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엘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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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1995년 장편 소설 <A feather on the Breathe of God>을 시작으로 여덟 편의 장편 소설과 산문을 펴낸 시그리드 누네즈, 누네즈의 작품들은 2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고 하는데요. 시그리드 누네즈의 대표작 중 하나인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는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다른 배경에서 자란 두 여성의 삶과 우정을 그린 책입니다. 배경만큼이나 극명하게 엇갈리는 두 여성이 어떻게 만나 가까워지고 멀어지는지, 어떻게 서로 얽혀 있는지를 600여 페이지에 세세하게 그려낸 이야기를 통해 그 당시 미국 사회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두 여성의 청춘에 대한 이야기이자 성장기이며, 시대를 담은 역사소설입니다.

우리가 함께 지낸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내 룸메이트는 자신과 최대한 다른 세계에서 온 여학생과 같은 방을 쓰게 해달라고 특별히 요청했었노라고 내게 말했다. 말인즉슨 자신처럼 특권층에서 자란 룸메이트를 원하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중략)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룸메이트를 정할 때 내 의견을 낼 수 있으리란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한 터였다.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p.9“

 

이야기는 두 여성 중 한 명인 조지가 뉴욕의 명문 사립 여자대학교에 입학한 후 룸메이트인 앤을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작합니다. 불우한 가정 출신으로 폭력이 일상인 환경에서 자란 조지와 부유한 사업가 집안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외동딸 앤은 서로 다른 가정환경만큼이나 성격 또한 달랐습니다. 소심한 조지와 달리 앤은 열정적이며 신념이 강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자신의 가정환경과 부모를 수치스러워한다는 점에서 닮은점이 있었습니다.

집이란 것이 우리가 있고 싶은 곳, 우리에게 안전함과 사랑받는 느낌과 확실한 소속감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내게 집이 아니었다. 물론 학교도 나의 집은 아니었다. 이제 친자매보다 가까워진 앤이 있었고 정말로 내겐 새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다른 친구들도 있었지만, 늘 나 혼자만 다르다는 걸 의식하는 곳에서 집과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p.67“

 

조지는 가족을 떠난 남편에 대한 원망을 자식들에게 쏟아내며 폭력을 휘두르던 엄마를 부끄러워하고, 앤은 자신의 조상이 노예를 소유한 농장주였다는 것과 자신이 누리는 모든 것들이 가난한 노동자들의 착취를 통해 얻어진다는 것이라 생각하며 경멸하였습니다. 조지와 앤은 서로가 자라온 삶과는 정반대의 삶을 동경하고 있었는데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룸메이트가 된 것은 늘 열정적인 앤이 자신과 다른 세계에서 온 룸메이트를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조지와 앤은 그렇게 가장 친한 친구가 됩니다.

그해 봄의 소요 사태 이전부터도 내게 대학은 혼돈과 혼란의 본고장 같았다.

(중략)

부잣집 애들은 가난하지 못한 걸 한탄하며 가난한 흑인들을 맹목적으로 숭배했다. 흑인 학생들은 백인 선생이 흑인 학생의 성과물을 비판할 수 없으며 비판 자체가 백인의 아이디어라고 주장했다.

(중략)

우리 둘 다 환멸을 느꼈고 우리 둘 다 대학을 떠나고 싶어했으나, 이유는 달랐다. 앤은 여전히 세상을 바꾸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나중에야 깨닫게 될 일이지만) 로맨스를 찾고 있었다.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p.154~155“

조지와 앤은 각자의 사유로 학교를 중퇴합니다. 학교를 떠난 후, 조지는 여성 잡지사에서 일하게 되는데, 앤은 조지가 자신의 부모가 속한 영역에 들어갔다는 사실에 노골적으로 경멸을 드러냅니다. 앤은 인민 서점에서 일하면서 자신이 바라던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결심합니다. 학교를 떠난 둘은 그렇게 조금씩 멀어지게 되는데, 앤이 결혼을 결심한 콰메와 살고 있는 아파트에 초대받은 조지가 던진 한 마디의 말로 두 사람은 더 멀어지게 됩니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말이죠.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요.

어느 날, 앤은 충격적인 소식으로 조지의 삶에 다시 등장합니다. 등 뒤로 수갑이 채워진 모습으로 등장한 앤, 앤에겐 어떤 일이 생긴 것일까요? 그 일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것과 관련이 있는데요. 가난한 사람과 흑인들의 삶을 찬양하던 앤에게 그 일은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판사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당신이 다른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고, 당신 부류의 마지막 존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p.350~351”

 

 

25년 종신형을 선고받은 앤, 그럼에도 앤의 삶은 과거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도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앤의 삶은 어떻게 될까요?

조지는 다시 학교에 복학했으며, 앤의 아버지와 또 다른 인연으로 얽히게 되는데요. 조지의 삶은 또 어떻게 될까요?

앤도 그와 같지 않았던가 - 그 오랜 세월 자신의 순수성과 꿈을, 환상을 고수하지 않았던가. 그들 둘 다 10대 때 만들어진 이상적인 자아관에 끝까지 충실하지 않았던가. 이름을 바꾼 것, 새로운 자아의 창조를 향한 헌신, 자신의 출생 배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굳은 결의, 비이기적 헌신에 대한 열정적 믿음. 그 마음.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p.600”

 

 

처음 뉴욕에 왔을 때 꿈꾸었던 동네에 입성하여 아이들과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조지,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납니다. 끝으로 출판사 리뷰로 전하고픈 말을 대신합니다.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들에게

어쩌면 마지막이 아닐 그 존재들에게

1960년대 후반은 미국 현대사에서도 폭발적인 시기였다. 터져 나온 열기들이 젊은 세대를, 세상을 사로잡았다. 이 소설에서는 그 시절이 얼마나 터무니없었는지, 얼마나 진지했는지를 들려주면서 그 시절이 남긴 여파를 쫓는다. 그 시절, 그 후, 미국이라는 것은 무엇이었나, 미국은 무엇이 될 수 있었고, 무엇이 되었냐를 물으면서.

이 소설은 두 여성의 삶과 우정의 연대기이지만, 어느 시점엔가 소멸하고 마는 어떤 부류의 마지막 존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고집스럽게 홀로 끝까지 남은 마지막 존재. 시대가 변화하고 개인도 변화하지만, 그 모든 사라짐 속에서도 조금도 흔들림 없이, 강박에 가까운 순수성을 고수하며 힐난과 냉소와 조롱 속에서도 완강하게 자신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의 모습, 시대정신에 충실했던 한 인물이 시대의 변화 속에서 어떤 존재가 되어가는지를 들여다보면서, 이 소설은 그 삶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찬찬히 곱씹는다. 앤이라는 강렬한 인물에 대한 관찰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지만, ''를 비롯한 여러 인물의 삶을 촘촘히 엮어가며 우정과 사랑, 삶과 시간에 대한 사려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출판사 리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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