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천재 열전 - 조선의 르네상스를 꿈꾸며 인문적 세계를 설계한 개혁가들
신정일 지음 / 파람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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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천재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하는 인재(人才) 개념의 천재가 아니다. 당대를 넘어서 사회 질서의 해체와 구축을 꾀한 사람들을 진정한 천재라고 부를 수 있다. 우리는 이들에게서 체화된 도덕성과 윤리의식, 민중을 중시하는 심성과 태도, 그리고 미래 지향적 사유와 대안 제시 같은 운동성을 발견할 수 있다. '조선 천재 열전' p.6~7”

 

 

'조선 천재 열전'은 천재란 무엇이고, 천재의 소명은 무엇인가? 를 짚어보기 위해 쓴 책이라고 합니다. 천재하면 아인슈타인, 에디슨, 스티븐호킹 등의 인물들이 떠오르는데요. 이 책은 우리 역사 (조선시대에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속에 나타났다가 사라져간 천재들의 삶을 따라가며 새로운 시대의 천재상을 만들어 냅니다. 최초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를 지은 김시습, 9번의 과거에서 장원으로 급제하고 십만양병설을 주장한 이이, <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 등 가사문학의 대가인 정철, 천재 여류 시인인 허난설헌, 산경표를 완성한 지리학자 신경준,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을 저술하고 수원 화성 축조 공사 시 거중기를 발명하고 종두법을 처음으로 소개한 정약용, 실사구시로 추사체를 완성했으며 신라의 김생, 고려의 탄현, 안평대군과 함께 우리나라 4대 명필로 꼽히는 김정희 등 교과서에서 보던 익숙한 인물들과 이익이 <성호사설>에서 김시습과 함께 조선의 천재로 꼽은 이산해와 경술국치에 항거하여 자결한 조선 시대의 마지막 선비 황현 등 조선 시대 천재 9명의 삶을 담은 책인데요. 9명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는 각 장마다 그들이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를 함께 담았습니다.

시험을 위한 역사 공부여서 오로지 외우기에 급급했던 그때는 미처 몰랐던 그들의 삶,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던 그들은 신동으로 불렸지만, 그들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스스로 글을 익혀 이웃에 살던 최치운이 "배우면 곧 익힌다"라고 하여 이름을 시습(時習)이라고 지어주었다는 김시습, 다섯 살 때 처음 병풍에 글을 썼는데 운필하는 것이 귀신같아서 신동이라 불렸던 이산해, 여덟 살에 상량문을 지어 여신동이라 칭송받았던 허난설헌, 태어난 지 아홉 달 만에 글씨를 알아보고, 네 살에 <천자문>을 읽고, 다섯 살에는 <시경>을 읽었다는 신경준, 24개월이 넘어 세상에 나와 태어날 때부터 이가 나 있었으며, 그가 태어나자 줄어들던 우물물이 콸콸 솟아나고 시들시들하던 나무들이 살아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비범한 인물이었음을 보여주는 김정희, 5살 때 벽에 숯으로 글씨와 비슷한 것을 빈틈 없이 채워놓고 열한 살에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며 시 한편을 지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는 황현 등 어렸을 때부터 남달랐던 그들은 신동으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좌절하지 않고 세상을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가게 하려 노력하였습니다. 그들은 선천적으로 남보다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미국 시인이자 사상가 에머슨의 말처럼 "자기 자신의 사상을 믿고 자기가 볼 때 진실하다고 여기는 것을 믿으며, 자기의 마음으로 모든 사람의 진실을 믿는 사람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조선 천재 열전 p.8)

아름다운 용모에 천품이 뛰어났던 난설헌은 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지었다. 이 상량문을 지은 뒤부터 여신동이라 칭송받았다. '조선 천재 열전' p.151”

 

 

조선 시대 여류 시인 중 가장 뛰어난 시를 썼다는 허난설헌, 유교 사회였던 조선 시대는 그 어느 시대보다 남녀 차별이 심했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런 시대에 여자임에도 한시를 배울 수 있었던 건 아버지 허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허엽은 아들과 딸을 구분하지 않고 학문을 가르쳤다고 하는데요.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바라보니 부모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허난설헌의 결혼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양반가에선 여자에게는 글을 가르치지 않았기에 시어머니는 시를 쓰는 그녀를 달갑지 않게 생각했으며, 남편 김성립 또한 아내를 보듬어주지 못하고 바깥으로 돌며 가정을 등한시 했다고 합니다. 거기에 더해 아들과 딸을 돌림병으로 잃고 뱃속의 아이까지 잃게 되는 크나큰 아픔을 겪게 됩니다. 문학적 스승이었던 오빠 허봉까지 세상을 떠나자 만 권 책을 벗으로 삼으며 아픈 마음을 달랬다고 합니다.

그 무렵 허난설헌은 <삼한(三恨, 세 가지 한탄)을 노래했다. 그 첫 번째가 '조선에서 태어난 것'이요, 두 번째는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요, 세 번째는 '남편과의 금슬이 좋지 못한 것'이라 했다. 풀어 말하면 그의 시적 재능을 널리 알릴 수 없는 좁은 풍토에서 태어난 것을 원망한 것이고, 남자로 태어나 마음껏 삶을 노래하지 못한 것을 한탄한 것이다. 결국 허난설헌은 한과 원망을 가득히 안고 27세의 젊은 나이에 지난했던 생을 마쳤다. '조선 천재 열전' p.157”

 

 

허난설헌이 지은 시는 천여 편이 넘지만 죽기 전에 모든 작품을 다 불태웠다고 하는데요. 동생 허균이 누나가 자신에게 보내주었던 시들과 자신이 외우고 있던 시들로 <난설헌집>을 펴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허균이 허난설헌을 높이기 위해 스스로 시를 지어 누나의 시라고 속였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시대적인 상황이 그런 소문을 만들어내기도 했겠지만, 거짓으로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리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김시양, 이수광, 김만중 등은 그녀의 재능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폄하하기도 했지만, 황현이나 유성룡 등은 허난설헌의 뛰어난 재주를 인정했습니다.

만약 허난설헌이 시대를 달리해서 태어났다면 그녀의 삶은 달라졌을까요? 허난설헌의 삶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여성이 소설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던 버지니아 울프가 떠올랐습니다. 시대도 나라도 다르지만, 그녀들의 삶에는 공통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가 태어난 후 100년이나 지나서 태어난 1982년생 김지영도 떠올랐습니다. 허난설헌이 태어난 후 319년이 지나 태어난 버지니아 울프, 버지니아 울프가 태어난 후 100년이 지나 태어난 김지영, "만약 내가 시대를 달리해서 태어났다면 나의 삶은 달라졌을까?" 수많은 허난설헌과 버지니아 울프, 김지영은 지금도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천재는 신이 사랑한 사람이고, 수재는 신이 사랑할 정도의 재능은 없지만 천재의 재능을 알아채는 사람이다. 범재는 수재의 재능은 이해하고 존중하지만, 천재의 재능까지는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행복한 사람이다. '조선 천재 열전' p.45”

 

 

조선 시대 천재 9명의 삶은 시대를 뛰어 넘어 현재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를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천재도 수재도 아닌 범재여도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가게 하는데 작은 한 걸음이라도 보탤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김시습, 이이, 정철, 이산해, 신경준, 정약용, 김정희, 황현 등의 삶은 책으로 함께 하길 바라며, 범재라서 행복하다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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