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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잔 - 문학×커피 더 깊고 진한 일상의 맛
권영민 지음 / &(앤드) / 2022년 1월
평점 :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아침밥은 안 먹어도 커피는 마셔야 하고,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은 커피 한 잔으로 마무리됩니다. 밥을 먹는 것만큼이나 자주 마시는 커피, 커피는 우리의 일상을 함께 합니다. 물론 제 친구처럼 커피는 전~혀 안 마시는 사람들도 있지만요. 어찌되었든 저도 커피를 무척이나 좋아한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커피가 있어도 늘 마시던 것만 마신다는 함정이 있답니다. 달달한 건 좋아하지 않지만, 커피는 무조건 달달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캬라멜 마끼아또만 마신다는 것, 몸에 해로울 수도 있다는 프림과 설탕이 황금 비율로 들어간 믹스커피 중독이라는 것, 건강을 위해서 바꿔보리라 커피 머신도 사고 내려서 먹기도 했지만, 역시 중독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좋은 커피는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천사처럼 순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다. - 탈레랑
저에게 아메리카노는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캬라멜 마끼아또는 천사처럼 순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답니다. 비유가 조금 그런가요? 오늘 함께 할 책 '커피 한잔'은 커피에 대한 신세계처럼 느껴지는 책이었습니다. 물론 커피를 좋아하지만, 잘 모르는 저에게만 해당되는 것일 수도 있겠죠?

'커피 한잔'은 커피의 유래와 역사, 문학 작품 속 커피, 커피의 공간인 카페까지, 커피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커피를 좋아해도 커피를 잘 모르는 저를 커피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듯 한 느낌마저 들었답니다.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그대 오기를 기다려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구려
(중략)
아 그대여 왜 안 오시나
아 사람아 오 오 기다려요
'커피 한잔' p.5~7
혹시 이 노래를 아시나요? 이 노래는 펄시스터즈의 '커피 한잔'이라는 노래입니다. 카페보다는 그 시절의 다방이 떠오르는 노래죠. 저자에게 커피 한잔은 노래보다 더 쓸쓸하고 애잔했다고 합니다. 월남 파병을 앞둔 형과 헤어지는 날, 서울역 염천교 근처의 작은 다방에서 커피를 시켜놓고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그때, 내년 이맘때 다시 만나자는 말밖에 하지 못했던 그때의 심정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차와 커피를 우리나라의 숭늉과 냉수처럼 마신다'고 소개한 유길준의 <서유견문>, 저자는 자신이 읽었던 책들 중 커피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책이 <서유견문>이라고 하는데요. 책속 커피는 커피가 아닌 '가비',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생소했을 가비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독립신문>에 실린 고종 황제와 커피에 대한 기사 '고종 독살 음모 사건' 때문이었는데요. 고종 황제가 커피를 즐겨했다는 이야기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씁쓸합니다.
커피가 대중들의 기호식품으로 등장한 것은 1910년을 전후한 시기로, 명동 일대에 '끽다점'이라는 이름으로 커피숍이 열리면서 '가배차'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다방, 찻집, 카페, 커피숍 등이 적힌 간판이 생겨나고, 커피와 관련된 직업인 마담이나 레지 등이 등장했다고 하는데요. 요즘은 프랜차이즈 커피와 바리스타라는 직업이 더 익숙하죠?
칼디라는 염소지기에 의해 처음 발견된 커피, 에티오피아에서 인도를 거쳐 중앙아메리카, 아프리카 케냐, 탄자니아 등으로 재배 지역이 확대된 커피,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여 흑인 노예를 부릴 수밖에 없었던 커피, 지금도 여전히 커피는 가난한 농민들의 몫이라는 것, 우리가 지불하는 커피 값에 커피 노동자를 위한 커피 값은 얼마나 들어 있을까요?

사향고양이 똥에서 나온 루왁커피, 높은 압력으로 짧은 순간에 추출하는 에스프레소, 에스프레소를 뜨거운 물에 섞은 커피라고 할 수 있는 카페 아메리카노, 풍성하고 달콤한 향이 나는 코나커피...,
따뜻한 커피잔을 입에 대는 순간 혀끝으로 느껴지는 그 맛을 무어라고 표현하기 어렵다. 쌉쌀하면서도 달콤하고, 산뜻하면서도 새콤하고, 구수하면서도 깔끔한 맛, 그 맛 때문에 나는 아침마다 집에서 직접 커피를 내린다. '커피 한잔'p.48
아침마다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린다는 저자, 커피포트 안으로 커피가 떨어져 내리면 거실 안에 커피 향이 가득 번진다고 하는데요. '커피 한잔'을 읽을 때도 그런 느낌이 들고는 한답니다. 책을 넘길 때마다 글과 그림을 통해 갈색의 커피와 커피 향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김기림의 시 <커피 한 잔을 들고>, 이상이 개업한 곳으로 그의 삶을 파탄으로 내몰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새로운 문학적 산실이 되었다는 다방 제비, 박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박태원 소설 <방란장 주인>, 주요섭의 소설 <아네모네의 마담>..., 등등 문학 속의 커피에 대한 이야기는 깊고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느낌이 듭니다.
1760년에 개업한 카페 '카페 그레코'가 있는 이탈리아 로마, 고흐가 15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밤의 카페>, <포룸 광장의 카페 테라스> 등 200점의 크고 작은 그림을 그렸다는 남프랑스의 해변 도시 아를의 풍경이 글 속에 그림처럼 그려집니다. 책을 읽다보면 '커피 한잔'속 저자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카페를 한 번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데요. 어느 곳보다 먼저, 언제든 시간만 내면 갈 수 있는 대학로 '학림다방'에 가보렵니다.
'"식사 하셨어요?' 누군가를 만나면 으레껏 안부인사처럼 하던 그 시절의 인사말처럼, 누군가와 만남을 약속할 때는 "커피 한 잔 하자!"라고 말하고는 합니다. 코로나로 그 인사말조차 꺼내기가 쉽지는 않지만, 조금은 왁자지껄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고픈 생각이 듭니다. 밥값보다 비싼 커피라도, 커피 한 잔의 사치를 누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커피 한잔'하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