가왔으며,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그녀의 삶에 대한 미스터리한 행적에서 출발했다고 하며, 난설헌이 미래로 시간 여행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의 생애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저자의 상상을 더하여 '시간을 달리다, 난설헌'이 탄생되었다고 합니다.
이야기는 난설헌이 유배를 간 오빠 허봉으로부터 받은 서찰을 읽으며 시작합니다. 허봉은 이이를 탄핵했다가 유배를 가게 되는데요. 유배 생활이 끝났음에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오빠 허봉이 서찰과 함께 박산향로라는 것을 보내는데요. 견디기 힘든 순간에 향로를 쓰면 신선 세계로 가는 문이 열린다니, 그때는 그저 자신을 놀린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오빠, 동생과 함께 글공부를 할 때는 늘 웃던 난설헌은 김성립과 혼인한 뒤엔 웃음을 잃어버리게 되는데요. 그때 시를 쓰면서 시름을 달랬던 것 같습니다. 허난설헌은 시를 쓸 때 화관을 쓰고 향을 피우고 시를 읊었다고도 하는데, 책 속 난설헌의 모습은 그런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 같습니다.
지난해 사랑하는 딸을 잃고,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 잃었소.
서럽고도 서러운 광릉 땅이여,
두 무덤 마주 보고 나란히 솟았구려.
백양나무 가지 위 바람 쓸쓸히 불고,
도깨비 불빛만 무덤 위에 번뜩인다.
지전을 살라 너희들 혼백 부르고,
무덤 앞에 물 부어 제사 지내네.
가엾은 남매의 외로운 영혼,
밤마다 서로 어울려 노닐겠구려.
뱃속에는 어린애 들었지만,
어떻게 무사히 기를 수 있을까.
하염없이 황대사를 읊조리다 보니,
통곡과 피눈물로 목이 메이네.
'시간을 달리다, 난설헌'p.85
화관을 쓰고 시를 적으려던 순간 오빠가 보낸 향로가 생각난 난설헌, 박산향로에 향을 피우는 순간 난설헌은 몽롱해지면서 신선 세계로 가는 착각을 일으키게 됩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눈을 떴을 때, 난설헌의 앞에 요상한 모습의 머리를 한 남자가 죽으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남자의 목숨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달려가게 되는데요. 그 남자는 2022년을 살아가는 작가 지망생 문우진이었습니다. 옷부터 말까지 모든 것이 달랐던 두 사람, 그 순간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하지만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도 전에 난설헌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두 번째 만남에서도 난설헌은 그 남자가 죽으려 한다고 착각해서 무조건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사실 문우진은 죽으려는 것이 아니었답니다.
푸른 바다는 구슬 바다에 젖고,
푸른 난새는 오색 난새에 기대네.
스물일곱 송이 아름다운 연꽃,
달밤 찬 서리에 붉게 떨어졌네.
'시간을 달리다, 난설헌'p.162
이야기는 자신이 살던 세상에서 400년이나 더 지난 미래 세상으로 가게 된 난설헌의 이야기와 향이 꺼지면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난설헌의 이야기가 번갈아 전개됩니다. 난설헌은 미래 세상에서는 여자도 자신이 원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시를 짓는 순간이 오롯이 '나'로 존재하는 시간이었던 현실의 난설헌에게 그런 것은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지요.
자신의 행복은 스스로 찾기로. 누구도 자신의 삶을 대신 살아가 줄 수는 없다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조차 하지 못하는 조선 땅에 더는 미련 따위 없다고.
'시간을 달리다, 난설헌'p.180
아버지 허엽, 오빠 허성, 허봉, 동생 허균과 함께 허씨가 5문장가로도 알려진 허난설헌의 삶은 김성립에게 시집을 가면서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여덟 살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이라는 글을 지어서 천재적인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한 허난설헌, 그녀는 아버지와 오빠의 지지를 받으며 아들과 동등한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혼인으로 인해 불행한 삶을 살게 되는데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딸과 아들마저 잃게 되는데, 거기에 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녀의 오빠마저 유배를 당한 후 죽게 되자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치게 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허난설헌은 죽기 몇 년 전에 자신의 죽음을 예상이라도 한 듯 시를 지었다고도 합니다. 그녀는 죽기 전에 동생 허균에게 자신이 쓴 시를 모두 다 불태워 없애달라고 했는데, 나중에 허균이 기억하고 있던 시와 친정에 남아있던 시를 모아서 문집을 만들었고, 그것이 명나라 사신에게 전해졌으며, 명나라에서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그야말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합니다. 후에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는데, 안타까운 것은 정작 그 당시 조선에서는 인정해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허난설헌은 죽기 전에 동생 허균에게 자신의 시를 모두 불태워 없애라는 유언을 남겼는데요. 왜 그런 유언을 남겼을까요?
허난설헌은 죽기 몇 년 전에 자신이 스물일곱에 죽는 것을 예견이라도 하듯 시를 지었는데요. 그녀는 그때 왜 그런 시를 지었을까요?
이 물음은 저자가 품은 의문이자 글을 쓴 출발점이 되기도 한 물음인데요. 책을 읽고 나면 그 물음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답니다. 그래서 더 흥미로웠고 한 자리에서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요. 마지막 반전은 무엇보다 더 흥미로웠다는 것 알려드립니다.
꿈오리 한줄평 : 400년의 시간을 앞서 달린 난설헌, 오롯이 '나'로 존재하는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살아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