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살았던 날들 -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지음, 김두리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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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과 초록색 그리고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하얀색, 신비하면서도 오묘한 느낌의 표지가 시선을 끄는 책 '당신이 살았던 날들',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자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저자 오르빌뢰르는 '예루살렘 포스트'지가 선정한 2021년 영향력 있는 50인의 유대인 중 한 사람이자, 프랑스의 세 번째 여자 랍비입니다. 그녀는 이스라엘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파리에서 기자로 활동한 후에, 뉴욕에서 랍비가 되는 과정을 밟았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자신을 이야기꾼이라 칭하며, "사람들이 삶의 전환점에서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 그들 곁에 있다" 라고 말합니다. "이야기는 시간 사이와 세대 사이에, 존재했던 사람들과 존재할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으며, 거룩한 이야기는 살아 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 사이에 통로를 열고, 이야기꾼의 역할은 그 입구에 서 있으면서 그곳이 열려 있는지 확인하는 것" 이라고 말합니다. 이 책에는 그녀가 죽음의 순간을 함께 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묘지는 일견 터무니없고 모순된 이름으로 불린다. '베트 아하임', 이름하여 '생명의 집' 혹은 '살아 있는 자들의 집'이다. 이는 죽음을 부정하거나 죽음을 지우면서 죽음을 물리치려는 시도와 무관하다. 그것은 오히려 죽음을 언어 바깥에 놓으면서 죽음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당신이 살았던 날들' p.31

 

 

죽음은 삶의 끝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죽음은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남아 있는 이들에게 슬픔만을 안겨주는 것일까요? 만약 가족이나 ''에게 급작스럽게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면, 그때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죽음'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삶을 돌아보는 거울이자, 삶을 마무리하고 끝을 맺는 휴식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죽음이 휴식이라고 한다면 슬퍼해야할 대상인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럼에도 가까운 사람이나 '' 자신의 죽음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죽음을 휴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당신이 살았던 날들'은 바로 이런 순간에 필요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다른 탈무드의 전승들도 카디시에 기묘한 힘을 선사하고, 이 기도가 조상의 전례 가운데에서 가장 강력한 전례를 이룬다고 단언한다. 그러니까 고인을 추모하며 카디시를 낭송함으로써 그의 영혼이 창조주와 합일하는 숭고한 높이로까지 나아갈 때 더 빨리 올라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당신이 살았던 날들'p.116

 

 

총기 테러 사건으로 인한 죽음, 나치 독일에 의해 자행된 홀로코스트,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가족을 잃고 고난의 삶을 살아온 생존자의 죽음, 동생의 죽음, 친구의 죽음, 암살로 인한 죽음...,묘지에서 카디시를 낭송하고 장례 집전자의 임무를 수행하며 죽음의 순간을 함께 한 저자는 그곳에서 죽음이라는 것이 일으키는 두려움과 고통, 슬픔을 마주합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동생을 떠나보낸 형의 이야기와 친구를 떠나보낸 이야기였는데요. 저자의 의도와는 다를지라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으로 받아들여졌기에 조금 더 깊이 공감하며 읽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의 이야기로, 아이를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엄마의 이야기로 말이지죠.

 

무너져내린 것은 그들의 세상, 그들의 가족 혹은 친지들만의 세상이 아니라 온 세상이다. 한 아이의 죽음이 초래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 모두의 세상의 와해, 인류는 미래가 한순간에 과거가 되어버린 부모의 모습이 되어 형언할 수 없는 혼돈의 집단의식에 빠진다.

(중략)

우리는 부모를 여의면 고아가 되고, 배우자를 잃으면 과부나 홀아비가 된다. 그렇다면 자식을 잃었을 때 우리는 뭐가 될까?

(중략)

자식을 잃은 부모는 히브리어에서 과실을 딴 나무줄기나 과립이 떨어진 포도송이의 이미지로 묘사된다. 수액이 줄기 속에서 흐르지만 이제 갈 곳을 잃고 눈이 메마른다. 생의 조각이 그것을 떠났기 때문이다.

(중략)

가족을 남기고 떠나는 두려움, 자식의 성장을 보지 못하는 두려움뿐 아니라 자신의 재능을 잃는 두려움, 망각의 두려움, 변화의 두려움, 자신이 더 이상 예전과 같을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

질병은 서서히 내 친구를 바꿔놓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리안을 그녀이자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중략)

떠나는 자의 무언가가 살아남은 자들의 생을 구성하여 앞으로 그들이 될 자와 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너에게서 비롯되고 영원히 우리와 하나되어 우리 안에서 계속 살아갈 것의 목소리를 들어라.

'당신이 살았던 날들'p.135~175

 

 

죽음은 그저 삶의 끝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자는 "무덤 위에 조약돌을 올려놓은 것은 무덤에 안식하는 사람에게 우리가 그의 유산에 포함된다는 것을, 그의 이야기를 연장하는 잇따르는 세대들에 속한다고 선언하는 것' 처럼 삶과 이어져 있음을, 그들은 떠났지만 남겨진 사람들과 긴밀하게 유대를 맺고 있음을, 그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끝이 아닌 무한하게 이어지는 삶이 주는 감동과 위로를 만나게 됩니다.

 

유대인의 전통과 삶의 철학, 성서 등 익숙지 않아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는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인식되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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